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월든』을 만날 시간


"시인이라면 자신의 전기를 써야 하는가? 훌륭한 일기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가 창조해낸 상상의 영웅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1857년 10월 21일의 일기에서


 * * *


 

어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그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호메로스가 대표적이다. 작가의 삶이 덜 알려질수록 작품이 더욱 신비로운 색깔로 채색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신들의 계보』를 쓴 헤시오도스나 『변신 이야기』를 시로 쓴 오비디우스도 그런 인물들이다.

철학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앙리 베르그송은 아예 대놓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 철학자의 삶은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빛도 던져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호기심은 결코 작품으로만 만족하는 법을 모른다.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끈질기게 그 작품에 따라붙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도 숱한 영웅적인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지만 '현실의 주인공'이었던 작가만큼 생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보다 훨씬 더 생생한 '작가의 진짜 삶'을 구경하고 싶어한다. 작가의 전기가 없다면 일기장이라도 기어이 뒤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의 성정이다.

그런데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경우는『월든』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그의 전부를 다 드러낼 정도로 옹골차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나무랄 데가 거의 없다. 솔직하고 재치 넘치고 원기왕성하고 활달하다. 문장 하나 하나를 파고들수록 깊이도 한량없다. 『월든』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도 자주 손꼽힌다. 그러니 무슨 구차한 말들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 대가의 글은 '신화처럼' 읽어도 나쁠 게 없을 정도다.

나는 『월든』에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의 작품은 모조리 섭렵하다시피 책을 찾아 읽었다. 많은 작품들이 저마다 소로우의 매력을 한껏 더해주는 듯했다. 비록 『월든』만큼 완성도가 탁월한 작품이 아니어도 좋았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반항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하고, 고상한 이 특별한 인물을 거듭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자연의 일부로 보일 만큼 자연 속에 깊이 몰두하는 에세이들도 한결같이 좋았다. 편지에는 진솔함과 따스한 인간미가 스며 있고, 일기엔 간결함과 단단한 결심들과 맑은 고뇌만 담겨 있을 뿐, 원망이나 회한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타고난 본성이 거짓과 불순을 모르는 자연을 너무 닮았다.


(『월든』은 두 번, 『주석달린 월든』은 한 번 읽었지만 '주석' 부분만큼은 가끔씩 더 찾아 읽었다. 다른 작품들 가운데 특히 놓치기 어려운 작품은 그의 처녀작인 『소로우의 강』이다. 원제는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소로우의 진면목'을 가장 생생하게 느꼈다. 소로우는 생애 마지막을 보내던 어느 따스한 봄날에 여동생 소피아에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슈아 어귀를 지나쳤고, 곧 새먼 부룩도 지나칠 즈음, 우리의 배를 가로막는 것은 바람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하고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리다 잠시 후 숨을 거뒀다.)


소로우의 매력에 한껏 이끌린 독자들이라면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과 일기를 전부 찾아 읽더라도 여전히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심을 떨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소로우에 대한 전기가 국내에 제대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성급한 이들은 콩코드와 월든 호수까지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감정마저 느꼈으리라. 나도 한때는『월든』이라는 불후의 작품을 쓴 그 작가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입에 올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았던 소박한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기회를 무의식 중에 계속 갈망해 왔던 것도 사실이리라.


그렇게 소로우를 흠모하고 그리워하면서도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시간들이 한참이나 흐르고 나서야 문득 깨닫게 된 사실 하나가 있었다. 나는 정작 그의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일기와 몇몇 작품을 통해서도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잖이 접할 수는 있었다. 『소로우의 강』을 통해서는 그가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던 형(존 소로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주석달린 월든』을 통해서는 랄프 왈도 에머슨으로 대표되는 '콩코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제법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소로우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케임브리지에 머물렀던 시기와 윌리엄 에머슨(랄프 왈도 에머슨의 형)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스태튼 아일랜드(뉴욕 맨해튼 섬 근처)에 잠깐 머문 때를 빼고는 평생을 콩코드에서만 살았다. 그가 사귄 사람들은 대부분 '콩코드 사람들'이 아니면 '콩코드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에머슨은 꽤나 오랫동안 이름만 알고 지내왔었다. 나는 정말 엉뚱하게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나서야 겨우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책에 대한 열렬한 찬미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에머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먼 길을 돌아서 '소로우의 베프'였던 에머슨의 작품들을 만났지만, 아쉽게도 그의 책에서 '소로우의 이름'을 직접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에머슨에 대해서 쓴 페이퍼에 달린 어느 알라디너 덕분에 나는 무심코 '소로우 에머슨'을 검색하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새롭게 발견한 책이『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였다. 곧바로 동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 읽었다. 절판된 탓에 중고상품으로 주문했던 책은 빌린 책을 다 읽은 시점에 정확하게 맞춰서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몹시 반가웠다. 드디어 내 책이 되었으니 말이다.)


거듭 얘기하지만『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는 정말 뜻밖의 책이었다. 내가『월든』을 거의 네 번쯤 읽는 동안에도 미처 자세히 알 수 없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잠시도 '책 곁'을 떠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주석달린 월든』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수많은 궁금한 얘기들이 거기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모습이 궁금했던 여러 인물들 사진은 특히 반가웠다.『소로우의 일기』와 『소로우의 강』을 통해서 언뜻 언뜻 엿볼 수 있었던 '소로우와 에머슨의 우정과 갈등'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밑줄 하나 긋지 못해 애를 먹은 대신에 나는 기억해둘 만한 부분들을 '독서노트'에 부지런히 옮겨 적었는데, 그 분량이 자그만치 12쪽이나 되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에 대해서 과연 내가 얼마나 압축해서 이 글에 담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소로우와 에머슨의 관계'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주석달린 월든』에 딸린 '주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마침『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를 감격에 겨워 읽고 난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그 책 속으로, 다시 말하자면『월든』속으로 풍덩 뛰어들 더없이 알맞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나는『주석 달린 월든』에 담긴 '주석'을 다시금 세세히 살폈다.『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에 담긴 내용들과 '주석'에 쓰인 내용들이 얼마만큼 긴밀하게 서로 호응하고 연결되는지를 다시금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로우가 쓴『월든』에는 '에머슨'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책 속에서 '에머슨'을 수없이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석달린 월든』은 그런 근거들을 더없이 자세히 밝혀 놓은 책이다. 그 책을 다시 읽어 보니 주석에 '에머슨'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만 무려 59쪽에 달한다. 에머슨의 아들 에드워드 에머슨의 흔적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에드워드 에머슨이 쓴 책은『소로와 함께한 나날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나와 있다.)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에 등장하는 숱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미『주석달린 월든』에서도 적잖이 자주 소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에 담아 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무적인 데가 있었다.『주석달린 월든』의 '주석'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과 그들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들'을 '주석' 특유의 작은 글씨와 딱딱한 서술 방식으로 어렵사리 알아차릴 수 있었던 데 비해, 정확하게 똑같은 이야기가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라는 책에서 보여준 전기적인 서술방식에서는 얼마만큼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서술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스무 살 청년이었던 소로우와 그보다 열네 살이나 선배였던 에머슨이 '처음으로 만나는' 광경에 대한 묘사 하나만 보더라도 딱딱한 주석에 담긴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1837년 4월 9일 일요일, 헨리는 브라운 부인과 함께 도보로 십분 거리에 있는 에머슨의 집으로 향했다. 에머슨이 어머니를 모시고 부인과 아들, 세 명의 여자 하인과 살던 하얀 대저택은 케임브리지와 보스턴으로 가는 길목에 2에이커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축한 지 8년밖에 안 된 건물은 당시 뉴잉글랜드 풍의 건물과 달리 천장이 높고 창문이 큼지막했다. 주인의 사회적 위치를 잘 드러내는 인상적인 집이었다.


에머슨은 현관에서 인사를 건네는 이 하버드 대학 학생이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동창들에게 헨리는 고개를 숙인 채 발끝만 보고 걷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머슨 앞에선 달랐다. 에머슨과 같은 뛰어난 지성인 앞에서 헨리는 갑자기 생기를 띠었다. ……


헨리는 아무 부끄럼 없이, 더러 젊음을 과신하는 양 자신 있게 얘기했다. 에머슨은 "혁명을 계획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거인"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헨리의 입을 통해 사회, 종교, 고전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오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에머슨은 이런 뛰어난 인재가 어떻게 그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배출된 것인지 경이로웠다. 그는 늘 소로우의 집안과 그 환경을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헨리 같은 인재가 그 불우한 환경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시실이 그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21쪽)


 - 하몬 스미스 지음,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첫 만남> 중에서


(5년 만에 다시 펼친『주석달린 월든』은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내 눈에 들어왔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했던 많은 인물들이 『월든』속에도 여러 곳에 숨어 있었다. 에머슨이 『위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셰익스피어'는『월든』에서도 역시 많은 곳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소로우가 에머슨의 서재에서 빌렸던 많은 책들이『월든』속에 녹아 있는 점도 이전과는 달리 보였다. 가령, 소로우가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번역해서 몇몇 잡지에 기고할 수 있었던 것도 '에머슨의 서재'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

 

다시금『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에 담긴 내용을 계속 이어 나가자. 이 책의 원제는 『My Friend, My Friend : the story of Thoreau's relationship with Emerson』이다. 두 사람의 우정이 핵심이지만 무게 중심이 소로우에게 좀 더 쏠려 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서로의 생각' 말고는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그토록 개성이 넘치는 두 사람의 우정이 25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도리어 신기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졌던 해는 1837년이었다. 그해 8월 30일에 스무 살이던 소로우는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하버드를 졸업했다. 그래도 그는 '간략한 졸업사'를 하는 졸업생 22명 가운데 끼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졸업식에는 에머슨도 참석했다. 당시 서른네 살이었던 그는 이미 그때 '미국의 문화적 독립선언서'로까지 일컬어지는 <미국의 학자>라는 유명한 졸업식 축사를 할 정도의 저명인사였다. 탁월한 자연 에세이인 《자연》을 출간한지 1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당시 인구 2,000명 정도가 살던 콩코드에서 함께 살았던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가난한 이웃이자 뚜렷한 직업조차 없었던 청년 소로우에게 에머슨은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기댈 수 있는 큰 언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머슨이 소로우의 '후원자'를 자처한 건 결코 아니었다. 독립심이 강한 소로우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도 없었다. 그래도 에머슨은 소로우에게 금전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소로우는 그 댓가로 온갖 허드렛일을 많이 하긴 했지만 말이다. 에머슨은 소로우에게 자신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했고,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도 했으며, '서재 열람'을 허용했고, 탁월한 문인들을 자주 소개해 줬고, 자신의 땅인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은 소로우에게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여준 점이었다.

 

에머슨에게도 소로우는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친구였다. 두 사람의 우정이 작가로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 리디안과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일부러 장기간 유럽 강연 여행을 떠날 때에도 소로우를 믿고 그에게 '온갖 집안일'과 '가족들'을 내맡길 정도였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의 원인들도 적진 않았다. 소로우에겐 좀처럼 다루기 어려운 '논쟁적인 기질'이 아주 강했다. 에머슨이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고집하는 동안, 소로우가 반항적으로 대응한 것도 둘 사이의 갈등을 키우는 요소였다. 에머슨의 아내 리디안에 대한 소로우의 애착심도 둘 사이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때때로 소로우는 에머슨 때문에 느낀 모욕감이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었고, 분하다는 생각에 에머슨이 내민 화해의 손짓마저 거두어들였고 에머슨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배신행위로 여겼다.


"내 친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노라. 진실도 고결함도 신성한 것도 없다 ……' 그러나 이러한 말은 바로 자기가 덕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아무리 못났어도 그 친구의 행동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와의 관계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소로우는 에머슨이 다른 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은 아니겠지만 차갑고 무심한 말투로라도" 화해를 청했었다고 한 말에 더 낙담하고 말았다. "아!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인간의 온갖 죄를 한데 모아놓은 것 같구나. 그가 나를 천 번이나 의심한다고 해도, 그것을 잔인하게 발설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작은 희망과 기대가 남아 있었다."(252쪽)

 

둘 사이의 관계가 이만큼 악회될 때가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저자는 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소로우가 마음속에 키워온 주관적인 상황 인식'을 꼽는다. 당시 소로우는 자신의 처녀작인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의 실패로 크나큰 자괴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에머슨은 그 책에 담긴 '자신을 패러디한 듯한 일부 내용'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 에머슨은 그 책에 대해 "이 작은 배의 여행 이야기는 성실히 씌어졌지만 그렇게 큰 구슬들을 엮어내기엔 실이 너무 가느다랗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 책을 칭찬했다. 어쨌든 지난 10 년간 소로우의 '천재성'을 주장해 왔지만 그 책이 실패로 끝나자 에머슨 역시 실망이 컸다.)

 

처녀작의 상업적 실패로 타격을 입은 소로우는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좀 더 나은 책을 출판하는 것이 유일한 활로'임을 잘 알고 있었다. 월든 호숫가에 살기 시작한 때로부터 무려 9년이 지난 1854년 8월 9일에 마침내 일곱 번이나 고쳐 쓴 『월든』이 출간되었다. 출판에 응한 티크너앤필즈는 이미 너새니얼 호손, 헨리 롱펠로, 제임스 러셀 로웰, 올리버 웬들 홈스와 같은 최고의 작가들을 영입해 책을 펴내고 있었다. 소로우가 쓴『월든』도 그런 작가들 수준의 저서이고 "에머슨의 글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아 '1류 작가'에게 제공되는 수준으로 인세 15%를 약속했다.

 

책이 출판되자 에머슨은 "마치 자기 동생이 쓴 것인 양 기뻐했다." "즐겁고, 활기가 넘치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찬사가 무조건적인 건 아니었다. 소로우는 "항상 힘 있는 글을 쓴다"고 하면서도 책 자체의 평가는 제한적이었다. "때로는 탁월한 수준까지 오르고" "놀라운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호평했지만 문학사적 가치와 위상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월든』출간 이후 갑자기 유명해진 소로우는 한때 쇄도하는 강연 때문에 바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강연보다는 자연 탐구에 더욱 열정을 쏟으며 계속 글을 써나갔다. 1860년 12월 어느 날 그는 '나무의 나이테를 세다가' 심한 감기에 걸린다. 그때 얻은 병이 끝내 기관지염과 폐결핵으로 이어지면서 그는 결국 45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1862년 5월 9일 소로우의 장례식때 에머슨이 읽은 추도사는 그가 어떤 존재였던가를 우리에게 새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토록 숭고한 영혼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다 보여주기 전에 이승을 떠났다는 것은 모욕이다."


헨리 소로우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거의 숭배"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에머슨은 그것이 전혀 신비스러운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소로우의 '심원한 정신'과 '위대한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소로우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였다. 그는 "진리의 웅변가요 행동가"였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에는 어떤 관심이나 욕망이나 열정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때로는 극단적"으로 흐를 위험도 있었지만, 그의 '거룩한 생애'는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었다.(321쪽)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는 탁월한 두 인물이 나눈 우정 그 자체의 본질을 강조한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졸업 직후 '삶의 현장'에서 '생활고'를 걱정하며 장래를 고민하는 취준생 소로우가 훨씬 더 눈에 띈다. 그리고 그가 문학으로 성공하기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을 눈여겨 보게 된다. 그는 핀다로스의 <송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등을 직접 번역하기도 하고, 무수한 자작시를 끊임없이 썼지만 결국 1840년대 초엽에 그 시들을 모두 버리는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이제 자신의 나이에 맞게 자신의 시재(詩才)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에머슨의 말에 크나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소로우의 에세이'만 읽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시인이 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소로우를 보고 새삼 놀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로우는 단순하게 보자면 '문학가'이면서 '독립적이고 소박한 삶'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모두를 아주 훌륭하게 이뤄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로우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한다." 소로우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거기에 있다. 에머슨은 "진실이라는 선물과 짝 지워지는 하나의 조건은 진실의 활용이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소로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생활인 소로우의 삶'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고 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 바꿀 필요는 별로 없다.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월든』이 '소로우의 곤궁했던 현실적인 삶'에 비해 너무 아름답게 쓰여졌다 하더라도, '신화처럼' 읽어야 할 『월든』을 평범한 에세이로 바꿔 읽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 이유를 나는 『주석달린 월든』의 머리말에서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소로우가 쓰고 있던 것은 분명히 신화였다. 『월든』을 의도된 방향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읽는 독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소로우는 「독서」에서 "올바른 독서,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요즘의 세태가 높이 평가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에게 힘든 운동이다.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이 요구되고, 책을 읽겠다는 마음가짐을 거의 평생 동안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처음 씌어졌을 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 『주석달린 월든』,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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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1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머슨과 소로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두 천재의 만남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고갱과 고흐의 관계처럼 비극적인 결론으로 끝난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oren 2017-04-18 22:52   좋아요 1 | URL
두 사람의 만남은 정말 특별했던 듯해요. 둘 다 ‘자연‘을 깊이 사랑했던 공통점도 중요했고요. 에머슨이 쓴 《자연》이 소로우에게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었는데, 나중에는 소로우가 훨씬 더 ‘자연‘에 동화된 점도 재미있고요. 소로우에게는 에머슨 말고는 엘러리 채닝이라는 시인 정도가 절친이었지만, 에머슨은 당대에 함께 살았던 유명 작가들을 엄청나게 만났더군요. 존 스튜어트 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워즈워스, 헨리 제임스, 찰스 디킨즈, 앨프리드 테니슨, 토머스 칼라일, 알렉시스 토크빌,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월트 휘트먼 등등..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끼고 사랑한 친구가 소로우였지요.

겨울호랑이 2017-04-18 22:56   좋아요 0 | URL
에머슨은 정말 당대의 마당발이었군요^^: oren님 덕분에 소로우와 에머슨을 개별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들의 우정이라는 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oren 2017-04-18 23:57   좋아요 1 | URL
에머슨은 마당발이자 명연설가이기도 했지요. 노예제도에 반대했던 그가 링컨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워싱턴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도 재미있습니다. 에머슨은 나중에 링컨으로부터 ‘미국의 아들‘이란 영광스런 별호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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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th calls slavery an institution... I call it destitution... Emancipation is the demand of civilization˝. 남부는 노예제를 사회제도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destitution이라고 부릅니다. 노예해방은 문명사회의 요구입니다.

그랜드슬램 2017-06-14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전 백두대간을 가면서 월든을 가지고 갔더랬죠! 억수로 비가와서 배낭이 다 젖어 월든이 물에 흠뻑 스며 들었는데 어찌어찌하여 말렸는데 영 훼손되어 다시 구입했지요^^ 개인적으로 소로우의 강도 훌륭하지만 소로우의 일기가 간결하면서도 좋더군요, 생각이 번민이 많을 때마다 읽으면 맑은 공기속에서 녹차를 마시는 것처럼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고 요즘 글이 뜸하시네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oren 2017-06-14 18:23   좋아요 0 | URL
소로우가 일기를 쓰게 된 것도 에머슨의 권유 때문이었더군요. 소로우나 에머슨이나 ‘일기‘를 통해 엄청난 문학적 발전을 이룬 걸 보며 ‘일기‘를 쓰던 습관을 잊어버린 나 자신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더군요. 이젠 ‘일기‘를 다시 쓰려고 해도 너무 어색해서 도무지 그리 할 수도 없다고 느껴지고요. 요즘 계속해서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는데, 적당한 글감이 떠올랐을 때 한두 번씩 글로 끄적거리다가도 금세 그만두고 얼른 다시 셰익스피어에게로 달려가기가 바쁘네요^^

2019-02-08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8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