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
"참된 등산가는 하나의 방랑자이다. 내가 말하는 방랑자는 일찌기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일찌기 인간의 손가락이 닿지 않은 바위를 붙잡거나, 대지가 혼돈에서 일어난 이래 안개와 눈사태에 그 음산한 그림자를 비쳐온 얼음으로 가득 찬 걸리를 깎아 올라가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찬가지로 그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기쁨을 느낀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온 혈관에 욱신거리는 피를 흐르게 하여 모든 냉소의 자국을 파괴하고 비관적인 철학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및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 알버트 머메리(1855∼1895),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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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일찌감치 '히말라야'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IMF 이후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갑자기 '정신적 허기'를 극심하게 느꼈는지 한동안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홀로 산 속 깊은 암자에서 온 겨울을 지내기도 하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보름씩이나 걸어가 보기도 한 끝에 결국 히말라야까지 다녀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친구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마포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돼지고기 주물럭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호기롭게 주고받으며 여러 친구들 앞에서 껄껄 웃으며 했던 얘기가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히말라야에 가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하하하"
그때 그 친구로부터 들었던 '히말라야'에 대한 또다른 얘기는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그 말 한 마디는 그 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콕 박혀 있었던 듯싶다.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른 후 영화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보면서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 열망'이 다시금 불쑥 뜨겁게 되살아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맞아 바로 저기야. 나도 언젠가는 저길 꼭 가봐야지......"
그 영화 속 이야기는 다시 떠올려봐도 언제나 생생하다. 주인공인 카터(모건 프리먼)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철학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함께 병원을 뛰쳐나간 두 사람은 '리스트'를 행동으로 옮긴다.
그 두 사람이 스포츠카를 타고 프로펠러 비행기로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도 멋져 보였지만, 아프리카로 건너가 해질 무렵 노을에 물든 '장엄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바라보고 마침내 만년설에 뒤덮인 히말라야에 오르는 장면들은 내게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영화속 주인공들을 그렇게 이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 영화 덕분에 '하기 힘든 몇 가지'를 생각보다 조금 일찍 실행에 옮겼다고 여기고 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일들은 2008년에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 일주여행을 다녀온 일, 단테의『신곡』을 읽은 일, 그리고 이번에 히말라야를 다녀온 일 등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는 대체 언제쯤 생겨난 것일까?
최근까지 밝혀낸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억 4천만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인도는 곤드와나 초대륙의 일부였으나 떨어져 나가 연간 18~20㎝라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해 5천만 년 전 유라시아 판과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살다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신들이 사는 영역'으로 알고 감히 범접하기조차 두려워했던 시대를 뒤로 하고, 나같은 일반인조차 겁도 없이 수천미터의 봉우리를 오를 수 있게 된 우리 세대야말로 정말 엄청난 행운아들인지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인간은 23시간 59분 59초 동안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드높은 히말라야에 마음껏 오를 수 있다고 해서, 혹은 수천미터의 고봉을 직접 두 발로 다녀왔다고 해서 우리의 본질이 과거에 비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히말라야의 대자연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진정한 유래'를 다시금 생각하며, 또한 히말라야의 눈부신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 자신의 발걸음 걸음마다 내가 살아온 자취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앞으로 또 살아갈 나날들을 새롭게 그려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히말라야는 우리들의 삶을 조금은 덜 진부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