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거요. 언제나 한 가지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중에서
* * *
로맹 가리의 전기를 읽기 전부터 나는 줄곧 어떤 '슬픈 결말'을 생각했다. 내가 이 소설가와 처음으로 마주친 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펼칠 때였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어쨌든 '깊은 상처'부터 먼저 떠올리고 보는 식이었다. 나는 그 가슴이 아린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칼로 베인 듯 욱신거렸고, 그저 먹먹하고 우울한 기분을 좀처럼 달랠 수 없었다.
나도 가마우지를 본 적이 있었다. 열두 해 전쯤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 구이린(桂林)에 갔을 때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그저 그 새가 물고기잡이 선수인 줄로만 알았지, 모가지가 길어서 그토록 슬픈 짐승인 줄은 차마 몰랐다. 더구나 그 새들이 인간들을 위해 평생 물고기를 잡고, 자신의 분뇨마저 비료로 쓸 수 있게 만든 다음 '페루에 가서' 죽는 줄은 더더욱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새들이 어떻게 하면 하늘을 잘 날아다닐까를 고민할 때 가마우지는 그와 반대로 어떻게 하면 잘 떨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그 새는 날개 근육을 퇴화시켜 버렸고, 납처럼 무거워진 몸과 짧아진 날개로 잠수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경탄할 만한 물고기잡이 새를 인간이 그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가늘고 긴 내 목에는 / 이미 노끈이 조여져 /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어느 시인이 쓴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일부다. 이제 가마우지를 떠올리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끝내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하는 무서운 절망과 그 해소하지 못하는 욕망 너머에 자리잡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도리어 내 목부터 먼저 메일 듯하다.
이토록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새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모여드는 곳이 페루 해안이다. 그 바다에 몸을 던지려 찾아온 여인은 불감증으로 고통받는다. '그녀는 몇 살일까.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리마에 혼자 오지는 않았을 텐데, 아버지나 남편은 있을까?'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바닷가에서, 그것도 도로에서 백 미터나 떨어진 모래 언덕에 세워진 카페에서 홀로 사는 남자가 그녀를 발견한다. 그는 테라스로 나와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그날의 첫 담배를 피우면서 모래 위에 떨어져 있는 새들을 바라보던' 참이었다.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인 마흔일곱의 자크 레니에는 바다에 뛰어든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몇 미터만 더 갔으면 물결에 휩쓸려갔을 거요. 이곳 파도는 몹시 사납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두 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 사랑의 슬픔이군, 하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 문제는 실연의 아픔이지.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어떻게 이 소설가는 그토록 짧은 소설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휘저어 놓을 수 있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경이로운 소설 하나를 읽고 나니 작가가 어느새 나처럼 무딘 독자조차 그냥 놔두질 않는다. 언제부턴가 소설과는 담을 쌓고 지내다시피 한 나는 서둘러 오래 전에 사 둔 에밀 아자르의『자기 앞의 생』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한동안 그 소설의 여운에 휩싸였다. 한동안 '모모'를 계속 떠올렸다. 내가 오래 전에 라디오로 줄기차게 들었던 그 노래와 함께. 삼십칠 년 전에 나온 그 '모모'라는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한 그 모모라니.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 짓하며,
날아가는 니스(Nice. 프랑스 도시)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김만준, 『모모』(1978년)
그리고 다시 작가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서둘러『로맹 가리』를 읽었다. 어쨌든 내겐 그 작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도대체 그 작가는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소설들을 써 냈고, 또 그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도 끝내 뭔가를 채우지 못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그토록 놀라운 방식으로 슬피 마무리하고 말았단 말인가. 어쨌든 이 두툼한 책이라면 그런 의문들은 말끔히 해소될 터였다.
피가 식기 시작해 이곳까지 날아올 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차갑고 헐벗은 바위뿐인 조분석 섬을 떠나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설명들로 만족해야 하리라.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로맹 가리의 전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었다. 더 이상 로맹 가리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로맹 가리에 대해 정말 너무나 세세하고 자세한 설명을 끊임없이 쏟아내 놓는 바람에 하마터면 독자가 먼저 '로맹 가리'에 물릴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특히 여느 독자들이라면 별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곁다리 설명들을 덧붙여 놓는 데는 질릴 정도였다.
로맹 가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혹은 그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던 프랑스 사람들이라면 응당 그런 설명들이 몹시 흡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그의 작품이 좋고, 그의 삶이 작품만큼이나 궁금했던 나같은 평범한 독자로서는 너무 디테일한 설명들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한 작가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결핍이나 생략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과잉이 줄곧 넘치는 설명들이 꼭 필요할까 싶었다. 확실히 사람을 좀 지치게 만드는 구석이 적지 않았다. 그토록 세세한 설명들을 대략 절반쯤만 줄였더라도 얼마나 더 만족스런 걸음걸이로 이 소설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 싶은 아쉬움을 좀처럼 떨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 책은 좋았다. 그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이토록 '충분한 설명'으로 독자들에게 내놓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인 보미니크 보나는 매력적인 글솜씨로 '로맹 가리의 작품과 삶'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매우 잘 되살려냈다.
어쨌든 로맹 가리의 소설같은 삶을 글로 쓰자면 제법 많은 지면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의 일생은 태생부터 죽음까지 늘 드라마틱한 삶의 연속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던 해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곧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세상이 오로지 '둘만' 전쟁터에 내던져 놓은 듯한 환경에서도, 로맹 카체브의 어머니인 니나는 아들을 끔찍히 돌보고 감싸며 키워냈다.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세상의 온갖 간난신고를 다 헤쳐 나갔다. 오로지 어린 아들 하나의 '눈부신 장래'를 위해 그녀는 전쟁의 소용돌이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러시아를 벗어날 결심을 한다. 로맹을 데리고 모스크바를 떠나 리투아니아로 이주했고, 폴란드 바르샤바에 정착했다가 기어코 프랑스의 변방, 가난한 이민자들이 잔뜩 모여 사는 니스에 터를 잡는다. 세 살때 모스크바를 떠난 로맹 가리는 그러는 사이에 열세 살이 되었다.
너무도 음울하고 고통스런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도 모르는 아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타 영화 배우'였던 아버지뻘 나이의 이반 모주힌을 스스로 아버지로 여기는 마법을 건다. 어쨌든 둘의 외모는 놀라울 만치 서로 닮았다.
동양적 얼굴과 맑은 눈, 흑갈색 피부, 눈썹, 툭 벌거진 광대뼈, 넓고 둥근 이마. 둘 다 슬라브계 아시아인 같은 외모와 맑은 눈 때문에, 금기시된 관계 혹은 야만적인 결합, 바이킹의 강간이나 집시의 통정이 떠오르는 동유럽의 혼혈을 드러냈다. 둘 다 건장한 체격과 볕에 그을린 듯한 얼굴빛으로, 중세 때 러시아 국가들을 지배 아래 두었던 칭기즈 칸이나 티무르 군대의 타타르 전사들을 연상시켰다.
문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프랑스어 과목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다. 여러 신문사와 잡지사에 투고를 거듭한 끝에 1935년에 유력 문학 주간지에 그의 첫 작품「폭풍우」가 실리는 '첫 성공'을 거둔다. 비행사를 꿈꾸며 장교 양성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아마도 '토박이 프랑스인'도 아니었고, 귀화한 지도 오래 되지 못한 신분 탓에- 장교로 임관하는 데 실패한 그는 하사로 전쟁을 맞는다. 1940년에 자원 입대한 그가 오랜 훈련과 배속 부대를 전전한 끝에 폭탄 투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건 1943년이 되어서였다. 아프리카를 떠나 런던에 주둔할 때 로맹 카체브는 전쟁 중에 사용할 이름 하나를 고른다. 그때부터 그는 '가리(Gary)'라 불리게 된다.
'전쟁은 의무인 동시에,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용기와 의지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본능보다는 의지에 기초한 그의 영웅주의는 인내력과 도전 정신, 미래에 대한 계획의 혼합물로 보인다.' 1943년 11월, 전투기 '보스턴'에 오른 탑승 대원들은 심각한 총상을 입고도 '눈먼 조종사'와 함께 영웅적으로 '폭격 임무'를 완수한다. 대공포에 맞아 훼손된 조종석 뚜껑이 열리지 않아 낙하산 탈출 조차 불가능해진 그들은 놀라운 침착성과 동료애를 발휘해 전원 무사히 귀환한다. '눈먼 착륙'까지 성공했던 것이다!
마침내 중위가 된 로맹은 샤를 드골이 서명한 '해방무공훈장'을 수여받는다. 메달만이 그의 유일한 명예도 아니었다. 그가 전쟁의 폭풍 속에서도 끊임없이 글쓰기에 매달린 끝에 1944년에 완성한 『유럽의 교육』이 영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것이다. 젊은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는 이듬해인 1945년에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가 서른 살에 접어든 1944년에는 일곱 살 연상의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했고, 2차 대전이 마무리된 1945년에는 샤를 드골이 직접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그해에 그는 이등 대사 서기관으로 프랑스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61년(47세)에 외교관 직을 포기할 때까지 17년 동안이나 외교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그 기간 동안 불가리아 소피아와 스위스 베른, 미국 워싱턴과 볼리비아 라파스를 거쳐 마침내 헐리우드까지 진출한다. 그가 미국 영사로 발령받으면서 로스앤젤레스에서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외교관으로서 LA에 진출한 지 4년 만인 1959년, 그는 영화배우 진 시버그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녀는 스물하나, 그는 마흔다섯이었다.' 프랑스 남자와 갓 결혼한 그녀는 그때 이미 가리보다 훨씬 더 유명했다. '사강 원작의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에서는 세실 역을 했고, 얼마 전에 고다르의 지도 아래 장 폴 벨몽도와 함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촬영을 마친 참이었다.'
이 둘 사이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마도 이 책을 쓴 작가의 '소설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대목임에 틀림없지 싶다. 어떤 시간과 어떤 장소든 남자와 여자 사이를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은 그 누구도 거역하기 어려운가 보다. 도미니크 보나는 이 두 사람만이 직감했을 첫 만남에서의 강렬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랑에 빠진 두 유부남의 불같은 사랑뿐만 아니라, 특히 로맹 가리에게는 여러모로 아주 잘 어울리는 아내였던 레슬리 블랜치의 입장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을 정말 놀라우리만치 멋지게 '설명'해 낸다.
프랑수아 모뢰이(진 시버그의 남편)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토대로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를 찍기 위해 파리로 돌아갔다. "집사람을 부탁합니다." 그는 프랑스 영사에게 농담조로 이렇게 말한다.
레슬리 블랜치는 눈을 감아준다. 하지만 진이 영사관으로 로맹을 찾아오면 "저 여자가 여긴 또 뭐 하러 온 거야?"라며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바람도 그야말로 바람처럼 곧 지나갈 거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레슬리는 내심 깊이 사랑하는 가리에게 집착했다. 그래서 그를 지키기 위해 타협책을 받아들인다. 남편을 아기처럼 품고 있다가도 여행을 하고픈 욕망이 일면 즉시 팽개쳐버렸고, 그의 자유를 구속하기에는 그녀 자신이 자신만의 자유를 너무 소중히 여겼다. 그가 그녀의 여행을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의 부정을 눈감아주려 했다. 지혜와 아량으로 결국 자신이 승리하리라고 확신하며.
이후로 길고도 충분하게 계속 이어지는 '새로운 커플' 혹은 '오래된 커플' 사이에 오가는 끊임없는 흥분과 긴장과 설렘과 아슬아슬함들은 매 페이지마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실감나게 마주치게 만든다. 비록 오래 되었다 싶지만 그래도 충분히 오랫동안 유효할 수 있는 관계의 '불가피한 해체'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피할 길 없는 '필연적인 결합'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들 앞에서, 이들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였는지를 알고 나면, 소설가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로맹 가리'를 보다 뚜렷하게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가리는 함께 살기 편한 사람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성깔을 부렸다. 시도 때도 없이 불안에 시달리고 의심의 악마를 달고 다녔다. 그는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세상의 광경은 늘 그에게 따뜻한 애정보다는 냉소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여자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최악의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가 글을 쓸 때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많이 썼다. 매일 아침, 컨디션이 좋건 나쁘건, 건강하건 병이 들었건, 쾌활하건 슬프건 아니면 외적인 근심에 시달리건 한결같이 글을 썼다. 진의 미소도, 어리광도, 앙탈도 그가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부과한, 그에게는 예술인 동시에 치료인 메트로놈의 리듬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
하지만 그녀는 개미처럼 집요하게 요새를 공격했다. 그들의 사랑을 합법화하도록 로맹을 쉴 새 없이 볶아댔다. 로맹이 자신과 결혼하기를, 그들의 결합을 공식화하기를 원했다.
레슬리는 물러서기를 끈질기게 거부했다. 자신을 법적인 아내로 남아 있게 해준다면 불륜 관계를 받아들이겠다며, 로맹에게 역공작을 펼친다.
진은 아이를 간절히 원한다. 로맹 역시. 레슬리는 모든 것을 잃고 말 터였다. 로맹과 결혼한 지 십칠 년째 되는 해, 진의 임신 소식을 로맹에게 전해 들은 레슬리는 결국 이혼을 받아들인다.
이 책의 장점 하나는 명백히 전기 작가 특유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로맹 가리의 작품들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작가 내면에 대한 깊숙한 탐구'에서 찾을 수 있지 싶다. 나는 고작 그의 작품을 두 권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쓴 대표적인 작품들조차 제목만 겨우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두 권의 소설을 읽고 내가 받았던 강렬한 인상에 더해, 이 전기 작가가 쓴 『로맹 가리』를 읽고 나니 그의 여러 작품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얼개는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도미니크 보나는 로맹 가리의 여러 작품 속에 담긴 다양한 문장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 일이라면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저 이상한 새들>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특히 많은 도움이 된다. 로맹 가리가 같은 이름으로 제작했던 영화가 왜 실패했으며, 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진 시버그는 그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어떤 고충을 겪었고, 프랑스 검열위원회는 왜 그 영화를 상영 금지했는지 등등...
<여자와 여행>은 그가 글쓰기에 더해 그것 말고 또다른 삶의 즐거움을 줄곧 어디에서 찾았던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 년 내내 마요르카, 말레이시아 또는 모리스 섬의 태양에 그을려, 나이가 들면서 야위고 곧고 건장한 앤서니 퀸을 점점 더 닮아가는 로맹 가리는 가공의 조상 타타르인들의 과거와 다시 연결된다. 그 역시 자신의 보물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닌다. 또다시 유목민 혹은 떠돌이 광대가 된 그는 종종 가방도 꾸리지 않은 채, 몽골족이 초원의 말을 타고 다니듯 비행기를 이용해 지구촌 곳곳을 돌아다닌다.
"늘 다른 곳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겠어. 뭔가가,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그게 존재한다면 찾아다니면 돼." 가리는 프랑수아 봉디에게 말한다.
가리는 공들여 이루어낸 영광 속에 안주하기보다는, 떠나려는 욕망에 떠밀려 고독한 모험가의 또다른 삶을 창조해낸다. 비행기는 그에게 오랜 길동무였다. 정기선이든 전세기든,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날 때면, 그는 조금씩 젊어졌다.
쉰일곱 살의 작가는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핀란드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까지, 모든 유럽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그리스어로까지 번역된 그의 소설 열다섯 편은 세계 어느 나라의 도서관에나 꽂혀 있었다. 로맹 가리는 끊임없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신화를 유지하는 범세계적인 소명을 가진 작가였다. 여행은 무엇보다 부르주아적인 파리 7구의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날아날 수 있게, 문단을 호령하는 베테랑 문인의 포즈 속에 굳어버리지 않게 도와준다.
로맹 역시 다른 만남을 통해 그녀(진 시버그)로부터 달아난다. 늘 실망과 욕구 불만에 싸여 되돌아오기는 하지만. 그는 로베르 갈리마르에게 그 여자들 중 하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천상 여자였어. 기껏 베네치아에 데려갔더니 날 산 마르코 광장에 내버려두고 옷가지를 사러 가버리더군······" 유행을 좇는 멋쟁이 아가씨, 양갓집 규수, 기자, 대학생, 오며 가며 유혹한 여자들은 그의 꿈 깊은 곳에서 그의 모든 소설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운명적인 사랑의 대용품일 뿐이다.
로맹 가리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그가 '에밀 아자르'라는 새로운 작가로 데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60세의 나이에 그 새로운 이름으로 『그로 칼랭』('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놀라운 소설을 발표해서 프랑스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이 젊은 작가는 데뷔 2년 만에 공쿠르 상을 거머쥐게 된다. 물론 로맹 가리는 익명의 작가인 '에밀 아자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파리의 소식통들은 『자기 앞의 생』이 문학상을 수상할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인 미셀 트루니에는 시몬 갈리마르를 찾아와, 자신과 몇몇 동료들이 에밀 아자르에게 상을 주고 싶어하는데,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저자가 정말 존재하는지, 다시 말해 아자르가 위장 필명이 아닌지를 확인해두고 싶어한다고 털어놓는다. 시몬 갈리마르는 솔직하게, 자신은 아자르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미셸 쿠르노가 제네바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따라서 살과 뼈로 된 아자르라는 저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로맹 가리도 이 대화를 전해 듣긴 하지만, 자신의 인형이 문학상 경주에 휩쓸리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이렇게 해서 아자르는 파트릭 모디아노(『슬픈 빌라』), 크리스티앙 샤리에르(『하늘의 과수원』), 피에르 장 레미(『삶을 꿈꾸다』)와 함께 공쿠르상 수상 후보자들 중에 끼게 된다.
에밀 아자르는 갑작스레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 되고 만다. 그래서 로맹 가리는 결국 자신의 조카인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내세울 수밖에 없게 된다. 로맹의 조카는 그 역을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완벽하게 해 낸다. 나중에는 그 자신이 진짜 에밀 아자르인 줄 착각할 정도로.
로맹 가리가 '로맹 가리는 끝난 작가다. 그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네 권의 소설을 펴냈을 때, 그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는 그가 직접 쓴-그리고 권총 자살 이후에 발견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짧은 글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열렬한 포옹』에서 로맹 가리의 목소리를 읽어낸 평론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기 앞의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작품에는 『유럽의 교육』『커다란 탈의실』『새벽의 약속』에서와 정확히 일치하는 감수성, 문장과 표현, 인물들이 나온다. 『쳉기스 콘의 춤』을 읽어보면, 『자기 앞의 생』의 작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 아자르는 이미『튤립』에 나온다. 그러나 소위 '평론가'들 중에 누가 그것을 읽어냈는가?
내가 얼마나 통쾌했을지 상상해보시라. 나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이런 나의 경험은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작가의 사후에나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작가는 그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이상 아무도 신경쓸 일이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몫을 돌려받게 되니까.
로맹 가리의 말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이미 했던 말이어서 특히 내겐 인상적이다.("실질적인 이익도 되지 않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행하고 있는 자는 동시대인의 관심을 얻으려고 기대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대개 그러는 동안에 그러한 일들의 표면적인 것이 세상에서 행하여지게 되고 성황을 이루게 됨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일반사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이든 일 그 자체는 그 자신을 위해서도 행하여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성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혹종의 의도를 갖는다는 것은 이해를 그르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문학사라는 좋은 증거가 보여 주듯, 가치 있는 것은 모두 그것이 인정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요한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2판 머리말 중에서)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시간은 정말 끔찍해. 아기 바다표범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놈들처럼, 시간은 산 채로 당신 피부를 조금씩 벗겨내지." 로맹 가리는 나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로맹은 늙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어요." 그보다 연상인 레슬리 블랜치는 설명한다. "나이 사십에 벌써 자기가 늙어버렸다고, 끝장났다고 믿었죠······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레슬리,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당신 나이 생각을 전혀 안 해?' 늙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로맹의 경우, 그것은 하나의 강박관념이었죠."
실제로 가리는 시드는 것, 약해지는 것, 또는 추해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미리부터 그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진 시버그의 끔찍한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가리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그에게는 -이미 그녀와 이혼한 지 11년이나 지났어도- 몹시도 사랑했던 그녀의 자살이 그를 절망시킨 게 분명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은 벼락과 같았다.'
그에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완성했다고 판단한 여정의 종착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진 시버그가 죽은 지 1년쯤 지난 때였다. 진 시버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나중에 밝힌 이유도 로맹 가리의 특수성에 비춰 보면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더이상 건설할 것도, 말할 것도, 할 것도 없다고 여기셨어요. 당신의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진행중인 소설이 단 한 편도 없었죠. ··· 그래서 떠나신 겁니다."
그는 침대 발치에 남긴 마지막 편지 한 장에서도 그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왜? 해답은 아마 내 자전적 작품의 제목인 '밤은 고요하리라'와,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구절인 '더 잘 말할 수 없기 때문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좌절의 흔적'을 남기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미리 써 놓았던『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도 '자기 삶의 더없이 명철한 주인으로서의 자세'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그는 그 글을 쓴 날자와 자신의 서명 바로 위, 그러니까 미리 써 놓은 '고별사'의 마지막 줄을 다음과 같이 맺었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삶 자체가 이야기가 된 남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나는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문득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를 아주 잠깐 떠올렸었다. 비록 둘은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았지만 '경력과 취향'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공통점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둘 다 군인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전쟁터를 누볐고, 둘 다 혁혁한 무공을 쌓았다. 그리고 둘 다 훌륭한 외교관이었고 언변에 몹시도 능한 달변가였다. 그리고 둘 다 일생 동안 남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여성들과 어울렸고, 수많은 도시들을 떠돌아 다녔다.
이들 둘 사이의 공통점이 이렇게도 많지만 이 두 인물은 좀처럼 오버랩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를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로맹 가리에게만 특별하게 내재된 러시아계 특유의 우울과 슬라브계 특유의 집시와 같은 방랑성과 유대계 특유의 강박관념 등에서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어쨌든 온갖 장르가 뒤섞인 '분류가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내가 『로맹 가리』를 읽으며 두어 차례 떠올린 음악이 있었다면 그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다. 몹시도 아름다운 듯하지만 고통이 사무치게 느껴지며, 힘찬 행진이 펼쳐지다가도 비장하게 뒤바뀌고,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베어 있는, 끝내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불빛 만큼은 더없이 찬란한 듯한, 그런 슬픔과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겹쳐지는 선율이 아마도 로맹 가리에게는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잠깐씩 내게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나도 이제는 로맹 가리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다. 이젠 그가 남긴 빛나는 소설들을 틈나는 대로 더 읽는 일만 남았다. 그의 소설은 이왕이면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여행할 때 읽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로맹 가리에게 오랜 길동무였던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날 때면 그의 소설이 내게 훨씬 더 아름답게 반짝이며 매혹적으로 다가올 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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