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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ㅣ 펭귄클래식 76
G. K. 체스터튼 지음, 김성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체스터턴은 좋아하는 기독교 작가 C.S.루이스 덕분에 알게됐다. 두 작가는 함께 영국에 살았는데, 체스터턴이 30년 정도 선배가 되겠다. 루이스가 간간히 체스터턴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꺼내길래 관심을 갖게 됐다. 루이스는 주로 체스터턴의 종교적인 글-체스터턴은 가톨릭 신자이다-을 인용했는데, 내 관심도 거기에 있다. 추리 소설 작가로 유명한데, 종교적 색채의 글도 상당히 남겼다. 개인적으론 내년 상반기에 번역 출간된다는 <The Everlasting Man>을 기다리고 있다.
<목요일이었던 남자(The Man Who Was Thursday)>는 체스터턴의 장기인 추리 소설이다. 서로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찰들이 무정부의자를 추적하며 생기는 에피소드이다. 서로를 무정부의자로 알던 이들이 실은 모두 경찰이었고, 무정부주의자 단체의 두목마저 경찰임이 밝혀진다. 소설이 발표되는 1908년 무렵은 유럽 전역에 연이은 무정부주의자의 테러로 사회가 혼란했던 시절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꽤 심각했던지 역시 영국에서 활동하던 작가 조지프 콘라드도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비밀요원(The Secret Agent)>을 체스터턴에 한 해 앞선 1907년에 발표한다. 기독교인이 되어가던 체스터턴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사회 파괴 행동에 맞서 사회를 수호하는 경찰들-실은 종교인들-을 꺼낸다. 물론 경찰과 종교인이 당시 사회를 수호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문제는 이 과정을 그려내는 작가 고유의 스타일인데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인물 역시 사람인지 그 이상의 존재인지 헷갈린다. 압권은 일요일이라 불리던 무정부주의자 단체의 두목인데, 그는 소설의 시종 내내 신적인 아우라를 지닌다. 그는 사건을 해결할 생각은 별로 없고, 동료 경찰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 정체를 드러낸다. 정체를 드러냈대서 해결될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소설은 그리 끝난다. 성경 구절을 조금 비튼 잠언투의 말을 흘리며 소설에서 빠져나가는 일요일을 보며 작가와 함께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에 더 거슬리는 건 작가가 지닌 유럽, 특히 서유럽 중심의 사고였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사람들의 외모에 대해 비아냥 대고 아시아인에 대해선 과한 공포감을 드러낸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주인공 사임의 생각인데, 난데없이 '중국인들의 침략'을 떠 올리며 '거대하고도 무자비한 위험이라 말한다.(51면) 중국인이 영국을 침략한 적이 있나? 그저 야만으로 생각하던 아시아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하와 공포감이다. 이런 표현도 있다. "중국 사람들이 갑자기 스코틀랜드 말을 하는 것처럼 아주 낯설었다."(84면) 자꾸 아시아인을 걸고 넘어진다. 아시아인이 무정부주의 단체를 결성한 것도 아닐텐데 이러는 걸 보면 작가 내면에 숨은 오리엔탈리즘이 슬몃 슬몃 새나오는 장면이라 하겠다. 체스터턴 추리 소설의 재미를 말하기에 앞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Gilbert Keith Chesterton(1874-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