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
학생은 호메로스나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을 그리스어로 읽더라도 방탕과 사치에 빠질 위험이 없다. 영웅을 다룬 책들을 읽고 학생은 영웅을 어느 정도 본받고, 그런 책을 읽는 데 아침 시간을 할애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을 그린 책들이 우리 모국어의 문자로 인쇄되더라도 타락한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용기와 관용을 발휘해 일상적인 용법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추측해가며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저렴한 가격에 많은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고 번역된 책도 많지만, 고대의 영웅을 그린 작가들은 좀처럼 소개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멀리 동떨어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그들의 작품을 인쇄한 문자는 희한하고 이상해 보인다. 그래도 고대 언어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암시와 자극이 될 만한 몇 마디를 배워 길거리의 천박함을 딛고 일어선다면, 젊은 날과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농부가 어딘가에서 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반복해서 사용한다고 해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욕할 것은 없다. 때때로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결국에는 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모험을 즐기는 학생이라면 어떤 언어로 얼마나 오래전에 쓰인 것인지 상관하지 않고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고전이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고전은 결코 썩지 않는 유일한 신탁이어서, 지금 이 시대의 의문에 대한 해답까지 담겨 있다. 델포이와 도도나도 그 시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말이다.(153∼154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2,000번의 여름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을 떠날 때마다 『일리아드』를 귀중품 보관함에 넣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글로 기록된 문헌은 가장 소중한 유물이다. 문헌은 어떤 예술 작품보다 우리에게 친밀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성격을 띤다. 문헌은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운 예술 작품이다. 문헌은 어떤 언어로나 번역되어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입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 캔버스나 대리석만으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생명의 숨결로는 조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옛사람의 생각을 상징하던 문자가 현대인의 말이 된다. 그리스의 대리석 조형물에 그랬듯이 2,000번의 여름은 그리스의 기념비적인 문학에도 한층 성숙해진 황금빛과 가을빛을 전해주었을 뿐이다. 그 기념비적 문학이 잔잔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온 땅에 전해주며 시간의 부식에서 스스로 보호한 덕분이었다.(156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그들의 작품은 아침 못지않게 정묘하고 옹골차게 완벽하며 아름답다
옛 고전을 원래의 언어로 읽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 어떤 고전도 현대어로 번역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문명 자체가 그런 고전의 번역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아직 영어로 인쇄된 적이 없고, 아이스킬로스의 작품과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작품은 아침 못지않게 정묘하고 옹골차게 완벽하며 아름답다. 후세 작가들의 천재적 재능에 대해 우리가 뭐라 말하더라도 그들은 옛 고전 작가들의 정교한 아름다움과 완성도 및 평생 문학에 바친 영웅적인 노고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설령 있더라도 무척 드물다. 고전 작가들의 이름조차 몰랐던 사람들은 그들을 아예 잊을 작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학문적 능력과 천분을 갖춘 후에 그들을 잊자고 말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일 것이다. (157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기왕 책을 읽을 바에는
우리는 이미 문자를 배웠기 때문에 기왕 책을 읽을 바에는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 4학년이나 5학년 교실에서, 혹은 학교 앞에 있는 가장 낮은 벤치에 앉아 에이 비 에이와 단음절 단어를 끝없이 반복할 수는 없잖은가. (158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플라톤이 나와 같은 마을에 사는데도
고대 세계의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말했고, 그 이후로 모든 시대의 현인들이 그 가치를 확실히 보증한 황금처럼 빝나는 가르침이 우리 옆에 있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쉬운 읽을거리' 및 『초급 독본』과 『교과 독본』까지만 읽는 법을 배우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미숙한 사람과 초보자를 위한 『리틀 리딩』과 이야기책을 읽는다. 따라서 독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와 사고까지 지극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소인족과 난쟁이의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
나는 이 콩코드 땅이 지금까지 배출한 사람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 즉 여기서는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들이 플라톤의 이름을 거론하는 걸 듣고서도 내가 플라톤의 저서를 읽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플라톤이 나와 같은 마을에 사는데도 내가 그를 만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그가 바로 옆집에 사는데도 그가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거나 그의 말에 담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플라톤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지혜가 담긴 『대화편』이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지만 나는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우리는 교양이 없고 천박하며 무지하다.(161∼162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독서> 中에서
높이 떠 있는 별과 별자리 사이를 거니는 고요한 여행길
나는 어떤 연구보다도 고전 연구에서 가장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고전을 곁에 놓고 앉아 있으면 삶이 저 멀리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아주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문학의 경우에 그렇듯, 고전도 부풀리지 말고 널리 통하는 참된 터전에서 보아야지, 버릇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요한 시간에 그리스와 라틴 작가들의 유람여행을 찬찬히 생각해보면서, 유람객들이 아름다운 그리스나 이탈리아 풍경을 바라볼 때보다 더 커다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사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호머, 헤시오도스에서 호라티우스, 유베날리스에 이르는 저 대로는 아피아가도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옛 고전을 읽거나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 남긴 저작을 통해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높이 떠 있는 별과 별자리 사이를 거니는 고요한 여행길과 같다. (293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강』중에서
시는 인류의 신비
시는 인류의 신비이다.
시인이 시에 쓴 말은 분석할 수 없다. 시인에게는 낱말 하나하나가 글월이고, 소리마디 하나하나가 낱말이다. 그의 음악에 노랫말로 쓸 만한 말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듣는다면, 말이 들리지 않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놀라울 정도로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운문이 수없이 많을지 모르나, 고비가 닥친 바로 그 순간에 쓰여진 것은 아닌 탓에 정말 시가 되지는 못한다. 시가 쓰여지는 것 자체가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시는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희미해지는 생각에서 붙잡아낸 어떤 빛깔이다.
시는 온전하면서도 거칠 것 없는 그 무엇이 나타나 무르익어 문학으로 떨어진 것이고, 잘 익은 그것을 즐기는 독자들 역시 무엇에도 거칠 것 없이 온전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425∼426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