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3편인데, 그 가운데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다룬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 말고도 세 편이 더 있는 셈인데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과 『탄원하는 여인들』이 나머지 작품들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기적으로 『오이디푸스 왕』바로 다음을 배경으로 삼고, 이 작품을 뒤따르는 얘기는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들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공연은 그가 죽은 뒤인 기원전 401년에 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엔 아흔이 넘은 시인이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대목이 담겨 있어 유난히 눈길을 끈다. 그가 코로스의 입을 빌려 노래한 다음 대목은 그리스 비극을 매우 높이 평가했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되도록 일찍 죽는 것이 차선이며, 가장 어리석은 것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온갖 세파에 시달리는 저 노인을 보라! 오래 살면 칭찬도 사랑도 친구도 멀어지고 남는 것은 고생뿐이며, 그것의 구원자는 죽음뿐이다."


(그런데 천병희 선생님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노래는 술에 취해 사로잡힌 반인반마의 실레노스(Silenos)가 미다스(Midas) 왕에게 말해주었다는 인생의 지혜를 소포클레스가 나름대로 부연한 것'이라고 한다.)

온갖 재앙을 다 겪고 난 다음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앞도 보지 못하고 이국 타향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부랑자 신세로 전락한 늙은 오이디푸스의 '비참한 노년'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라면 아마도 '효녀 심청'을 닮은 듯한 딸 안티고네가 늘 곁에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지만, 일순간 '삶 자체가 비극'으로 뒤바뀌고 말았던 오이디푸스의 마지막은 삶의 덧없음을 한탄할 겨를조차도 남겨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토록 완전한 파멸이 있었으므로 죽음이 진정 구원처럼 다가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 *



  오이디푸스

그리하여 친구들 사이에 변함없는 마음가짐도
오래 버티지 못하며, 도시와 도시 사이도 마찬가지요.
이 사람에게는 오늘, 저 사람에게는 내일
즐거움이 쓰라림으로, 그러다가 다시 사랑으로
변하니까요. 지금은 그대와 테바이 사이가
화창한 날씨지만, 다가오는 수많은 시간이
수많은 밤과 낮을 낳고 나면, 그 과정에서
오늘의 소중한 화목도 사소한 이유에서 창에 의해
깨지고 말 것이오.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612∼620행




  오이디푸스

하지만 원치 않는 친절이 무슨 즐거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누군가 자네가 간절히 원할 때는
아무 선물도, 아무 도움도 주려고 하지 않다가
자네 마음의 욕망이 다 채워져 친절이 더 이상
친절일 수 없을 때 주는 것과 같은 것이네.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775∼779행



 ('오이디푸스의 변명'이라 불릴 만한 대목이다.)

  오이디푸스

후안무치한 자여, 자네의 그따위 말에 어느 쪽 노인이
더 망신스러울 거라 여기는가? 나일까, 자네일까? 자네는
자네 입으로 살인이니 근친상간이니 재앙이니 하는 말을
내게 내뱉고 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가련하게도
본의 아니게 참고 견뎠던 것이라네. 옛날부터 우리 집안을
미워하신 신들에게는 그러는 것이 즐거웠으니까 말일세.
사실 나만 떼어놓고 보면, 자네는 내게서 어떤 죄과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네. 그것을 갚기 위해 내가 이렇게
나 자신과 내 육친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과 말일세.
자, 말해보게. 아들의 손에 죽을 운명이라는
어떤 신의 말씀이 신탁으로서 내 아버지께 다가왔기로서니,
그때는 아버지께서 낳으시지도 않고 어머니께서 잉태하시지도
않아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나를 자네가
그 일 때문에 비난한다면, 어떻게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실제로 그랬듯이, 불행하도록 태어나
누구에게 무엇을 행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내 아버지와
치고받다가 아버지를 죽였기로서니, 이 본의 아닌 행위를
자네가 나무란다면, 어떻게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머니와의 결혼에 관해서도 말하겠네. 가련한 자여,
자네의 누이였던 그분과의 결혼에 관해 말하도록
나를 강요하디니 자네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렇게까지
자네가 불경한 입을 놀렸으니 나도 잠자코 있을 수 없네.
그분은 어머니였어. 그래, 내 어머니였어. 이 무슨 불행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몰랐고, 그분도 모르셨어. 그리고 그분은
자신에게 치욕이 되도록 자신이 낳으신 아들인 내게 자식들을
낳아주셨어. 하지만 나는 이 한 가지만은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의도적으로 나와 그분을 헐뜯고 있지만, 나는
본의 아니게 그분과 결혼했고, 이런 말도 본의 아니게 하는 것이네.
그분과의 결혼에 있어서도, 그리고 자네가
언제나 심한 욕설로 윽박지르는 친부 살해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나를 죄인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네.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960∼990행



 

         코로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일이라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지지요.
힘없고,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모두 동거하는 노년이.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224∼1238행


 

         코로스

보라, 새로운 재앙들이, 운명으로 무거워진
재앙들이 새로이 닥치는구나, 눈먼 나그네로부터.
아니면 혹시 운명이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일까?
신들의 포고들을 공허한 것이라 할 수 없으니까.
시간은 언제나 그 포고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다네, 어떤 것들은 넘어뜨리고,
어떤 것들은 다음날 도로 높이 일으켜 세우며.
(천둥소리가 들린다)
하늘의 저 천둥소리! 오오, 제우스시여!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448∼1457행



 

      안티고네

불행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도 있나 봐요.
내가 이 손으로 아버지를 모시던 동안에는
즐거울 리가 없는 것도 즐거웠으니까요.

아아,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영원히 지하의 어둠을 입으셨지만,
그곳에 계셔도 저와 이 아우에게
사랑받지 못하시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697∼1703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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