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여행을 이끄는 초대장

 













 


 

오이디푸스 사이클에서 소포클레스는 위대함의 몰락을 다룬다. 하지만 그는 위대함뿐만 아니라 몰락으로부터도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 소포클레스 드라마의 감동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그의 슬픈 인식과, 인간의 경이로운 힘에 대한 그의 존경심, 이 둘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나온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을 오이디푸스 3부작에서 찾는다고 해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3부작의 2부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며 마지막 3부를 장식하는 작품이 그 유명한『안티고네』이다.

사실 이 작품은 너무나 잘 알려져서 누가 무슨 설명을 덧붙이더라도 결국 군더더기만 더할 뿐이다. 이제야 겨우 이 작품의 '원전'을 읽어본 사람은 뭔가를 보탤 형편이 훨씬 열악하다. 그러니 나로선 명작에 대한 감상만 간직할 뿐 감상평은 아예 안 쓰는 게 내 처지에 알맞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이 주는 감동이 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들뜬 마음 때문에 뭐라도 '소감'을 조금 남겨두고 싶은 욕심을 끝내 억누르지 못한다.

어쨌든 나로부터 끌려나오게 마련인 진부한 얘기는 애써 감추는 대신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몇 가지 요소만이라도 간략하게 짚어보고 싶다. 우선 이 작품은 무엇보다 '위대한 걸작'으로 존숭받을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비극은 시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그다운 평가를 내린 바 있고, 많은 인물들이 그 가운데 '안티고네'를 비극 작품의 최고봉이자 완벽에 가까운 예술작품이라고 극구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필요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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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시문학의 최고봉

그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성취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극은 시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보아야 하며, 또 그렇게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최고의 시적인 작업의 목적이 인생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데 있다는 것과, 형언할 수 없는 인류의 고통과 비애, 악의의 승리, 우연의 횡포, 정당한 자나 죄 없는 자의 절망적인 파멸 등이 우리 눈앞에 전개된다는 것은 우리의 고찰에 아주 뜻깊은 것이고 또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세계와 생존의 성질에 관한 중요한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의지의 객관화 가운데 최고 단계에 있어서, 의지와 의지의 충돌은 가장 완전하게 전개되고 무서울 정도로 나타난다. 이 충돌은 인간의 고뇌로 나타나는데, 이 고뇌는 일부는 우연과 오류에 의해서 초래되고, 또 일부는 인간에게서 생긴다. 우연과 오류는 세계의 지배자로서 등장하고, 고의라고 보여질 정도의 간계로 말미암아 운명으로 인격화되어 등장한다. 인간에게 생기는 충돌은 여러 개인의 의지적인 노력이 서로 교착하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의 악의나 부조리를 통해 나타난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시에 대하여> 中에서

 

 

완벽에 가까운 작품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요카스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지만, 아버지가 곧 오빠이고 언니가 곧 어머니라는 사실은 가족의 고난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명을 어기고 형제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 주는데, 이것을 알게 된 왕은 그녀를 산 채로 매장하라고 명령한다. 안티고네는 그를 속이고 먼저 자살하지만,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왕의 아들은 그녀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그녀의 무덤 위에서 자결한다. 스타이너는 『안티고네』야말로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이자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 스티븐 핑커, 『빈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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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생명력이 강하다. 이 작품 또한 수많은 세월 동안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낳고 또 낳았다. 나는 그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쉽게 옮겨 내걸 수 있는 회화 몇 점을 가지고 여기를 장식해 보고 싶다.



 - 베니녜 가녜로, [신께 자녀들을 맡기는 눈 먼 오이디푸스], 1784년,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1. 앙리 레비, [테베에서 벗어나는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19세기경, 랭스 미술관
2. 샤를 프랑수아 잘라베르,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1842년, 루앙 미술관




 - 장 앙투안 테오도르 지루스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788년, 댈러스 미술관




 - 나키포로스 리트라스, [죽은 폴뤼네이케스 앞의 안티고네], 1865년, 아테네 국립미술관




 - 프레데릭 레이튼, [안티고네], 1882년 개인 소장


세 번째로 꺼낼 이야기는『안티고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의 대립'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네이버캐스트에 올라온 글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것만 읽어봐도 충분하다.

"학자들은 크레온과 맞서 대항하는 여인 안티고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여러 가지 분석을 시도했다. 특히 두 인물의 대결구도는 국가와 개인, 보편과 특수, 인간의 법과 신의 법, 남성 질서와 여성 윤리라는 이항으로 설정되곤 했다. 그러나 헤겔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자 라캉, 그리고 여성학자들과 같은 많은 이들이 주목한 안티고네는 다양한 차이를 보이며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었다. 새로운 안티고네의 출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네이버캐스트 [명화 속 그리스 신화]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매력은 시인이 빚은 '언어예술의 아름다움'이다. 이 작품에 담긴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대성'을 노래한 대목은 특히 유명한데, 무려 2,500년 전쯤 살았던 옛시인이 도대체 무얼 봤길래 '인간'을 그렇게 위태롭게 바라보았는지 한번쯤 숙고할 필요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얼마만큼 위험천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 굳이 '시인이 쓴 비극시'까지 읽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 신문과 TV로 전달되는 거의 모든 뉴스들이 한꺼풀만 뒤집어 보면 시인이 걱정했던 바로 그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험성'을 다룬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의 간극이 좀 멀긴 하지만 이 시인의 노래와 2014년 1월에 어느 신문에 실린 눈밝은 학자의 얘기 한 꼭지를 비교해 보라. ☞ 
‘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 인터뷰 기사



이쯤에서 내 얘기를 서둘러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싶다. 더 길게 쓰다가는 이 노시인이 책 속에서 금방이라도 되살아 나와 크게 한번 호통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옛시인의 노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시인(혹은 독자) : "모르겠느냐? 이제는 네 말소리도 듣기 싫다." 
                       나  : "귀가 아프신가요, 마음이 아프신가요?"
    시인(혹은 독자) : "어찌하여 너는 내 아픈 곳을 따지려드는 게냐?"
                        나 : (그만 베끼자. 이러다 한 대 얻어 맞겠다......)
 

졸지에 내 자리에서 내쫒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한마디는 더 하고 물러나야겠다. 이 작품을 읽으면 지금 한창 상영중인 영화 '변호인'도 떠오르고 심지어 '장성택 처형사건'까지도 떠오른다. 참 대단한 작품이다.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 * *


        크레온   모르겠느냐? 이제는 네 말소리도 듣기 싫다.
        파수꾼   귀가 아프신가요, 마음이 아프신가요?
        크레온   어찌하여 너는 내 아픈 곳을 따지려드는 게냐?
             파수꾼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범인이고, 저는 귀를 아프게 할 뿐이지요. 

 - 《안티고네》316∼319행



   (다음 대목은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대성'을 노래한 유명한 구절이다.)

        코로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

사람은 사나운 겨울 남풍 속에서도
잿빛 바다를 건너며 내리 덮치는
파도 아래로 길을 연다네.
그리고 신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무진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대지를
사람은 말馬의 후손으로
갈아엎으며 해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서는 쟁기로 못살게 군다네.

그리고 마음이 가벼운 새의
부족들과 야수의 종족들과
심해 속의 바다 족속들을
촘촘한 그물코 안으로 유인하여
잡아간다네. 총명한 사람은.
사람은 또 산속을 헤매는 들짐승들을
책략으로 제압하고,
갈기가 텁수룩한 말을 길들여
그 목에 멍에를 얹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산山소를 길들인다네.

또한 언어와 바람처럼 날랜 생각과,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심성을 사람은 독학으로
배웠다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노숙하기가
싫어지자 서리와 폭우의 화살을 피하는 법도.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 대비 없이 사람이 미래사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다만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수단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라네.

하지만 사람은 고통스런 질병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이미 궁리해냈다네.

발명의 재능에서
기대 이상으로 영리한 사람은
때로는 악의 길을 가고,
때로는 선의 길을 간다네.
그가 국법과,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존중한다면 그의 도시는 융성할 것이나,
무모하게도 불미스런 것과 함께하는 자는
도시를 갖지 못하는 법이라네.

 - 《안티고네》332∼372행



 

      안티고네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不問律)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 불문율들은 어제 오늘에 생긴 게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두려워 그 불문율들을
어김으로써 신들 앞에서 벌 받고 싶지 않았어요.


 - 《안티고네》453∼459행




        크레온 

하지만 쓸모없는 자식들을 낳은 사람은 자신에게는
걱정거리 말고, 적들에게는 많은 웃음거리 말고
달리 무슨 씨를 뿌렸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니 내 아들아, 너는 향략에 끌려
한 여인 때문에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막상 한집에 살며 악녀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면
품안에서 금세 식어버린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 《안티고네》645∼651행




        하이몬

아버지, 제게는 아버지의 성공보다 더 소중한 재물은
아무것도 없어요. 자식들에게 성공하는 아버지의 영광보다
더 자랑스러운 게 어디 있으며, 아버지들에게
성공하는 자식들보다 더 자랑스러운 게 어디 있겠어요?
하오니 앞으로는 아버지 말씀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는 한 가지 생각만 마음속에 품지 마세요.

누군가 자기만 현명하고, 언변과 조언에서 자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막상 검증해보면 속이 비어 있음이 드러나지요.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것은 수치가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겨울철 급류 가에서 굽힐 줄 아는 나무들은
그 가지들을 온전히 보존하지만,
반항하는 나무들은 뿌리째 넘어지고 말지요.
마찬가지로 돛의 아딧줄을 당기기만 하고
늦춰주지 않는 사람은 배와 함께 넘어져
용골을 타고 항해를 계속하게 될 거예요.

 - 《안티고네》701∼717행



 

           하이몬   테바이 백성들이 하나같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크레온   내가 어떻게 통치해아 하는지 백성들이 지시해야 하나?
         하이몬   거 보세요. 이제는 아버지께서 애송이처럼 말씀하시네요.
         크레온   이 나라를 내가 아닌 남의 뜻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고?
         하이몬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크레온   국가를 통치하는 자가 곧 국가의 임자가 아니란 말이냐?
         하이몬   사막에서라면 멋있게 독재하실 수 있겠지요.

 - 《안티고네》733∼739행



 

         코로스 

사랑이여, 싸움에 지지 않는 자여,
사랑이여, 재물을 결딴내는 자여,
너는 처녀의 부드러운 볼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가 하면, 바다와
들판의 농가들 사이를 헤매는구나.
불멸의 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루살이 인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며,
네게 잡힌 자는 미쳐 날뛰는구나.


의로운 자들의 마음을 불의로,
치욕으로 인도하는 것도 너이며,
여기 이 남자들에게 집안싸움을
불러일으킨 것도 너로구나.

하지만 고운 신부의 두 눈썹 아래
환히 비쳐 나오는 매력이,
위대한 법규들과 나란히 지배하는 힘이
승리를 거두니, 이는 불패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유희하고 있음이로다.

 - 《안티고네》781∼800행




 

      안티고네

아아, 불행한 혼인을 하신 오라버니,
당신은 당신의 죽음으로
아직 살아 있는 나를 죽이셨어요!


        코로스 

경건한 행위는 나름대로 칭찬받아 마땅하오.
하지만 권력은, 그것을 누가 쥐든,
침범당하는 것을 용납지 않소. 그대를
망친 것은 그대의 자의적 기질이외다.

- 《안티고네》869∼875행



 

    테이레시아스   아아, 인간들 중 누가 알고 있으며, 누가 생각하고 있는가···
         크레온   무엇을 말이오? 무슨 보편적 진리를 말하려고?
테이레시아스   올바른 생각이 얼마나 값진 재산인지를!
         크레온   생각건대, 어리석음이 가장 큰 손실인 그만큼이겠지요.

 - 《안티고네》1048∼1051행


 

 

            사자 

한 인간이 사는 낙(樂)을 잃어버렸다면, 나는 그를
살아 있다고 생각지 않고 산송장으로 여기니까요.
원하신다면 집에 큰 재물을 쌓아두고 왕처럼
화려하게 살아보세요. 하지만 거기에 아무런 낙이 없다면,
행복이 아닌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위햬
나는 동전 한 푼 지불하지 않을래요.


 - 《안티고네》1166∼1171행



 

        코로스 

저기 왕께서 몸소 이리로 오고 계시오.
너무나도 분명한 기념비를 손에 들고.
하지만 이것은,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남의 미망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실수 탓이오.

 - 《안티고네》1257∼1260행



 

        크레온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 운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
나에게 마지막 날을 가져다주게 하라!
최고의 운명이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가 더 이상 다른 날을 보지 않도록!


 - 《안티고네》1328∼1332행



  

        코로스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모독되어서는 안 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늘그막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네.


 - 《안티고네》1348∼1353행(마지막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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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체험한 것인가?
    from Value Investing 2016-03-13 01:42 
    소위 '인류를 대표한다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내리 세 판을 불계패로 당하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 앞에서 우리가 옴짝달싹 못하고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당장 '북한 핵' 문제만 하더라도 어느 영특한 천재가 이미 오래 전에 찾아낸 '새로운 기술'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엄청난 계산능력'을 자랑하는 수퍼컴퓨터가 바둑의 최고수 한 명을 단지 내리 세 번 꺾었다고 해서 너무 호들갑
  2. 어떤 방법을 써도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으로 통했던 포키온
    from Value Investing 2017-01-15 14:06 
    “만일 전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 *에머슨이 유독『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심취했던 게 영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을 만난 영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칼라일은『영웅숭배론』까지 쓴 인물이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칼라일과 에머슨의 영웅관 비교> 같은 텍스트도 금방 눈에 띄는 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