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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김 중 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몇 날 며칠을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길 위를 헤맨 듯싶다. '나의 서재'라고 팻말 붙여 둔 이 방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난 말하자면 도망을 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사이 밤마다 희안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정신을 차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몸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어릴 적부터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선잠에서 깨어나면 방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기까지 한참 마음속으로 사방 벽을 더듬거리곤 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데 좀 오래 걸리는 부류인 것이다. 

'도망중'인 사이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문득 고개 들어 휘 둘러보니 그리 멀리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읽다가 밀쳐둔 책들로 어지럽혀진, 그 사이 문 한번 열어 보지 않은 먼지투성이 서재의 창문으로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햇살 한 줄기 비쳐 들어온다.  엄살 떨지 말고, 변명 따위 하지 말고, 방 청소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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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0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몸으로 돌아왔을 때...

이 아침 가슴을 칩니다.

그나저나 님, 히잉 너무 반가워요.^^

urblue 2005-01-04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

로드무비 2005-01-1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3000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그 가면을 수시로 바꿨다.....

가면 밑에 다른 가면이 있고, 그 연속적인 숨김 밑에 진정 본질적인 인간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몇 명의 푸코가 있는 것일까? 수천 명의 푸코가?

그렇다. 물론이다.

 

--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시각과 언어) 중에서

 

 


Duane Michal, Mir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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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2-2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가워라. 너무 오래 쉰 거, 알고 계시죠?

플레져 2004-12-2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레파시가 통했나요. 아까 밖에서 볼일을 보다가, 라일락 와인님이 모습 본 지 오래됐구나 싶었어요.... 반가워서 눈웃음 ^^

물만두 2004-12-20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잊었다는 그래서 님을 사마로 못 올렸다는 죄송 ㅠ.ㅠ

라사마님 라쟈냐 사마!!! 와인하고 먹음 좋을 것 같으니 와인도 한병^^ 찔러족 만두의 찌름 사마이옵니다. 궁금하심 제 서재와서 보시와요^^

2004-12-2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은 버젼이군요..


물만두 2004-12-2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라압스타^^
 

 

 

두 번 쓸쓸한 전화

 

한 명 희

 

 

 

시 안 써도 좋으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카의 첫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다

 

내 우울이, 내 칩거가, 내 불면이

어찌 시 떄문이겠는가

 

자꾸만 뾰족뾰족해지는 나를 어쩔 수 없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하면서도 자꾸만 주저앉는 나를 어쩔 수 없는데

 

마흔,

실업,

버스 운전사에게 내어버린 신경질,

세번이나 연기한 약속,

냉장고 속 썩어가는 김치,

오후 다섯 시의 두통,

햇빛이 드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쓰여진 일기장,

 

이 모든 것이 어찌 시 때문이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

한번도 당당히 시인이라고 말해보지 못한 시

그 시, 때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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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0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딱 제 상황이군요.

시 쓰는 것 빼고......

추천하고 가져가요.^^

에레혼 2004-12-06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빠른[자꾸 '바른'이라고 오타가 나는 이유는?...] 응답.....

지금 막 십시일반의 자세, 에 관한 님의 글 보고 오는 길인데.....

12월이라는 시절 탓일까요, 이 시에 이토록 감정이입이 되는 건.....

로드무비 2004-12-0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은 좀 괜찮으세요?

우리 이제 힘 좀 내어 서재활동에 매진해 볼까요?

서로 열심히 댓글 달고 추천 눌러주고......^^

urblue 2004-12-0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 서재 활동에 매진하시면 반갑지요. ^^

딸기 2004-12-0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서재활동 열심히 하시라고,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에레혼 2004-12-0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한 편두통과 밤의 농도와 함께 시작되는 기침을 친구처럼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사이 좋게 지내보려구요....

로드무비님, 좋아요! 우리, 힘냅시다! 재미있게 살고, 읽고, 쓰고, 그리고 잊지 말고 꼬옥 추천하고!^^

12월이라는 숫자의 무게와 압박이 그렇잖아도 어디엔가 마음을 좀 묶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즈음... 이번 주만 지나면 좀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그때부턴 나도 보란듯이 누구처럼[!] 찜해 둔 영화도 보러 다니고, 빵빵하게 리뷰도 써서 올리고, 짬짬이 연애 편지도 쓰고 그래야지! -- 마치 시험만 끝나 봐라,하는 수험생처럼 요즘 속으로 되뇌고 있답니다.

에레혼 2004-12-0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도 대열에 동참하시지요! 추위에 웅크리고 있지 말고!

에레혼 2004-12-0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여기에 추천을 누르시니 쬐끔 부끄럽사옵니다! 막후 조율 작업인데.....^^

일본에도 첫눈이 내렸으려나... 일본의 겨울, 우리와 다른 난방 시스템으로[일본에서 생활해 보면, 우리의 온돌 난방 구조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것인지 절감하게 되던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국에서의 겨울,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플레져 2004-12-0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퍼가요. 어찌나 내 것 같은지...

mira95 2004-12-07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라일락와인님 서재에 처음 방문하는데, 덜컹 와서 시만 퍼갑니다. 플레져님 서재에서 보고 왔어요. 가슴에 와닿는 시네요. 잘 퍼갈게요^^

비로그인 2004-12-0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고도 슬프네요.

2004-12-18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전 한명희란 이름 못 보고 와인님 얘긴 줄 알았어요..으..시쓰시는 구나 그러면서...시쓰는 것만 빼면 나하고 똑같다..그러면서...하하하..다들..하하..
 


 





 




 



 



 



 


 "출발하는 것, 그것은 조금 죽는 일이다"




             바슐라르, <물과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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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난해한 영화가 재밌어요..내가 난해한 인간인가봐요..
 

 


여기 있어 줘요, 기린 아저씨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는 바람이 소용돌이쳐 지나간 텅 빈 밤의 플랫폼에, 잿빛으로 그을고 달처럼 외로운 거대한 홀 안에 서 있었다. 밤이 되어 텅 빈 정거장은 죽어 무의미해진 세계의 종말이다. 그리고 허전하다. 텅 비고 공허하고 허전하다. 그렇지만 더 가려다 보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든 길을 잃는다. 어둠은 무서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어둠은 순식간에 압도해 오며 그를 벗어날 자가 없다. 어제 저지른 살인을 기억시키며 그는 엄습해 온다. 내일 저지르게 될 살인을 예감하게 하며 그는 덮쳐든다. 이 암흑은 또 사람의 마음 속에서 비명을 키운다. 고독한 짐승의 섬찍한 비명을, 몸을 담근 바다까지도 압도하는 물고기의 비명을. 그 비명은 누군가의 얼굴을 갈갈이 찢어 버리고 역사의 동혈을 공포로 채운다. 다른 이들까지도 경악하게 될 뚝뚝 듣는 위험으로 가득 채운다. 이처럼 적막한 것은 바로 바닷속의 외로운 짐승이 내뱉는 무시무시한 암흑의 비명이다. 이제 비명은 밀물처럼 불어나서 파도처럼 검게 흔들리며 위협적으로 솨솨거린다. 거품처럼 부서져 사라지면서 솨솨거린다.


 그는 세계의 끝에 서 있었다. 차갑고 하얀 아크릴 등이 무자비하게 비춰 무엇이든 노출시키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 뒤에서는 무서운 어둠이 커 가고 있었다. 어떠한 암흑도 텅 빈 밤 플랫폼을 비추고 있는 하얀 전등 주변의 어둠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당신이 담배를 가진 걸 봤어요. 창백한 얼굴에 지나치게 빨간 입술의 여인이 말했다.


 그래, 조금 있지. 그가 대답했다.


 그럼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어요? 여인이 가까이에서 소근거렸다.


 싫어, 가긴 어딜? 그가 말했다.


 제가 얼마나 근사한지 전혀 모르시죠? 여자가 코를 벌름이며 그의 곁에서 서성거렸다.


 웬걸, 다 똑같니 뭘. 그가 대답했다.


 당신은 기린예요, 키다리 아저씨. 고집쟁이 기린이란 말예요. 그럼 제가 어떻게 보여요, 네?


 배 고프고 벌거벗고 잔뜩 그을렸군그래. 다 똑같아.


 당신은 키다리에다 멍청해요, 기린 아저씨. 그녀가 가까이에서 키득거렸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 같아요. 자 가요, 젊은 분. 밤이에요.


 이제 그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좋아, 그가 웃었다. 너는 담배를 벌고 나는 너와 키스를 하자. 그렇지만 내가 네 옷까지 벗겨 버리면? 그럼 어쩌지?


 그러면 저는 얼굴이 빨개지겠죠. 그녀가 말했다. 그는 여자의 비죽 웃는 모습이 천박하게 느껴졌다.


 화물열차가 홀을 와르릉거리며 지나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끝나 버렸다. 열차의 아물거리는 빈약한 꼬리등이 흔들거리며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진동하며 신음하며 덜커덩거리며 지나갔다.


 그는 여자와 함께 갔다.


 그리고는 손과 얼굴과 입술이 있었다. 얼굴은 모두 피를 흘리고 있다고 그가 생각했다. 그들의 얼굴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손에는 수류탄을 들고 있단 말야. 그러나 이제 그는 루즈를 맛보고 여자의 손이 그의 야윈 팔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신음 소리에 이어 철모(여자의 가발을 가리킴)가 떨어져 버리고 한 쪽 눈이 흐려졌다.


 너 죽는구나. 그가 소리쳤다.


 죽는 것! 그녀가 환호를 올렸다. 그것은 무엇인가 뜻있는 일일 거예요, 정말.


 여자는 철모를 다시 이마까지 눌러썼다. 그녀의 검은 머리가 생기없이 번쩍거렸다.


 아, 네 머리가. 그가 속삭였다.


 여기 그냥 계시죠? 그녀가 나즈막하게 물었다.


 응.


 그래?


 응.


 언제나?


 네 머리에서 젖은 나무가지 냄새가 나는데, 그가 말했다.


 언제나 계시죠?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멀리서 가까워 오는 둔중하고 거대한 비명. 물고기의 비명. 박쥐 울음소리, 풍뎅이 소리. 기관차가 내는, 들어 본 일이 없는 짐승의 소리. 열차가 철길에서 이 비명 앞에 공포에 질려 비틀거렸던가? 창백하게 바랜 성좌 아래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연두색 비명소리. 이 비명에 별들이 비틀거렸을까?


 이제 그가 창문을 열어젖히자 밤의 차가운 손으로 드러난 젖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나 지금 가야 돼.


 여기 있어 줘요, 기린 아저씨! 그녀의 입이 하얀 얼굴 속에서 병색 짙은 빨간 색으로 아물거렸다.


 그러나 의족을 한 기린은 공허하게 울리는 발자국소리와 함께 포도를 건너 떠나갔다. 그의 뒤에서 아침 회색의 거리가 그 바위의 고독 속으로 다시 적막하게 가라앉았다. 창들은 우유입김으로 유리가 된 듯이 파충류의 눈처럼 죽어 보였다.


 커튼이, 잠에 겨워 몰래 숨쉬는 눈까풀이 가만히 흔들렸다. 좌우로 흔들거렸다. 하얗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애처롭게 그의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창의 문짝이 야옹 소리를 냈다. 그녀의 젖가슴이 시려 왔다. 그가 돌아보자 창유리 뒤에는 지나치게 빨간 입이 있었다. 기린 아저씨, 그 입은 울고 있었다.


 


 


 


 


눈에서 얼어죽은 고양이


볼프강 보르헤르트


  


 남자들이 밤에 거리를 지나갔다.그들은 콧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밤 속에 하나의 빨간 반점이 있었다. 그것은 역겨운 빨간 반점이었다. 그 반점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남자들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전쟁이었으니까. 그들의 징을 박은 군화 밑에서 눈이 비명을 질렀다. 역겨운 비명을 질렀다. 눈이. 사람들은 집에 둘러서 있었다. 집들은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며 아이들이며 이불을 팔밑에 끼고 있었다. 핏빛 눈 속에서 고양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은 불에 비쳐 그렇게 빨간 것이었다. 그런데 눈은 말이 없었다. 집들은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며 아이들이며 이불을 팔밑에 끼고 있었다. 핏빛 눈 속에서 고양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은 불에 비쳐 그렇게 빨간 것이었다. 그런데 눈은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바작바작 타며 신음소리를 내는 집 주변에 말없이 둘러서 있었고 그래서 눈은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집에 木像을 가진 사람들도 얼마간 있었다. 이때 둥그스름한 얼굴에 갈색 수염을 한 남자가 저쪽에 보였다. 사람들은 퍽이나 멋지게 생긴 이 남자의 두 눈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집들은 여전히 여전히 그치지 않고 탔다.


 이 마을 옆에 다른 마을이 또 하나 있었다. 이날 밤에 그곳 사람들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눈이, 달빛처럼 환한 눈이 저쪽 마을 때문에 약간 담홍색을 띠기도 했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짐승들이 마굿간 벽에 쿵쿵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아마도 건성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대머리의 남자들이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두 시간 전에 한 남자가 빨간 연필로 선을 하나 그었다. 지도 위에. 그 지도 위에 점이 하나 있었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 점을 밤 속으로 깨끗히 쓸어넣어 버렸다. 핏빛으로 불타는 마을을. 담홍색 눈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얼어 죽어가는 고양이들과 함께. 그리고는 대머리 남자들로부터 다시 나즈막한 노래소리가 들렸다. 한 처녀가 무슨 노래인가를 불렀다. 여기에 맞춰 때때로 뇌성이 들렸다. 아주 멀리에서.


 남자들이 밤에 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콧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배나무 냄새가 났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또 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 하늘에 핏빛의 빨간 점이 나타났다. 이제 남자들은 콧노래를 그쳤다. 그리고 한 남자가 말했다. 자, 보아라, 태양이다. 그리고는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이제 콧노래는 부르지 않고 있었다. 꽃피는 배나무 아래에서 담홍색 눈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이 붉게 물든 눈을 다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반쯤 남은 마을에 아이들이 시커멓게 불탄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거기에 하얀 막대기가 한 조각이 나왔다. 그것은 뼈다귀였다. 아이들은 그 뼈를 가지고 마굿간 벽을 두드렸다. 누구인가 북을 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톡 톡. 뼈다귀가 소리를 냈다. 톡 톡 톡. 누구인가 작은 북을 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주 예쁘고 말끔한 뼈였다. 그것은 고양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 뼈다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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