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체험 문학

 

 

cyrus 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서 먼댓글로 달아 봅니다.

 

"내 생각에 영국인들에게는 괴테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cyrus 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제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견해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견해가 아닐까 싶어서요.

 

저로서는 '괴테를 셰익스피어보다 우위에 두는 듯한 표현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또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그런 추측을 '영국인들에게'까지 적용한다는 건 너무나 위험한(?) 견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cyrus 님의 글 때문에 오늘 제가 일부러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자격이 충분한 '랄프 왈도 에머슨'의 글까지 다시 찬찬히 읽어 봤습니다. 에머슨이 마침 토머스 칼라일의 절친이기도 했기 때문에 괴테보다 셰익스피어에게 훨씬 더 이끌렸으리라고 짐작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에머슨이 그렇게나 편협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여기서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위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통해 '인류를 빛낸 대표적인 위인' 가운데 괴테를 포함시키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그가 다룬 위인은 단 여섯 명이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 시인 셰익스피어, 세속의 영웅 나폴레옹, 문학가 괴테, 신비가 스베덴보리, 철학자 몽테뉴가 그들인데, 괴테를 이들과 같은 범주에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머슨이 괴테를 얼마만큼 존경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얼마만큼 우러러 보았는지는 에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책을 사두기만 하고 여태까지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만, 일본 최고의 셰익스피어 연구자가 쓴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라는 책을 통해 그에 관한 내용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 cyrus 님께서 '가벼운 농담조로 지나치듯이' 말씀하신 대목을 두고 제가 너무 지나치게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어쨌든 오늘 제가 다시 책을 펼쳐 찾아 읽은 대목을 참고삼아 덧붙입니다.

 

 * * *

 

괴테의 예술론은 에커만이 지은 <괴테와의 대화>에 나와 있다. 거기에서 괴테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을 조금 소개하겠다.

 

"그는 인간생활의 모티브란 모티브를 하나도 남김없이 그려냈고, 또 모두 표현해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선명함과 자유로움으로 넘쳐난다."

 

"무대는 그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좁다. 그뿐인가,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마저 그에게는 너무나도 좁았다."

 

괴테의 이런 견해, '선명하고 자유로움으로 넘쳐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것을 써냈고,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표현해냈다.

 

그가 정말 대단한 부분은 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 특히 감정적 부분인 사랑, 증오, 질투 등의 희로애락 전부를 써냈다는 사실이다. 사랑만 해도 연인 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형제, 사제, 친구의 사랑을 모두 그려냈다. 그것이 만약 교과서처럼 규정화해 써내려간 것이었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반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글은 정말 '선명함과 자유로움으로 넘쳐나고' 있다. 거기에는 정말 당할 재간이 없다.

 

 - 오디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게 찾아왔다』, <03.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 괴테의 이 말을 인용했을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극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셰익스피어의 세일즈맨'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테의 말대로 더 이상 쓸 것이 남아있지 않다면, 극작가, 소설가, 시인은 사라져야 하는가? 사실 그렇지는 않고,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괴테의 말 뒤에 얼마든지 번안을 하거나, 자극을 받아 새로운 것을 쓰려고만 하면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 오디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게 찾아왔다』, <03.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 * *

 

괴테는 결코 만인에게 친숙해질 수 있는 작가는 아니다. 그는 순수한 진리에 몸을 바치고 있다기보다는 자기수양·인간완성을 위해 진리를 탐구하고 있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한 것은 보편적인 자연·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해 위대한 자아완성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누구도 그를 이익으로 꾀거나 속임수에 빠뜨리거나 위협을 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자제심과 극기심이 많아 누구에게나 단지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까'라는 시점에서만 평가를 내리고 모든 것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양식으로서 계속 흡수하는, 끝없는 자아완성의 화신ㅡ그것이 괴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지위도 명예도 건강도 시간도, 더없이 높은 실재조차도 그에게 있어서는 단지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소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자아완성의 달인이고 모든 예술과 과학, 그 밖에 무엇이건 왕성하게 관심을 나타내는 위대한 아마추어였다. 예술을 사랑했지만 전문적인 예술가가 되지는 못하고, 영적인 센스는 충분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엄격한 심령주의자가 되지는 못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제2장, 위대한 자아완성의 초인, 문학가 괴테>

 

 

대부분의 현자는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이럭저럭 어림짐작 내에 들 정도인데 셰익스피어의 현명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플라톤은 인류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열심히 읽으면 그의 사고회로를 뒤쫓는 것은 어떻게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손을 들게 된다. 어떻게 그와 같은 작품이 완성되었을까 하는 것조차 상상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 걸출한 묘사력, 창조력에서 그와 견줄 수 있는 자는 없다. 셰익스피어처럼 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그는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의 문학적인 세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적 자질로도 최고봉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의 재능은 좁은 뜻에서의 작가라는 틀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제3, 인류 최고 향연의 사회자, 시인 세익스피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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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3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국 문학에 자부심 강한 영국인이 제 글을 본다면 펄쩍 뛸 수 있겠군요.. ^^;;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제 문장이 본의 아니게 읽는 이에게 왜곡된 의미로 전달될 수 있으니 문제의 표현을 삭제하겠습니다.

oren 2017-12-13 12:03   좋아요 0 | URL
비단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한테도 cyrus 님의 표현은 쉽게 수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게 저의 솔직한 판단입니다. 문학의 거장들을 두고 ‘우열‘을 판단하는 일은 전문가들에게도 몹시 어려운 문제일 수 있을 텐데, 제가 아는 한 그 어떤 사람도 괴테를 셰익스피어보다 우위에 두는 판단은 여태껏 접해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cyrus 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나 판단 근거들‘이 너무 궁금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데, cyrus 님께서 표현 자체를 삭제하시겠다니 제가 도리어 뻘쭘해지는군요...

카스피 2017-12-13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두분다 넘 대단하세요^^

oren 2017-12-13 15:54   좋아요 0 | URL
다소 심각하게 쓴 글인데, 제 글의 논지를 너무 벗어난 댓글 같아서 할 말이 없습니다요. ㅠㅠ

cyrus 2017-12-1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 생각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실존 인물이 아닐 거라는 음모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괴테는 평생 동안 글을 많이 남겼고, 활동적으로 살아온 작가입니다. 셰익스피어보다 괴테의 삶이 워낙 뚜렷해서 저는 셰익스피어보다 괴테에 더 끌리게 됐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문장이 나온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 봐도 괴테를 셰익스피어보다 우위에 두는 근거가 빈약했습니다. 그러니 문장을 삭제한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oren님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드백을 한 것입니다.

oren 2017-12-14 01:09   좋아요 1 | URL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일수록 ‘작가의 삶에 관한 기록‘은 당연히 부실하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문학 역사상 가장 우뚝한 두 사람으로 평가받는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와 같은 작가의 삶이 괴테보다는 훨씬 흐릿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그들의 문학적 성과가 더 낮게 평가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문득, 문학 비평계의 거목인 헤럴드 블룸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었는지, ‘세익스피어를 둘러싼 음모론‘은 또 어땠는지 궁금해서 다시 찾아 읽어보게 됩니다.

* * *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나는 지난 4세기 동안 상상력으로 흘러넘친 문학계에서 세르반테스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돈 키호테는 햄릿의 대적자요 산초 판자는 폴스타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는 그 이상의 찬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날 세상을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돈 키호테』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얘기를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 * *

그의 희곡은 문학적 힘에 있어서 성서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문헌이다.

단테와 밀턴, 블레이크는 작품을 통해 숭고한 정신을 그려 내려는 야심을 가진 위대한 작가들이었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초서나 세르반테스와는 관심의 영역이 달랐다. 즉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만을 재현하고자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우리 삶에 성서의 역할을 대신하지 않더라도 그의 희곡은 문학적 힘에 있어서 성서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문헌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신약, 코란 등에서 표현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셰익스피어만큼 미묘하고 멋진 대안과 비전을 제시한 작가는 없었다. 야훼와 예수, 알라의 말에는 권위가 있다. 어떤 면에서 햄릿이나 이아고, 리어 왕, 클레오파트라의 말도 같은 권위를 지닌다. 설득에서는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풍부함이 더욱 커 보인다. 그의 수사적이고 창조적인 재능들이 야훼와 예수, 알라의 그것을 능가한다고 말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성 모독이 될 수 있으리라.(367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 * * * *

“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이 말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내뱉은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문인집안 출신도 아니고,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적도 없는 시골 출신 청년이었다. 그런 인물이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 있었는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진짜로 원작자가 맞느냐는 논쟁을 키운 건 미국 여성 델리아 베이컨이었다. 그녀는 영리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열다섯에 소녀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채 교사로 일하던 즈음에 그녀는 셰익스피어에 빠져들었다. 각종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이 유명한 얘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도 등장한다.

선량한 베이컨: 곰팡이 냄새 어린 채.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는 황량한 논법.251) 한 길을 걸어가는 암호의 사기꾼들. 위대한 탐색의 탐정가들. 무슨 도시로, 위대한 명사들이여?

251) Shakespeare Bacon‘s wild oats. 미국의 여류 소설가 델리아 베이컨(1811∼1859,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인척관계라 주장함)은 그녀의 저서인 『드러난 셰익스피어 연극의 철학(Philosophy of the Plays of Shakespeare Unfolded』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다고 주장함.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보다 학식이 많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씌어졌을 것이라는 부정적 설도 있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9장 국립도서관(스킬라와 카립디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조차 델리아 베이컨의 의견에 대해 동조 내지는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대표적 인물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단정 짓지는 못해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주변 인물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거라며 델리아의 의견을 옹호했다. 에머슨과 오랜 우정을 쌓았던 토머스 칼라일도 델리아의 작업을 지지했다. 에머슨과 소로우 등과 함께 콩코드에서 함께 살았던 너대니얼 호손은 델리아의 책 출간을 은밀하게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니 마크 트웨인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음모론적 시각‘은 무슨 일에든 개입하기 좋아하는 법이다. 그런 얘기는 이쯤에서 그치자.
(http://blog.aladin.co.kr/oren/9415937)

 

 

 

 

 

 

 

 

 

 

 

 

 

 

 

 

양피지 쪽들에 호메로스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뒷세우스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 마르티알리스

 

 * * *

 

 

 

『돈키호테 성찰』이라는 작은 책 한 권에 이토록 많은 책들이 담겨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이 가운데 내가 읽은 책들은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그런 책들이 몹시 반갑기만 하다.

이 책들마저 읽지 않았더라면 『돈키호테 성찰』은 내게 참으로 낯설고 이상한 책이 될 뻔했다.

 

 * * *

 

p22, 헤겔, 『논리학』

p32, 셰익스피어,『자에는 자로』

p33, 칸트, 『인류학』

p33, 아이스킬로스, 『제주를 바치는 여신들』

p189,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p195, 라미로 데 마에스투, 『돈 키호테, 돈 후안, 그리고 라 셀레스티나』

p197, 스피노자, 『에티카』

p200, 마테오 알레만, 『구스만 데 알파라체』

p200, 플라톤, 『향연』

p200, 『길가메시 서사시』

p201, 플라톤, 『파이드로스』

p202, 니체, 『도덕의 계보』

p203, 리들리 스콧, 『글레디에이터』

p203, 아소린, 『스페인의 시간, 1560∼1590』, 『카스티야의 영혼』, 『돈키호테의 길』

p203, 호세 대 캄포스, 『논리학 체계』, 『시민사회에서의 인간 불평등에 대하여』, 『단어의 은총』

p204, 플로베르, 『감정교육』, 『보바리 부인』, 『부바르와 폐퀴세』

p205, 딜타이, 『기술 및 분석 심리학 사고』

p206, 유스튀스 립시위스, 『평상심에 대하여』

p208, 헤이든 화이트, 『메타 역사 :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p209,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파우스트』

p211, 뉴턴, 『프린키피아』

p211, 칸트, 『순수이성비판』

p213, 라이프니츠, 『단자론』

p213, 니체, 『즐거운 학문』

p216,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

p217,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p217, 호아킨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협주곡』

p219, 파브르, 『파브르 곤충기』

p221, 셰익스피어, 『자에는 자로』

p221, 칸트, 김종환 역,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p221, 아이스퀼로스,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신들』, 『페르시아인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p223,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p225,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p226, 플라톤, 『카르미데스』, 『에우리데모스』

p227, 헤르만 코헨, 『순수의지의 윤리학』,

p228, 헤르만 코헨, 『미학』

p231, 후설, 『논리학 연구』,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여러 고안』

p232, 훌리안 마리아스, 『철학 입문』

p233, 하이데거, 『숲속의 오솔길』

p234, 이정우, 『시뮬라르크의 시대 - 들뢰즈와 사건의 철학』

p235,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p240, 후안 벨레라, 『페피타 히메네스』

p241, 슐라이어마허, 『기독교 신앙론』

p242,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

p245, 신정환 · 전용갑, 『두 개의 스페인』

p246, 루소, 『신 엘로이즈』, 『에밀』, 『사회계약론』, 『참회록』

p247, 잠바티스타 비코, 『신과학』

p247, 괴테, 『이탈리아 기행』

p249, 단테, 『신곡』

p250,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p251, 고티에, 『낭만주의의 역사』

p255, 정영도, 『오르테가의 철학사상』

p256, 플라톤, 『향연』

p260, 플라톤, 『메논』

p260, 후설, 『경험과 판단』

p267,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기원』

p268,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p269, 투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 『처녀지』

p275, 메넨데스 펠라요, 『스페인 미학 사상사』

p275, 호세 가오스, 『스페인의 철학』, 『스페인어권 사상』

p276,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예술의 비인간화』

p276,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 『어려운 시절』

p277, 도스토예프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 형제들』

p280, 세르반테스, 『모범 소설』

p280, 아메리코 카스트로, 『세르반테스의 사상』

p283, 바흐친,  『문학과 미학의 문제들』(한국어 번역서의 제목은『장편소설과 민중언어』)

p283,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p204,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p291, 헤로도토스, 『역사』

p292, 루카치, 『소설의 이론』

p293,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p293,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

p293,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예술의 비인간화』

p295,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리』

p298, 아이소포스, 『이솝 우화』

p302, 보르헤스, 『픽션들』

p304, 미셸 푸코,  『말과 사물』

p307, 사르트르, 『구토』

p308, 아리스토파네스, 『개구리』, 『구름』

p314, 칼데론, 『지조 있는 왕자』, 『인생은 꿈』, 『살라메아 촌장』, 『인생은 커다란 극장』

p315, 라신,  『앙드로마케』

p315, 코르네유,  『르 시드』,『시나』, 『폼페이우스의 죽음』

p316, 베르그송,  『웃음』

p318, 헤겔, 『미학』

p319, 에우리피데스, 『이온』

p320, 플라톤, 『향연』

p321, 모파상, 『여자의 일생』, 『벨아미』

p322, 스탕달, 『적과 흑』, 『파름의 수도원』

p322, 콩트, 『실증 철학 강의』

p323, 다윈,  『종의 기원』

p323, 에밀 졸라,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 『실험소설론』

p323,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p342,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

 

 

(바로 이 책들 덕분에 『돈키호테 성찰』을 거듭 읽게 되었고,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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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떠다니는 미세한 모래 입자 위에 한 인간의 삶이 묻어 있다. 그가 살았던 장소와 그가 썼던 기계들이 남아 녹슬고 있다. 그의 손길이 멀어진 상태에서 그것들은 바람과 모래, 그리고 그 위에 쌓이는 세월에 휩쓸려 서서히 분해될 것이다.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사랑으로 생명을 유지했으나 이제는 폐물이 되어버린 기계를 포함해 코리 씨가 사용했던 모든 기계들이... 환상의 지대에 버려져 있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 * *

 

 

 

 

2010.10.24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2010.10.24

 

개념· 추상으로 안다는 것은 허깨비다. 사과맛을 어찌 알까.
사과에 관한 산더미 정보를 쌓아 놓았다고 그걸 아나?
그저 한 입 으썩 깨물면 끝이다. 따라서 학생이 먼저 배고파야 하고 몸으로 알아야 한다.

2010.10.24

 

나는 신발이 없다고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 카네기

2010.10.24

 

풍림화산 : 바람처럼 빠르게 / 숲처럼 고요하게 / 불길처럼 맹렬하게 / 산처럼 묵직하게

승가지이불가위(勝可知而不可爲)
승리를 예견할 수 있지만 그냥 얻어지지는 않는다.

2010.10.24


egosyntonic
자기가 미리 계획한 대로 실천하는 것을 즐기는 심리상태. 변화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것.

2013.1.14


마음의 0순위

 

절실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 영순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아직도 못이뤄진 것은 영순위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 게이트의 <깨달음의 연금술> 중에서

 

 

 

 

 

 

 

 

 

 

 

 



2013.1.14


천망회회 소이불루(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지만 결코 새는 법이 없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는 얘기죠.
즉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2013.1.14


현애살수(手) :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2010.12.18

 

해밍웨이

제가 금기사항으로 여기는 것은 단 하나, 어떤 것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돼.

고인이 된 작가들을 때려눕혀 보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지 제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들 말입니다.

지금 쓰고자 하는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와 작품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남김없이 정면승부하리라.

작가라면 매일 영원의 세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직면해야겠죠.

2010.12.21


링컨

 

장작을 패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8시간이라면, 나는 그중 6시간 동안 도끼날을 날카롭게 세울 것이다.

2010.12.23

 

막스 베버

 

이 한 줄이 너의 해석을 천 년 동안 기다려왔다, 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을 하지 말라.

2010.12.23

 

습관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뛰어남이란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2010.12.26

 

베트남 장군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

전략이란 당신들은 못하고 우리만 하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 식으로 싸우라. 우리는 우리 식으로 싸우겠다.

2010.12.31


행운과 불운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들에게만 승리의 여신은 찾아온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행운이라고 부른다.
반면 알맞은 시간 안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패배가 있을 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불운이라 부른다.
- 아문센

2013.1.21

 

앙드레 말로_인간의 조건

 

한 사람을 만들려면 아홉 달이 필요하지만, 죽이는 데는 단 하루로 족해. 우리는 그걸 뼈저리게 깨닳은 셈이지. 그러나 메이,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 달이 아니라 6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해.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 때, 이미 유년기도 청년기도 다 지난 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죽는 것밖에 남지 않은 거란다.

 

 

 

 

 

 

 

 

 

 

 

 

 


2011.1.8

 

스티브 잡스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여기에 있겠는가?

2011.2.7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결혼˝ 중 일부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중략)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이 세계도 아니다.
다만 세계로부터 나에게로 사랑이 태어나 이어지게 하는 저 화합과 침묵이 중요할 따름이다.
나는 그 사랑을 오직 나 혼자서만 누리려고 탐할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태양과 바다로부터 태어나서 그의 단순성 속에서 위대함을 찾아낼 줄 아는 저 활력에 차고 멋을 아는 한 종족,
바닷가에 우뚝 서서 그네들 하늘의 눈부신 미소에 공모의 미소를 던져 보내고 있는
그 종족 전체와 사랑을 나누려는 의식과 그것을 사랑으로 삼는 자부심이 내게 있으므로.

 

 

 

 

 

 

 

 

 

 

 

 

 

 

 

2011.10.29


생각만 하는 사람


‘습관이란 뇌가 더 이상 본연의 창조기능을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뇌의 정지상태에 해당한다. 습관적인 활동을 뇌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수행한다. 고치려고도 바꾸려고도 시도하지 않는 생각이나 말, 행동이 바로 습관이다. 한마디로 뇌가 스스로 필요성을 못느끼는 상태가 바로 습관이다. 그런 습관의 작용을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습관을 갖는 것으로 말이다. 습관이 바뀌어 새로운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쾌감이 들고, 그때까지와는 반대방향으로 호메오스타시스가 작용해 이번에는 새로운 습관의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습관이 들 때까지는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뇌에 동기를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욕이 습관화되려면 욕구가 자극을 받아야 한다.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행동이다. 행동은 기분을 바꾸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조깅을 하면서 기분이 우울해지는 일은 없다. 일정한 리듬으로 달리기를 하면 어느 누구든 활동적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습관이 인생을 바꾸는 건 이처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 이노우에 히로유키, <생각만 하는 사람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

 

 

 

 

 

 

 

 

 

 

 



 

2011.10.29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친구가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라는 연극에서 한 말도 진실이라네,
빈말은 친구를, 진실은 증오를 낳는다.
- 키케로, <우정에 대하여>

 

 

 

 

 

 

 

 

 

 

 

 



 

2011.12.9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로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
- 파스칼, <팡세>

 

 

 

 

 

 

 

 

 

 

 

 

 

 

 



2011.1.8


진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 마르셀 프루스트

열심히 일하고, 즐기고, 역사를 만들어라.
좌절을 겪은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 제프 베조스

2011.1.15


기업은 그 제품과 서비스로 곧바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기업이 가진 인간애로 평가된다.

파괴적이 되어라. 다만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든다는 대의는 지켜져야 한다.
(니클라스 젠스트롬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



2013.1.27


우리가 죽음으로 무엇을 잃는단 말인가.


나는 본디 이 세상에 없었던 존재였다. 저마다 태어난 날짜를 헤아려 보면 생일 이전에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었던 상태를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비로소 죽음을 앞두게 된다. 따라서 죽음이란 삶을 전제로 존재한다는 명백한 진리가 성립된다.

남녀간의 사랑은 인류의 종족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본능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랑과 쾌락이라는 생식행위의 결과로 태어난 결과물이다. 바로 그 생식행위의 결과 하나의 존재가 만들어졌고, 그 매듭은 뒷날 죽음이라는 커다란 환멸에 의해 풀리며 본디 상태로 돌아간다.

삶은 죽음을 통해 본디 상태로 되돌아간다. 위대한 생명이 한낱 죽음의 소멸로 끝나고 말다니 참으로 허망하다는 뜻으로 보면 삶은 별 의미없고 인간은 참으로 불쌍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불쌍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본디 없었는데 잠시 존재하다가 다시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사실상 잃는 게 없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죽음으로 무엇을 잃는단 말인가.
- 쇼펜하우어

 

 

 

 

 

 

 

 

 

 

 

 

 

 

2011.2.27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2011.3.20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서구인들이 성서적인 의미의 ‘선과 악‘이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인들은 ‘계층의 허용범위‘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국민성에 비교우열은 없다. 베네딕트는 말했다. ˝일본인의 모순,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진실˝이라고.

 

 

 

 

 

 

 

 

 

 

 

 



 

2011.4.1


˝우리가 들은 것 중에 가장 큰 거짓말은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는 말이지만, 가장 큰 비밀은 왜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가 하는 것˝
- <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 중에서

 

 

 

 

 

 

 

 

 

 

 

 



2011.4.3


나는 몇 살까지 살까?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
중요한 단계에 도달한 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
한결같이 열심히 생산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장수하기 위해 따라야 할 지침들이다.


2011.9.10


토마스 만


장례식에는 사람을 고양시켜주는 무엇인가가 있어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면 옛날부터 교회에 가지 말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어. 장례식에선 다들 엄숙하고 경건해지지. 평소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어. 나는 사람들이 가끔 경건해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2011.7.2


권이혁


그는 ˝내 목표는 웃으면서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권전장관이 젊은이에게 권하는 인생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젊었을 때부터 많이 걸을 것.
2. 남이 해주는 일을 고맙게 여길 것.
3. 즐겁게 살고 현명하게 늙기 위해 책을 많이 읽을 것.

 


2011.7.15


12세기의 선승 원오 극근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


2011.7.17


T.S.엘리엇, <황무지>


˝나는 쿠마에의 무녀가 조롱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아이들이 무녀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묻자 그녀는 ‘죽고 싶다‘고 말했다.˝

 

 

 

 

 

 

 

 

 

 

 

 



 

2011.7.31


행운과 불행


행운과 불행은 서로 통한다. 행운이 찾아왔을 때는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하여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라.
또 불행이 왔을 때는 행운이 찾아올 것을 생각해 지나치게 낙심하지 말라.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또한 장수의 비법이기도 하다.


2011.7.31


손정의


˝앞이 안 보일수록 더욱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 먼 곳을 보면 경치가 선명하고 가까운 곳을 보려고 하면 배멀미가 심해진다. 나는 300년 앞을 내다보면서 사업을 해왔다.˝

손정의 제곱병법

‘50%는 위험하다. 90%는 너무 늦다. 성공확률이 70%가 될 때 승부를 걸어라.‘

‘1등이 돼라. 2등에 안주하고도 높은 뜻을 품으려 하나‘

‘요행을 바라지 마라. 이기고 또 이기려면 시스템이 중요하다.‘



2011.7.31


- 손무의 <손자병법>

13편 중 계 편은 전쟁을 하기 전 판단력을 도와주는 부분이다.
중요부분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병법은 속임수다. 공격할 능력이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하며, 적에게 작은 이익을 미끼로 주어 유인해 낸다. 적이 강하면 잠깐 결전을 피해야 하며, 쉽게 분노하는 적은 집요하게 도발해 기세가 꺽이게 만들고, 오만한 적에게는 더 비굴하게 굴어 그들의 자만심을 부채질한다. 적이 단결하면 이간질로 떼어 놓는다.˝

 

 

 

 

 

 

 

 

 

 

 

 

 

 

 

2011.8.13


투자의 전설 앤서니 볼턴


다른 이들이 이성을 잃었을 때도 차분할 수 있다면 훌륭한 투자자가 될 자질을 갖춘 셈이다.

당신의 성공비결을 하나만 꼽는다면

투자에서 성공을 위한 딱 하나의 요소란 없다. 투자란 많은 것들의 혼합물이다. 많은 요소를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한 회사에 투자하기 전에 15∼20가지 요소에 대한 판단을 거친다. 더 중요한 것은 투자가 확률게임이란 것을 아는 것이다. 55∼60% 정도의 비율로 성공을 거둔다면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꾸로 말하면 주식을 사면 적어도 40% 정도는 잘 안 풀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점은 성공할 때든 실패할 때든 감정적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리더라도 앞으로 손대는 것마다 모두 잘 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계속 일이 꼬이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낙담해선 안 된다.

훌륭한 투자자가 되고 싶은가? 감정을 누르고 냉담해져라.

* * *

CEO와 개방되고 정직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내 핵심 원칙 중 하나이다. 모든 회사엔 문제점이 있다. 회사의 모든 분야가 다 잘 굴러갈 수는 없다는 얘기다.

나는 CEO를 만날 때 회사의 좋은 부분은 물론 안 좋은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길 원한다. 그 기업이 직면한 도전과제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모든 기업은 기회와 도전과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까.

CEO가 사업에 대해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 회사를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 * *

개인투자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를 포함해 우리 중 그 누구도 항상 옳을 순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투자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의 강점은 물론 약점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자신이 감정에 잘 치우치는 사람이라면 이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다스린다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바로 이게 모든 사람이 좋은 투자자가 될 순 없는 이유다. 예컨대 당신이 당황해서 패닉에 빠지는 성향이 있다면 주식투자를 해선 안 된다. 개인투자자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는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이는 끝무렵에 시장에 빨려들어갔다가, 상황이 가장 어두워보이는 약세장의 한가운데서 손을 털고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가 이런 성향이라면 돈을 직접 굴리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이것도 어렵다면 아예 주식을 쳐다보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은 장기적인 강세장 추세 속에서 짧고 급격한 하락들이 나타나는 익숙한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 * *

낚시를 즐긴다. 낚시와 투자엔 공통점이 있다. 낚시를 할 때 물고기가 걸리면 언제 줄을 풀고, 언제 잡아당겨야 할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주식의 매수 매도도 비슷하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나처럼 많은 양의 주식을 사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낚시할 때 물고기가 달아나려고 하면 계속 움직이게 놔두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물고기가 지치면 낚아채는 것이다. 주식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작은 주식을 사면 주가가 뛴다. 값이 오른 이유는 바로 내가 투자한 돈 때문이다. 그러면 한걸음 떨어져 주가가 다시 떨어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에 추가매수를 하는 것이다. 인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 *

˝역사는 이번과 같은 시장의 극심한 출렁임이 방어적이 될 때라기보단 기회의 시점이란 걸 알려준다˝
-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투자부문 대표

 

 


2011.8.13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숨어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11.8.24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사랑을 유지하는 추천할 만한 기술들

상냥한 성격과 함께 집요함이 요구된다.

아첨이 필요하며,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멈춰서는 안 된다.

선물을 해야 하며, 반드시 계속 경탄하는 모습을 보일 것.

충성의 표시를 자주 보여야 한다.

양다리의 의심을 받으면 강하게 나가야 되며, 반드시 강한 밤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대가는 평화이다.

-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중에서

 

 

 

 

 

 

 

 

 

 

 

 

 



잘못된 자가훈련방식

미국의 포브스지는 지난 13일 리더십 그루 피터 브레그먼을 통해 잘못된 자가훈련방식을 소개했다.

비효율적인 하루가 반복되다보면 사람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될 수 있다. 비효율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비효율적으로 사는 습관을 효율적으로 바꿔야 한다. 실패도 습관이 되면 실패로 인식되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생활이 되어 버린다.

굵직하고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우선적으로 실행하는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점진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의 행동패턴에 더 적합한지 테스트를 통해 알아봐야 한다.

매일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결국 인생 전체에서도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2011.10.10


사람은 우주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자신은 그 어느 별보다도 먼 것이다.
- 채스터턴


2011.10.12


공자가 말씀하셨다. ‘수많은 군사와 맞서 그 총사령관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남자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자왈 삼군 가탈수야 필부 불가탈지야 - 논어 자한 25장

사람의 진정한 뜻은 존귀하다는 것이다. 힘으로도 안 되고 돈으로도 빼앗지 못하는 진정한 뜻을 지닌 사람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떠한 억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뜻을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은 뜻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011.10.28


광화문 글판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 고은, <길>

있잖아, 힘들다고 한숨 짓지마.
햇살과 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 시바타 도요, 할머니 시인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 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 고은

 

 

2012.1.8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사실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이다.˝

˝이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으로 가득찬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포장된 사후세계 이야기로 내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 서서 죽음을 똑바로 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게 낫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2013.1.27


다시 부랑자로 지내던 스트릭랜드는 우연히 배를 얻어 타고 타히티로 가게 딘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뿌리 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들의 조상이 희미한 여명기를 보낸 그 땅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2013.1.28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슈위츠먼 회장은 7일 Weekly Biz와의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의 투자원칙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는 돈을 잃으면 안 되고(Don‘t loose Money!), 둘째도 돈을 잃으면 안 되며, 셋째도 돈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좋은 결과만 생긴다는 믿음을 상대에게 주며 절대 돈을 잃지 않습니다.˝

투자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절대 돈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자할 회사의 매력이 무엇인가‘뿐 아니라 ‘그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위험을 회피하며(risk averse) 돈을 잘 벌 수 있는 시나리오를 여러 개 만들어놔야 한다. 누군가는 옆에서 ‘당신의 행동은 미친 짓이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 블락스토 슈워츠먼 회장



2013.3.10


-불안감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느낌을 이겨내는 용기는 꼭 필요할 것 같다. 사랑 고백에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힘을 다룬 당신의 책 제목이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Daring Greatly)인 것도 용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내 책 제목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10년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했던 연설에서 따왔다. 그의 연설 내용은 이렇다.

˝비평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이 어떻게 비틀거렸는지, 일을 마무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모든 칭찬은 실제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는 먼지와 피땀으로 얼굴이 범벅된 사람입니다. (중략) 그는 위대한 열정으로 대의를 위해 몸을 바칩니다. 잘 되면 승리를 맛보겠지만, 실패한다 해도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를 내며 실패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지난 10년간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연구해 배운 교훈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은 승리나 실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전심을 다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용기,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얘기다. "

브리네 브라운(Brene Brown)은 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다. 지난 10년 동안 줄곧 수치심과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연구했다.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의 힘에 대한 TED 강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TED 강연은 최근까지 무려 796만회의 시청 횟수를 기록했다. 그녀의 책 ‘위대하게 맞서는 용기‘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패스트컴퍼니로부터 ‘2012년 올해 최고 경영도서‘로 꼽혔다. 이 밖에 ‘불완전이라는 선물‘(2010년), ‘연결‘(2009년) 등의 저서가 있다.

 

 

2012.5.20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


죽을만큼 마음껏 사랑해 볼 걸.
조금만 더 일찍 용서할 걸.
걱정은 내려놓고 행복을 만끽할 걸.
마음을 열고 포용할 걸.
한 번뿐인 인생, 열정적으로 살아볼 걸.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 걸.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면서 살 걸.

 


2012.9.16


천재의 탄생


˝99%의 땀과 1%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말 대신 10년(120개월) 동안 노력한 사람에게는 한두 달(1%) 동안 ‘천재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역사상 그 어떤 천재에게도 심지어 다윈,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짜르트 같은 천재에게조차도 창조적 도약으로 가는 멀고 더딘 과정에서 지름길은 허용되지 않았다.˝

 

 

 

 

 

 

 

 

 

 

 

 

 


2012.9.8


˝내가 소망했던 것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실현되었는가. 벌써 내 인생에 황혼의 그림자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지금,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봄날 아침의 뇌우에 대한 추억보다 더 신선하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투르게네프, <첫사랑>

 

 

 

 

 

 

 

 

 

 

 

 

 

 

 



2012.2.4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주권자˝라는 그의 결론은 자유주의 사상의 모태가 됐고, 그 가치는 ‘영원한 상식‘으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2011.12.24


젊은 여성과 결혼하지 말 것.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면 친구 삼으려 하지 말 것.
짜증내거나 시무룩해지거나 의심스러워하지 말 것.
현재의 방식, 유머, 패션, 남자, 전쟁 등을 비난하지 말 것.
아이들을 좋아하지 말며, 아이들이 절대로 내곁에 오지 못하게 할 것.
같은 사람한테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 것.
탐욕부리지 말 것.
더러워지는 불안함 때문에 품위나 청결을 무시하지 말 것.
젊은이들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고 젊음에서 말미암은 어리석음과 약점을 참작할 것.
품위와 청결을 소홀히 하지 말 것.
조언이나 훈계를 남발하지 말 것.
나의 조언을 청하는 사람 외에는 청하지도 않은 조언은 삼갈 것.
많은 얘기를 삼갈 것. 특히 내 얘기를.
과거의 아람다음이나 건강을 자랑하지 말 것.
- 조너선 스위프트, 내가 늙었을 때 명심해야 할 일

 

 

2012.11.3


그의 묘비명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2013.1.18


무제7시
화안시 / 언사시 / 심시 / 안시 / 지시 / 상좌시 / 방사시


2013.1.18


토인비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실패의 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2013.1.18


식신생재 : 식신은 베푸는 기질을 말한다.
재다신약 : 재물이 많으면 몸이 약해진다.
군겁정재 : 여러 형제들이 돈을 두고 다툰다.
탐재괴인 : 재물을 탐하다가 명예가 어그러진다.
재다난관 : 재물이 너무 많으면 벼슬하기가 어렵다.

 

 

2013.1.18


시간처럼 정직하고 커다란 힘을 가진 것은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성장하게 하고 모든 것을 평가한다.
또 시간의 힘에 의해서만 모든 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시간은 진리의 아버지다, 아무도 시간을 속일 수는 없다.
To Be Honest
All The Time

 

 

2013.1.18


벤저민 프랭클린


지식에 투자하는 것이 최고의 수익률을 가져다 준다.
자신의 머리속에 투자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든 자산을 꺼내갈 수 없기 때문이다.

 

 

2013.1.18


밑바닥


삶의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2013.1.18


대붕


물이 깊게 고이지 않으면 큰 배가 뜰 수 없고, 한 잔 물이 고인 곳엔 겨자는 뜨지만 잔은 바닥에 닿고 만다.
바람이 작으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기에 대붕은 구만리 바람을 일으켜 아무런 막힘없이 하늘을 나는 것이다.

 


2013.1.18


개권유익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는 말로 송태종이 한 말이다.
청년으로서 글을 읽는 것은 울타리 사이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중년으로서 글을 읽는 것은자기 집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에 글을 읽는다는 것은 발코니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독서의 깊이가 체험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 임어당

 

 

2013.1.18


쌀 한 톨


풍족할 때 쌀 한 말은 하찮은 것이지만, 보릿고개에 쌀 한 톨은 온가족 목숨도 구할 수 있다.

 

 

2013.1.18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말아햐 할 사실이 있다. 봄은 온다. 이 말이 절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아득한 약속일지라도 분명히 봄은 온다. 하루 견디면 하루 견딘 만큼 우리는 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2013.1.18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金 更無時節)


지금이 할 때이고 그때는 다시 없는 법. 진보를 위해서는 항상 위급한 상황이 필요했다. 램프를 만든 것은 어둠이었고, 나침반을 만들어낸 것은 안개였고, 탐험을 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2013.1.18


리처드 세넷


아니말 라보란스는 매일 고된 일을 되풀이하는 인간, 즉 일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호모 파베르는 판단력을 갖고서 노동하는 인간을 말한다.
아니말 라보란스는 ˝어떻게?˝ 라는 질문밖에 할 줄 모르지만, 호모 파베르는 나아가 ˝왜?˝를 묻는다.
아렌트에게 호모 파베르는 아니말 라보란스보다 상위 개념이다.

2013.1.18


쇼펜하우어


좌절을 겪은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만이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
- 쇼펜하우어의 ‘희망에 대하여‘

 

 

2013.1.18


어엿한 가치


우리는 오랫동안 남들이 쓸 데 없다고 말하는 곳에 돈을 썼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100년을 넘기고 200년이 되면 우리의 쓸데없는 노력은 어엿한 가치가 된다.
- 질도 제냐 회장

 

세상만사 성공의 핵심은 깊은 관심을 오랫동안 이어나가는 것이다. 항상 높은 유동성을 유지했고, 재무적으로 보수적인 경영을 해왔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사업을 끊임없이 재개발하고 재창조해왔다는 것입니다. 사업중에는 50∼60년 이상 된 것이 많습니다. 항상 하던 방식대로 해오지는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오래된 사업을 재창조해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높은 적응력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 질도 제냐 회장

 

 

2013.1.18


유능한 CEO


유능한 CEO가 되살릴 수 없을 만큼 엉망인 기업도, 무능력한 CEO가 파괴할 수 없을 만큼 우량한 기업도 없다.

 

 

2013.1.18


혹 : 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그 화가 부모에게 미치는 것이다. 불혹은 결국 풀어서 말하면 ˝제 성질을 다스릴 줄 몰라 패가망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2013.1.18


선생님의 용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자신이 걷는 길이 정당하다는 걸 믿는다면 더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용기는 자신감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하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결정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확신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2013.1.18


희망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볼 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

 

 

2013.1.18


인간은 자신이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것들의 수에 비례한 만큼 부자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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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작품 속에서 만은 20세기의 사상을 주름잡아 온 십여 가지의 주제와 문제들, 가령 정신분석과 영성주의, 예술, 질병, 죽음을 서로 연결시키는 연결고리,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의 상대적 속성, 서구인 특히 중산층 서구인들의 정신 상태, 예술가와 사회의 관계, 제대로 된 인간 교육 등을 폭넓게 다룬다. 만의 특별한 재능은 이런 수준 높은 사상, 등장인물들의 창조, 소설 속 분위기의 설정을 잘 종합한다는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오르는 중이다. 풍문에 듣기론 이 '산'이 완등하기가 제법 험난하다고 들었는데 예상과 달리 아직까진 별로 힘겹지 않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어느새 4장까지 읽었다. 그런데 상,하권으로 나눠진 소설이 총 1,431쪽(상권 660쪽, 하권 771쪽)인데, 알고 보면 제4장까지는 고작 352쪽에 불과하다. 남은 3장이 장장 1,079쪽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해발 1,431미터 높이의 산을 오르는데 겨우 352미터까지 오른 셈이라고나 할까.

 

(1993년에 나온『학원세계문학전집 22_마의 산』에 실린 사진)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면 산행을 시작할 무렵의 몇십 분 정도가 특히 힘들다. 하지만 육체가 산에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치게 되면 한결 마음이 가볍고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짜릿하게 맛보는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로선 딱 그런 기분을 느끼는 지점에 온 듯하다. 소위 '호흡이 터질 때'를 지금 막 지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율유세계문학전집> 1, 2권으로 나온 『마의 산』은 판형 때문에 페이지수가 늘어난 측면도 있는 듯하다.)

 

소설 『마의 산』의 공간적 배경은 스위스의 산중턱에 있는 베르크호프 요양원인데,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가 해발 1,600미터쯤에 자리잡은 이 곳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는 문제를 자주 다룬다. '저 아래'에서의 '수평 생활'과 요양원 생활은 여러모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마의 산』의 독특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일은 독자가 카스토르프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호흡이 터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결정적인 이유를 들자면 그건 이미 어디선가 만난 듯한 '익숙한 문장'을 이 소설 속에서 벌써 세 번씩이나 만났기 때문이다. 높은 산을 오를 때나 먼 길을 처음으로 찾아갈 때나 혹은 처음으로 대하는 작품을 읽을 때나 사정은 다 매한가지가 아닐까.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친숙한 무엇'과 만난다는 게 그만큼 '낯설고 힘든 여정'을 한결 가뿐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 말이다.

 

『마의 산』에서 내가 처음으로 마주친 '반가운 문장'은 '시간의 흐름'에 관한 문제를 다룬 길다란 대목이었다. 거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로 만난 '익숙한 표현'은 '연애의 형이상학'을 다룬 대목에서 발견했다. 그런데 이 둘 모두는 공교롭게도 쇼펜하우어를 읽을 때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번째로 만난 글귀는 '죽음'에 관한 문제를 다룬 대목인데, 이건 6년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신문을 읽다가 눈에 띄어 스마트폰에 메모해 둔 문장이었다.

 

우선 문장이 짧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세 번째 문장부터 여기에 옮겨볼까 싶다.

 

" …… 장례식에는 사람을 고양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어.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이 되려면 옛날부터 교회에 가지 말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어. 사람들은 다들 멋있는 검은 복장을 하고 모자를 손에 벗어 들고는 관을 바라보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를 취하지. 평소 때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어. ……"

 

이 대화의 전후에 어떤 배경이 깔렸든, 이 대화의 주인공이 누구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었던 문장을 『마의 산』을 직접 오르면서 어느 순간 불쑥 마주쳤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내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에 넣어 놓은 '오래된 메모'를 여태껏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놀라웠다. 지금 다시 꺼내 보니 그 둘은 번역까지도 서로 완전히 일치했다. 또한 스마트폰에 넣어 둔 메모는 놀랍게도 '북플'로 공유할 수도 있었다! 불과 몇 번의 터치로 까마득한 옛날에 메모한 내용을 통째로 이곳으로 끌고 올 수도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폰 속에 저장된 메모를 매번 일일이 옮겨 적느라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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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일일이 수기(手記)로 옮겨진 끝에 마침내 '북플 공유'를 통해 끌려나온 메모.

2011.2.27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2011.3.20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서구인들이 성서적인 의미의 ‘선과 악‘이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있다면 일본인들은 ‘계층의 허용범위‘라는 억압기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국민성에 비교우열은 없다. 베네딕트는 말했다. ˝일본인의 모순, 그것이 바로 일본인의 진실˝이라고.

2011.4.1
˝우리가 들은 것 중에 가장 큰 거짓말은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는 말이지만, 가장 큰 비밀은 왜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도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가 하는 것˝
- <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 중에서

2011.4.3
나는 몇 살까지 살까?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
중요한 단계에 도달한 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
한결같이 열심히 생산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장수하기 위해 따라야 할 지침들이다.

2011.9.10
토마스 만
장례식에는 사람을 고양시켜주는 무엇인가가 있어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면 옛날부터 교회에 가지 말고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가끔 생각한 적이 있어. 장례식에선 다들 엄숙하고 경건해지지. 평소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어. 나는 사람들이 가끔 경건해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2011.7.2
권이혁
그는 ˝내 목표는 웃으면서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권전장관이 젊은이에게 권하는 인생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젊었을 때부터 많이 걸을 것.
2. 남이 해주는 일을 고맙게 여길 것.
3. 즐겁게 살고 현명하게 늙기 위해 책을 많이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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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만난 문장은 제법 길지만 여기에 한번 옮겨보고 싶다. '시간의 흐름'에 관한 문제와 '연애의 형이상학'에 관한 문제는 『마의 산』을 오르든 말든 어쨌든 누구나 한 번쯤 음미해 볼 만한 문제이니까 말이다.

 

지루하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재미있고 신기한 경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내용이 없는 경우는 시간이 잘 가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이 없고 단조로운 것은 사실 순간과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나, 아주 커다란 시간의 단위일 경우에는 이를 짧게 하고, 심지어 무(無) 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경우는 시간과 나날이 짧게 생각되고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시간 단위를 아주 크게 하여 생각해 보면 그럴 경우 시간의 흐름에 폭, 무게 및 부피가 주어진다. 그리하여 사건이 풍부한 세월은, 바람이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빈약하고 내용이 없으며 가벼운 세월보다 훨씬 더 천천히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현상은 생활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시간의 병적인 단축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하루같이 똑같은 경우 오랜 기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조그맣게 오그라드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 모든 나날도 하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완전히 똑같다고 한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 하더라도 아주 짧은 것으로 체험되고, 부지불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처럼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시간 감각이 잠들어 버리거나 또는 희미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체험되고, 나중의 세월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면, 이런 현상도 익숙해지는 것에 기인한다. 다른 생활에 새로이 적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우리의 시간 감각을 새롭게 하며, 우리의 시간 체험을 갱신하고 강화하며 더디게 하여 이로써 우리의 생활 감정을 새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장소와 공기를 바꾸고, 온천 여행을 하는 목적도 이 때문으로, 기분 전환과 부수적 사건을 통해 심신의 회복을 꾀하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 며칠, 가령 6일 내지는 8일 정도 되는 처음 며칠은 젊은 날처럼 힘차고 활기차게 진행된다. 그러다가 그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서 점점 시간이 눈에 띄게 단축된다. 삶에 집착하거나, 더 정확히 말해서 삶에 집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다시 가벼워져서 후딱 지나가기 시작하는 사실을 감지하고 섬뜩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령 4주간의 마지막 주는 소름끼칠 정도로 빨리 후딱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물론 시간 감각의 쇄신은 막간 여행이 끝난 후에도 효력을 미쳐, 일상생활로 돌아간 뒤 새로이 효력을 발휘한다. 기분 전환을 한 후 집에서 보내는 며칠 동안은 역시 다시 새로워져, 폭넓고도 활기차게 체험된다. 하지만 이런 효력은 며칠간만 지속될 뿐이다. 일반적으로 외지에서보다 집에서 더 빨리 생활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노령으로 시간 감각이 벌써 무뎌졌거나, 또는 ㅡ 애당초부터 생활력이 약하다는 징조이지만 ㅡ 원래부터 황성하게 발달되지 않은 경우에는 시간 감각이 금방 다시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하루만 지나도 벌써 마치 집을 떠나지 않았던 양 생각되고, 여행이 하룻밤의 꿈처럼 생각된다.

 

이러한 소견을 여기에 집어넣은 까닭은 한스 카스토르프가 며칠 후에 사촌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자신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그는 말하면서 사촌을 충혈 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낯선 땅에 오면 처음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거든. 말하자면 ……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니야. 반대로 나는 왕처럼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러니까 회고해 보면 내가 이 위에 얼마나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 있은 듯한 생각이 들어. 내가 언제 이곳에 왔는지 퍼뜩 생각이 안 날 정도야. 그때 네가 나한테 '내려가지!' 라고 말한 거 생각나? 나는 그때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생각돼. 이는 순전히 감정상의 문제이지 측정이나 오성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야. '여기 온 지 벌써 두 달은 된 것 같아' 라고 내가 말한다면 물론 말도 안 되겠지. 터무니없는 말일 거야. 그래도 '아주 오래되었다' 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202∼205쪽)

 

 - 『마의 산_상』, 제4장, <시간 감각에 대한 보충 설명> 중에서

 

 

이렇게 길게 인용하고 보니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이 마치 '철학책 속 문장'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토마스 만이 이렇게 '문학 속에 담은 철학'은 결국 쇼펜하우어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다른 어떤 철학자에게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명쾌'하면서도 표현이 몹시 문학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상대적인 빠르기'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여기에 전부 인용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그 대목을 '인용'하지 않으면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마의 산』에 등장하는 문장을 서로 비교해 볼 도리가 없으니 '접어서라도' 인용하고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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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펜하우어의 『삶의 예지』에서 발견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글들

유년시절의 환경과 체험이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의 두뇌는 일곱 살쯤 되면 상당히 커지며, 지능도 그 무렵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외부 세계를 인식하려고 한다. 인식의 대상인 외부 세계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모든 것이 생기발랄해 보이기 때문에 유년시절은 그대로 하나의 아름다운 서사시가 된다. 사실 모든 시와 예술의 본질은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이데아(사물의 실체)를 붙잡는 일, 다시 말해서 개체를 통하여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는 일이다.

또한 유년시절의 환경과 체험이 언제나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무렵에는 외부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하나하나의 사물이 대표적으로 보이며, 직관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에는 환경에 전적으로 몰입하여 눈앞에 나타나는 사물을 그 종류 가운데서 유익한 실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인식보다는 의지의 힘에 의해 움직이므로 외부의 사물은 대부분 고뇌를 안겨 준다. 요컨대 모든 사물은 인식의 눈으로 보면 매우 선량하고 아름답지만, 의지의 눈으로 보면 무척 사나운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후자보다는 전자의 편에 속하는 것이 유년시절의 특징이다.



 

온 세계가 에덴동산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이 무렵의 인간은 사물의 아름다운 일면만을 알고 두려운 점을 모르며, 우리 자각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에 순수한 그 사물 자체 또는 예술에 묘사된 것과 흡사하여 매우 선량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므로 온 세계가 에덴동산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으레 행운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절을 벗어나면 차츰 인식보다 의지가 생활의 중심이 되어 생활의 대상으로서 선과 미를 의욕의 대상으로 삼는다. 즉, 사물과 의지의 여러 가지 반작용이 일어나 괴로운 운명에 시달리면서 '삶의 난동' 속에 빠져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서 사물과 또 다른 일면, 즉 의욕의 대상으로서 무서움을 알게 되며, 의욕적인 생활에 따르는 모든 장해와 근원을 체험하고 인생에 대한 아름다운 꿈이 깨어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환상을 즐기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고 한탄하여 회한에 잠기게 되는데, 이런 실망은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유년시절의 인생은 먼 데서 바라본 극장의 장식물과 같지만, 노년기의 인생은 그 장식물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봄에는 모든 나무 잎사귀가 다 초록빛으로 보이는 것처럼

이 밖에 유년시절에 평온과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마치 봄에는 모든 나무 잎사귀가 다 초록빛으로 보이는 것처럼 미래의 영웅이나 학자, 농부, 시골사람 할 것 없이 서로 조용히 친밀한 사이가 되어 독특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개인차가 심해지고, 그 차이는 중심에서 원주까지 점점 멀어져 가는 원의 반지름처럼 점점 더 커진다.

우리 생애의 후반기보다 전반기가 더욱 이상적으로 보이고 후반기가 대체로 불쾌하고 불행하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가 생애의 초기에 행복의 실제를 믿고 이를 손에 넣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있는 힘을 다 기울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실망과 재앙의 근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실패와 실망, 그리고 이에 따르는 불만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꿈같은 행복의 그림자가 여러모로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이것은 결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손에 넣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청년시절의 공통된 망상에서 떠날 수 있다면......

모든 청년들이 자신의 처지나 환경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는 것은 결국 인생 자체가 공허하고 비참한 데 원인이 있다. 청년들은 그것을 처지나 환경 탓으로 본다. 그들은 나중에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인생은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을 자기 처지나 입장의 탓으로 돌리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이 만일 올바른 교육을 받아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행복과 만족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청년시절의 공통된 망상에서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시나 소설에 묘사된 인생과 친숙해졌기 때문......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와 정반대의 방향을 더듬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인생의 참된 모습을 알기 전에 시나 소설에 묘사된 인생과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눈에는 문학에 표현된 인생이 매우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에 자기도 한번 그처러머 실제로 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자기 생애를 하나의 소설처럼 실현해 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무지개를 붙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결국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대문소리......

인간의 전반기 특징이 이와 같이 행복에 대한 충족될 수 없는 동경이라면, 후반기의 특징은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다. 후반기에 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행복은 하나의 망상이요, 고통만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상식이 있고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행복보다는 차라리 견디어 나가기 쉬운 상태를 원하며, 근심과 걱정이 없는 처지를 원하게 된다. 나는 젊어서는 대문 소리가 나면,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고 기뻐했지만, 나이를 먹고 나서부터는 대문 소리가 들리면, '무슨 귀찮은 일이 생기려나?'하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소유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는 것은......

생명력, 즉 체력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36세까지는 그 이자로 살아가는 사람과 같아서 오늘 소모한 체력은 내일이면 회복된다. 그러나 이 무렵을 고비로 그 후로는 자기 자본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자본가가 된다. 처음에는 사태의 변화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아 지출의 대부분은 자연히 원상복구가 되어 이 무렵의 손실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손실이 점점 늘어가면 눈에 띄게 된다. 그것은 날마다 팽창하여 점점 뿌리를 깊이 박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돌아올 때마다 어제보다 가난해진다. 그 동안에 그 감퇴는 물체의 낙하처럼 더욱 속도를 내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이처럼 생명력과 재산이 날로 줄어든다면 그보다 더 딱한 일은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유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년에 도달하고 나서 몇 해까지는 생명력에 관해 말하자면 이자 중에서 얼마간은 자본에 보태는 사람과 같다. 그렇게 하면 지출한 금액이 다시 자연히 충당될 뿐더러 자본도 늘어간다. 오, 행복한 청춘! 오, 서글픈 늙은이······. 어쨌든 인간은 청춘의 힘을 소중히 간수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사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작아 보인다.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이란 하나의 끝없이 긴 미래로 보이며,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극히 짧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사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작아 보인다. 청년시절에는 그처럼 크게 보이던 인생이 꿈과 같이 덧없고, 다만 급격한 현상의 무의미한 교체로 생각되어 허무와 무상이 뚜렷이 들여다보이고 또 마음에 스며든다.


청년시젏에는 시간이 가는 것이 무척 더디다. 그러므로 일생의 4분의 1은 행복한 시기고 또 가장 길게 생각되는 부분이며, 그 동안에 기억하는 일들은 어느 시기의 기억보다 훨씬 많다. 자기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누구나 그 4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그 밖의 4분의 3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계절에 있어서 봄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해가 너무 길어 지루하게 생각될 정도지만,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낮이 무척 짧아지는 대신에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노년기에는 왜 과거의 생애가 그처럼 짧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조금도 소중할 것 없는 대부분의 불쾌한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극히 작은 부분만 남아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빈약해지고 길이도 짧아지는 데서 오는 것이다.


 

http://blog.aladin.co.kr/oren/685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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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만난 '익숙한 문장'은 그나마 두 번째 문장보다는 조금 짧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여자들이 유혹적으로 옷을 입는 것과 같은 그러한 자명한 사실 때문이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며, 어디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인정받는 일이라서 이에 대해서는 거의 새삼스레 의식하는 일 없이 선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스 카스토르프는 인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를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관습이며, 엄밀히 말하면 거의 동화 같은 관습임을 머릿속에 그려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동화 같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복장을 하고서도 풍기에 어긋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어떤 목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는 물론 다음 세대와 인류의 번식에 관계되는 문제이다. (249∼250쪽)

 

- 『마의 산_상』, 제4장, <사랑과 병의 분석> 중에서

 

 

이 대목에 상응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소위 <연애의 형이상학>에 나오는데, 이 대목 또한 '접어서' 인용하는 것으로 처리할까 싶다. '접기'조차 생략하면 이 글이 너무나 길게 늘어나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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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은 겉보기에는 별나라 같아도, 사실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이 본능이 특수화된 것이며 개체화된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이 희곡이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거기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며,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다) 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관찰하면, 언제나 모든 생애에서 가장 젊은 시절, 즉 청춘시절 뭇사람들의 정력과 사고를 거의 절반쯤 강제로 동원한다. 또한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으로서, 심지어는 가장 중요한 사건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며, 가장 진실한 과업을 중단시키고, 때로 가장 위대한 정신도 흐리게 하며, 외교적 교섭이나 학술연구에 몰두할 때도 체면불구하고 연출하여 장관의 문서철이며 철학자의 원고 속에 연애편지나 머리카락을 끼워넣게 한다. 또 수많은 나날 시끄러운 사건에 가장 악질적으로 사주한 사람이나 동지끼리 맺은 가장 친밀한 사이도 끊어버리고, 견고한 사슬도 풀며, 허다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생명과 건강과 부와 지위와 행복을 빼앗아갈 뿐더러, 정직한 사람을 철면피로 만들고, 충신을 파멸시키려 한다. 이 모든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토록 소란을 피우고 애쓰고 고민하며 불행에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듯 하찮은 일이 그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며 안정된 생활에 소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가?

진리 탐구 정신이 투철한 사상가라면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즉, 그것은 결코 작은 일에 관련되어 있지 않으며, 그 중대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 맞닥뜨리게 되는 진지하고 열렬한 모습에 맞먹는다.

정사의 목적은 비극으로 나타나든 희극으로 나타나든 인생의 여러 가지 목적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것이며, 누구나 끈질기게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다음 세대의 조정이라는 중대한 일이며, 다음 무대 위에 우리를 대신해 등장할 인원은 이같이 사소한 장난처럼 보이는 정사에 의해 그 존재와 양상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 미래에 인간이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성욕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는 한편, 그들의 성격적인 특질인 본성(essentia)은 성애의 개체적인 선택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점이 변함없이 결정된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일시적인 사랑에서 가장 뜨거운 정열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모든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진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는 이성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대의 연애를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크게 보면, 다음 세대의 성립을 숙고하고 그 뒤의 무수한 세대에 대해 배려하는 진지한 일이라고 하겠다. 사실 그것은 다른 정열같이 개인의 불행이나 이익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고, 앞으로 돌아올 인류의 존재와 그 특수한 양상에 관한 것으로, 이 경우 개인의 의지는 가장 높은 능력에 도달하여 자신을 종족의 의지로 돌아가게 한다.

연애란 엄숙하고도 뼈아픈 것으로, 큰 환락과 고뇌가 따르는 까닭은 종족에 관한 커다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몇천 년 전부터 수많은 예를 들어 그것을 묘사했다. 이 주제는 종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그밖의 어떤 주제도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즉 개인과 종족의 관계는 물체의 표면과 물체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옛날부터 다루어온 진부한 것임에도 언제까지나 고갈되는 일이 없다.

(중략)

당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정사는 결국 자식을 낳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따라서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의 우여곡절은 부수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고결하고 애절한 심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은 내 주장이 지나친 실재론이라고 반박할 테지만, 이것은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등장할 인류의 외모와 성격을 정밀하게 선정하는 일은 그들의 꿈이나 공상보다 훨씬 고귀한 목적이 아닌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목적들 중에서 이보다 더 중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목적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랑의 뜨거운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정열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극히 하찮은 일도 일단 이 목적과 관련 맺으면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연인을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서둘러 접근하는 노력이나 노고는 언뜻 보아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대가보다 커보이는데,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위에서 말한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노고와 투쟁을 거쳐 현재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성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날 다음 세대의 인류다. 아니, 다음 세대의 인류는 벌써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저 사랑이라는 이름의 면밀하고도 끈기 있는 이성의 선택에서도 나타나 있다.

(중략)

이제 문제의 핵심에 대해 언급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이 깊이 뿌리박혀 개개인에게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하고도 분명한 동기는 이기적인 것 이외에 없다. 종족은 개체에 대해 분명 우선권을 가지며, 보다 직접적이고 큰 권한을 갖고 있다. 종족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개체는 희생되어야 하는데, 개체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쏠려 있으므로 개체에게 이런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다 해서 개체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로부터 떠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자연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환상을 심어주어 개체를 기만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개체는 이 환상에 미혹되어 사실은 종족에 관한 일인데도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자연의 무의식적인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의 눈앞에는 곧 탐스러운 환상이 나타나 이를 추구하게 된다. 이 환상이 다름아닌 본능으로, 그 대부분은 개체 의지가 아닌 종족 의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자기 이상에 맞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면 남성은 미칠 듯한 정열을 일으키며, 이 여성과 결혼했을 경우 맛볼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정열도 따지고 보면 '종족의 의지'며, 이것이 여성에 대해 스스로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보이며 그녀를 통해 자신을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 정열을 충족시키면, 곧 미궁에서 벗어나 그처럼 열망했던 것이 얼마 안 가 실망을 안겨주는 일시적인 쾌락만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욕망에 대해 종족과 개체, 무한과 유한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충족으로  종족만이 실제적 이득을 보게 되나, 개체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개체가 종족의 의지에 따르게 되어 지불한 희생은 그 자신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에 사용된 것이다. 모든 연인은 성교라는 큰일을 한 번 치르고 나면 곧 속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종족의 도구가 되게 한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성적 쾌락은 최대의 사기꾼"이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다.

(중략)

그러므로 종족의 영혼은 개체의 이익에 관계되는 일보다 월등히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고 자부하며, 전쟁의 불바다 속에서건, 분주하게 사무를 집행하는 중이건, 페스트가 창궐하는 중이건, 또는 한적한 절 속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 일을 수행한다.

(중략)

사랑이 어느 유일한 이성에게 쏠리게 되면 굉장한 힘과 열을 내어, 만일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면 본인에게는 세계의 훌륭한 것들이 시들하게 보이고 나아가 목숨까지도 하찮게 생각되며 이 정열을 불태우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렵지 않게 된다. 그 격정은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으며, 때로 미치거나 자살까지 하게 만든다.

(중략)

질투가 괴롭기 이를 데 없는 정념(情念)인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만하고, 또한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을 단념하는 일이 어떤 희생보다 크게 여겨지는 것도 납득이 된다. 영웅은 일상적인 일로 비탄에 빠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사랑의 비애에 대해서는 비탄을 억누르지 못한다. 이 경우 비탄에 빠지는 것은 본인 자신이 아니라 종족 자체이기 때문이다. 칼데론의 훌륭한 희곡 《위대한 제노비아》제2막에 제노비와 데시우스가 등장하여 데시우스가 말한다.

"아, 하늘이여, 당신이 날 사랑한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승리를 포기하겠소. 적진에서 도망쳐버리겠소."


여기서는 여러모로 이해타산적인 명예가 무시되고 그 대신 사랑, 즉 종족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명예와 의무, 그리고 충성은 지금까지 유혹이나 심지어 죽음의 협박에도 저항해 왔으나, 종족의 이해 앞에서는 고분고분 양보하고 굴복해 버린다.


(중략)

일단 종족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면 개체에게만 관련되는 이해는 다 거기에 순종하며, 때로는 희생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인간은 자신에게도 종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며, 자기가 개체 안에서보다 종족 가운데에서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빠진 자는 무엇 때문에 연인에게 완전히 얽매여 애인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무릅쓰려고 하는가? 애인을 그리워하는 건 결국 그 사람 속에 깃든 영구불멸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의 것들은 오직 허망하게 생멸하는 일에만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감정은 우리 본성이 불멸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광명을 던져주는 것으로, 이를 요약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성적 욕망에 의한 이성의 선택은 차츰 열기를 더하여 드디어 열렬한 사랑에 이르고,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인류의 특수한 개성적인 소질이 종족 속에서 존속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중략)

이 내재적인 본성이야말로 의식의 핵심이고 그 근저에 있으며 의식 자체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 즉 개개의 원리에서 떠난 물자체(物自體)다. 개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디에 흩어져 있더라도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또한 내가 다른 말로 '살려는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생명의 존속을 요구하며 죽음이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힘이다.

 - 쇼펜하우어, 『인생을 생각한다』중 '사랑의 형이상학'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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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세계문학전집 22_마의 산』에 실린 사진.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밀라노를 거쳐 쮜리히에서 하룻밤 묵은 뒤 이튿날 인터라켄을 거쳐 알프스의 융프라우까지 올랐던 추억이『마의 산』을 읽는 동안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학원세계문학전집 22_마의 산』에 실린 사진. 이 서재에서도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들이 토마스 만의 손때가 묻은 채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다르게 보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렇게 해서 '호흡이 터지는 듯한 기분'을 가까스로 정리해 봤다. 아직도 『마의 산』을 다 오르기에는 까마득한데,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에 도취되어 너무 오래 쉰 듯싶다. 이제 호흡이 터졌으니 '발결음도 가볍게' 『마의 산』을 계속 힘차게 올라가 보자. 토마스 만이 보여줄 더 멋진 경치를 기대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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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다."

 - 밀란 쿤데라

 

 * * *

 

소설을 다시 읽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오래 사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과 닮은 점도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품이든 감동깊게 읽고 나면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느새 친구처럼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친구에 대한 '우정'부터 앞세우게 되고, 쓸데없는 '경계심' 따위는 전혀 품지 않게 된다. 그 친구의 성격과 마음 씀씀이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데 왜 굳이 그를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여태까지는 소설 작품을 재독한 경험이 거의 없다. 내가 읽었던 어떤 책에 의하면, 어떤 소설가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무려 3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나는 그 소설을 며칠 전에 겨우 끝냈는데, 언제 다시 읽을지는 아무런 '기약'이 없다. 그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는 물론 아니다. 소설 하나를 30번씩이나 읽는 대신 다른 책들로 서둘러 발길을 옮기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반복 독서'의 즐거움을 영영 무시할 수는 없다. 마음에 드는 친구를 어렵사리 사귄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 친구를 한사코 제쳐 두고 끊임없이 다른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던히 애쓸 필요가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친숙한 친구를 다시 만나기를 계속 주저한다면 그건 어쩐지 이상한 얘기로 들릴 게 틀림업다.

 

오랜만에 돈키호테를 다시 펼쳤더니 내가 궁금해서 찾아 읽은 대목의 뒷부분이 몹시 궁금해졌다. 마치 친한 친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얘기를 절반쯤 듣다가 만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다시 찾아 읽은 돈키호테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자신의 서재가 '엄숙한 검열'을 당하고 난 뒤에 돈키호테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반적인(?) 독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의 돈키호테는 그런 상황을 아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기 싫을 뿐 아니라, 일부러라도 그런 상황 속으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소설의 원문'과 '내멋대로 붙인 주석'을 한데 뒤섞어서 적었다. PC 화면에서는 박스와 색깔로 뚜렷이 구분되나, 북플로 읽는 분들은 그런 구분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니 가급적 'PC버전'으로 전환해서 보시면 좋겠다.)

 

그날 밤 가정부는 집과 마당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 중에는 서고에 영원히 보관되어야 할 책들도 있었지만 검사자의 태만과 책의 운명이 이를 허락지 않았으니, 죄인들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른다는 속담이 이로써 증명되었다.

 

돈키호테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신부와 이발사가 내린 처방들 중 하나는 서재를 벽으로 몽땅 봉해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 책을 못 찾게 하고 ㅡ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ㅡ 그에게는 마법사가 책과 서재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고 할 생각이었다. 그 일은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틀 뒤 돈키호테가 일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 있던 곳에 서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저리 찾아 헤매야 했다. 그는 문이 있던 곳에 가서 두 손으로 문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말 한마디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가정부에게 자기 책을 넣어 둔 서재가 어느 편에 있었는지 물었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충분히 들었던 가정부는 그에게 대답했다.

 

「무슨 서재를 찾으시는데요, 나리? 이 집에는 이제 서재도 책도 없어요. 그놈의 악마가 몽땅 가져가 버렸지 뭐예요.」 

 

「악마가 아니었어요.」조카딸이 말했다. 「외삼촌이 집을 나가신 후 어느 날 밤 한 마법사가 구름 위로 와서 자기가 타고 온 뱀에서 내리더니 서재로 들어갔어요. 그 안에서 뭘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잠시 뒤 그가 지붕을 타고 날아가자 집이 온통 연기에 휩싸이더라고요. 무슨 일을 했는지 가보니 책도 서재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나 아주머니나 생각나는 거라곤 그 사악한 늙은이가 떠날 때 큰 소리로 한 말뿐이에요. 자기는 그 책들과 서재 주인인에게 남모르는 적의를 품고 있어 이 집에 해코지를 한 것이니 그 결과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자기 이름이 현자 무냐톤이라고 했지요.」

 

「프리스톤116이라고 했을 게다.」돈키호테가 말했다.

 

태연자약한 돈키호테의 대답이 과연 걸작이다. 조카딸의 '지어낸 이야기'에 도리어 한 술 더 뜨니 말이다.

 

(번역자의 주석)

116 『돈 벨리아니스』가상의 원저자는 현자이자 마법사인 프리스톤이다. 앞으로 보게 될 제9장에서 『돈키호테』의 저자를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프리스톤이라고 했는지 프리톤이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이 <톤>으로 끝나는 것만은 알아요.」 가정부가 말했다.

 

「맞아.」 돈키호테가 말했다. 그자는 영리한 마법사로 내 막강한 적이지. 내게 원한을 가지고 있어. 내가 어느 때고 와서 자기가 아끼는 기사와 멋진 결투를 펼치리라는 걸 그는 마술과 학문으로 이미 알고 있지. 놈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게 내가 그 기사를 이길 거라는 것도 말이야. 그래서 녀석은 나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하려고 드는 거야. 하지만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을 그놈이 거역하거나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걸 누가 의심하겠어요?」 조카딸이 말했다. 「하지만 삼촌, 또 누가 삼촌을 그런 싸움에 끼어들게 하겠어요? 불가능한 일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지 마시고 집에 편시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양털 깍으러 갔다가 도리어 털 깍이고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모르세요?

 

「얘야.」 돈키호테가 말했다. 「넌 정말 뭘 모르는구나! 누구든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려는 놈이 있다면, 그 전에 내가 그놈의 수염을 죄다 뽑아 버리고 말 테다.」

 

그가 화를 낼 조짐을 보이자 두 여자는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돈키호테』를 읽는 또다른 재미 한 가지는 기가 막힌 옛 속담들을 실컷 맛보는 데 있다. 산초는 가히 '속담의 제왕'이라고 할 정도로, 입만 열었다 하면 배꼽을 잡는 속담을 쏟아낸다. '속담'에 그른 말이 없듯이, 산초가 속담을 섞어 쏟아내는 말들도 매번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들뿐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보름 동안 아주 조용히 집에 있었다. 이전과 같은 정신 나간 짓을 되풀이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자기의 두 친구, 즉 신부와 이발사와 아주 재미있는 대화를 하며 보냈다. 그는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편력 기사들이며 편력 기사의 부활은 자신으로 인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신부는 그의 주장을 반박도 했다가 어떤 때는 수긍도 했으니, 그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돈키호테와 내내 불화만 계속 되었을 것이다.(118∼120쪽) 

 

 - 『돈키호테 1』, <7.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

 

 

이렇게 해서 '돈키호테의 서재'는 통째로 사라졌음에도 아무런 뒤탈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수습된다. 이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돈키호테가 다시 '편력 기사의 모험'을 떠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는 대목이다. 바로 여기서 '서양 문학의 역사상 불멸의 인물'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산초 판사'이다. 이 대목을 다시 만나는 건 언제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들여다 보는 듯한 짜릿한 흥분을 동반한다. 다른 분들도 과연 그럴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말이다.

 

이 기간 동안 돈키호테는 이웃에 사는 착한 ㅡ 이러한 표현을 가난한 사람에게 붙일 수 있다면 말이다 ㅡ 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에게 간청했다. 돈키호테의 간절한 부탁과 설득과 약속으로 결국 이 가엾은 자는 돈키호테의 종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돈키호테가 그에게 한 여러 가지 약속들 중 하나는, 만약 그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나서 준다면 모험으로 아무리 못해도 어떤 섬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약속에 끌려 산초 판사는 ㅡ 이것이 그의 이름인데 ㅡ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자기 이웃의 종자가 될 것을 승낙했다.

 

그다음 돈키호테는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팔고 어떤 것은 저당 잡히며 모든 것을 헐값에 처분하여 적지 않은 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친구에게 방패 하나를 빌리고 부서진 투구도 최대한 잘 손질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산초 판사는 처자식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돈키호테는 가정부와 조카딸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 얼마나 걸었던지 새벽녘이 되었을 때에는 누가 그들을 찾아 뒤쫓아 온다 해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소설『돈키호테』는 이야기 전개 속도가 놀랄 만큼 경쾌하다. '산초'를 만나고 '정든 집'을 떠나는 대목이 이토록 간결하다. 플로베르나 톨스토이, 혹은 토마스 만이었다면 족히 여러 페이지로 늘려 놓았을 게 틀림없다.

 

산초 판사는 자루와 술통을 당나귀에 매달고 그 위에 앉아서 주인이 약속한 섬의 통치자가 되리라는 강한 희망에 사로잡힌 채 족장처럼 우쭐대며 가고 있었다. 돈키호테는 처음 길을 떠났을 때의 그 방향과 그 길로 우연히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몬티엘 들판으로, 이번에는 지난 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비스듬하고 뜨겁지 않아 그들을 지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산초 판사가 주인에게 말했다.

 

「편력 기사 나리, 제게 약속한 섬 이야기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요. 아무리 큰 섬이라도 전 문제없이 다스릴 수 있거든요.」(120∼122쪽)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와 모험을 함께 하는 동안 '섬 이야기'를 수백 번도 더 끄집어 낸다.(정말?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다. 그만큼 자주 꺼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돈키호테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돈키호테와 함께 '편력 기사의 종자'로 따라다니며 온갖 곤욕을 다 치르더라도 결코 '동행'을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도 오로지 '섬을 다스릴 부푼 희망' 때문인데, 나중에 진짜로 그 희망이 실현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꿈이 헛되다는 걸 절감하고 도리어 '평범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나는 그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산초의 후회'가 애시당초 작가의 구상에는 없었다는 점이다.『돈키호테 1』이 너무나 빅히트를 치는 바람에 수많은 짝퉁 소설이 나오자 세르반테스는 하는 수 없이 속편 격인『돈키호테 2』를 썼는데, 이 이야기가 『돈키호테 1』과 너무나 긴밀하게 엮여 있어서 다시 한번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돈키호테 1』은 그의 나이 58세 때 출판되었고, 『돈키호테 2』는 그의 나이 68세때 출판되었다.) 어쨌든 세르반테스는 우리가 갈망하는 '거창한 꿈'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황된 것인지를 산초의 '섬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생생히 보여준다. 『돈키호테 1』의 초반부에서 시작된 '섬 이야기'가 진짜로 실현되는 장면은『돈키호테 2』에서도 절반이 넘어서야 등장하며 '소설의 클라이맥스' 가운데 하나를 이룬다. http://blog.aladin.co.kr/oren/7329286

 

 - 『돈키호테 1』, <7.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돈키호테』 19쪽에 나오는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이렇게 시작된 '두 번째 모험'에서 곧바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소설『돈키호테』를 상징하는 그 유명한 <풍차 모험> 장면이다.

 

이런 말을 주거니 맏거니 하며 가고 있던 이때 들판에 서 있는 풍차 30∼40개를 발견하자, 돈키호테는 즉시 종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행운이 우리 일을 마련해 주는구나. 친구 산초 판사여, 저기를 좀 보게! 서른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인들이 있네. 나는 싸워 저놈들을 몰살시킬 것이야. 그 전리품으로 부자가 될 걸세.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싸움이며, 사악한 씨를 이 땅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크게 봉사하는 일인 게지.」

 

「거인들이라뇨?」 산초 판사가 물었다.

 

「저기에 있는 저놈들 말이네.」 주인은 대답했다. 「기다란 팔을 가진 놈들 말이야. 2레과나 되는 팔을 가진 놈들도 있군.」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입니다요. 팔로 보신 건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방아를 움직이죠」

 

「보아하니 …….」 돈키호테가 말했다. 자네는 이런 모험을 도통 모르는 모양이구먼. 저건 거인이야. 겁이 나면 저만치 물러나서 기도나 하게. 그동안 나는 저놈들과 지금껏 보지 못한 맹렬한 싸움을 벌일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 돈키호테는 그가 싸우고자 하는 저것들은 절대 거인이 아니며 풍차라는 종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했다. 놈들이 거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종자 산초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가까이 갈 때까지 상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도망치지 마라, 이 비겁하고 천한 자들아! 너희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이 기사 한 명뿐이다.」

 

이때 바람이 불어와 풍차의 커다란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돈키호테는 소리쳤다.

 

「비록 네놈들이 저 거인 브라이레오스보다 많은 팔을 휘둘러 댄다 할지라도, 네놈들아, 나한테 혼난 줄 알아라!.」(124∼125쪽)

 

여기서 '초딩 스러운' 질문 하나. 돈키호테는 왜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고 산초가 그토록 말리는 데도 그리로 돌진해 들어갔을까. 이 질문은 앞서 나온 이야기를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금세 대답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서재'를 없앴던 바로 그 마법사 프리스톤이 '거인을 풍차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돈키호테 1』, <8. 굉장히 무섭고 결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풍차 모험에서 용감한 돈키호테가 행한 멋진 사건과 좋게 기억할 만한 사건들에 대하여>

 

 

 (『그림으로 읽는 돈키호테』 21쪽에 나오는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풍차 모험에서 로시난테와 함께 크게 다친 돈키호테는 산초의 '제발 정신 차리라'는 충고를 듣고도 여전히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싸움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무쌍한 것이네. 내 생각에, 아니 생각이 아니라 진실인데, 나의 서재와 책을 훔쳐 간 그 현인 프리스톤이 승리의 영광을 내게서 앗아 가려고 거인들을 풍차로 둔갑시킨 게야. 내게 품고 있는 그자의 적의가 이 정도란 말일세.

 

두 사람은 하룻밤을 길가에서 묵고 나서 곧장 다음 목적지인 푸에르토 라피세로 길을 떠난다. 거기서도 어떤 부인이 탄 '마차'를 호위하는 듯한 일행들을 공격하는데...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점은, 이 이야기의 작가가 바로 이 순간 이 대목에서 이 싸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적어 온 것들 외에는 더 이상 돈키호테의 무훈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제2의 작가127 또한, 그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망각의 법칙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라만차의 천재들이 이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아 이 유명한 기사를 다루는 그 어떤 서류도 책상이나 문서 보관실에 남겨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희망을 갖고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내는 일을 단념하지 않았다. 다행히 하늘이 그를 도왔는지, 제2부에서 보게 될 바와 같은 결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134쪽)

 

 (번역자의 주석)

127 세르반테스 자신을 가리킨다. 다음 장에서 알 수 있겠지만 첫 번째 작가는 시데 아메테 베냉헬리라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 『돈키호테 1』, <8. 굉장히 무섭고 결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풍차 모험에서 용감한 돈키호테가 행한 멋진 사건과 좋게 기억할 만한 사건들에 대하여> 

 

 

 

이렇게 해서 『돈키호테 1』의 총 4부 가운데 <제1부>가 묘하게(?) 끝난다. <제2부>의 시작 또한 '소설 『돈키호테』를 쓴 작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작가가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설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법이 현란하기 그지 없다. 르네 지라르가 "돈키호테』이후에 쓰여진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라는 지적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이런 대목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제1부는 용감한 비스카야인과 유명한 돈키호테가 서슬 퍼런 칼을 높이 쳐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적어도 명중하기만 하면 서로 석류처럼 갈라놓을 듯 무서운 기세로 싸우던 대목에서 끝났다. 정말 궁금한 대목에서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어 버리고도 작가는 나머지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보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은 나128를 무척 슬프게 했다. 적은 분량이나마 앞부분을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보기에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그 재미있는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찾을 길이 없으니, 앞선 즐거움이 오히려 불쾌함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토록 훌륭한 기사의 놀랄 만한 공훈을 기록해 둔 현자가 없었다는 것이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관슴에서 어긋나는 일로 보였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작가 특유의 '매혹적인 이야기 전달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옛날 옛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 손주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다가도 갑자기 그 이야기를 툭~ 끊어버리는 일은 틀림없이 자주 있었으리라, '청자나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수법'이야말로 화자에게 더욱 매달리게 만드는 '작가의 고유한 능력'이 아닐까. 거기에 덧붙은 능청스러움과 익살은 덤이고.

 

(번역자의 주석)

128 앞서 세르반테스는 자기는 이 작품의 제2의 작가이자 계부라 했는데 지금은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고 있다.

 

(중략)

 

한편으로는 돈키호테가 읽은 책 가운데 『질투의 환멸』이니, 『에나레스의 요정과 목동』과 같은 최신작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도 최근에 일어난 일이며, 따라서 아직 글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더랃도 그 마을 사람이나 이웃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유명한 에스파냐의 용사이자 라만차 기사의 빛이요 거울인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전 생애와 기적들을 반드시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어지럽혔다. 돈키호테야말로 이 재난 많은 시대에 편력 기사의 임무와 그 수행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불의를 바로잡고, 과부를 돕고, 채찍을 휘두르고, 말을 타고 산에서 산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다니던 처자들이 어느 비열한 놈이나 촌놈이나 가공할 거인들에게 순결을 잃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지난날에는 그런 놈들에게 당하는 처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80년 동안 단 하루도 남의 지붕 밑에서 자지 않고 어머니가 낳아준 그 상태 그대로 무덤으로 간 처자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의 멋진 돈키호테는 이런저런 이유로 기억되고 찬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고 나 역시 여기에 들인 노력과 열성을 생각해서라도 이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늘과 우연과 행운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세상은 부족한 상태로 남을 것이며, 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을 사람은 두 시간 남짓이나마130 누릴 수 있었던 재미와 즐거움을 영원히 잃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 책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거창한 모험을 떠나는 돈키호테의 임무라는 것도 자세히 알고 보면 이처럼 '단 두 줄에' 모두 요약되어 있다.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해학이 넘친다.

 

(번역자의 주석)

130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쓰면서 자주 자신의 작품을 낮추는 겸손함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을 쓴 후 2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내놓는 책이라 그러한 듯하다.

 

어느 날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에 나갔더니 한 소년이 비단 장수에게 잡기장이며 낡은 서류 뭉치들을 팔기 위해 나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길바닥에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읽는 천성을 지닌 인간인지라 그 소년이 팔겠다고 하는 잡기장 한 권을 집어 들어 보았는데 거기에는 아랍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랍 글자인 것은 알겠는데 읽을 수는 없어서 근처에 에스파냐어를 아는 무어인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번역가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 훌륭하고 더 오래된 다른 언어를 해독해 줄 사람이라 해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운좋게도 한 사나이를 찾아내 그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잡기장을 넘겨주었다. 그는 책 중간을 펼쳐 보더니 잠깐 읽다가 웃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물었더니 이 책의 여백에 쓴 주석이 그렇다고 했다. 내가 그것을 좀 읽어 달라고 하자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읽어 주었다.

  

「내가 말한 주석은 이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이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여자는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솜씨만큼은 라만차를 통들어 어느 여자보다도 뛰어났다고 한다.>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을 듣자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이 잡기장에 돈키호테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빨리 첫 부분을 읽어 보라고 독촉했다. 그는 시키는 대로 즉석에서 아랍 말을 에스파냐 말로 번역해 읽어 주었다. <아라비아의 역사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이야기.> 이 책의 제목이 내 귀에 와 닿았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감추느라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 비단 장수를 제치고 그 소년에게 돈 반(半) 레알을 줘 종이 뭉치와 잡기장을 모조리 사들였다. 만일 소년이 빈틈없는 아이라 내가 얼마나 그 물건들을 원했는이 알았더라면 6레알 이상은 확실히 받아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무어인과 함께 성당의 본당 회랑으로 가서 돈키호테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모조리, 더하거나 뺴는 것 하나 없이 에스파나 말로 고쳐 주면 원하는 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건포도 2아로바와 밀 2파네가로 만족하며 짧은 시일 내에 충실하게 잘 번역해 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더 쉽게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이 훌륭한 물건을 손에서 떼어 놓고 싶지 않아서 그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우리 집에서 한 달 보름 조금 더 걸려 전부 번역했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중략)

 

이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해 약간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다면, 작가가 아랍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민족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불구대천 원수이기 때문에 마땅히 써야 할 것들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토록 훌륭한 기사를 칭찬하는 데 펜을 더 놀릴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그 칭찬거리를 빠트리고 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나쁜 행동에 나쁜 생각이다. 역사가란 사실을 정확하게 그대로 기록해야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개인의 욕심이나 두려움이나 한이나 편애와 같은 감정으로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요 시간의 경쟁자이자 모든 행위의 창고이며 과거의 증인이고 현재의 본보기이자 깨우침이며 미래를 위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가장 온건한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이 이야기에 무엇인가 좋은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인물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 이야기의 작가인 개 같은 무어인의 책임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아무튼 이 이야기의 제2부는 전역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139∼144쪽) 

 

세르반테스는『돈키호테』의 원작자가 아랍 사람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이며, 자신은 그 이야기를 발굴한 제2의 작가라는 설정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의 창'을 마련한다. 이런 방식 말고도 소설『돈키호테』 속에는 돈키호테의 모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온갖 '액자 소설'이 여럿 끼워져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놀라운 솜씨로 엮어 넣음으로써 세르반테스가 단순히 '이야기'만 잘 지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 『돈키호테 1』, <9. 늠름한 비스카야인과 용감한 라만차 사람이 벌인 대단한 싸움의 결말이 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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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09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oern님 덕분에 돈키호테의 감상 포인트를 짚고 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oren 2017-08-09 22:17   좋아요 4 | URL
다시 읽을 때 보았네 /
처음 읽을 때 보지 못한 /
돈키호테와 산초의 다른 모습 /

라로 2017-08-10 15: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있는 [기싱의 고백]에서 이런 부분이 니와요. ˝(중략)지나간 일들에 대한 쓸데없는 지식을 내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자아, 그러니 이제는 죽기 전에 [돈키호테]나 한번 더 읽을까 보다.˝
그런데 그 전에는 이런 부분도 있어요.
˝세르반테스라는 실수투성이의 작가가 자기의 ‘예술‘에 대해 너무 불성실했던 나머지 소설의 한 장에서 산초의 당나귀가 도난 당한 장면을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초가 대플(Dapple)을 타고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이 글을 쓸 때 세르반테스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들도 깍아내리지만 결론은 훌륭하다에요.그러니 죽기 전에 돈키호테를 다시 읽을까? 뭐 이러겠죠. 저는 요약본만 읽어서 모르는데 정말 그런 부분이 있나요???ㅎㅎㅎ 그런데 그런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방대한 양이라는게 첫번째지만, 그 것을 교정보자니 얼마나 함들겠어요.

oren 2017-08-10 16:38   좋아요 3 | URL
『기싱의 고백』에 『돈키호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그런 구절들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싱의 고백』이 더욱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기싱이 지적한 ‘실수투성이 세르반테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사실 『돈키호테』라는 소설은 처음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이미 ‘완결‘된 작품이었답니다. 말하자면 애초부터 『돈키호테 1』과『돈키호테 2』로 구상된 장편 소설이 아니었다는 얘기죠. 『돈키호테 1』(원제는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출간되자말자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자 숱한 사람들이 ‘속편‘을 갈망했고, 시중엔 <돈키호테 속편>이 실제로 여러 버전으로 유통되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짝퉁인 셈이었죠. 보다 못한 세르반테스는 70을 바라보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돈키호테 2』(원제는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써 냈는데, ‘오리지널 속편‘을 갈망하던 독자들의 대환영을 받았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돈키호테 2>는 이미 완결된 『돈키호테 1』과 너무나도 절묘한 연관으로 엮어 있어서, 이제는 『돈키호테 2』가 없으면 소설『돈키호테』라는 작품 자체의 위대성이 떨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거죠. 후편이 나옴으로써 전편과 함께 진정으로 위대한 소설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세르반테스가『돈키호테 2』를 쓰면서 『돈키호테 1』과의 긴밀성을 잃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던지 ‘서로 상충되는 얘기‘나 ‘엇박자‘ 혹은 ‘햇수나 나이 계산을 잘못 하는 등의 실수‘는 좀체로 발견하기 어려운데, 정작『돈키호테 1』에서는 ‘아주 사소한 실수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등장 인물의 이름도 앞에 나온 것과 한참 뒤에 나온 게 서로 틀리는 경우까지도 종종 있고요. 그런데 그런 실수가 소설의 엄청난 분량에 비해서는 충분히 애교로 봐줄 만큼 사소한 것이어서 조금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기싱의 고백』에 나오는 실수는 분명 황당할 정도로 큰 실수이긴 하지만요. 사실 그것마저도 요절복통으로 웃기면서 온통 실수 투성이인 ‘기사 돈키호테‘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