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일반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책
『키케로의 의무론』에 대하여...



 


올해 초에 문득 집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나니 그 책 속의 작가들과 작품 속 인물들이 자꾸만 나를 '고대의 영웅들이 숨을 헐떡이며 분주히 돌아다니던' 어느 영광스러운 과거의 순간들로 끌어당기는 듯하다.


성난 바람을 안고 잔뜩 부풀어 오른 돛을 단 날쌘 함선이 갑자기 나타나 거센 바다 한복판으로 미끄러지며 내달리는 풍경이 어느새 내 눈앞에 가득 펼쳐진다. 벌써 나는 대략 2,500년 전쯤의 고대 그리스의 바닷가 어느 해안까지 한 순간에 훅 떠밀려 갈지도 모르겠다는 착각마저 떠올린다. 그럭저럭 이런저런 풍문으로 간신히 그 이름은 한때 들어 보았을지 모르나 갑자기 내 눈앞에 들어온 낯선 바닷가 모래톱을 보면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질지도 모르겠다. 어서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뭍으로 기어 올라,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잠시 잊은채 나는 서둘러 그 땅에 사는 옛 그리스 사람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길을 물어 고대 원형 극장이나 아카데미아까지 둘러볼 욕심도 부리고 싶다.

그런 급작스럽고도 무모한 여행이라도 바다의 여신이 우리의 뱃길을 보살펴 폭풍우에 좌초되지도 않고,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멋진 모험과 낭만을 곁들여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몹시도 흥미진진한 이런 모험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이토록 무모한 항해에 나서도록 오래 전부터 나를 부추겨 왔던 여러 인물들, 가령 몽테뉴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 혹은 쇼펜하우어나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이라고 허풍스레 말할 수도 있을까.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그들은 단지 나더러 그런 가슴 벅찬 여행길을 나서는데 너무 오래 주저하지 말도록, 혹은 그들 자신이 겪고 배우고 느꼈던 여행담들을 내게 너무 진지하게 들려주면서 어서 여행을 떠나라고 부지런히 격려하고 독려한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이런 여행에 나설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준 사람은 따로 있다. 그 분은 천병희 선생님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가와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 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우리는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과소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경향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고 그분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서양에서조차 최근에서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이름난 고전들이 '현대어' 즉 영어 등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주석달린 월든』에 딸린 '주석'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작품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조지 채프먼에 의해 영어로 처음 번역되었고 1624년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은 1777년에 로버트 포터에 의해 처음 영어로 번역되었고,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은 1513년에 가빈 더글러스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한다. 소로우도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알았지만 항상 그리스어 원전을 읽은 것은 아니었고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로 번역된 책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이미 예전에 가끔씩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다른 고전들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어서 그분의 친절하면서도 성실하고 묵묵한 안내가 그리 낯설지도 않을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이번 '고대로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미리 그분에게 가이드 비용으로 얼마간의 셈도 치렀다. 물론 내가 그분을 직접 만나 수고비를 건넸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마도 내가 며칠 전에 '알라딘'이라는 여행사에 지불한 얼마간의 책값 속에 그분의 몫까지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내멋대로 꾸며보고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내가 차가운 겨울의 낮과 밤을 도와 코끝으로 맡은 고전의 향기가 나를 얼마나 세게 자극했던지 나는 에게해 앞바다를 춤추게 만드는 지중해 바람의 유혹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고, 그래서 내가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알라딘이라는 여행사에 지불한 여행 경비의 명세는 대략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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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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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아마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여행 일정'으로 꽉 찬 항해를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의 옛 도시를 둘러보고, 그 유명한 비극들이 무대에 올려지는 원형극장을 찾아가고, 또 그런 '모방'의 원형이 되는 전쟁터와 영웅들을 만나는 일이 어찌 하루 아침에 쉽게 이뤄지기야 하겠는가. 나는 어쩌면 남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오솔길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간신히 이 여행길에 오르는 행운을 붙잡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적이 제법 드문 숲 속의 어느 희미한 안개 속에서 '이런 여행'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고 난 이후 아직까지 용케도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고대로의 항해'가 시작되는 이곳 항구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쁘기만 하다. 이런 낯선 출발이 아무리 급작스럽더라도 거기에 무슨 허물이나 잘못이 있을 수 있겠는가. 늦었다는 걸 아는 것과 더 늦추지 않고 곧바로 항해를 시작하는 것, 두 가지면 나는 충분하다.

함선의 뱃고동 소리가 울린지 이미 오래다. 어서 서둘러 옛 영웅들의 용기와 좌절, 적대와 증오, 운명의 사슬과 우연의 횡포, 고통과 비애, 절망적인 파멸이 이어지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보자.

 


아가멤논을 살해하기 직전의 클뤼타임네스트라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작)

10년 만에 트로이아를 함락하고 귀향하던 날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게 무참하게 살해된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요한 페테르 크라프트 작)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파헤쳐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장님이 된 후, 안티고네는 떠돌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든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아테나이 근교 콜로노스에 있는 복수의 여신들, 일명 '자비로운 여신들'의 성역에 도착한다.


 


분노하는 메데이아 (외젠 들라크루아 작)

헌신과 사랑의 대가로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남편을 자식 잃은 아비로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 




박코스 (카라바조 작)

그리스 비극은 포도 재배와 포도주의 신 디오뉘소스(일명 박코스)를 기리는 축제 대大 디오뉘소스 제祭의 하이라이트로, 기원전 5세기 아테나이에서 공연되었다. 



 





(늘 뭔가 허전하던 책장이었는데 이번에 사들인 '불멸의 고전들' 덕분에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 있게 되었다)


 

 


























 














 * * *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라티우스가 『詩學』을 통해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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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다시 말해 이러저러한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가 등장 인물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도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62∼63쪽)

 - 아리스토텔레스 / 詩學



 

그리스인들의 작품

그대들은 그리스인들의 작품을 본보기로 삼으시오. 그대들의 선조들은 플라우투스의 시구와 재치를 듣고 감단해 마지않았습니다. (193쪽)

 - 호라티우스 / 詩學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우리는 시로부터 완고하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하여 철학과 시는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다는 사실을 시에게 말해주기로 하세. 왜냐하면 '주인을 향하여 깽깽 짖어대는 개'라든가, '바보들의 쓸데없는 잡담 속에서나 위대한 자'라든가, '지나치게 영리한 머리의 오합지졸'이라든가, '어떻게 하다가 결국 거지가 되고 말았는지에 관하여 세심하게 사색하는 자들'이라든가 그 밖에 다른 많은 험담들이 철학과 시 사이의 오래된 불화를 입증해주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세.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시나 모방이 훌륭하게 통치되고 있는 국가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증거만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것들의 귀국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 자신도 시의 매력에 이끌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배반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 될 것이다'라고 말일세. 그런데 여보게, 자네도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지 않나? 특히 호메로스를 통해서 시를 볼 때 말일세." (251∼252쪽)

 - 플라톤 / 詩論



 

진실로 위대한 것

사려 깊고 문학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떤 구절을 몇 번이나 들어도 그것이 그의 마음에 어떤 고양감을 주지 않거나 아무리 숙고해 보아도 말해진 것 이상을 그의 마음에 남기지 않는다면, 아니 오히려 유심히 살펴볼수록 아래로 처지고 진부해진다면, 그것은 진실로 숭고한 것일 수 없소. 그것은 귀에 들리는 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오. 진실로 위대한 것은 거듭된 검토도 견뎌내고, 그 호소력에 저항한다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강력하고도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마음속에 남기기 때문이오. 간단히 말해서, 그대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 진실로 그리고 아름답게 숭고하다고 생각하시오. 직업과 생활 방식과 취미와 나이와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작품들에 대하여 똑같은 의견을 갖는다면 그토록 목소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치된 판단은 그들의 경탄이 정당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하고 논박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법이오. (283쪽)
 - 롱기누스 / 숭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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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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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결점

······ 또한 이 기회에 우리의 이데아설과 플라톤의 것은 대단히 다르다는 것을 말해 두고자 한다. 플라톤은 미술이 그리려고 하는 대상, 즉 그림, 시의 모범은 이데아가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때까지의 설명을 통해 이것의 정반대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 설이 바로 이 위대한 철인 플라톤이 갖고 있었던 가장 크고 널리 알려진 결점의 근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이 설에는 조금도 현혹되지 않는다. 즉 그의 결점이란 예술, 특히 시에 대한 경멸과 비난이다.  (738∼739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데아를 구현하는 아름다움> 中에서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사람도 신도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 호라티우스, 《시론》

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이 자기들과 타인의 시간과 종이를 얼마나 망쳐 놓으며, 또 그 영향이 얼마나 해로운가 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평범한 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을 참다운 걸작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러한 작품들로 대중의 교양을 억제한다. 따라서 천재의 좋은 영향을 정면으로 방해하고,좋은 취미를 점점 해쳐서 시대의 진로에 역행한다. 그러므로 비평이나 풍자를 할 때는 용서나 동정을 하지 말고, 평범한 시인들에게 혹평을 가해서, 그들이 졸작을 쓰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읽는 데에 여가를 이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시인들의 졸렬한 작품은 온화한 시신인 아폴론까지도 마르시아스의 껍질을 벗기게 할 정도로 격노하게 한다. 나는 평범한 시가 관용을 요구하는 것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알 수 없다. (776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시에 대하여> 中에서




 

비극은 시문학의 최고봉

그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성취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극은 시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보아야 하며, 또 그렇게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최고의 시적인 작업의 목적이 인생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데 있다는 것과, 형언할 수 없는 인류의 고통과 비애, 악의의 승리, 우연의 횡포, 정당한 자나 죄 없는 자의 절망적인 파멸 등이 우리 눈앞에 전개된다는 것은 우리의 고찰에 아주 뜻깊은 것이고 또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세계와 생존의 성질에 관한 중요한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의지의 객관화 가운데 최고 단계에 있어서, 의지와 의지의 충돌은 가장 완전하게 전개되고 무서울 정도로 나타난다. 이 충돌은 인간의 고뇌로 나타나는데, 이 고뇌는 일부는 우연과 오류에 의해서 초래되고, 또 일부는 인간에게서 생긴다. 우연과 오류는 세계의 지배자로서 등장하고, 고의라고 보여질 정도의 간계로 말미암아 운명으로 인격화되어 등장한다. 인간에게 생기는 충돌은 여러 개인의 의지적인 노력이 서로 교착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의 악의나 부조리를 통해 나타난다. (784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시에 대하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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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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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

학생은 호메로스나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을 그리스어로 읽더라도 방탕과 사치에 빠질 위험이 없다. 영웅을 다룬 책들을 읽고 학생은 영웅을 어느 정도 본받고, 그런 책을 읽는 데 아침 시간을 할애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을 그린 책들이 우리 모국어의 문자로 인쇄되더라도 타락한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을 발휘해 일상적인 용법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추측해가며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저렴한 가격에 많은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번역된 책도 많지만, 고대의 영웅을 그린 작가들은 좀처럼 소개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멀리 동떨어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그들의 작품을 인쇄한 문자는 희한하고 이상해 보인다. 그래도 고대 언어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암시와 자극이 될 만한 몇 마디를 배워 길거리의 천박함을 딛고 일어선다면, 젊은 날과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농부가 어딘가에서 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반복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욕할 것은 없다. 때때로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결국에는 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모험을 즐기는 학생이라면 어떤 언어로 얼마나 오래전에 쓰인 것인지 상관하지 않고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고전이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고전은 결코 썩지 않는 유일한 신탁이어서, 지금 이 시대의 의문에 대한 해답까지 담겨 있다. 델포이와 도도나도 그 시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말이다.(153∼154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2,000번의 여름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떠날 때마다 『일리아드』를 귀중품 보관함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글로 기록된 문헌은 가장 소중한 유물이다. 문헌은 어떤 예술 작품보다 우리에게 친밀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성격을 띤다. 문헌은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운 예술 작품이다. 문헌은 어떤 언어로나 번역되어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입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캔버스나 대리석만으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생명의 숨결로는 조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옛사람의 생각을 상징하던 문자가 현대인의 말이 된다. 그리스의 대리석 조형물에 그랬듯이 2,000번의 여름은 그리스의 기념비적인 문학에도 한층 성숙해진 황금빛과 가을빛을 전해주었을 뿐이다. 그 기념비적 문학이 잔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온 땅에 전해주며 시간의 부식에서 스스로 보호한 덕분이었다.(156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그들의 작품은 아침 못지않게 정묘하고 옹골차게 완벽하며 아름답다

옛 고전을 원래의 언어로 읽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 어떤 고전도 현대어로 번역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문명 자체가 그런 고전의 번역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아직 영어로 인쇄된 적이 없고, 아이스킬로스의 작품과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작품은 아침 못지않게 정묘하고 옹골차게 완벽하며 아름답다. 후세 작가들의 천재적 재능에 대해 우리가 뭐라 말하더라도 그들은 옛 고전 작가들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완성도 및 평생 문학에 바친 영웅적인 노고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설령 있더라도 무척 드물다. 고전 작가들의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들은 그들을 아예 잊을 작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학문적 능력과 천분을 갖춘 후에 그들을 잊자고 말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일 것이다. (157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기왕 책을 읽을 바에는

우리는 이미 문자를 배웠기 때문에 기왕 책을 읽을 바에는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 4학년이나 5학년 교실에서, 혹은 학교 앞에 있는 가장 낮은 벤치에 앉아 에이 비 에이와 단음절 단어를 끝없이 반복할 수는 없잖은가. (158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플라톤이 나와 같은 마을에 사는데도

고대 세계의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말했고, 그 이후로 모든 시대의 현인들이 그 가치를 확실히 보증한 황금처럼 빝나는 가르침이 우리 옆에 있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쉬운 읽을거리' 및 『초급 독본』과 『교과 독본』까지만 읽는 법을 배우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미숙한 사람과 초보자를 위한 『리틀 리딩』과 이야기책을 읽는다. 따라서 독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와 사고까지 지극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소인족과 난쟁이의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

나는 이 콩코드 땅이 지금까지 배출한 사람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 즉 여기서는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들이 플라톤의 이름을 거론하는 걸 듣고서도 내가 플라톤의 저서를 읽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플라톤이 나와 같은 마을에 사는데도 내가 그를 만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그가 바로 옆집에 사는데도 그가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거나 그의 말에 담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플라톤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지혜가 담긴 『대화편』이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지만 나는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우리는 교양이 없고 천박하며 무지하다.(161∼162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높이 떠 있는 별과 별자리 사이를 거니는 고요한 여행길

나는 어떤 연구보다도 고전 연구에서 가장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고전을 곁에 놓고 앉아 있으면 삶이 저 멀리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아주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문학의 경우에 그렇듯, 고전도 부풀리지 말고 널리 통하는 참된 터전에서 보아야지, 버릇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요한 시간에 그리스와 라틴 작가들의 유람여행을 찬찬히 생각해보면서, 유람객들이 아름다운 그리스나 이탈리아 풍경을 바라볼 때보다 더 커다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사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호머, 헤시오도스에서 호라티우스, 유베날리스에 이르는 저 대로는 아피아가도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옛 고전을 읽거나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 남긴 저작을 통해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높이 떠 있는 별과 별자리 사이를 거니는 고요한 여행길과 같다. (293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강』중에서



 

시는 인류의 신비

시는 인류의 신비이다.

시인이 시에 쓴 말은 분석할 수 없다. 시인에게는 낱말 하나하나가 글월이고, 소리마디 하나하나가 낱말이다. 그의 음악에 노랫말로 쓸 만한 말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듣는다면,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놀라울 정도로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운문이 수없이 많을지 모르나, 고비가 닥친 바로 그 순간에 쓰여진 것은 아닌 탓에 정말 시가 되지는 못한다. 시가 쓰여지는 것 자체가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시는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희미해지는 생각에서 붙잡아낸 어떤 빛깔이다.

시는 온전하면서도 거칠 것 없는 그 무엇이 나타나 무르익어 문학으로 떨어진 것이고, 잘 익은 그것을 즐기는 독자들 역시 무엇에도 거칠 것 없이 온전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425∼426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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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의 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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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전 세계의 소설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줄거리는 소수에 불과한데, 조르주 폴티 교수는 모든 줄거리의 목록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80% 이상의 줄거리가 적에 의해(종종 살인이 일어난다), 친족이나 사랑의 비극, 또는 둘 모두의 비극으로 전개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삶은 대부분 갈등 이야기, 즉 부모, 형제자매, 자식, 배우자, 연인, 친구, 경쟁자 때문에 생기는 상처, 죄의식, 경쟁의 이야기다. (568쪽)

 - 스티븐 핑커,『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영원한 공식

자연은 살과 피를 나눈 사람들의 감정을 살짝 어긋나게 조율하는 잔인한 장난을 쳤지만, 그럼으로써 모든 시대의 소설가와 극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일거리를 제공했다. 두 명의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세 가장 강한 끈으로 묶일 수 있고 그와 동시에 때때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연극적 가능성을 무한히 증폭시킨다. 비극적 이야기가 가족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가 지적했듯이, 두 명의 낯선 사람이 싸우다 죽는 이야기는 두 명의 형제가 서로 싸우다 죽는 이야기에 비해 조금도 흥미롭지 않다.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마이클과 프레도, 제이알과 바비, 프레지어와 나일스, 요셉과 형제들, 리어왕과 딸들, 한나와 자매들 ·······, 수세기에 걸친 드라마 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일가의 증오"와 "일가의 적대"는 영원한 공식이다." (466쪽)

 - 스티븐 핑커,『빈서판』 中에서



 

완벽에 가까운 작품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요카스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지만, 아버지가 곧 오빠이고 언니가 곧 어머니라는 사실은 가족의 고난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명을 어기고 형제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 주는데, 이것을 알게 된 왕은 그녀를 산 채로 매장하라고 명령한다. 안티고네는 그를 속이고 먼저 자살하지만,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왕의 아들은 그녀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그녀의 무덤 위에서 자결한다. 스타이너는 『안티고네』야말로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이자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467쪽)

 - 스티븐 핑커,『빈서판』 中에서



 

인간의 비극

인간의 비극은 모든 인간 관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불공평한 이해 갈등에 있다는 것이 나의 마지막 주제이다. 나는 그것을 어떤 위대한 소설에서도 쉽게 발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 스타이너는『안티고네』에 대한 글에서, 그 불멸의 문학 작품이 "인간의 조건에 항상 존재하는 모든 주된 갈등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썼다. 존 업다이크는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는 갈등이 글을 쓰는 우리의 손과 가슴을 뜨겁게 한다."라고 말했다.
 (755쪽)

 - 스티븐 핑커,『빈서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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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왕』
    from Value Investing 2014-01-17 15:28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소재는 어느 한 작가의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며 소포클레스가 이 작품을 쓰기 전에도 이미 그 중요한 줄거리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보다 앞선 작가들인 핀다로스의 『올륌피아 송시』에도 '라이오스에게 주어진 신탁과 숙명적인 부자 상봉'이 등장하고,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에서도 오이디푸스가 제 손으로 제 눈을 멀게 했다는 대목
  2.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01:21 
    오이디푸스 사이클에서 소포클레스는 위대함의 몰락을 다룬다. 하지만 그는 위대함뿐만 아니라 몰락으로부터도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 소포클레스 드라마의 감동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그의 슬픈 인식과, 인간의 경이로운 힘에 대한 그의 존경심, 이 둘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나온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을 오이디푸스 3부작에서 찾는다고 해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3부작의 2부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3.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17:20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3편인데, 그 가운데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다룬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 말고도 세 편이 더 있는 셈인데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과 『탄원하는 여인들』이 나머지 작품들이다.『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기적으로 『오이디푸스 왕』바로 다음을 배경으로 삼고, 이 작품을 뒤따르는 얘기는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로 이어
  4.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17:20 
    이 작품은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일어난 일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이었던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죽고 난 뒤 그의 무구를 둘러싼 장수들 간의 쟁탈전에서 오뒷세우스에게 패한 아이아스가 심한 모멸감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스스로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무구재판에 패한 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혹한 현실' 때문에 극도의 딜레마에 빠진 그는 결국 미친듯이 아군인 그리스 군 진영을 습격하는 만행을 저지
  5.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 여인들』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17:21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 두 사람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테바이에 사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몰래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다. 제우스의 정실부인인 헤라는 남편과 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몹시 미워하여 틈이 날 때마다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하여 테바이의 왕 크레온의 딸 메가라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곧 헤라의 저주를 받아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6.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17:21 
    트로이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귀국하던 날, 그는 어이없게도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게 피살되고 만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원수가 된 엘렉트라는 그후 7년 동안이나 어머니와 계부 아이기스토스로부터 끊임없는 학대를 받는다. 그녀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머나먼 타국을 떠도는 동생 오레스테스뿐. 마침내 두 오누이는 극적으로 다시 만나 복수에 성공한다.
  7.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from Value Investing 2014-01-22 17:22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 7편 가운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유별나게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리스 비극 작품 가운데서도 매우 드물게 몇몇 남자들만 무대에 등장하지만 그 어떤 소설 못지않은 독특한 재미가 넘쳐난다. 비극경연대회에서 이 드라마로 우승했을 때 소포클레스의 나이가 아흔이 다 된 노인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이 작품의 주인공인 필록테테스는 헤라클레스가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될 때 불을 붙여준 댓가로 활을 물려받은 명사수였으나 그는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