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다."

 - 밀란 쿤데라

 

 * * *

 

소설을 다시 읽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오래 사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과 닮은 점도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품이든 감동깊게 읽고 나면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느새 친구처럼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친구에 대한 '우정'부터 앞세우게 되고, 쓸데없는 '경계심' 따위는 전혀 품지 않게 된다. 그 친구의 성격과 마음 씀씀이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데 왜 굳이 그를 의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여태까지는 소설 작품을 재독한 경험이 거의 없다. 내가 읽었던 어떤 책에 의하면, 어떤 소설가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무려 3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나는 그 소설을 며칠 전에 겨우 끝냈는데, 언제 다시 읽을지는 아무런 '기약'이 없다. 그 소설이 재미가 없어서는 물론 아니다. 소설 하나를 30번씩이나 읽는 대신 다른 책들로 서둘러 발길을 옮기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더라도 '반복 독서'의 즐거움을 영영 무시할 수는 없다. 마음에 드는 친구를 어렵사리 사귄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 친구를 한사코 제쳐 두고 끊임없이 다른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던히 애쓸 필요가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친숙한 친구를 다시 만나기를 계속 주저한다면 그건 어쩐지 이상한 얘기로 들릴 게 틀림업다.

 

오랜만에 돈키호테를 다시 펼쳤더니 내가 궁금해서 찾아 읽은 대목의 뒷부분이 몹시 궁금해졌다. 마치 친한 친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얘기를 절반쯤 듣다가 만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다시 찾아 읽은 돈키호테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자신의 서재가 '엄숙한 검열'을 당하고 난 뒤에 돈키호테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반적인(?) 독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의 돈키호테는 그런 상황을 아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기 싫을 뿐 아니라, 일부러라도 그런 상황 속으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소설의 원문'과 '내멋대로 붙인 주석'을 한데 뒤섞어서 적었다. PC 화면에서는 박스와 색깔로 뚜렷이 구분되나, 북플로 읽는 분들은 그런 구분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니 가급적 'PC버전'으로 전환해서 보시면 좋겠다.)

 

그날 밤 가정부는 집과 마당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 중에는 서고에 영원히 보관되어야 할 책들도 있었지만 검사자의 태만과 책의 운명이 이를 허락지 않았으니, 죄인들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곤욕을 치른다는 속담이 이로써 증명되었다.

 

돈키호테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신부와 이발사가 내린 처방들 중 하나는 서재를 벽으로 몽땅 봉해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 책을 못 찾게 하고 ㅡ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ㅡ 그에게는 마법사가 책과 서재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고 할 생각이었다. 그 일은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틀 뒤 돈키호테가 일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 있던 곳에 서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저리 찾아 헤매야 했다. 그는 문이 있던 곳에 가서 두 손으로 문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말 한마디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가정부에게 자기 책을 넣어 둔 서재가 어느 편에 있었는지 물었다.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충분히 들었던 가정부는 그에게 대답했다.

 

「무슨 서재를 찾으시는데요, 나리? 이 집에는 이제 서재도 책도 없어요. 그놈의 악마가 몽땅 가져가 버렸지 뭐예요.」 

 

「악마가 아니었어요.」조카딸이 말했다. 「외삼촌이 집을 나가신 후 어느 날 밤 한 마법사가 구름 위로 와서 자기가 타고 온 뱀에서 내리더니 서재로 들어갔어요. 그 안에서 뭘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잠시 뒤 그가 지붕을 타고 날아가자 집이 온통 연기에 휩싸이더라고요. 무슨 일을 했는지 가보니 책도 서재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나 아주머니나 생각나는 거라곤 그 사악한 늙은이가 떠날 때 큰 소리로 한 말뿐이에요. 자기는 그 책들과 서재 주인인에게 남모르는 적의를 품고 있어 이 집에 해코지를 한 것이니 그 결과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자기 이름이 현자 무냐톤이라고 했지요.」

 

「프리스톤116이라고 했을 게다.」돈키호테가 말했다.

 

태연자약한 돈키호테의 대답이 과연 걸작이다. 조카딸의 '지어낸 이야기'에 도리어 한 술 더 뜨니 말이다.

 

(번역자의 주석)

116 『돈 벨리아니스』가상의 원저자는 현자이자 마법사인 프리스톤이다. 앞으로 보게 될 제9장에서 『돈키호테』의 저자를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프리스톤이라고 했는지 프리톤이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이 <톤>으로 끝나는 것만은 알아요.」 가정부가 말했다.

 

「맞아.」 돈키호테가 말했다. 그자는 영리한 마법사로 내 막강한 적이지. 내게 원한을 가지고 있어. 내가 어느 때고 와서 자기가 아끼는 기사와 멋진 결투를 펼치리라는 걸 그는 마술과 학문으로 이미 알고 있지. 놈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게 내가 그 기사를 이길 거라는 것도 말이야. 그래서 녀석은 나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하려고 드는 거야. 하지만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을 그놈이 거역하거나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걸 누가 의심하겠어요?」 조카딸이 말했다. 「하지만 삼촌, 또 누가 삼촌을 그런 싸움에 끼어들게 하겠어요? 불가능한 일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지 마시고 집에 편시 계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양털 깍으러 갔다가 도리어 털 깍이고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모르세요?

 

「얘야.」 돈키호테가 말했다. 「넌 정말 뭘 모르는구나! 누구든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려는 놈이 있다면, 그 전에 내가 그놈의 수염을 죄다 뽑아 버리고 말 테다.」

 

그가 화를 낼 조짐을 보이자 두 여자는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돈키호테』를 읽는 또다른 재미 한 가지는 기가 막힌 옛 속담들을 실컷 맛보는 데 있다. 산초는 가히 '속담의 제왕'이라고 할 정도로, 입만 열었다 하면 배꼽을 잡는 속담을 쏟아낸다. '속담'에 그른 말이 없듯이, 산초가 속담을 섞어 쏟아내는 말들도 매번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들뿐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보름 동안 아주 조용히 집에 있었다. 이전과 같은 정신 나간 짓을 되풀이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자기의 두 친구, 즉 신부와 이발사와 아주 재미있는 대화를 하며 보냈다. 그는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편력 기사들이며 편력 기사의 부활은 자신으로 인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신부는 그의 주장을 반박도 했다가 어떤 때는 수긍도 했으니, 그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돈키호테와 내내 불화만 계속 되었을 것이다.(118∼120쪽) 

 

 - 『돈키호테 1』, <7.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

 

 

이렇게 해서 '돈키호테의 서재'는 통째로 사라졌음에도 아무런 뒤탈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수습된다. 이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돈키호테가 다시 '편력 기사의 모험'을 떠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갖추는 대목이다. 바로 여기서 '서양 문학의 역사상 불멸의 인물'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산초 판사'이다. 이 대목을 다시 만나는 건 언제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들여다 보는 듯한 짜릿한 흥분을 동반한다. 다른 분들도 과연 그럴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말이다.

 

이 기간 동안 돈키호테는 이웃에 사는 착한 ㅡ 이러한 표현을 가난한 사람에게 붙일 수 있다면 말이다 ㅡ 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에게 간청했다. 돈키호테의 간절한 부탁과 설득과 약속으로 결국 이 가엾은 자는 돈키호테의 종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돈키호테가 그에게 한 여러 가지 약속들 중 하나는, 만약 그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나서 준다면 모험으로 아무리 못해도 어떤 섬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약속에 끌려 산초 판사는 ㅡ 이것이 그의 이름인데 ㅡ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자기 이웃의 종자가 될 것을 승낙했다.

 

그다음 돈키호테는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팔고 어떤 것은 저당 잡히며 모든 것을 헐값에 처분하여 적지 않은 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친구에게 방패 하나를 빌리고 부서진 투구도 최대한 잘 손질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산초 판사는 처자식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돈키호테는 가정부와 조카딸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 얼마나 걸었던지 새벽녘이 되었을 때에는 누가 그들을 찾아 뒤쫓아 온다 해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소설『돈키호테』는 이야기 전개 속도가 놀랄 만큼 경쾌하다. '산초'를 만나고 '정든 집'을 떠나는 대목이 이토록 간결하다. 플로베르나 톨스토이, 혹은 토마스 만이었다면 족히 여러 페이지로 늘려 놓았을 게 틀림없다.

 

산초 판사는 자루와 술통을 당나귀에 매달고 그 위에 앉아서 주인이 약속한 섬의 통치자가 되리라는 강한 희망에 사로잡힌 채 족장처럼 우쭐대며 가고 있었다. 돈키호테는 처음 길을 떠났을 때의 그 방향과 그 길로 우연히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몬티엘 들판으로, 이번에는 지난 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비스듬하고 뜨겁지 않아 그들을 지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산초 판사가 주인에게 말했다.

 

「편력 기사 나리, 제게 약속한 섬 이야기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요. 아무리 큰 섬이라도 전 문제없이 다스릴 수 있거든요.」(120∼122쪽)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와 모험을 함께 하는 동안 '섬 이야기'를 수백 번도 더 끄집어 낸다.(정말?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다. 그만큼 자주 꺼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돈키호테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돈키호테와 함께 '편력 기사의 종자'로 따라다니며 온갖 곤욕을 다 치르더라도 결코 '동행'을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도 오로지 '섬을 다스릴 부푼 희망' 때문인데, 나중에 진짜로 그 희망이 실현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꿈이 헛되다는 걸 절감하고 도리어 '평범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나는 그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산초의 후회'가 애시당초 작가의 구상에는 없었다는 점이다.『돈키호테 1』이 너무나 빅히트를 치는 바람에 수많은 짝퉁 소설이 나오자 세르반테스는 하는 수 없이 속편 격인『돈키호테 2』를 썼는데, 이 이야기가 『돈키호테 1』과 너무나 긴밀하게 엮여 있어서 다시 한번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돈키호테 1』은 그의 나이 58세 때 출판되었고, 『돈키호테 2』는 그의 나이 68세때 출판되었다.) 어쨌든 세르반테스는 우리가 갈망하는 '거창한 꿈'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황된 것인지를 산초의 '섬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생생히 보여준다. 『돈키호테 1』의 초반부에서 시작된 '섬 이야기'가 진짜로 실현되는 장면은『돈키호테 2』에서도 절반이 넘어서야 등장하며 '소설의 클라이맥스' 가운데 하나를 이룬다. http://blog.aladin.co.kr/oren/7329286

 

 - 『돈키호테 1』, <7.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돈키호테』 19쪽에 나오는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이렇게 시작된 '두 번째 모험'에서 곧바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소설『돈키호테』를 상징하는 그 유명한 <풍차 모험> 장면이다.

 

이런 말을 주거니 맏거니 하며 가고 있던 이때 들판에 서 있는 풍차 30∼40개를 발견하자, 돈키호테는 즉시 종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행운이 우리 일을 마련해 주는구나. 친구 산초 판사여, 저기를 좀 보게! 서른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인들이 있네. 나는 싸워 저놈들을 몰살시킬 것이야. 그 전리품으로 부자가 될 걸세.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싸움이며, 사악한 씨를 이 땅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크게 봉사하는 일인 게지.」

 

「거인들이라뇨?」 산초 판사가 물었다.

 

「저기에 있는 저놈들 말이네.」 주인은 대답했다. 「기다란 팔을 가진 놈들 말이야. 2레과나 되는 팔을 가진 놈들도 있군.」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입니다요. 팔로 보신 건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방아를 움직이죠」

 

「보아하니 …….」 돈키호테가 말했다. 자네는 이런 모험을 도통 모르는 모양이구먼. 저건 거인이야. 겁이 나면 저만치 물러나서 기도나 하게. 그동안 나는 저놈들과 지금껏 보지 못한 맹렬한 싸움을 벌일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 돈키호테는 그가 싸우고자 하는 저것들은 절대 거인이 아니며 풍차라는 종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했다. 놈들이 거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종자 산초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가까이 갈 때까지 상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도망치지 마라, 이 비겁하고 천한 자들아! 너희들을 공격하는 사람은 이 기사 한 명뿐이다.」

 

이때 바람이 불어와 풍차의 커다란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돈키호테는 소리쳤다.

 

「비록 네놈들이 저 거인 브라이레오스보다 많은 팔을 휘둘러 댄다 할지라도, 네놈들아, 나한테 혼난 줄 알아라!.」(124∼125쪽)

 

여기서 '초딩 스러운' 질문 하나. 돈키호테는 왜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고 산초가 그토록 말리는 데도 그리로 돌진해 들어갔을까. 이 질문은 앞서 나온 이야기를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금세 대답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서재'를 없앴던 바로 그 마법사 프리스톤이 '거인을 풍차로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돈키호테 1』, <8. 굉장히 무섭고 결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풍차 모험에서 용감한 돈키호테가 행한 멋진 사건과 좋게 기억할 만한 사건들에 대하여>

 

 

 (『그림으로 읽는 돈키호테』 21쪽에 나오는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풍차 모험에서 로시난테와 함께 크게 다친 돈키호테는 산초의 '제발 정신 차리라'는 충고를 듣고도 여전히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싸움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무쌍한 것이네. 내 생각에, 아니 생각이 아니라 진실인데, 나의 서재와 책을 훔쳐 간 그 현인 프리스톤이 승리의 영광을 내게서 앗아 가려고 거인들을 풍차로 둔갑시킨 게야. 내게 품고 있는 그자의 적의가 이 정도란 말일세.

 

두 사람은 하룻밤을 길가에서 묵고 나서 곧장 다음 목적지인 푸에르토 라피세로 길을 떠난다. 거기서도 어떤 부인이 탄 '마차'를 호위하는 듯한 일행들을 공격하는데...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점은, 이 이야기의 작가가 바로 이 순간 이 대목에서 이 싸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가 적어 온 것들 외에는 더 이상 돈키호테의 무훈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제2의 작가127 또한, 그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망각의 법칙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라만차의 천재들이 이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아 이 유명한 기사를 다루는 그 어떤 서류도 책상이나 문서 보관실에 남겨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희망을 갖고 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내는 일을 단념하지 않았다. 다행히 하늘이 그를 도왔는지, 제2부에서 보게 될 바와 같은 결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134쪽)

 

 (번역자의 주석)

127 세르반테스 자신을 가리킨다. 다음 장에서 알 수 있겠지만 첫 번째 작가는 시데 아메테 베냉헬리라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 『돈키호테 1』, <8. 굉장히 무섭고 결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풍차 모험에서 용감한 돈키호테가 행한 멋진 사건과 좋게 기억할 만한 사건들에 대하여> 

 

 

 

이렇게 해서 『돈키호테 1』의 총 4부 가운데 <제1부>가 묘하게(?) 끝난다. <제2부>의 시작 또한 '소설 『돈키호테』를 쓴 작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작가가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설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법이 현란하기 그지 없다. 르네 지라르가 "돈키호테』이후에 쓰여진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라는 지적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이런 대목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제1부는 용감한 비스카야인과 유명한 돈키호테가 서슬 퍼런 칼을 높이 쳐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적어도 명중하기만 하면 서로 석류처럼 갈라놓을 듯 무서운 기세로 싸우던 대목에서 끝났다. 정말 궁금한 대목에서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어 버리고도 작가는 나머지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보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은 나128를 무척 슬프게 했다. 적은 분량이나마 앞부분을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보기에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은 그 재미있는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찾을 길이 없으니, 앞선 즐거움이 오히려 불쾌함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토록 훌륭한 기사의 놀랄 만한 공훈을 기록해 둔 현자가 없었다는 것이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관슴에서 어긋나는 일로 보였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작가 특유의 '매혹적인 이야기 전달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옛날 옛적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 손주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다가도 갑자기 그 이야기를 툭~ 끊어버리는 일은 틀림없이 자주 있었으리라, '청자나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수법'이야말로 화자에게 더욱 매달리게 만드는 '작가의 고유한 능력'이 아닐까. 거기에 덧붙은 능청스러움과 익살은 덤이고.

 

(번역자의 주석)

128 앞서 세르반테스는 자기는 이 작품의 제2의 작가이자 계부라 했는데 지금은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고 있다.

 

(중략)

 

한편으로는 돈키호테가 읽은 책 가운데 『질투의 환멸』이니, 『에나레스의 요정과 목동』과 같은 최신작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도 최근에 일어난 일이며, 따라서 아직 글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더랃도 그 마을 사람이나 이웃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유명한 에스파냐의 용사이자 라만차 기사의 빛이요 거울인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전 생애와 기적들을 반드시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어지럽혔다. 돈키호테야말로 이 재난 많은 시대에 편력 기사의 임무와 그 수행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불의를 바로잡고, 과부를 돕고, 채찍을 휘두르고, 말을 타고 산에서 산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다니던 처자들이 어느 비열한 놈이나 촌놈이나 가공할 거인들에게 순결을 잃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지난날에는 그런 놈들에게 당하는 처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80년 동안 단 하루도 남의 지붕 밑에서 자지 않고 어머니가 낳아준 그 상태 그대로 무덤으로 간 처자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의 멋진 돈키호테는 이런저런 이유로 기억되고 찬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고 나 역시 여기에 들인 노력과 열성을 생각해서라도 이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늘과 우연과 행운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세상은 부족한 상태로 남을 것이며, 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을 사람은 두 시간 남짓이나마130 누릴 수 있었던 재미와 즐거움을 영원히 잃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 책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거창한 모험을 떠나는 돈키호테의 임무라는 것도 자세히 알고 보면 이처럼 '단 두 줄에' 모두 요약되어 있다.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해학이 넘친다.

 

(번역자의 주석)

130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쓰면서 자주 자신의 작품을 낮추는 겸손함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을 쓴 후 2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내놓는 책이라 그러한 듯하다.

 

어느 날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에 나갔더니 한 소년이 비단 장수에게 잡기장이며 낡은 서류 뭉치들을 팔기 위해 나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길바닥에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읽는 천성을 지닌 인간인지라 그 소년이 팔겠다고 하는 잡기장 한 권을 집어 들어 보았는데 거기에는 아랍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랍 글자인 것은 알겠는데 읽을 수는 없어서 근처에 에스파냐어를 아는 무어인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번역가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 훌륭하고 더 오래된 다른 언어를 해독해 줄 사람이라 해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운좋게도 한 사나이를 찾아내 그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고 잡기장을 넘겨주었다. 그는 책 중간을 펼쳐 보더니 잠깐 읽다가 웃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물었더니 이 책의 여백에 쓴 주석이 그렇다고 했다. 내가 그것을 좀 읽어 달라고 하자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읽어 주었다.

  

「내가 말한 주석은 이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이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여자는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솜씨만큼은 라만차를 통들어 어느 여자보다도 뛰어났다고 한다.>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을 듣자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이 잡기장에 돈키호테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빨리 첫 부분을 읽어 보라고 독촉했다. 그는 시키는 대로 즉석에서 아랍 말을 에스파냐 말로 번역해 읽어 주었다. <아라비아의 역사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이야기.> 이 책의 제목이 내 귀에 와 닿았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감추느라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 비단 장수를 제치고 그 소년에게 돈 반(半) 레알을 줘 종이 뭉치와 잡기장을 모조리 사들였다. 만일 소년이 빈틈없는 아이라 내가 얼마나 그 물건들을 원했는이 알았더라면 6레알 이상은 확실히 받아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무어인과 함께 성당의 본당 회랑으로 가서 돈키호테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모조리, 더하거나 뺴는 것 하나 없이 에스파나 말로 고쳐 주면 원하는 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건포도 2아로바와 밀 2파네가로 만족하며 짧은 시일 내에 충실하게 잘 번역해 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더 쉽게 처리하기 위해, 그리고 이 훌륭한 물건을 손에서 떼어 놓고 싶지 않아서 그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우리 집에서 한 달 보름 조금 더 걸려 전부 번역했다. 다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중략)

 

이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해 약간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다면, 작가가 아랍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 민족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불구대천 원수이기 때문에 마땅히 써야 할 것들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토록 훌륭한 기사를 칭찬하는 데 펜을 더 놀릴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그 칭찬거리를 빠트리고 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나쁜 행동에 나쁜 생각이다. 역사가란 사실을 정확하게 그대로 기록해야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개인의 욕심이나 두려움이나 한이나 편애와 같은 감정으로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역사는 진리의 어머니요 시간의 경쟁자이자 모든 행위의 창고이며 과거의 증인이고 현재의 본보기이자 깨우침이며 미래를 위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가장 온건한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이 이야기에 무엇인가 좋은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인물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 이야기의 작가인 개 같은 무어인의 책임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아무튼 이 이야기의 제2부는 전역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다.(139∼144쪽) 

 

세르반테스는『돈키호테』의 원작자가 아랍 사람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이며, 자신은 그 이야기를 발굴한 제2의 작가라는 설정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의 창'을 마련한다. 이런 방식 말고도 소설『돈키호테』 속에는 돈키호테의 모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온갖 '액자 소설'이 여럿 끼워져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놀라운 솜씨로 엮어 넣음으로써 세르반테스가 단순히 '이야기'만 잘 지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이야기의 전달 방식'에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 『돈키호테 1』, <9. 늠름한 비스카야인과 용감한 라만차 사람이 벌인 대단한 싸움의 결말이 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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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09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oern님 덕분에 돈키호테의 감상 포인트를 짚고 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oren 2017-08-09 22:17   좋아요 4 | URL
다시 읽을 때 보았네 /
처음 읽을 때 보지 못한 /
돈키호테와 산초의 다른 모습 /

라로 2017-08-10 15: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있는 [기싱의 고백]에서 이런 부분이 니와요. ˝(중략)지나간 일들에 대한 쓸데없는 지식을 내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자아, 그러니 이제는 죽기 전에 [돈키호테]나 한번 더 읽을까 보다.˝
그런데 그 전에는 이런 부분도 있어요.
˝세르반테스라는 실수투성이의 작가가 자기의 ‘예술‘에 대해 너무 불성실했던 나머지 소설의 한 장에서 산초의 당나귀가 도난 당한 장면을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산초가 대플(Dapple)을 타고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이 글을 쓸 때 세르반테스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들도 깍아내리지만 결론은 훌륭하다에요.그러니 죽기 전에 돈키호테를 다시 읽을까? 뭐 이러겠죠. 저는 요약본만 읽어서 모르는데 정말 그런 부분이 있나요???ㅎㅎㅎ 그런데 그런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방대한 양이라는게 첫번째지만, 그 것을 교정보자니 얼마나 함들겠어요.

oren 2017-08-10 16:38   좋아요 3 | URL
『기싱의 고백』에 『돈키호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그런 구절들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싱의 고백』이 더욱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기싱이 지적한 ‘실수투성이 세르반테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사실 『돈키호테』라는 소설은 처음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이미 ‘완결‘된 작품이었답니다. 말하자면 애초부터 『돈키호테 1』과『돈키호테 2』로 구상된 장편 소설이 아니었다는 얘기죠. 『돈키호테 1』(원제는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출간되자말자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자 숱한 사람들이 ‘속편‘을 갈망했고, 시중엔 <돈키호테 속편>이 실제로 여러 버전으로 유통되었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짝퉁인 셈이었죠. 보다 못한 세르반테스는 70을 바라보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돈키호테 2』(원제는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써 냈는데, ‘오리지널 속편‘을 갈망하던 독자들의 대환영을 받았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돈키호테 2>는 이미 완결된 『돈키호테 1』과 너무나도 절묘한 연관으로 엮어 있어서, 이제는 『돈키호테 2』가 없으면 소설『돈키호테』라는 작품 자체의 위대성이 떨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거죠. 후편이 나옴으로써 전편과 함께 진정으로 위대한 소설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세르반테스가『돈키호테 2』를 쓰면서 『돈키호테 1』과의 긴밀성을 잃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던지 ‘서로 상충되는 얘기‘나 ‘엇박자‘ 혹은 ‘햇수나 나이 계산을 잘못 하는 등의 실수‘는 좀체로 발견하기 어려운데, 정작『돈키호테 1』에서는 ‘아주 사소한 실수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등장 인물의 이름도 앞에 나온 것과 한참 뒤에 나온 게 서로 틀리는 경우까지도 종종 있고요. 그런데 그런 실수가 소설의 엄청난 분량에 비해서는 충분히 애교로 봐줄 만큼 사소한 것이어서 조금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기싱의 고백』에 나오는 실수는 분명 황당할 정도로 큰 실수이긴 하지만요. 사실 그것마저도 요절복통으로 웃기면서 온통 실수 투성이인 ‘기사 돈키호테‘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