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을 나열해 보는 일은 재미있다. 목록이 얼마나 다양한 성질을 지니는가에 대해서는 움베르토 에코가 쓴 『궁극의 리스트』를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사물의 목록, 장소의 목록, 신기한 것들의 목록, 현기증 나는 목록, 실용적 목록, 시적 목록은 물론 심지어 정상적이지 않은 목록까지, 그가 고찰해 보지 않은 목록을 찾기가 도리어 힘들 정도다.

 

이 가운데 '책의 목록'이 빠질 리는 없다.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 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탈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고서 애호가인 마리오 프라츠는 1931년 문학 박람회 서적 시장의 카탈로그 15를 위해 쓴 텍스트에서,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탈로그를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보통 사람들이 스릴러물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어떤 독서도 흥미로운 카탈로그의 그것만큼 신속하고 감동적인 효과를 자아내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장 뒤에 바로, 심지어 재미없는 카탈로그들도 똑같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377쪽)

 

 -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

 

 

딱 맞는 말이다. 내가 오늘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경험한 일은 '쓸데 없는 책들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추려낸 '내다버릴 책들의 목록'을 보니 문득 그것조차 몹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려질 책의 '가련한 신세'에 비춰 보나, 그 책을 내다버릴 내가 품게 되는 '온갖 어리석음과 회한의 감정'에 비춰 보나, 버려질 책들의 제목이 여간 웃기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여기서 '개'는 결국 '나'인 셈이다. 내가 뭘 보았기에 이런 책을 사게 되었나?

『빌 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 빌 게이츠가 '미래'를 제시하던 시대는 벌써 까마득한 옛날 아닌가?

『iCON 스티브잡스』---> 스티브 잡스는 이미 '아이콘'이 아니라 '아이해브곤'이 된 사람이다.

『마음의 녹슨 갑옷』---> '너'야말로 '내 마음의 책장에서 녹슨 책'이 되었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론』---> '너'야말로 '책장 경쟁'에서 밀려난 책인데?

『이건희 개혁 10년』---> 이건희 '병상' 10년?

『사다리 걷어차기』---> 결국 책장 사다리에서 걷어차인 책?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커피 한 잔과 함께 쫒겨난 책.

『MARKETING is ... WAR』---> 책장 자리다툼 또한 전쟁이야. 살아 남거나 쫒겨나거나 결국 둘 중에 하나야.

『무엇이 내 아들을 그토록 힘들게 하는가』---> 무엇이 '내 책장'을 그토록 복잡하게 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천년을 산다』---> 우리는 여기서 10년도 못 살고 쫒겨나고 만다.

『1494년 베니스 회계』---> 2017년 여름 회계. 이미 계산은 끝났어.

『앤드류 그로브, 승자의 법칙』---> 10년도 못 견디고 책장에서 쫒겨나게 된, '패자가 된 책들의 법칙'은?

『보랏빝 소가 온다』---> 보랏빛 '수레'가 온다. 헌 책을 내다버릴 때 끌고 갈 수레가.

 

 

오른쪽 구석에 누워 있는 책들 가운데 땅바닥에 쌓인 책들은 곧 '쫒겨날 책들'이고, 그나마 조그만 장롱 같은 '받침대' 위에 누워 있는 책들은 언젠가 '책장 속으로 들어갈 책들'이다. 이 사진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곧 내쫒길 운명에 처한 책들은 '앞줄'에 쪼로록 모여 앉은 67권이다. 저자로부터 선물받은 책도 몇 권 있어서 눈에 밟히지만, 이런 저런 사정을 다 헤아리자면 '작별'이 어렵다. 내칠 땐 과감하게 내쳐야 한다. 책값이 아깝지만 그동한 '허투루 쓴 돈'이 어디 책값 뿐이랴.

 

 

이 각도에서 보면 '책장 속으로 들어갈 책들'이 확연히 구분된다. 책탑이 무려 '일곱 기둥'을 이룬 덕분에, 뜻하지 않게 '받침대'로 쓰여 왔던 '조그만 장롱'이 마침내 열리지 않게 되었노라고 (아내한테서) 타박을 받았다. '참을 수 없는 책들의 무거움'으로부터 장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쫒겨나야 할 책들을 골라내는 수밖에.

 

 

고작 67권을 골라냈을 뿐인데, 책장이 한결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저렇게 비워진 공간 덕분에 책탑을 세 개나 없앴고, 오랫동안 '책들의 압박'을 온몸으로 견디며 누워 지내다 마침내 벌떡 일어나 몸을 꽂꽂이 세운 책들은 한 눈에 봐도 입이 귀에 걸렸다. 가령,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책장'을 찾아서.

『마담 보바리』---> 책장 밖에서 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멋진 책장'을 열망했는지 니들은 모를 꺼야.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나는 죽어 누워 가더라도 '꼭 가야 할 책장'이 있단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거친 들판에서 오랜 시간 길들여진 덕분에 마침내 '책장'이라는 평화를 얻었어.

『한여름 밤의 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셰익스피어 전집_햄릿』---> 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게 늘 문제였어.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 내게도 책장이 찾아왔다.

『전쟁과 평화』---> 책장과 평화.

『로빈슨 크루소』---> 그런데 프라이데이는?

『걸리버 여행기』---> 내가 지금 어디로 날아온 거지? 천공의 섬 라퓨타? 기분이 붕붕~

『고도를 기다리며』--->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여기가 확실하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자기 앞의 생』---> "나는 이제 열 살이 되었다. 로자 아줌마는 내게도 생일이란 게 필요하다면서 한 날을 내 생일로 정해주었는데, 그게 오늘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런 글을 쓰고 나니 문득 로맹 가리의 소설들이 그립다. http://blog.aladin.co.kr/oren/7383466

갑자기 밀어닥친 파도에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려 떠내려간 '불쌍한 책들'도 어느새 그립고...

 

"몇 미터만 더 갔으면 물결에 휩쓸려갔을 거요. 이곳 파도는 몹시 사납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 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 사랑의 슬픔이군, 하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 문제는 실연의 아픔이지.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펼친 부분 접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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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7-08-03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갈하게 꼽혀 있는 책들. 보는것만으로도 즐겁네요.^^

oren 2017-08-03 11:36   좋아요 0 | URL
책은 아무리 봐도 누워 있는 모습보다 책장 속에 빽빽히 세워져 있는 모습이 좋은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정된 공간에 어떤 책을 남기는가는 누구에게나 고민이 되는 문제닌 듯 합니다. 마치 얼마 전 본 영화 「덩케르크」에서처럼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승선할 병사를 골라야하는 것과 같은 선택의 문제가 느껴집니다^^: 영화에서는 환자를 먼저 이송했습니다만, 책을 고를 때 그래서는 안되겠지만요.

oren 2017-08-03 11:40   좋아요 1 | URL
책이나 사람이나 어느날 갑자기 버림받는 존재로 전락할 때처럼 슬픈 순간은 없겠죠.
겨울호랑이 님 말씀처럼 ‘다 태울 수 없을 땐‘ 결국 누군가는 남아야겠죠. 책이든, 사람이든요.

qualia 2017-08-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많은 책들을 모두 전자책으로 만들어 아이패드나 서피스 프로 같은 전자책 단말기에 저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종이책들을 보관하기 위한 물리적 현실 공간이 없어도 되니까요. 손바닥보다 작은 SSD에 수천~수만 권을 저장할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화면에 띄워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종이책과 전자책의 장단점,각각의 고유성 등등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사항이니까 재론할 필요는 없지요.

그런데 전자책 단말기의 기술 수준이 아직도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생각입니다. 전자잉크(e-ink)에 기반한 전자종이(e-paper)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단말기는 종이의 고유 질감(시각적 질감)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 들여다봐도 눈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들 하죠. 하지만 응답 속도가 너무 느려 잔상이 끌리고, 고해상도 구현이 비교적 어렵고, 컬러 화면 구현도 우수하지 않은 편인 데다 이쪽 방면 기술 개발도 지지부진한 형편이고, 동영상 구현은 아주 어려운 편이죠. 반면에 LCD나 OLED 디스플레이는 전자종이 디스플레이의 종이 질감을 거의 구현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장시간 들여다볼 경우 눈에 상당한 부담을 주죠. 하지만 전자종이 디스플레이의 단점들은 거의 모두 극복한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형태의 디스플레이라고 할 수 있죠. 해서 전자종이 디스플레이의 종이 질감과 LCD/OLED 디스플레이의 빠른 응답 속도, 초고해상도, 완벽한 색재현율, 완벽한 동영상 재생 능력 등등, 양쪽의 장점들을 모두 지닌 최강의 전자책 디스플레이가 개발돼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헌데 지구인들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의외로 느리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21세기 하고도 17년이 지난 시점인데요. 언론이나 대중서에서는 1970년대, 1980년대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거의 맞아떨어졌다고 인간의 능력에 대해 자화자찬하고 지구인들의 놀라운 과학기술적 성과에 대해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는데요. 제 판단엔 그건 지구인들의 자뻑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미래학자들의 과장으로 가득찬 환상적 혹은 공상적 미래 예측 대부분이 21세기 초에 실현은커녕 과연 원미래에라도 실현 가능이나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경이니까요. 즉 그 시대 미래학자들이 21세기 초에 실현돼 일상화되리라 예측한 달 정복, 인간형 로봇과의 공존, 암 정복, 핵융합 상용화, 진정한 의미의 양자컴퓨터 상용화, 사이보그, 초인공지능, 홀로그램(예컨대 홀로그램 스마트폰), 우주 태양열 발전 전력 전송, 나노봇 수술 등등 수많은 환상적 혹은 SF 영화적 과학기술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솔까 어느 원미래에 실현될 수 있을지 감을 잡기조차 어렵다고 보는 게 냉정하고도 정확한 실태 파악이라고 봅니다. 21세기 초의 지구인들은 할리우드가 양산하는 SF 영화 세례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과학기술적 착시에 빠져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2016년 03월 AlphaGo의 화려한(?) 등장 뒤로 나타난 인공지능에 대한 지구인, 특히 한국인들의 일종의 신격화(신비화 혹은 우상화) 현상이라고 봅니다. 인공지능 관련 기사가 뜨면 터미네이터, 스카이넷, 특이점, 인류에 대한 반란, 인류 멸종, AI의 지구 접수 운운하는 SF 영화적 공상들이 댓글란 최상위 자리를 점령해버립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무작정스러운 공포, 다른 말로 신격화·신비화·우상화는 거의 맹신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댓글을 쓰다 보니까 제가 좀 멀리 와버린 느낌이 들긴 하는데요. 요컨대 21세기 초 지구인들의 과학기술적 역량과 성과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측면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 · 레이 커즈와일 · 닉 보스트롬(?) · 일론 머스크와 같은 유명 학자 · 미래학자 · 저술가 · 기업가들까지도 직간접/음양 여러 형태로 그런 부풀리기, 공포 조장, 선정적 발언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역설적으로 모두들 지구인의 역량을 과대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아직도 지구인들은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쓸 만한 전자책 단말기 하나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 수준인데 말이죠.

저는 oren 님께서 저렇게 소중한 책들을 대거 내다버리기로 결단하신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솔까 저는 제가 입을 대로 입어서 해진 헌옷조차 버리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최근 저는 제가 작성해온 소중한 문서들을 대거 상실하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그 사건은 저한테 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성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유지되고, 심지어 어떻게 복제되고 전송될(mind-uploading)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사유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oren 님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책들의 목록」이란 글을 올리셨지 뭡니까. 바로 oren 님의 이 글을 읽어보니 제 기록 상실의 아픔(슬픔)과 딱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지 뭡니까. 하아~ 게다가 최근 어떤 일을 나갔다가 경험한 느낌과 너무나도 흡사했습니다. 자세히 밝히고 싶진 않지만 한 대학 도서관에서 폐기하기로 한 산더미 같은 외국어 원서들(Cambridge University Press, Oxford University Press 출간 책들이 대부분이었음)을 목격하고 경악했던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곳 도서관 한 서가에서 아마도 노년에 접어든 교육자나 학자였을 법한 분이 기증한 두어 책장 분량의 귀가 헐고 고색창연한(?) 책들을 보고 일종의 어떤 허무감을 느꼈던 일이었습니다. 이 많은 책을 기증하신 분은 어떤 분이실까? 자신의 기억과 추억이 이곳 도서관으로 옮겨와 다른 수많은 학생 · 독자들의 기억과 추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 살기를 원하셨던 것일까? 그분이 기증한 책들은 희귀한 고가의 외국어 원서들까지 폐기되는 슬픈 운명을 과연 피해갈 수 있을까? 그날 도서관에서 느꼈던 허무감이 다시 느껴집니다. 해서 oren 님의 윗글은 다시금 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저 처분할 책들도 지금 이 순간까지 oren 님의 뇌신경망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oren 님의 기억과 추억을 형성했을 것이고, 그 기억과 추억은 oren 님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을 것이고 동일성(identity) 또한 구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해야 할 책들이 있습니다. 처분하기 전에 스캔해서 전자책으로 만들어 단말기 속에 저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기억과 추억들은 더욱 더 온전하고 영구적인(?) 형태로 유지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해킹을 당하거나 파괴돼 상실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에 대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겠지요. 옛날처럼 연필로 (볼)펜으로 공책에 직접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가며 기록하던 때가 그리울 정도입니다. 컴퓨터 자판으로 치고 기록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간편하고 많이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펜과 공책은 거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기록 상실을 경험하고 나니까 다시 펜과 공책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기록 보존에 더 안전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고요. (깊지도 못하지만) 뭔가 더 쓸 내용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동어반복 그만하고 컴퓨터가 불시에 다운되는 불상사를 피해 얼른 입력해야겠네요. 아무튼 여러 가지 깊은 생각거리를 주는 윗글을 써주신 oren 님께 감사드립니다.

oren 2017-08-03 12:35   좋아요 0 | URL
제가 쓴 보잘것 없는 글 하나에 qualia 님께서 아주 진지한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여러모로 생각해 볼 바가 많아서 아주 유익한 참고가 되었습니다. 정성스런 댓글에 우선 감사드리고요.

qualia 님께서 말씀해 주신 여러 내용들에 일일이 제 생각을 다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제가 이런 글을 쓴 취지나 배경을 살짝 덧붙여 말씀드려볼까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저는 ‘잡다한 책들‘을 좀 싫어하는 편입니다. 물론 어떤 책이든 없는 것보다야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게 좋을 지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쓰레기 같은 책들‘도 많은 게 사실이거든요. 제가 이런저런 책들을 내다버릴 생각으로 고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들이 저마다 처음 나왔을 때에는 저자와 출판사와 서점과 독자들이 다들 ‘한때나마 뜨겁게 열광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제 기준으로 봐서는) 수명을 다한 책이 되고 말았구나, 싶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답니다. 낡고, 녹슬고, 쓸모가 없어지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책들을 도대체 내가 왜 ‘책장 속에 반듯하게 모셔 놓아야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을 자격이 충분한 책들도 ‘책장 밖에서‘ 저토록 오래 짓눌려 신음하고 있는데 말이지요.(심지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조차도 책장 속에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이번에도요.)

물론 책장을 거실 공간으로까지 확대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겠으나 굳이 그러고 싶지 않더군요. 제 기준으로는 이미 ‘폐기 처분‘ 받아도 충분한 책들이 꽤나 많이 있고, 굳이 그 책들을 끌어안으면서까지 다른 책들을 계속 수용하기 위해 ‘책장만 자꾸 늘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더군요.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戒盈杯) 생각도 했답니다. 비울 줄 알아야 채울 수 있겠지요.『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엘빈 토플러가 말했던 대로 미래에는 ‘쓰레기 정보‘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무척 중요해질 거라는 지적도 떠올렸답니다. ‘잡다한 책들‘을 자주 내다버릴 수 있어야 보다 더 가치있고 훌륭한 책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저는 늘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책장엔 아직도 내다버릴 책들이 수두룩하답니다. 인생은 어쨌든 ‘여행‘이나 마찬가지인데, 떠메고 다닐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행은 번잡하고 힘이 들 수밖에 없겠지요.

보다 더 간소하게! 보다 더 단순하게! 아무튼 꾸준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것이 책이 되었든, 인간관계가 되었든, 여행이 되었든 말이지요. 그러니 ‘독서‘에서도 책은 늘 덜어내고, 다시 채워야 할 우물이나 샘물 같은 것이 되어야지 계속 쌓아놓기만 하는 웅덩이 같은 식으로 관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길어올린 맑은 샘물 같은 청량한 느낌들은 ‘기억‘ 속에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할테고요. 그 ‘기억‘ 마저도 언젠가는 다 반납할 날이 결국 찾아 오겠지만, 죽는 순간까지라도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들‘을 끊임없이 계속 채워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제게 잡다하게만 느껴지는 책들을 이만큼 내다버리는 일은 그런 ‘시원한 물‘을 찾는 데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으리라 믿고요. 저도 쓰다보니 댓글이 엄청 길어졌군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 댓글을 쓰는 지금도 ‘오늘 저녁에라도‘ 내다버릴 다른 책들을 좀 더 골라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저는 언제나 누워서 낑낑대는 저 책들을 하루라도 더 빨리 일으켜 주고 세워 주고 싶답니다.^^

라로 2017-08-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주 전에 200여권을 내다 팔고(알라딘), 밑줄이 많아서 매입 불가라고 한 책들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오신 분들에게 가져가라고 했어요. 님처럼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그때는 알라딘을 안하던때라,,,막 아쉽네요. 처리하시는 책은 주로 자기 계발서이고 간직하시는 책은 역시 고전이군요!!

oren 2017-08-03 13:45   좋아요 0 | URL
200여 권을 한꺼번에 정리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그 많은 책들을 나르느라 힘드셨겠어요. 저도 이번에 정리할 책들을 ‘알라딘 중고서점‘에라도 팔아볼까 싶어서 ‘검색‘해 봤더니 사주겠다는 책이 겨우 열 권 남짓이더군요. 그래도 몇 권은 ‘매입 단가‘가 제법 되던데, ‘1,000원짜리‘ 책으로 전락한 경우도 많아서 적잖이 놀랐답니다.

라로 2017-08-03 14:43   좋아요 0 | URL
큰 박스로 7박스정도 되었어요. 그 얘기는 언제 시간이 되면 하려고 했는데 오렌님께 먼저 하네요. ㅎㅎㅎㅎ 남편과 큰아들이 번갈아가며 날라왔는데 알라딘 직원이 한 명이었고 저는 문닫기 1시간 정도 전에 가서 그 직원이 고생하며 해준 기억이 나요. 그런데 거기에는 10권의 매입을 도와주는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이라고 적혀있더군요. 하지만 그 직원은 다른 손님들의 계산을 도와주랴 제 책을 매입하랴 정말 미안했어요. 영업시간이 끝나고도 계속 해야 했거든요. 제가 판매한 책도 대부분 $1.00에 책정된 책이 많더군요. 속상했지만 알라딘에서 매입을 안해주면 도서관에라도 기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헐값에 팔았지요. 근데 그 책들 팔아서 아들 녀석 캠프 가는데 사용했어요. 허무하더군요.

oren 2017-08-03 19:49   좋아요 0 | URL
큰 박스로 7박스면 굉장한 부피와 무게였군요. 책이 또 오죽이나 무거운가요. 그런데도 대부분 1달러 아니면 빵달러였다니 그쪽 사정도 별로 좋진 않군요. 저도 ‘알라딘 매입 예상가‘ 조회를 해봤더니, 25,000원이나 28,000원씩 주고 샀던 비싼 책들도 단돈 1,000원밖에 안 쳐주겠다고 하니 시쳇말로 빡치겠더군요. 주위에 널려 있는 동네 도서관에 가져가서 기부하자니 거기서 과연 받아줄까 싶기도 하고 또 이런 책을 찾는 이들로 별로 없을 듯해서 그냥 식사동에 있는 ‘집현전‘이라는 중고서점에 갖다줄까 싶어요. 거기에선 어쩐지 ‘임자‘를 만날 책도 혹시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cyrus 2017-08-0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탑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요. 저도 꽂지 못한 책들을 탑처럼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 방에 있는 책탑은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책을 더 올렸다간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버릴 겁니다. ^^

oren 2017-08-03 13:49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 보시는 대로입니다. 새로운 탑을 만들면서 약간 낮아진 측면도 있고요. 책탑이 딱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었는데 엄청난 굉음이 나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카스피 2017-08-0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속에 가지런히 놓여진 책을 보니 넘 부럽습니당.제 책은 둘곳이 없아 모두 박스에 있으니 말이죠.서울에서 책 나눌 공간 1평을 눌리는데 천만원이 필요하다고하니 돈 없는 사람은 책을 보관하기도 힘든 세상인것 같습니다ㅜ.ㅜ

oren 2017-08-04 18:42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께서는 책을 ‘박스‘에 보관하시는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박스 안에 갇힌 책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박스에 보관하시면 읽고 싶은 책들을 찾는데도 엄청 불편할 듯싶고요. 어서 빨리 책장을 마련하셔서 갇혀 지내는 책들이 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