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


"참된 등산가는 하나의 방랑자이다. 내가 말하는 방랑자는 일찌기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일찌기 인간의 손가락이 닿지 않은 바위를 붙잡거나, 대지가 혼돈에서 일어난 이래 안개와 눈사태에 그 음산한 그림자를 비쳐온 얼음으로 가득 찬 걸리를 깎아 올라가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찬가지로 그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기쁨을 느낀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온 혈관에 욱신거리는 피를 흐르게 하여 모든 냉소의 자국을 파괴하고 비관적인 철학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및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 알버트 머메리(1855∼1895),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中에서

 * * *

꽤 오래 전에 일찌감치 '히말라야'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IMF  이후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갑자기 '정신적 허기'를 극심하게 느꼈는지 한동안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홀로 산 속 깊은 암자에서 온 겨울을 지내기도 하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보름씩이나 걸어가 보기도 한 끝에 결국 히말라야까지 다녀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친구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마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돼지고기 주물럭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호기롭게 주고받으며 여러 친구들 앞에서 껄껄 웃으며 했던 얘기가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히말라야에 가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하하하"

그때 그 친구로부터 들었던 '히말라야'에 대한 또다른 얘기는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그 말 한 마디는 그 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콕 박혀 있었던 듯싶다.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른 후 영화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보면서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 열망'이 다시금 불쑥 뜨겁게 되살아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맞아 바로 저기야. 나도 언젠가는 저길 꼭 가봐야지......"
 
그 영화 속 이야기는 다시 떠올려봐도 언제나 생생하다. 주인공인 카터(모건 프리먼)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철학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함께 병원을 뛰쳐나간 두 사람은 '리스트'를 행동으로 옮긴다.
 
그 두 사람이 스포츠카를 타고 프로펠러 비행기로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도 멋져 보였지만, 아프리카로 건너가 해질 무렵 노을에 물든 '장엄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마침내 만년설에 뒤덮인 히말라야에 오르는 장면들은 내게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영화속 주인공들을 그렇게 이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 영화 덕분에 '하기 힘든 몇 가지'를 생각보다 조금 일찍 실행에 옮겼다고 여기고 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일들은 2008년에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 일주여행을 다녀온 일, 단테의『신곡』을 읽은 일, 그리고 이번에 히말라야를 다녀온 일 등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는 대체 언제쯤 생겨난 것일까?


최근까지 밝혀낸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억 4천만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인도는 곤드와나 초대륙의 일부였으나 떨어져 나가 연간 18~20㎝라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해 5천만 년 전 유라시아 판과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살다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신들이 사는 영역'으로 알고 감히 범접하기조차 두려워했던 시대를 뒤로 하고, 나같은 일반인조차 겁도 없이 수천미터의 봉우리를 오를 수 있게 된 우리 세대야말로 정말 엄청난 행운아들인지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인간은 23시간 59분 59초 동안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드높은 히말라야에 마음껏 오를 수 있다고 해서, 혹은 수천미터의 고봉을 직접 두 발로 다녀왔다고 해서 우리의 본질이 과거에 비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히말라야의 대자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진정한 유래'를 다시금 생각하며, 또한 히말라야의 눈부신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 자신의 발걸음 걸음마다 내가 살아온 자취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앞으로 또 살아갈 나날들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히말라야는 우리들의 삶을 조금은 덜 진부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단지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것뿐이다.

"인간은 비록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생물계의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먼 미래에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희망이나 두려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그 증거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귀한 자질, 가장 비천한 대상에게 느끼는 연민,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가장 보잘것없는 하등동물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는 자비심, 태양계의 운동과 구성을 통찰하고 있는 존엄한 지성 같은 모든 고귀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의 신체 구조 속에는 비천한 기원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찰스 다윈,『인간의 유래
Ⅱ』, 572쪽)



어쩌면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를 내가 너무 거창하게 내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좀 더 보편적이고 단순하게 바꿔 얘기해 볼 수도 있다. 그저 산이 좋아 국내의 여러 산들을 두루 다녀오고 난 뒤에 좀 더 웅장하고 거대한 산을 오르고 싶은 단순한 희망 때문에 히말라야까지 원정을 나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힐링'을 목적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게 된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그 어디에서도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 오지에까지 끌고감으로써 뜻밖에 깊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다른 이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히말라야에는 수많은 트레킹 코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은 고난도의 위험한 트레킹 코스를 일부러 찾아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다고 들었다. 그들중 일부는 가끔씩 트레킹 도중 조난을 당하기도 하며 구조대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건지거나 끝내 목숨을 잃는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들었다. 이쯤되면 그들은 히말라야의 거벽에 도전하는 전문 등반가와 별로 구분이 안될 지도 모르겠다.

100여 년 전, 아무도 감히 오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히말라야의 고봉인 낭가파르밧(8,125m)에 도전했던 '희대의 반항아'이자 '머메리즘'의 창시자인 알버트 머메리의 '범접할 수 없을만큼 도전적인 문장' 속에서도 히말라야에 오를 이유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문장 가운데 가장 온순하게(?) 느껴지는 한 대목인 '한걸음 한걸음이 건강이요, 재미요, 즐거움이다'라는 대목이야말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타당한 대답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분명 '걷는 재미와 즐거움'을 뛰어넘는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곳 만큼 대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과 동시에 우리 존재의 현위치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드러내 주는 곳이 과연 얼마나 더 있을까.

한걸음 한걸음이 건강이요, 재미요, 즐거움이다

위대한 절벽과 광막한 침묵의 설원에 의해 솟구쳐오르는 독립과 자신의 감정은 그 무엇 전적으로 기쁘기만 한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건강이요, 재미요, 즐거움이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김이 솟아 오르는 골짜기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 달라붙는 추악한 독기처럼-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어떤 감정도 '우리 종족의 시조들처럼 충실한 동지들'과 더불어, 어느 냉혹한 절벽을 공격하러 전진하는 감정보다 영광스러울 수는 없다. 설령 바깥쪽으로 툭 튀어나간 기울어진 바위 선반 위에서 오로지 구두징 한 개의 마찰만으로 육체가 희박한 공기 속에 떨어져 내리는 것과, 영혼이 저 위 천국으로(그렇게 희망하자) 날아 오르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일지라도 한 손의 손가락에 아직도 한 파티의 생명을 맡길 수 있고, 아랫도리에 '무릎이 풀어지는 공포'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통쾌한 일은 없다.
 - 알버트 머메리, <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中에서


사실 히말라야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빚어내는 장관에 비하면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조차 견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피라미드가 제아무리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건축물이라고 한들 고작 '어느 한 인간의 돌무덤'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얘기는 분명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한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 - 83쪽


저토록 현자다운 생각을 너무나 태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던 소로가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충고하는 말 또한 가슴깊이 새겨둘 만하다. 노년기에 미심쩍은 체력으로 뒤늦게 히말라야에 오르겠다고 나서봐야 다리만 후들거릴 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은 맛보기 힘들 것이다. 

 

  

여행 의욕

물론 오래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P78)



한때 3년 동안이나 (정규 학교에 다디는 대신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 또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가 좀 더 우울한 어조로 표현한 말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시간은 마치 교도소의 간수처럼 몽둥이를 들고 우리의 등뒤에 서 있다.'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은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든 마찬가지다. 이런 준비를 시작하며 사람들은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완벽한 삶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그 계획에 비하면 삶은 너무나 짧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짐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그런 계획은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자주 좌절을 겪고 장벽에 부딪혀 목표한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게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무엇인가를 하거나 즐길 수 있는 능력도 전과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온 생애를 바쳐 정성을 기울여 얻은 것을 노년에 이르러 즐기지 못하게 된다. 또는 그토록 어렵게 다다른 지위인데 감당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런 것들은 너무 늦게 사람을 찾아온다. 아니면 반대로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 특별한 성과를 거두려 했을 때는, 사람이 그 목표에 너무 늦게 도달한다.

 

 

어쩌면 나도 '히말라야'를 정말 갈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던 건 올해 2월 초순이었다. 이미 2005년과 2006년에 연달아 EBC(Everest Base Camp)와 ABC(Annapurna Base Camp) 코스로 트레킹을 다녀오신 선배 한 분이 올해 4월 하순에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 가운데 하나인 Langtang을 가기로 했다는 '소문'을 우연히 듣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나는 일고의 고민도 없이 거기에 '합류'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아직도 빈자리가 남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카트만두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정말 순식간에 결정이 났고 그날 이후로는 '히말라야'에 갈 날만 헤아리며 지내왔다.

우리 일행은 당초 7명이 출발하기로 했으나 중도에 사정이 생겨 2명이 빠지고 나중에 무려 5명이 더 합류하게 되면서 총 10명으로 불어났다. 비록 이번 트레킹 때문에 서로 난생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지만 결국 알고보면 '친구의 친구'인 셈이었고, 또한 친구들 끼리는 보통 이삽십 년 이상씩 알고 지내온 터여서 '팀웍과 분위기'는 정말 더 바랄 게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우리 일행의 주축은 원정대장이신 장대장님이었다. 더군다나 그 분의 친구분('79학번 경영학과 동기생)이 마침 네팔 카트만두에서 목사님으로 활동하고 계셨고,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에 목사님께서도 네팔리(네팔 사람) 비서와 함께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 덕분에 네팔 현지에서의 모든 트레킹 준비(숙소, 가이드 및 포터 채용, TIMS 카드 작성등)는 목사님께서 도맡아 주셨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일행들은 그저 '항공편 예약'과 '개인 몸 만들기'와 '개인 준비물'만 갖추고 비행기에 탑승만 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비용'은 차마 '공개'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실비'만 들었기 때문에 부담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최상의 조건'으로 트레킹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히말라야 원정에 관한 거의 모든 궁금증들은 '카톡 채팅방'을 통해 서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좀 더 구체적인 정보들은 다음 카페『야크존』을 통해 각자가 스스로 해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국내에서의 '예비 모임'은 세 차례 가졌는데, 우리 일행 가운데 마침 작년에 홀로 이십여 일에 걸쳐 ABC 라운딩을 다녀온 이○○ 상무를 통해 첫모임 때부터 '랑탕 지도'를 확보한 것을 비롯해서 '경험자들의 다양한 체험담'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모임때마다 '술자리'를 옮겨가며 '팀웍'을 탄탄히 다진 덕분에 훗날(?) 네팔 히말라야에서 열흘 이상 함께 동고동락하는 데에도 든든한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히말라야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일 큰 걱정은 물론 '체력 문제'였다. 그 외에도 3,000m 넘어 5,000m에 가까운 고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고소 적응 문제'와 '식사 문제'도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에 물론 등산을 좋아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산을 찾는 횟수가 해마다 손으로 꼽을만큼 뜸했던 데다가 트레킹을 앞두고도 별달리 '몸 만들기'에 적극 나서지도 못한 터여서 과연 열흘에 가까운 기간 동안 내내 고된 산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소 적응 문제'와 함께 현지에서 직접 맞닥뜨려 볼 작정이었다. 산길을 오래 걷다보면 혹시 저절로(?) 다리에 힘이 붙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허튼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여행 출발을 열흘 정도 남겨두고 준비물 리스트를 출력해 보니 생각보다 이것저것 새로 사야할 물건들이 엄청 많았다. 침낭과 자켓, 등산화 등 기본적인 등산용품들은 기존에 갖춘 게 있으니 새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으나, 카고백을 비롯하여 기능성 셔츠와 바지 등 여벌의 등산복과 기능성 내의 및 고소내의, 헤드랜턴과 선글라스 등등을 준비하느라 당산동에 위치한 OK아웃도어닷컴을 세 번씩이나 다녀와야 했다.

출발 이틀 전에 환전을 하고 밑반찬과 초콜릿 등 먹거리를 비롯, 두통약과 감기약 등 구급약품을 갖추는 것으로 준비를 마치고 카고백에 짐을 꾸려보니 거의 20kg에 육박했다. 물론 내가 메고 갈 배낭과 그 속에 담아갈 카메라 등을 제외한 무게였다. 히말라야 트레팅이 난생 처음이라 준비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쉽사리 제외하거나 줄이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네팔에 도착한 첫날 저녁에 우리 일행 모두가 한꺼번에 카고백을 열고 '불필요한 짐 줄이기 작업'을 거친 덕분에 각자 어느 정도씩은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우리가 다녀올 코스는 대략 샤브루베시를 출발해서 랑탕계곡을 지나 캉진 곰파까지 올라간 후, 거기서 체르코리(4,984m)와 랑시사카르카(4,160m)까지 갔다가 다시 샤브루베시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지에서의 '컨디션'을 봐가면서 하산하는 길에 고사인쿤드(4,380m)까지 오를 수 있겠다 싶으면 '거기까지' 돌고 오자는 것이었다.


 - 랑탕 / 헬람부 / 고사인쿤드 지도



 - 우리가 실제로 트레킹한 코스(빨간색 점선)




위의 지도에 표시된 '경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일행은 결국 캉진 곰파를 거쳐 '체르코리'까지만 오르고, 하산하는 길에 오르기를 원했던 '고사인쿤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물론 '현지'에서의 상황이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했기 때문이지만, 그 대신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일정을 무려 3박 4일씩이나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의 일정표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겠지만 우린 예정보다 무려 3일이나 앞당겨 카트만두에 도착하게 되었고, 무척이나 매력적인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서 1박 2일', 그리고 '카트만두 시내에서 하루'를 더 마음 내키는 대로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몰론 '히말라야의 품속'에서 생각보다 너무 일찍 떠나온 점에 대해서는 각자 마음속으로 적지않은 미련도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래도 좀처럼 가기 힘든 먼 나라 네팔에 와서 '랑탕 트레킹 & 포카라 관광 & 카트만두 관광'을 한꺼번에 모두 즐겼으니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훨씬 더 컸던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우리가 이토록 자유롭게 일정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네팔에서 14년째 살고 계셔서 '현지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는 목사님이 계셨기 때문이고(모든 추가비용은 우리가 쓰는 만큼만 지불하면 되는 시스템이었고, 항공편과 전용차량, 숙소 및 음식점 예약 등 가이드로서의 모든 역할은 목사님이 도맡아 주셨다.), 또다른 한가지는 우리 일행들간의 '의견통일'이 비교적 아주 원할하게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 우리 일행들의 '실제 일정' 요약  
 



- 네팔 카트만두에 착륙하기 몇십분 전부터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이 마치 '구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숱한 등반가들과 트레커들이 드나들었던 '카트만두'에 마침내 착륙하기 직전.



 -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 전용차량에 카고백을 옮겨싣는 모습.



 - 카트만두 시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에 위치한 '전용 숙소'



 - 현지 가이드 '텐디'와 장대장님이 '트레킹 코스'에 대해 심각하게(?) 협의 중.



 - 타멜로 이동, 음식점 『빌라 에베레스트』에서 점심 겸 저녁 식사
    내일까지는 '이동'만 있을 뿐 산행이 없는 관계로 단합을 위해 '폭탄주' 한잔씩 만드는 중.



 - 식사를 마치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인 '타멜' 시내를 구경하는 중. (네 분은 고교 동기생)



 - '정품'만 취급한다는 캐시미어 제품 매장에 들러 물건을 만져보는 중, 오늘은 '구경'이 주목적.
    히말라얄를 다녀온 뒤 목사님 사모님을 대동하고 이 가게에 다시 들러 가디건을 몇 벌 샀다.
    품질좋은 캐시미어 제품들이 국내가격의 1/3∼1/5에 불과하기 때문에 네팔 제품 가운데 특히 인기가 좋다.



 - 레코드가게 앞에서 촬영한 타멜 거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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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히말라야로 들어서다.
    from Value Investing 2013-06-03 14:15 
    오늘은 드디어 '히말라야'에 오르기 위해 '카트만두에서 샤브루베시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밤 타멜 시내에서 일찍 돌아온 이후 일행중 몇몇이 모여 숙소에서 밤늦게까지 술잔을 더 나눴었다. 오늘까지도 '이동'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나중에는 애주가 한 분이 한국에서 준비해온 '커티샥'까지 아낌없이 비웠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다녀온 이○○상무의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담이 한참이나 이어졌고, 그밖에
  2. 다시『월든』을 만날 시간
    from Value Investing 2013-12-10 01:18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 *(『주석달린 월든』 31쪽)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책은『월든』과 『주석달린 월든』달랑 두 권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봄에 한꺼번에 무려 여덟 권을 더 샀었다. 그때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예정이었던 히말라야 트레킹 때 짐꾸러미에 챙겨 넣을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소로우가 쓴 책이라면 따져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