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은 내가 네 번이나 읽은 셈 치는 애독서 가운데 하나다.
맨 처음으로 읽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기간이었다. 그때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 몽테뉴와 알고 지낸지 어언 39년이 흘렀다. 몽테뉴의 책은 어느새 '평생을 함께 하는 길동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읽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고, 세 번째로 읽은 건 6년 전쯤이다. 네 번째로는 '필사'를 하느라 꼼꼼히 다시 읽었다. 필사한 내용을 교정 보느라 또다시 '필사한 부분'을 두어 번 더 읽었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는 '필사한 부분'만 따로 읽은 적도 있으니, 이래저래 따지자면 나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적어도 예닐곱 번쯤은 읽은 셈이다. 그러니 몽테뉴와 수상록에 대한 애착이 유별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을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싶은 열망은 굴뚝같았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어쨌든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 그가 쓴 재치있는 문장들을 여럿 소개하고픈 욕심이 컸는데, 컴퓨터 화면을 켜 놓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가 필사한 부분들을 꺼내 펼쳐서 '몽테뉴 수상록'을 설명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원고'없이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임기응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도를 여러 차례 '녹화'에 담아 봤는데, 녹화 시간만 엄청 잡아먹고, 결과물은 매번 신통찮아서, 결국 그 영상은 편집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몽테뉴의 엑기스는 필사한 부분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는데, 이걸 재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① (1∼116쪽)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② (114∼349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① (351∼593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② (595∼728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③ (733∼865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① (870∼994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② (995∼1112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③ (1116∼1248쪽)
그런데, 고되게 필사한 부분들을 영상에 담는 걸 포기하고 나니, 몽테뉴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갑자기 몹시 수월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이미지들을 발굴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5 분짜리 동영상에 일일이 자막을 다는 '친절'까지도 베풀 수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들은 왜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자막을 달아주는 것일까. '자막'을 붙이는 작업만 하더라도 꼬박 너댓 시간쯤은 더 걸렸을 듯하다. 타이핑이 문제가 아니라, 내레이션에 정확하게 맞춰서 '자막'을 딱딱 타이밍에 맞게 집어 넣는 게 '진짜 일'이다. 이렇게 목소리와 자막까지 일일이 제공하느라 '영상 제작'이 힘이 드는 것이다.
몽테뉴가 말한 대로 동영상 제작자는 유튜브 이용자들을 위해 '그들 대신 씹어주는' 셈이다. 시청자들은 그저 영상 제작자가 애써 여기저기서 재료를 끌어와 자근자근 씹어 놓은 것을 그저 삼키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영상 제작자와 소비자들은 '수고'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비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어쩌랴. 유튜브라는 엄청난(?) 시장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된 작업이라도 참고 '공급'할 수밖에. 오늘 저녁 퇴근 후 자막을 1/10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딱딱 맞춰서 다는 동안 몽테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대신 씹어주는' 그 구절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원한다면 그들 대신 내가 대신 씹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 가지 위안이라면 '영상 녹음'과 '영상 편집'이 첫 번째 작업보다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25분짜리 몽테뉴 수상록을 일주일 이내로 뚝딱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는 온 듯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주엔 송년 모임을 두 번씩이나 쎄게 치렀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한 번은 토요일 하루를 몽땅 빼았겼고...
(제가 만든 유튜브 영상입니다.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pCX01dJQytA)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