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목이 콱 잠겨 버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니, 듣기에 무척 괴롭고 낯선, 녹물이 뚝뚝 듣는 듯한 쇳소리가 잔뜩 부어 있는 목구멍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새어나온다. 지금 내 목소리가 그런 그로테스크한 상태임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그렇다 쳐도 그 소리를 들을 상대방을 생각하면 되도록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일 듯.
헌데 오전에만 벌써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해야 했고,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잠시 만나야 했다. 무슨 일 때문에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심한 감기에 걸렸다는 내 말을 듣고는 그 사람이 타다 준 둥굴레차를 끝까지 다 마시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대화를 나누기에도, 그렇다고 어색한 침묵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기도 너무 곤혹스러웠던 탓에.
 
간밤에 자면서 기침을 많이 한 탓에 목은 잔뜩 부운 데다, 눈까지 충혈되고 자꾸 눈꼽이 끼여 시야가 흐릿해진다. 약간의 미열과 편두통이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다.
조금 허약해진 심신을 지켜보는 데는 불안감을 동반하는 야릇한 만족감이 있다. 마치 찜질방에서 오래 누워 있다 일어날 때 순간적인 현기증과 함께 팔에 송송 돋아나는 땀방울을 볼 때의 시원한 쾌감 같은...... 잔뜩 채워지고 부풀려진 몸과 마음에서 군더더기나 허접한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상쾌한 배설감,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느낌, 창백해진 낯빛에서 보이는 겸허하고 유순해진 느낌.......

지금은 잠시 그런 상상을 해 본다. 오늘부터 이 괴상한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된다면, 예전 목소리로 영영 되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목소리는 나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 일부가 달라지면 나라는 존재 전체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게 당연한 것인가. 나라는 개체는 목소리와 같은 여러 부분들의 조합, 총합이라고 말해도 좋은가. 눈동자의 크기나 빛깔, 목소리, 체중, 키, 손과 발의 모양, 성격, 취향, 식성, 기억의 저장 능력과 표현 능력, 감수성....... 이런 것들의 합집합이 '나'를 이루고 있는 걸까. 
뿌얘진 시야처럼 생각도 흐릿하게 뒤엉키는 가운데, 어쨌든 지금 이 목소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이질감. 그로테스크란 외면과 내면, 두 측면의 너무 이질적인 거리감에서 나오는 느낌이 아닐까. 지금 내 목소리가 너무 그로테스크하다. 오늘 바람이 내 목소리만큼이나 스산하다.      

 

Ivan Graziani. Lugano Addio

www.poowa.com/iris/IvanGrazianiLuganoAddio.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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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11-1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여 쾌차하시길..

물만두 2004-11-1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 무척 오래간답니다. 울 오마니도 아직도 싶니다. 몸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찬바람 쐬지 마시고 목욕 자제하시고 뜨거운 물 많이 드세요...

2004-11-1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유 2004-11-13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허하고 유순해진 느낌" - (신체의) 고통에 진정 혼쭐이 나고 나면, 진정 겸허해지고 유순해졌던 것 같습니다.. 쾌차하세요.

2004-11-13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상이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데요^^ 환절기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체질이 개선이 필요하구요,,,^^ 이사하시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그럴 거여요..일단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고 왠만하면 약은 드시지 말고 쉬고, 녹차 많이 마시면서 버텨 보셔요..몸 편히. 마음 편히..^^

조선인 2004-11-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병원에 안 가보셨어요?

천식, 무시할 거 아닙니다. 초기대응이 늦어질수록 회복기간이 오래 걸려요.

1주일 통원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걸 잘못하면 4월까지 고생합니다.

좀 더 신경쓰시길.

브리즈 2004-11-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 님, 너무 오랜만이죠? ^^..

지난 얼마간 알라딘 서재가 말썽을 일으키고 해서 서재에 자주 안 들어왔었고, 업친 데 덥친 격으로 지난주 주말에는 발을 다쳐서 한의원 신세를 일주일 동안 져야 했답니다.

동병상련이라고, 라일락와인 님의 초췌한 모습을 생각하며 몇 자 남깁니다. 힘내세요, 기운차리게 해주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

로드무비 2004-11-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네요.

저도 요즘 수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제 몸을 뻔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긴 싫은데......

좋은 책이나 영화보다 비타민이니 토코페롤이니 하는 게 더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거겠죠?

아침부터 신통찮은 얘기 그만하고.

참, 보내드린 이벤트 선물은 잘 도착했는지요?

에레혼 2004-11-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부터 이틀을 비워 둔 사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걱정과 마음을 함께 나눠 주셨군요, 정말 고맙고 마음 따뜻해지네요.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시시콜콜 떱럴리나 싶기도 하지만, 그저 한때 제 몸을 스쳐 지나가는 증세들을 기록해 두자는 생각으로 끄적거려 놓은 것인데...... 같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고, 이런저런 조언도 나눠 주셔서 뜻밖의 힘을 얻습니다.



마녀물고기님, 물만두님, 오후님,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쾌차를 빌어주신 님들의 덕분인 듯......



귓속말님, 아픈 몸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싶었으나 그닥 담담하지 못했던 듯싶어요, 내 안에 참 많은 엄살과 변명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받은 것 같아요.



참나님, 님 충고대로 약을 먹지 말고 버텨 볼 것을, 며칠 전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처방을 받아 온 김에 사흘 동안 내리 약을 먹었더니 감기, 천식 증세는 조금씩 가라앉은 대신 이번에는 약에 취해 맥을 못 추겠더군요. 한없이 까부라져서, 약 먹은 병아리 마냥 비몽사몽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가 오늘 간신히 돌아왔습니다.....






에레혼 2004-11-1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선배님(?)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옵니다. 병원은 다녀왔어요. 초기 천식 증세에 감기 몸살이 겹쳐 있다고 하더라구요. 엉덩이 주사도 한 대 맞고 사흘치 약과 비상시 상비약을 처방받아 왔습니다. 그 의상의 말로는 천식 증세에서 비염으로 진행되면 축농증 등 고질병으로 진전돼 골치 아파지니, 세심히 관찰, 관리하라고 하더군요. 생활 습관이나 체질 개선 등 상식적인 관리 요령과 함께...... 오히려 운동은 해로우니 하지 말라고 해서 좀 난감해 하고 있답니다.



브리즈님, 다리는 좀 어떠세요? 차가워진 날씨에 몸이 굳어있다 보니 관절이나 발을 삐끗하면 심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큰일 날 뻔하셨네요. 그래도 이번 주말에 님의 방에서 팻 메쓰니 등 귀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님이나 저나 제 몸을 좀더 아끼고 조심해 줘야 할 시기인가 봅니다. 님도 힘내세요!





로드무비님, 수상한 사건들이 연달아 몸의 이곳저곳을 거쳐 일어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몸에 좋은 것 잘 챙겨 드시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위해 주어야 할 듯싶어요. 가정과 사회의 주춧돌(?)인 우리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인류 평화와 발전에 지대한 피해가 생길 테니까요^^

이벤트 선물에 대한 답신이 너무 늦었지요? 요즘 제 속도계가 한 템포씩 느려지고 있습니다, 손을 좀 봐줘야 할 듯!

조선인 2004-11-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구요, 기체조나 요가는 오히려 권장하는 편입니다.

제일 피해야 하는 게 길에서 조깅하는 거구요(매연과 온도 차이 때문에)

헬스센타의 경우도 청결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