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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평점 :
'이야기 그림 이야기'라니 제목이 생소하다. 제목만 놓고 보면 관심이 당기는 책은 아닌데, 내용은 기대보다 충실하다. 제목을 풀이하자면 '이야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 그림은 저자에 따르면 "중국의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그려져 그 이야기를 짚어가며 감상해야 하는" 그림을 이른다. 책에서도 정선과 김홍도의 그림이 등장하지만 오랜 시간 한문 문화권을 이루었던 중국과 우리나라이니 이야기 그림이 꼭 중국만의 그림일리는 없다.
이야기 그림을 그린 중국의 화가들은 생소하다. 하지만 그림의 바탕이 되는 문학 작품들의 작가들은 꽤 문명(文名)을 얻은 이들이다. 조식, 소식, 이백, 도연명, 왕실보, 루쉰 등인데 화가들은 이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가들은 중국 문학의 대표격인데, 이들의 작품들은 서정, 서사, 극, 잡문을 망라한다. 문학 작품의 갈래가 이리 다양하듯, 그림의 갈래도 권, 축, 병풍, 삽화로 다양하다.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 화가들의 이름과 그림의 갈래를 몰라도 책은 충분히 잘 읽힌다. 물론 미리 알면 좀 더 수월하겠지만 말이다. 저자 이종수는 짧은 편폭에도 불구하고 꼼꼼하고 친절하게 작품과 그림을 설명한다. 그 설명 속엔 그림과 화가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겼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는 저자는 문학 작품과 그림을 맛깔나게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했던 작품은 루쉰의 잡문 <도우미 문객 식별법(幇閑法發隱)>을 삽화로 그린 부부 화가 치오우샤(裘沙)와 왕웨이쥔(王偉君)의 작품이다. 두 부부는 문화대혁명 시절 고초를 겪는데 그 시간을 루쉰 읽기로 버텨냈다고 한다. 문혁이 끝나고 1981년부터 20년간 루쉰을 소재로 한 그림을 200점 발표한다. 이들은 특히 루쉰의 잡문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는데, 저자도 이야기하지만 잡문은 루쉰 문학의 본령이다. 그의 잡문은 독자의 마음을 부추기고 충동질하는데 늘 묘한 서늘함을 갖게 한다. 실제 '개 패는 이야기'가 그의 잡문 속(<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에 있기도 한데 개를 패도록 충동질도 하지만, 우선 내 마음부터 서늘해진다. 왜일까? 내가 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앞서 말한 치오우, 왕 부부의 작품이다. 섬찟한 모습인데, 우선 루쉰의 잡문 내용을 알아야 한다. 도우미 문객은 대중을 호도하는 지식인을 말한다. 이들은 어릿광대처럼 사건과 상황을 뒤틀어 민중을 속인다. 놀라운 것은 '유혈이 낭자한 사안에서도 핏자국은 물론이고 피 비린내조차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 속 기괴한 표정을 한 사람의 얼굴에 핏자국이 선명한데도, 이들 문객은 그 앞에서 책을 펼치며 유유자적한 표정을 띠고 있다. 이들은 고통스런 민중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제 할일에 몰두한다. 잘 벼린 창과 같은 루쉰의 잡문이 화가의 문제의식과 맞물려 독특한 양식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그림 한 편에 중국 민중과 먹물들의 뒤틀린 관계가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다시 서늘함을 느낀다.
裘沙, 王偉君 화가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