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어빈 D. 얄롬 지음, 최윤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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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도 늘 혼자라고 느낀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문제는 있지만 해답은 없을지 모른다고 회의한다. 완전한 소멸을 두려워하면서도 종종 죽음에 이끌린다.....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심리 분석이라든가 정신과 상담 같은 데 호기심과 관심이 있을 터이고, 그 관심의 뿌리는 근본적으로 자기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와 사는 동안 잘 살고 싶다는 본능에 닿아 있을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 교수인 정신과 의사 Irvin D. Yalom이 자신의 치료 사례 열 가지를 묶어 낸 사례집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는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읽을거리가 되는 동시에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돼 주리라 믿는다. 
Yalom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실존적 삶에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겪는 실존적 문제들이란 이런 것들이다.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모두가 불가피하게 죽는다는 사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우리 삶을 만들어야 할 자유, 궁극적으로는 혼자라는 것, 그리고 분명한 삶의 의미나 의식이 빠져 있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 문제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하다. 
Yalom 박사를 찾아와 상담했던 이들의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문제 중 어떤 부분은 놀랍게도 나의 그것과 비슷하게 닮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 사랑의 처형자 / "8년 전 나는 치료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이후로 내 마음에서 그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밖은 너무나 춥고 내 안은 텅 비어 있어요. 나는 한 번 자살을 시도해서 죽을 뻔하다 살아났지만, 다음 번에는 틀림없이 성공할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 뚱뚱한 여인 / "무시무시하게 몇 달이 흘렀다. 그녀는 모든 걸 미워했다. 삶은 고문이었다. 지긋지긋한 액체 다이어트 음식, 자전거 운동 기구, 기아의 고통, 사악한 TV 맥도날드 광고 그리고 냄새, 도처에 깔려 있는 냄새들... 극장의 팝콘 냄새, 볼링장에서 나는 피자 냄새, 상가를 지날 때 나는 빵 냄새......"

- 잃은 아이, 남은 아이 / "나는 세 아이를 가졌어요. 하나는 천사이고 나머지 둘은, 걔들을 봐요. 하나는 감옥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약물 중독에. 나는 세 아이가 있는데 죽어서는 안 될 엉뚱한 애가 죽었어요."

- 뜯지 않은 세 통의 편지 / "나는 편지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쓸데없는 우편물이 쌓여 있는 데로 던져 버렸어요. 아직 뜯어보지 않았습니다. 왜 열지요? 거기 뭐가 있는지 난 벌써 알고 있는데. 정확한 문구는 내 상처를 더욱 갈갈이 찢어놓을 뿐인걸요."

- 측은해지려고 태어나다 /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희망은 정신 병원에 있는 것이에요. 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어요. 아이를 갖지도 않을 거예요. 난 친구를 만들 능력도 없지요. 내 생일이라고 전화해주는 사람도 없어요. 나의 어머니는 남을 괴롭히는, 미친 여성인데, 나는 매일 그녀와 비슷하게 되어 있어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갖고 있지만, 또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자리에 서있다. 너무나 많은 소망. 너무나 많은 갈망들.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그 소망들이 자기 삶을 압도하여 지배하는 상태.
나 또한 그런 시간들,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이미 나를 떠나가 버렸거나 애초부터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던 대상에 집착하던 때, 사랑이란 낭만적 환상으로 숨어들어 현실을 직면하기를 회피하려 한 때, 나를 형성한 성장 배경 중 어떤 부분을 결코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친밀감을 맛보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인 때, 또는 결국에는 다가올 헤어짐이나 공허가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것, 슬그머니 과거나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감으로써 현재 이 순간을 회피하는 것......

인간이란 존재는 스스로 자기의 부모가 되거나 영원한 아이로 남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어느 쪽이 되기를 원하는가. 나는 물리적 나이와 육체적 나이듦과 상관없이 나 자신이 계속 성장하기를 바라고, 스스로 그 성장을 진심으로 돕고 싶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공감을 나타내며 인용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말에 나 역시 밑줄을 긋는다. "책임이란, 각자가 자기 삶이라는 디자인에 '작가(be the author of)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삶을 책임지는 방법의 하나로, '검토하지 않은 채 사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러나, 내가 더 큰 위안과 안도감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런 구절과 만났을 때였다. "인생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불안을 낳는다는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더 잘 이해하면 할수록 안정감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불안의 파도 속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자기 삶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을 통찰하기란, 지독하게 어렵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서 조금의 연민도 없이 냉혹한 삶의 실존적 사실-- 죽음, 소외, 기댈 곳 없음, 무의미 등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거기엔 해결책도 없다. 몇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단호해지느냐(resolute)", "거기 빠지느냐(engaged)", 혹은 철학적으로 수용하느냐, 아니면 합리주의 정신을 포기하고 신비와 경외심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선택이 바로 내 인생의 길을 결정해 줄 것이다.

마지막 사례에서 내담자의 회한 어린 말에(그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음에...) Yalom
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대답은 나에게 힘을 준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보는 등대의 불빛처럼.
"나는 삶에서 내가 한 것, 아니 그보다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회한이 많아요."
"우리가 너무 열심히 과거를 들여다보면, 후회에 압도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입니다."

 

사족 몇 가지.

1. 이 책에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이 붙게 된 배경(저자의 말) /
"나는 사랑에 빠져 있는 내담자와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나 역시 매혹적이고 싶은 부러움 때문일 것이다. 또는 사랑과 심리 치료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치료자는 어둠과 싸워 불빛을 찾는 것인데, 낭만적인 사랑은 신비로워야 지속이 되고 그 사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기루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2. 곳곳에서 멋지고 재치 있는 비유와 사고를 만나는 묘미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크게 해준다.
가령 이런 대목들 /
"가장 나의 심리적인 관심을 끄는 분야는 대부분,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생겨났다. 철학자의 사고 체계는 항상 자기 자서전에서 나온다고 니체도 주장했듯이 이는 모든 치료자-- 사실상 생각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이야기이다.
................
하지만, 니체가 많은 부분에서 훌륭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대인 관계에는 지침이 될 수가 없다. 그보다 더 고독하고, 더 소외된 남자가 있었던가?(밑줄!!)"

"우정이나 결혼이 실패하는 까닭은, 관계를 맺고 서로 돌보는 대신, 한 사람이 상대방을 소외에 대한 방패막이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엔가 빠지는 것(falling)'이 아니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주는(giving to)' 존재의 한 방식이며 오직 한 사람에게만 향하는 행동이 아니라 크게 관계 맺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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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압도당했어요. 이 책과 리뷰의 무게에...^^

에레혼 2004-10-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그리 무겁지 않은데, 그걸 가볍게 실어 나르는 법을 미처 제가 익히지 못했어요
아직도 앞마당을 천 일쯤 쓸고, 물동이를 삼천 동이는 져 날라야 하려나 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0-1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이 책 보지 않았지만 아마 라일락와인님 리뷰가 더 훌륭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감동스런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전 아직도 상대방을 소외에 대한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군요. 게다가 크게 관계 맺는 방법은커녕 오직 한 사람에게도 정성을 다해 향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에레혼 2004-10-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언제 마음이 動하면 한번 읽어 보세요.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질병은, 이지러짐은, 자신이 사랑받고 싶은 만큼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요. 저 역시 많은 관계들이 소외와 쓸쓸함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기능하고있는 것 같아요. 이 나약함, 이 본능적인 의존, 제대로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닫혀 있음을 어떻게 졸업할 수 있을지....... 알라딘 서재에서도 관계의 여러 모습과 자세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
 
기억의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78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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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득, 최승자 시집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뭔가 이유가, 아니 어떤 引力의 근거라 할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존재하는.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의 발길이 이끄는 대로 나는 최승자의 세 번째 시집 <기억의 집>을 읽어 간다(이 시집은 1989년에 '문학과지성 시인선' 78번째 시집으로 나왔다). 시인의 발자국을 따라 그 길을 느릿느릿 따라가 보는데 어느덧 몸이 찌르르 아파 오고, 나는 슬며시 자리에 드러눕는다.


그녀는 잠과 죽음 속에서 산다. 아니, 잠과 죽음이 곧 그녀의 삶이다.
그녀가 사는 시간들은 "흐르는 잠과 하품과 구역질의 시간들"이다. "졸리워 졸리워 오늘도 나는/ 내 무덤을 미리 파고" 있는 시간들을 산다. 그 "시간의 사막 한가운데서/ 죽음이 홀로 나를 꿈꾸고 있다."고, "꿈꾸기 가장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 시간 속에서는 늘 죽음이 그의 "주위를 물결처럼 공기처럼/ 어둠처럼 맴돌며/ 급소를 노리고 있다."
"그대들이 나를 찾을 때/ 나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살아 헤매며/ 이 세계의 모든 문들을 두드릴 때/ 나는 무덤의 따뜻한 실내에 있을 것이다."
간혹 잠결에 무엇인가 그녀의 꼬리를 물기도 한다.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이 미끄러짐 끝에 확인이 있을까./ 삶의 확인 아니면 죽음의 확인이"


그녀는 무덤 같은 자기 방에서 누워 있거나 벽을 응시한다.
그 방의 내부는 그 "방의 내부 속에 닫혀 있다."
그녀가 그리는 방의 풍경. "불을 켜도 골방의 내부는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 죽음만이 홀로/ 심장의 불을 켜들고/ 환히 녹으며 타오른다." 죽음이 켜든 그 환한 불빛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외친다. "각성하라!/ 타오르는 죽음 곁에/ 깜깜히 누운 삶이여!"
그녀가 "몸 눕히는 곳 어디서나/ 슬픔은 반짝인다./ 하늘의 별처럼/ 地上의 똥처럼." 그녀는 "슬픔의 소화기관을 갖고 있지 못"해서 "슬픔을 먹는 대로 곧바로 토해 버린다."

그렇게 토해내진 슬픔들이 벽에 얼룩을 남기고 습기를 퍼뜨리고 부식의 균을 증식시킨 탓일까. 그녀의 방을 이루고 있는 벽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벽이 꾸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요히 흔들리는 벽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병을 응시한다("내가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어쩌면 그렇게 고요히 흔들리고 갈라지는 벽이 그녀의 병인지도 모를 일.
"어떤 아침에는, 이 세계가/ 치유할 수 없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또 어떤 아침에는, 내가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그런 자각 뒤에 그녀는 자신의 방문을 더 꼭꼭 잠그며, 허술한 틈을 경계한다.
"잘못하면 자칭 詩가 쏟아질 것 같아서/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극소량의 詩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안에 살고 있다.)"
그녀는 허술한 틈 사이로 시를 마구 토해낼지도 모르는 자신을 경계하고 단속한다. 그렇게 내뱉어진 시들은 가짜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하기 싫다./ 말하기 싫다는/ 말을 나는 말한다.
(희망은 감옥이다.)"


때로 그녀가 제 몸을 뉘어놓은 그 방의 창이 붉게 물든다. 
"봐, 봐, 저 붉은 노을 좀 봐.
죽을동 살동 온 유리창에 피칠을 하며/ 누군가 나 대신 죽어가고 있잖아."
그녀는 인큐베이터 같은 방 안에서 세상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다.
"심혈을 기울여 해가 지고/ 심혈을 기울여 한 사람이 죽고/ 심혈을 기울여 지구가 돈다, 돌 때,/ 나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세계를 내다보고"
그녀의 그 무심한 듯한 응시에는 세계에 지금 막 당도한 죽음이 나 대신 죽어가는 누군가의 것이자 내 것이라는 엄정한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 가혹하다./ 누가 이렇게 내 피를 빨아먹는 건지.
--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내 피를 빨아먹었다는 것을,/ 빨아먹다 죽는다는 것을.
그러나 또 나는 안다./ 내가 언제나 나이듯/ 내가 언제나 남의 남이라는 것을."


이 세계의 문법을 "매번 배우지만 매번 잊어버"리는 그녀는 자신의 삶이 "성공한 실패들의 집적"이자 "무의미의 집대성의 神殿"이라고 단언한다.
'허약한 난간'과 '허약한 삶의 규율들'에 기대어 지어진 자신의 방에 누워 그녀는 종종 희구한다.
"아- 영원한 단식만이 있다면./ 아- 영원한 無의 커튼만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 빨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그녀가 지어 올린 '기억의 집'에서 울려 나오는 마지막 기도......
"잠시만 기다려다오.
내가 이 잔을 다 비울 때까지/ 내가 꿈속에서 다시 한번만 돌아누울 때까지/ 내가 내 시야를 스스로 거둘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다오,
죽음이여/ 잠시만,/ 영원히."


그런 기도 소리가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울려 퍼지는 최승자의 <기억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는 오래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 유령 같은 자리에 눕고 만다. 아프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프다,고 쉽게 발음하는 내가 얼굴 없는 초상처럼 낯설고 아득하다.  여기는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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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1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에레혼 2004-09-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최승자 시인과 코드가 잘 맞질 않으신 걸까요? 아님 너무 아프게 하는 걸까요?
어쨌든 이런 계기로, 평소에 잘 안들어오던 시인이나 책과 잠시 만나 보는 것도 환기에 도움이 되겠지요.
찬찬히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로드무비님도요...)

hanicare 2004-09-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집 가장 황량한 시절의 일용할 양식이었지요.(그래서 진작 읽고 나서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오스트리아의 어떤 남자말마따나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는 게 맞나봐요. 그 작자의 얇은 책을 읽느라 회백질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던 기억끝에 딱 그 한마디만 생각나는군요. 기형도 시인처럼)번역은 -_-; 앤디 듀프레인님의 서재에서 퍼온거랍니다. 게으른데다 싫증을 잘 내고 천학비재한 터(결코 엄살이나 겸손이 아닙니다.)라 번역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지요. 주문했던 동화책이 가득 와서 지금 무척 아동스럽게 즐거운 모드랍니다.어릴 때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에서 본 걸로 기억되는 메리포핀스. 지금 읽으니 왜 더 재미있는지.귀절귀절에 숨은 야유와 익살은 씀바귀김치처럼 어른이라야 더 맛있을 거 같네요.저는 푸른 사과를 무척 좋아한답니다.언젠가 이젠 지겨워진 잡지 페이퍼에서 푸른 사과만 가득한 표지를 낸 적이 있었어요. 그 사진이 내내 그리웠는데 라일락와인님의 서재이미지에 한 알 들어 있네요.미숙하고 서투른 맛이 나 자신하고 좀 닮은 듯 하여 좋아하지요. 아 참 이자벨 아자니의 모습을 좋아해서 자주 걸게 됩니다. 저렇게 예뻤다면 인생관리능력이 아동수준인 나로서는 사는 게 견딜 수 없이 피곤했을 듯 합니다. 모자라는 게 많아서 지금은 편안합니다. 이렇게 구멍투성이 현무암같은 사람에게도 햇빛과 토실한 알밤이 가득하니 기쁠 따름입니다.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미리 인사드립니다.요즘 읽을 책이 즐비해서 알라딘은 좀 멀어지는군요.내내 가을과 겨울 약간의 봄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에레혼 2004-09-2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저 받은 추석 인사네요, 하니케어님...
아, 그러니까 벌써 시즌 기분 나네요, 분주함 가운데 밀려드는 쓸쓸함, 괜히 어깨 무거워지고 우울해지는...... 전 부치는 기름 냄새에 머리가 몽롱해지는......

이자벨 아자니와 푸른 사과의 이미지... 가슴 한켠 밭뙈기에 심어놓겠습니다.
 
쥐비알 동문선 현대신서 113
알렉상드르 자르댕 지음, 김남주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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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이제 네 나이 서른을 넘고 마흔을 넘어 누군가의 남편, 아내라는 이름, 그리고 아비, 어미 된 자의 무게를 낙타의 등짐처럼 지고 타박타박 걸어가다 보니,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듯 딱딱하고 바싹 마른 빵 같은 일상을 질기게 씹으며 견뎌 내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겠지?  인생은 결코 '네 멋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서 '사느라고 어쩔 수 없이 진 빚'들을 세상에 갚아 나가는 것 -- 그게 산다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 요즘 이렇게 말하곤 하는 너의 곁에 슬쩍 밀어넣어 주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긴 설명 따위 없이 그저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아니, 그런 게 삶이라고? 그런 게, 설마, 네가 살고 싶은 삶이었던 건 아니겠지? 여기, 산다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외친 사람, 어느 한 순간도, 일상의 단 한 조각도 자기 자신이 아닌 것으로 채워질까봐 소스라치게 경계하며 경탄할 만큼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이 사람을 한번 만나 보라고. 어느새 뻣뻣하고 무미건조하게, 신념 따위와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혼자 있어도 덤덤하고 부담 없이 무난한 어른이 되어 버린 너는 그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내게 또는 너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아마도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풀어야 할 유일한 숙제일 그것, 바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우리는 왜 그토록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며 주저하며 살고 있는 걸까.

"짐짓 경박한 체할 때조차도, 아니 그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누리는 데 몰두했던 사람... 그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완벽히 표현하고, 자신의 진실을 거리낌없이 주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은 지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모순 투성이인 자기 본성을 단 1그램 잘라낸다는 생각만으로도 파랗게 질렸으리라."


그토록 자신의 갈망과 모순에 완벽하게 접근한 사람, 그렇게 오만하게 존재의 위험을 무릅쓰며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쥐비알'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파스칼 자르댕이다. 이 책을 쓴 '쥐비알'의 아들 알렉상드르 자르댕의 설명에 따르면, '쥐비알'은 코알라, 맥( ), 얼룩말, 긴팔원숭이간의 잡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동물이라고 한다. 이 희귀한 동물은 감정 이입에 있어서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상대의 감정을 즉각 알아차리고 환희이든 슬픔이든 더할 수 없이 진하게 그것에 동화되는 '감정의 바로미터'인가 하면, 다른 한편 즐겁게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쥐비알에게는 고단한 인생을 매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절실하게 살아낼 줄 아는 재능이 있다. 그의 일상은 있음 직하지 않은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상충되는 행동이야말로 그의 특기였다...... 초대받은 만찬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아버지는 거리낌없이 지루하다고 말하고 여주인의 손에 입을 맞춘 다음 자리를 떴다. 원하는 여자가 유뷰녀라면? 그녀의 남편에게 알려지는 것에 아랑곳없이 바로 그날 밤 그 여자를 납치하기 위해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의 담을 넘었다."


재기발랄하고 유머 넘치고 시끌벅적한 한바탕 모험의 연속인 듯한 쥐비알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축은 바로 자신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탐사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고 싶어했고, 사람을 마취시키는 일상 속에 매몰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언뜻 돈 키호테와 닮은 듯 보이는 충동적이고 무모한, 그래서 종종 사람들의 상식과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그의 행동들은 어쩌면 자기 안의 광기를 믿어 주려는 용기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보다 위대한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믿음 뒤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처럼 삶에 대한 깊은 절망과 운명에 무릎 꿇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깔려 있음을 본다. 쥐비알은 '자기 자신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운명이 부과하는 절망에 대한 하나의 치유책,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너에게.

쥐비알을 만나는 동안 네 안에서 졸고 있는 온갖 충동적인 인물들이 되살아나기를, 삶의 순간 순간에 감탄할 수 있는 역량이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 받기를, 스스로의 모순들이 불러일으키는 아찔함을 받아들이게 되기를, 다른 이들로부터 판단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 내던져 버릴 수 있기를,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살 줄 알게 되기를, 그리하여 지혜로워진 끝에 마침내 충동적이 될 수 있기를, 무엇보다 스스로의 심연을 건너는 일이 너에게 오직 진정한 기쁨임을 깨닫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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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된 내용보니 참 좋구만 상품 평점은 왜 그렇게 야박하게 주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에레혼 2004-09-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좀 박했나요?
글쎄, 그 별점의 기준이란 것... 제가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 별점이란 걸 매길 때마다 자의적이고, 변덕스럽고, 들쑥날쑥하고 그렇지요, 그래서 마지막 클릭하는 순간 좀 주저하게 되기도 하구요.
그래도 굳이 '야박했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읽는 동안은 촉촉하게, 뿌듯해 하면서 읽었는데요, 아무래도 이 글의 성격이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삶을 자기의 시각에서 포착해서 그려낸 것이니까, '쥐비알'이라고 불리는 파스칼 자르뎅의 실제 삶이 이 글보다는 더 넓고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세계가 아닌, 실제의 삶이 글보다 더 '진하고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임에도 별 두 개 뺐어요, 그래도 역시, 좀 야박했지요?

플레져 2004-09-0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인님 진짜 야박하시넹...ㅎㅎ
욕심쟁이같지만, 님 덕분에 좋은 책 "또" 알게 되서요, 저 이 책 읽어볼래요.
제가 별 몇 개 줄지 기대하세요...^^ 읽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셨으니, 추천합니다~!

에레혼 2004-09-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은 진짜 후하시네요, 추천까지 해주시고^^
자주 놀러오셔서 좋아요
후덕한 님은 별을 몇 개나 얹어 주실지, 지켜보고 있을게요.

근데 플레져님만 뵈면, 플라맹고를 배우고 싶다는 숨은 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곤 합니다, 이 村에는 배울 데도 없는데.....몰라요, 책임지세욧~~!

2004-09-1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쥐비알 읽을래요, 제목도 리뷰도 다 구미가 당기게끔 조작되어 있군요..ㅋㅋ 오늘 아침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말이 '나를 버리기' 와 '안 읽어도 된다' 였는데...연관이 있는 것 같군요. 그나저나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것두 하기싫은 게으름은 어떡해야 하는지 스캇펙에서 좀 물어봐 주서요..저 지금 집에 혼자 있어서 무지 기분 좋아요..룰루~

에레혼 2004-09-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게으름에게 자신을 기대세요, 아주 느슨하고 가볍게...... 나중에 그 기댐이 버거워지면, 게으름 제가 출구를 가리켜 줄 테지요.
쥐비알 같은 아버지를 만났다면, 인생이 참 많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내 인생이 지금 이런 모습인 걸 누구 탓을 하겠어요.....
식구들 다 나가고 혼자 집에 있을 때의 그 공간감, 굉장히 뿌듯하지요, 아무 것도 안 해도 기분 좋고 배 부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