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근무 끝! 컴백 홈! 감독 이창동 독점 인터뷰 [5]

소설로, 영화로 이어진 힘
 

조선희 무엇이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들었을까요.

이창동 아, 이건 어려운 단답형 질문이다. 외로움 같아. 외로움. 십대 초반에 이미,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소설도 썼어요. <삼국지>도 썼고.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그림도 그려가면서 내 나름대로 쓴 거예요.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야. 외로우니까, 현실하고 소통이 안 되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 정서나 심리상태가 거의 변하지 않은 거 같아요.

조선희 소설 쓰다가, 아 이거 못해먹겠다 해서 딴 데로 간 게 또 다른 작가의 길이었잖아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로, 영화로 끌고 온 힘이 뭘까요.

이창동 글쎄요, 힘이 있었나? 그냥 흘러오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조선희씨가 잘 알겠지만 그건 있었어요. 이른바 80년대에 내가 글을 썼잖아. 우린 20대 때엔 인문학적 감수성이었거든. 그런데 80년대는 인문학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였어요.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예요. 나 개인으로는 글 쓰는 쾌감이랄까, 즐거움이랄까, 글에 대한 도취, 그런 게 문창 초기엔 굉장히 강했거든요. 근데 정작 작가가 되고부터는 그게 완전히 휘발돼버렸어요. 의무감만 남은 거예요.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부터 글쓰기가 힘들어진 거죠.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 고민은 하는데 정작 글은 쓰지 못하는. 그런데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고. 포스트모던이니 신세대, 이런 것들이 화두가 되었잖아요. 굉장히 허탈했지요. 우리가 고민했던 가치들이 유효기간을 지난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가 그런 문제를 해결한 것도 아니야. 근데 갑자기 유통기한 지난 의제들처럼 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글쓰기가 싫어졌던 거야. 나 자신에 대한 것도 많았어요. 내가 지겨워졌다고 할까. 그러면서 핑계를 찾은 거죠. 글쓰지 않을 핑계를. 그러다 우연찮게 영화판까지 오게 됐죠. 그때 <그 섬에 가고 싶다> 촬영장에서 만났잖아. 그때 어떤 기자가 그렇게 썼는데, 꼭 수행자 같았다고. 실제로 그냥, 혼자 고생을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영화를 하게 된 건 주변에서 떠밀어서 한 측면도 있어요. 나 혼자, 다른 영화감독 지망생처럼 시나리오 들고 왔다갔다하라 그랬으면 못했을 거예요.

 

<중략>

조선희 자신의 내부에는 어떤 실마리도 없었어요? 영화에 대한.

이창동 그렇지는 않죠. 한국사회의 변화하고 관련있는 이야기인데,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변화 중에 탈근대의 화두가 있잖아요? 그중 하나가 영화에 대한 거지. 실제로 근대의 중심은 활자거든. 활자의 의미, 관념 이게 근대를 지배했잖아. 근대를 끌고 왔지. 그런데 탈근대는 영상이 또 다른 어떤 세계를 구성하는 거야. 조선희씨가 <씨네21> 편집장을 한 것도 그렇지. 작가들도 모이면 영화얘기를 했어. 영화감독 하겠다는 친구들도 꽤 있었고. 난 상상도 못했어요. 그저 농담이었지. 근데 농담이 진담이 되어버린 거지.

 

소설에서 영화로 넘어가는 건너뛰기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그런 배경이 있었던 거예요. 돌이켜보면 그게 내 운명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릴 때 형 때문에 비록 지방도시였지만 연극을 늘 봐왔고 연극이란 장르는 나한테 굉장히 친숙하거든. 그리고 또 열몇살 때 이미 화가였고, 물감 살 돈이 없어서 포기했지만. (웃음) 그러그러한 씨앗들을 내가 품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지만 따지고보면 예정돼 있었던 거 같기도 해요.

 

조선희 93년에 <그 섬에 가고 싶다>가 나왔잖아요. 그리고 97년 <초록물고기>인데, 그때까지가 말하자면 영화감독으로서의 수업기라 볼 수 있는 거네요. 93년부터 4년 정도. 그 기간이 좀 지루하지 않으셨어요?

이창동 일단 수업기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떤 목표를 갖고 있어야 지루할 텐데 나한테는 목표의식이 없었어요. 꼭 해야지 하는 건 없었어요.

조선희 어쨌든 그러다가 <초록물고기>를 찍게 된 계기는 뭐죠? 낭트영화제를 보고 영화하기로 결심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창동 결심은 아니고, 베낭여행을 가다가 낭트에 들렀어요. 근데 굉장히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그게 나한테는 놀라움이었어요. 보편성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한 계기가 됐죠. 국경을 넘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는 문학보다 영화가 훨씬 쉬운 매체라는 걸 느꼈다는 뜻이에요. 문학은 오래 걸리잖아요. 번역의 문제도 있고, 또 세월의 무게, 시간의 무게를 이겨야 돼요. 영화처럼 금방금방 평가받지 않잖아요. 그게 조금은 영향을 줬을 거예요.


작가로서의 분열과 싸움

조선희 여하튼, 신인 시절에….

이창동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용해. (웃음)

조선희 어떤 기업인 전기를 써주다가 노트북 파일이 날아간 적 있었잖아요. 그게 언제였죠?

이창동 95년이었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시나리오 쓰는 동안이었죠. 그건 거의 사고를 당한 충격이었어요. 왜 잃어버린 게 더 아깝잖아. 더 훌륭하고. 어떤 기업인 전기소설은 이미 다 썼던 거고 고료도 받았었고. 노트북에 있다 날아간 건 그때 작업하던 장편소설, 중편 등등이었죠.

 

조선희 제가 지금 신인작가잖아요. 근데 정말 신인작가라는 건 정신분열의 다른 이름인 거 같아요. 사회적 냉대, 시스템의 냉대에 시달리다보면, 끊임없이 내가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 그걸 사회에 납득시키기 전에 내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잖아요. 그 내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거 같아요. 또 내가 소설 쓸 재능은 없을지라도 이유는 있다는 걸 자신한테 납득시켜야 하는데, 가장 절망적일 때는 그 이유가 생각이 안 날 때예요.

선배는 그런 신인작가 시절을, 소설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무려 두번이나 했잖아요. 이 신인작가에게 뭔가 용기를 주는 얘기 해주실 거 없어요?

 

이창동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어떤 누구의 경험도 도움이 안 돼요. 혼자서 해결해야지. 절망을 좀더해야 해. 가혹하게 이야기하면, 절망을 아직 덜 했구먼.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설득한다고 했잖아. 무가치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돼.

조선희 그것까지 받아들이고 나면 쓸 기력이 없잖아요.

 

이창동 절망을 하고 나면 할 일이 쓰는 거밖에 없게 돼요. 베스트셀러를 쓰려고 하니까 그렇지. 무인도에서 구원의 글귀 한 구절을 써가지고 병에 집어넣어서 코르크 마개를 닫고 바다에 던지는 심정이 돼야 해. 누구 하나라도 이걸 주워서 봐줬으면 좋겠다, 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 무인도에서 베스트셀러작가가 되는 걸, 이 체험을 수기로 써서 베스트셀러가 돼서 비단옷 입고 진주목걸이 하고 그런 거 상상하면 미치지.

 

조선희 신인작가가 자기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다보면 조급해지잖아요. 그런데 <초록물고기>는 데뷔작으로서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건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창동 무슨 이야긴지 정확히 이해하겠는데, 한 가지 납득이 안 되는 건, 지금 조선희씨 이야기 중에, 뭐라 그럴까, 세속적 잣대의 용어가 섞여 있어. 작가는 작가지, 신인작가라는 말은 없어.

그건 저널리즘 용어라고. 난 열두살에 이미 작가였다고. 그전엔 화가였고. 내가 글을 쓰면 이미 작가예요. 신인작가, 추천작가, 무슨 수상작가. 이건 그야말로 세속적인 거라고.

 

또 시스템으로부터의 냉대, 인정 이런 것들도 세속적 가치라고. 요즘 예술가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들 하잖아요.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자기 내적 충동, 내적 가치로 창작을 하는 예술가를 만나는 게 어렵다는 얘기 같아.

보면 알거든. 예술가의 폼을 내는지. 진짜 예술가인지. <초록물고기> 때? 말할 나위가 없죠. 그때 경험했던 냉대와 쪽팔림이라는 거. 나이도 사십이 넘어서. 그런 외로움은 내가 열두살 때 이면지에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쓸 때나 큰 차이가 없거든. 그게 힘 아닌가. 영화 촬영할 때 어떤 장면 찍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와 이 장면 하나 몇만이다, 이런 얘길 덕담처럼 하는 경우 있어요. 그럼 난 즉각적으로 의심을 해요. 이거,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는 것엔 뭔가 위험한 요소가 있다는 거지.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교감하는 게 좋지. 그런데 그 방식이 중요한 거지.

조선희 자기 재능에 절망한 적은 없어요?

이창동 그걸 나에게 물어선 안 되지. 조선희씨 왜 절망하는데? 뭐 땜에 절망해? 스팀이 잘 안 들어와서 절망해, 볼펜이 잘 안 들어와서 절망해,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서 절망해?

(웃음) 결국은 자기 욕망과 그 욕망으로부터 동떨어진 재능과의 싸움이지. 피흘리는 싸움. 그게 운명이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군.

 

조선희 그런데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 절망과 싸움이 늘 반복되나요?

이창동 그렇지. 그럼 술술 나오나? 안나오지.

<중략>

 

조선희 그러면 작품이라도 빨리 찍어야 할 텐데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올까요. 내년쯤?

이창동 모르겠어요. 사실은 소설을 쓰고 있거든. 몰라, 끝냈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절반도 안 됐는데.

 

조선희 영화로 만들 걸 소설로 쓰는 거예요?

이창동 그건 아니고. 공무원 생활하면서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언어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은 언어가 가진 환기력을 수단으로 삼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걸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근데 너무 오랫동안 안 해서 다 까먹었어요.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과거에도 잘 못썼지만. 거의 실어증 환자가 말 배우는 수준이야.

 

시네마서비스에서 알면 화낼 텐데. 계약금 받아먹고 말이야.

조선희 어쩔 수 없이 이창동 감독이 문자세대라는 게 아닐까요.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또 영화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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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초여름에 친구들과 제법 오랜 여행을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기내에서 만나게 된 빅 뉴스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소식이었다. 너무 급작스런 뉴스여서, '정말? 아니, 언제 저렇게까지 일이 진척됐지?'싶은 어리둥절함과 함께 '공중 위'에 떠 있다는 공간감각이 덧붙여져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었다.

몇 해 전, 다시 여행길에서[아마 헝가리 부다페스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 전화를 했더니, 상기된 목소리로 들려주는 몇몇 소식 중에 이창동 감독이 칸느인지 베니스인지  아무튼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끼어 있었다. 외지에서 듣기에도 가슴 설레는 뿌듯한 뉴스였다. 누군가의 성공(浮上)에 관한 일화 뒤에는 의례 또 그와 비견되는 누군가의 실패(가라앉음)가 빛과 그림자처럼 떠오르는 법이기도 했고.

그 뒤로도 이창동은 때마다 인상적이고 놀라운 변신을 해서 그 해에 기억할 만한  화제의 인물이 되곤 했다.  

영화감독 출신 장관에서 이제 다시 '소설가'로 돌아온 그의 인터뷰 기사[씨네 21]가 여러 모로 곱씹을 만하다.

몇몇 구절, 특히 "절망을 덜 했구먼!"이란 그의 표현에 공감하면서 속으로 웅얼거려 본다......  "자네, 아직 절망을 덜 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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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선, Rainy Day (MBC 수요예술무대)



http://home.freechal.com/angellady/sound/RAINY.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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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2-0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겨울이 훌쩍 다가오겠군요. ^^

비로그인 2004-12-0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슬퍼지네요.
 

 





이제하, 빈 들판



http://www.zeha.pe.kr/work/images/Track01.mp3








 












 








 




  같은 이야기





세사르 바예호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나쁘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나의 형이상학적
공기 속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공기를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불꽃으로 말했던
침묵이 갇힌 곳.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형제여, 들어보세요, 잘 들어봐요.
좋습니다. 1월을 두고
12월만 가져가면
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모두들 압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내가 먹고 있음을…… 그러나,
캄캄한 관에서 나오는 無味한
나의 시 속에서
사막의 불가사의인 스핑크스를 휘감는
해묵은 바람이 왜 우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들 아는데…… 그러나 빛이
폐병 환자라는 건 모릅니다.
어둠이 통통하다는 것도……
신비의 세계가 그들의 종착점이라는 것도……
그 신비의 세계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곱사등이이고, 정오가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가는 걸 멀리서도 알려준다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아주 아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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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12-0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새벽까지 깨어 있으셨나봐요, 그리 부랴부랴 달려와 볼 것까지는 없는데......

'타인의 취향'이란 말을 좋아하신다니, 고집스럽고 편협하게 내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나와 다른 것에 창을 활짝 열어 두고 계신가 봅니다...... 타인의 취향, 시선, 기준을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쁘다'거나 '별 의미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힘도 아름다운 힘이 아닐까 싶어요.

2004-12-01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책은 무조건 즐겁게 읽어라”(3)

P.S. 책읽기에 대한 얘기가 세상 얘기로 번져간 것은 책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즉 책-무한이기에 책의 바깥은 없다. 때문에, 책은 무조건 즐겁게 읽어라라는 정언명령은 나에게 다니엘 페나크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걸 조금 밝혀보았을 뿐이다(괴로운 책읽기에 대한 내용도 집어넣을까 했지만, 분량상 참아두기로 한다).  



이제 2004년도 곧 마지막 한 달을 남겨놓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모스크바에서 보내면서 감회가 없지 않다. 12월은 그러한 감회를 풀어볼 수 있는 책들을 읽어볼 계획인데, 내가 고른 12월의 책은 두 권이다. 하나는 데리다의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작가 다닐 하름스의 <한 남자가 집에서 나왔다>(청어람)이다(하름스의 책 제목은 정확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둘 다 얇은 책이긴 하지만, 이 두 권이 개인적으로 내가 꼽은 올해의 책이다 



데리다의 책을 꼽은 건 물론 지난 달에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나는 그가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을 읽는 일은 언젠가 고백했듯이 내 생전에는 종료되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그를 읽고 또 읽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나는 얼마전에 니콜라스 로일(N. Royle) <자크 데리다>를 다 읽고, 지금은 비어즈워스(R. Beardsworth) <데리다와 정치적인 것>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은 사실 데리다가 사유하는 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올해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동문선)도 다시 번역돼 나왔지만, 요즘에 좀더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의 책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읽어보기로 했다(번역도 믿을 만한 것 같아서).  



비문학 분야의 또 다른 올해의 책들은 지젝의 (제목은 언제나 헷갈린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나이다>(인간사랑)와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이다(이 두 책에 대해서는 통신문 <최근에 나온 책(30)에서 언급한바 있다). 두 저자의 두번째 책이란 얘기도 이전에 했지만, 비유컨대, 지젝에게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그들은>, 그리고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은 각각 최강의 완투 펀치(1-2선발)라 할 만하다(올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에 견주면,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커트 실링쯤 될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어느 한 권만 읽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나는 이런 책들을 한 권만 읽고 떠드는 사람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해서, 이 두 권이 나로선 서울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챙기게 될 책들이다. 하지만, 현지사정상 12월엔 <법의 힘>만 읽는다   



문학분야의 책으로 내가 꼽은 다닐 하름스(Daniil Kharms; 1905-1942)는 러시아에서도 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복권되고 다시 읽히고 있는 작가이다(지금은 고리키보다는 훨씬 더 책이 많이 나와 있고 더 많이 읽힌다). 본명은 다닐 이바노비치 유바초프인데, 소위 러시아의 마지막 아방가르드 작가로서 전위적 예술단체였던 오베리우의 주도적인 인물이었고, 이오네스코나 베케트보다 거의 20년 이상을 앞서서 부조리극과 부조리문학을 개척한 작가이다(그게 숙청의 빌미가 되었는바, 스탈린의 사회주의는 넌센스를 용인하지 않았다). 더불어 아동문학가 



이미 <도스토예프스키의 기하학과 부조리극의 기하학>이란 통신문에서 약간 소개한바 있기도 한데, 올해 나온 그의 작품집 <한 남자가 집에서 나왔다>는 국내에서 처음 출간/소개되는 책이다. 물론 올해 문학분야에서 나온 책으론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돈키호테> 등의 재번역본 등이 중요하지만(현지사정상 나의 시야는 한정돼 있다), 나는 적어도 러시아문학 쪽에서 나온 책으로는 가장 의미있는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겠다(체홉 사망 100주년이었지만, 체홉의 책으로 아주 새롭게 출간된 책은 없었다).  



한국어판 하름스의 표제작은 그가 1937년에 쓴 것인데, 그의 문학적 유언으로 흔히 읽히는 작품이다(대부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한 페이지밖에 안되지만). 1931년에 1차로 체포된바 있었던 그는 1941년에 2차로 체포되며 42년 초에 수용소에서 (어처구니없지만) 기아로 죽음을 맞는다. 그런 그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경우, 이 부조리한 작품의 의미는 증폭된다. 하지만, 이 작품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중편인 <노파>(1939)이며, 1939 5월말에서 6월 중순 사이에 완성한 그의 정말 마지막 작품이다(확인하진 못했지만, 나는 우리말 번역본 목차의 <노파>가 이 중편일 거라고 믿는다).  



하름스(Kharms)란 필명은 영어의 Charm Harm을 결합시킨 것이라고도 하는데, 한편으론 그가 좋아했던 노르웨이의 작가 크누트 함순(1859-1952)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노파>에는 “이어서 그들 사이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라는 말이 에피그라프로 들어가 있다(한편으로 별로 세간이 없던 그의 방에는 함순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도 한다). 함순의 <미스터리>(1892)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지만(우리말로는 번역돼 있지 않다) <노파>에는 함순의 대표작 <굶주림>(1890)과의 연관성도 곳곳에 보인다(함순의 <굶주림>은 번역돼 있다. 더불어 폴 오스터의 산문집 <굶기의 예술>도 참조).  



가장 직접적인 건 말 그대로 굶주림인데, 실제로 1930년대 말 하름스는 극도의 물질적 궁핍으로 인하여 고통 받았었다. 가령, “나는 도저히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무얼 해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없다. 펜과 종이를 집어들어야 하는데, 필요하지도 않은 잡스런 것들만 집어들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다.(나의 번역이다), 글쓰기의 불가능성은 일차적으로 그의 굶주림에서 비롯된다. 해서, 니진스키를 비틀자면, 나는 배가 고픈데 神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가 하름스의 고뇌이다 



<노파> 주인공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날 소시지를 먹고 배탈이 나는데, <굶주림>에서의 이름없는 주인공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고깃집에서 개먹이용 뼈다귀를 얻어 씹어먹다가 토악질에 시달린다. 무엇이 굶주림인가를 가장 잘 요약해 주는 대목이다: “나는 뼈다귀의 고기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말라붙은 피의 메스꺼운 냄새가 뼈에서 올라와, 곧 삼킨 것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시 시도를 해보았다. 이 고기 한 조작을 속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그 효과가 나련만. 배 속에 그것이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또 다시 구토증이 일어났다. 몹시 화가 났다. 고기를 난폭하게 물어뜯었다. 거기서 조그만 살점이 뽑혀 나와서, 그것을 억지로 삼켰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기의 조그만 살점들은 위 속에서 발효되자마자 도로 올라왔다. 나는 미친 듯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비탄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귀신들린 사람처럼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도 울어서 뼈는 눈물로 젖어 더럽혀졌다.(눈물에 젖은 뼈!) 나는 더욱 격렬하게 토해내고, 욕설을 퍼붓고, 갉아먹었다. 마치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울었고, 또 토해냈다. 그리고 더 큰소리로 온 세상의 신들에게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했다.(굶어도 굶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생각건대, 세상의 굶주림은 세상의 울음만큼이나 질기다. 세상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굶주림>의 이 주인공에게 배속에 뼈다귀가 남아있도록 하는 게 문제였다면, <노파> 주인공에겐 자신의 방을 찾아온 불청객 노파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걸 어떻게 밖으로 내다 놓을 것인가? 그는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Nu shto mne delat'?)라고 묻는데, 이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Shto delat'?)란 소비에트적 질문방식에 대한 패러디이다. <노파>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들이 해독되어야 하는데, 가령, 노파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는 것. 흔히 <죄와 벌>의 전당포 노파와 비교되는데, 문제는 이 노파의 경우는 도끼로 내리쳐 죽이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와 죽어 주었다는 것.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노파가 가지고 있는 시계의 바늘들을 주인공인 나는 보지 못하지만, 노파는 시계를 보고 시간을 일러준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시계를 저당 잡힌다는 명목으로 전당포를 찾아가고, 또 살인사건 이후에 그의 시간이 시계와 함께 땅에 묻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두 노파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그냥 맛보기일 뿐이며, 당신의 읽기를 꼬드기는 미끼일 뿐이다. 짧은 작품이지만 <노파> 또한 텍스트-무한이다(이 작품과 종횡으로 연결되는 작품이 또한 여럿이다). 당신도 직접 읽어본다면, 할말이 무척 많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당신은 그걸 써야 한다).  



그런 건 <법의 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개인적으론 데리다의 책을 셰익스피어의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와 겹쳐 읽은 예정이다. 참고로, <자에는 자로>는 푸슈킨이 <햄릿> <오델로> 레벨의 작품으로 꼽은바 있고 그 자신이 번역을 시도하다가 아예 번안작을 쓰기까지 했다. <안젤로>란 작품인데(열린책들의 전집에 들어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아니라 서사시이고, 자비를 주제로 셰익스피어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그러니 흥미롭지 않은가? 한번쯤 읽어들 보시길. 지극한 즐거움들을 누리면서. 하여간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2월에 쓰도록 하겠다(나는 두 권의 책을 열흘쯤 후에나 받아볼 예정이며, <노파>에 대한 소개는 이전에 써둔 걸 부분적으로 따온 것이다)    



P.S.2. <푸슈킨-도스토예프스키-데리다>란 글에선가 푸슈킨이 곤차로바와의 사이에서 1 3녀를 두었다고 했는데(이건 열린책들 전집의 연보를 참조한 것이다), 2 2녀가 맞는 듯하다(러시아책에 그렇다니까). 우리말 전집의 연보에는 1833년에 둘째 딸 사샤가 태어난 걸로 되어 있는데, 사샤는 사내 아이 알렉산드르의 애칭이다(역자는 딸 알렉산드라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그가 러시아 시인이므로 내가 더 믿게 되는 건 우리말본보다는 러시아어본이다. 사소한 사항이지만, 남의 집 가계를 바꾸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교정해둔다.


P.S.3. 다음주에 모스크바에서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38선>이란 제목으로 개봉된다. 한국 영화, 즉 '김기덕과 블록버스터들' 중에서 후자에 속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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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책은 무조건 즐겁게 읽어라”(2)

이번호 <텍스트>에는 <백범 김구 평전>(시대의 창)에 대한 서평도 실려 있었는데(서평자도 쓰고 있지만, 이 책이 최초의 평전이라는 건 다소 믿기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가?), 백범의 <나의 소원> 중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언제 읽어도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대목을 옮겨본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반 세기도 더 전의 글이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류가 불행한 것은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보다 근본적인 건 계급적 적대인가?). 그런데 그걸 키워줄 수 있는 건 자연과학이 아니라(예컨대, 인간복제가 아니라)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다(그렇다면, 백범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이 아니라 문화이다. 우리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가?).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앞에서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말했지만,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게 독서문화이고 출판문화이다(거꾸로 괴로움을 주는 건 문화가 아니다. 날림출판은 문화가 아니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야 우리는 인의와 자비와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줄 수 있다. 즐거움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즐거움의 향유는 사실 유교적 전통에서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알다시피 공자의 어록인 <논어>는 즐거움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지 않는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즉 배우고 수시로 그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여기서 익히다란 말은 (1)(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기 위해) 암기/습득하다 (2)(생활 속에서) 실천하다 등으로 해석되는 듯한데, 러시아어 번역은 이 대목을 배우고 완성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옮기고 있다(세메넨코의 번역). 러시아어본에 따를 때, 군자(君子)자기완성의 인간이고, 유교는 자기완성을 위한 종교이다. 문제는 무엇이 완성인가라는 점. 무엇이 배움의 완성이고 자기완성인가 


열심히 사서삼경(혹은 육법전서)을 암기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고시에 패스하는 것이 배움의 완성인가? 그건 어떤 단계(혹은 집안의 부흥)를 뜻할 수는 있을지언정 완성으로는 좀 모자라 보인다(요즘은 특히나 그럴 것이다. 고시도 자격증화되었다고 하니까). 그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소 막연하다(사실 막연하기 때문에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익힌다는 말을 보다 적극적/구체적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비록 공자가 학이시교지(學而時敎之)라고 말하고 있진 않지만 말이다(()자는 너무 딱딱하긴 하다). 왜냐하면, 배움의 완성은 가르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단순한 논리인데, 군자의 모델로서의 공자야말로 (자신이 배운/터득한 걸) 가르치는 사람 아닌가? 더불어 실습(實習), 즉 실제로/진짜로 배운다는 건 무엇인가? 자신이 배운 걸 해보는 것인바, 교사들의 교생 실습이란 자신이 배운 걸 실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걸 말한다 


직접 가르쳐보는 경험 속에서 자신이 배운 건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공자는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행위 속에서 비로소 군자가 된다. , 자왈(子曰) 이전에는 공() 선생도 군자도 없는 것이다(군자이기에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에 군자이다). 이것이 배움의 변증법이다. , 우리가 진정으로 배우는 것은, 배움을 완성하는 것은 가르침으로써이다(가르칠 수 없는 앎은 완성된 앎이 아니다). 그러니까 학이시습지의 즐거움, 학습(學習)의 즐거움은 가르침으로써 배움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학습이란 말이 (주로 사무/행정적인 용어로만 남아있고) 일상어에서는 공부(工夫)(=쿵푸)로 대체된 것은 그래서 좀 아쉽다(동무란 말처럼 북한에서 너무 자주 쓰기 때문일까? 그래서 동무 대신에 친구를 갖게 됐듯이, 우리는 주로 학습하는 대신에 공부하는 것일까?). 공부란 말에는 즐거움이 왠지 빠져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비변증법적이다(거기에 대비되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유물변증법 학습일 것이다).  


변증법적인 학습배우다-가르치다란 의미쌍을 조금 확장하면, 얻다-베풀다가 될 것이다(배움은 얻음이고, 가르침은 베풂이니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는 것은 무엇을 베풂으로써이다. 그리고, 그것은 덕()이란 말이 진정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베풂으로써 덕을 쌓는 것이니까 말이다(김용옥은 ()얻음으로 옮긴다). 그러한 사정은 읽다-쓰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책을 진정으로 읽게 되는 것은, 그러니까 그 책에 대한 읽기를 완성하는 것은 그에 대한 글을(혹은 책을) 씀으로써이다(지젝은 라캉에 대해 계속 씀으로써 비로소 라캉을 읽는다. , 읽기 위해서 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독자가 읽어내는 텍스트(readerly text)와 독자가 써나가는 텍스트(writerly text) 사이의 바르트식 구별은 사소하다. 모든 텍스트는 씌어지는 텍스트이어야 하며, 그리고 그 씌어짐을 통해서 비로소 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예컨대, 리뷰를 쓰는 건 책읽기를 통해 얻은 걸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책읽기를 완성해나가는 건 그러한 베풂이다). 그러한 쓰기/베풂의 여정은 끝이 없는가? 그렇다. 그것은 무한이기에 그렇다 


<도덕경>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나오는데(대기만성인과응보와 함께 중학생때 교내 가훈전시회를 위해서 급조해낸 우리집 가훈이었다. 사자성어 사전에서 뜻이 좋다고 골라낸 것인데, 인과응보에 나는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대기만성이라나!), 그 뜻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큰 그릇은 이루어짐이 없다이다(만약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크지 않다!). , 큰 그릇이란 무한을 가리킨다. 아무리 큰 유한도 무한보다는 작기 마련이기에 가장 큰 유한이란 곧 무한인 것. 해서, 큰 그릇의 바깥은 없다! 공자가 말하는 성인, 곧 군자도 마찬가지이다 


군자란 완성된 인간이지만, 그 자기완성이란 건 미래완료형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진정 완성된 인간(=가장 큰 유한)이란 끊임없이 완성되어 가는 인간(=무한)이다. 그래서 자왈 한 마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하며, 끊임없이 쓰고 또 써야 한다. 글쓰기가 자동사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엇을 이룬다는 타동사는 자동사의 극한이며, 자동사의 미래완료형이다. 모피를 뒤집어쓴 잉크(=사르트르)가 끊임없이 써댄 것은 그런 때문이다(해서, 앙가주망은 그런 자동사적 글쓰기와 대립/모순되지 않는다). 데리다가 끊임없이 써댄 것은 그런 때문이다.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데리다의 이 말은 많은 오해를 부른바 있는데, 그는 그 말을 (다소 상식적인) 컨텍스트의 바깥은 없다와 등가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텍스트-무한은 곧 컨텍스트 아닌가?)  


해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즐거움 또한 끝이 없다. 그런 즐거움을 배우고 익히는 것, 즉 다시 가르치고 베푸는 것이 나는 교육의 몫이라고 생각한다(해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언제나 즐거운 지식이며, 새로운 계몽주의즐거운 계몽주의이다). 그것이 시민의식의 함양이고 시민교양의 양생(養生)이다. 시민의 학습이고 합창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떠들어대라! 그것이 한편으론 시인 이성복의 말을 빌자면(그는 한동안 경전 공부를 했었다), 세상과의 연애이다: 세상과의 연애를 통해서 제가 깨우친 바가 있다면 삶의 의미는 끊임없는 배움에 있으며, 그 배움은 공경하는 마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더 자세하게 살피자면 배움은 다름 아닌 공경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앞도 뒤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세월 속에서 구원도 해탈도 아닌 막막한 걸음걸이,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막막함을 함부로 제 멋대로 제 편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가는 것, 모든 공부는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 같은 것입니다. (이성복, <세상과의 연애>)  


물론 매일같이 읽고 쓰는 우리의 공부, 혹은 학습이 당장에 좋은 세상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백범의 표현을 빌면,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은 데리다의 민주주의만큼이나, 혹은 메시아만큼이나 더디게 (하지만 언젠가는 예기치 않게) 올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울음 또한 당장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詩를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 물수건, 속쓰림…”(이성복, <아들에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작부들과 물수건과 속쓰림은 또 그 나름대로 자동사이다. 울음이 그러하듯이. “한 여인이 웬 서류 봉투를 손에 쥐고 흐느끼며, 흐느껴 울며 갔다 콸콸대는 물소리 같은 울음을 거푸 울며 여러 번 길을 건너갔다 아무한테도 그 울음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세상 끝까지 울음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듯이 울며 갔다 비교도, 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 꽃핀 벚나무의 검은 가지처럼 검은 길을 그 울음으로 적시며”(이성복,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27>)  


우리는 그렇듯 비교도, 비유도 허락되지 않는 울음에 대해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면서 다만 기다려볼 따름이다. 배우고 가르치고 베풀면서 고대해볼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날을. 하지만 그때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장 큰 나라와 마찬가지로 경계와 구별이 없는 나라일 것이니, 세계 자체와 등가일 것이다(우리나라=세계). 우리 나라도 너네 나라도 없는 세상 말이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갖다 부으면서, 세상을 밥 먹듯이 구원하면서, 읽고 쓰고 떠들면서, 속쓰림을 참아가면서, 사랑하면서 실연하면서, 가끔은 못살겠다고 도망치면서, 저항하면서 이를 갈면서, 이빨을 갈면서, 즐겁게 아주 즐겁게   


0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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