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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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6. 역마차에 대하여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
997

이것은 날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우리가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보다 더 위험한 경지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 위대한 장수의 증언이다. "대개 공포심이 덜할수록 위험을 덜 당한다."(티투스 리비우스)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 1001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후하게 내려줌은 이미 더 많이 실시하였을수록 다음에는 그만큼 더 못하게 된다. 기분좋게 하는 일을 오래 두고 할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처사가 어디 있는가?"(키케로)


받아버린 것 1002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채워 줄수록 커 가는 욕심을 어떻게 만족시킨단 말인가? 가질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탐욕은 배은망덕하기에 꼭 알맞은 소질이다.


무(無)만도 못한 일 1006

아가멤논 이전에도 영웅은 많았건만
오랜 어둠의 망각 속에 묻혀졌다.      (호라티우스)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의 멸망 전에도
많은 다른 시인들이 다른 사물들을 노래하였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이집트의 제관(祭官)들이 그들 국가의 오랜 운명과 외국의 역사를 알아서 보존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한 바를 듣고 솔론이 한 이야기에, "우리의 정신이 시간과 공간 속에 사방으로 뛰어들어 뿜어져 나가며, 두루 돌아다녀 보아도 자기의 진행을 저지하는 어떤 한계도 발견되지 않는 이 시간과 공간의 한도 없는 무한대를 관찰할 수 있다면, 이 무한 속에 우리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사물의 형체들을 발견할 것이다"(키케로)라고 전하는 것은, 이 고찰에 대한 반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 온 모든 것이 진실이고 그것을 어느 누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비하면 무(無)만도 못한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흘러가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을 두고 말해도, 우리 중의 가장 호기심 많은 자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짧은 소견의 일들뿐인가!


그곳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세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007∼1012

(맥시코, 페루가 스페인 군대에게 잔인하게 정복된 역사의 묘사)


진주와 후추 무역 1009

우리는 그들의 무지와 무경험을 이용해서 우리의 풍습 사례와 배신과 음탕과 탐욕과 모든 종류의 비인간적인 잔인성의 방향으로 그들을 보다 손쉽게 휘어 갔다. 누가 도대체 상업과 교역의 업무에 이렇게도 가치를 주었던 것인가? 그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어 쓰러져 아주 없어지고, 그 많은 국가들이 멸망되고 수백만의 국민들이 칼끝에 꿰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부분이 진주와 후추 무역을 위해서 뒤집히다니! 기계적인 승리이다. 이다지도 야심이, 이다지도 적의가 인간들 서로의 무서운 적개심과 비참한 재난을 이루어 놓은 일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무장한 외국인들의 정직성과 설교를 좋게 보지 않는 풍습이 있다 1010


이것이 그들의 정의감이나 종교에 대한 열성의 증거란 말인가? 1012


7.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모험과 곤란에 참여하지 않는 자 1018

모험과 곤란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위험한 행동 뒤에 따라오는 명예와 쾌감의 혜택을 요구할 수 없다. 모든 일이 자기 앞에 양보할 만큼 대단한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 1019

우리가 명예에 관한 모든 장점을 그들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결함과 악덕까지도 옳은 일이라고 인정할 뿐 아니라, 모방까지 해가며 그런 일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주고 옹호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은 모두가 그를 본떠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이고 다녔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의 아첨꾼들은 그와 같이 근시안인 체하느라고, 그의 앞에서 잘 부딪치고 발끝에 걸리는 것을 차고 둘러엎곤 했다. 탈장(脫腸)까지도 때로는 으스대며 자랑할 거리가 되었다. 나는 귀먹은 것도 뽐낼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플루타르크는 왕이 왕비를 미워하자, 궁신들도 덩달아 사랑하는 아내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

더 심한 것은 음탕한 버릇이 모든 버릇과 아울러 유행하고, 불충·모독·잔인성도 그렇고, 사교가 그렇고, 미신·무신앙·태만이 그렇다. 더 나쁜 일로, 도대체 더 나쁜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트리다테스의 아첨꾼들은 그들의 왕이 명의(名醫)라는 영광을 얻고 싶어하자 자기들 몸을 째고 지지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본보기로 다른 자들은 몸의 가장 미묘하고 고귀한 부분인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1019

내가 시작한 이야기로 끝맺자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어떤 문자의 해석을 가지고 철학자 파브리누스와 토론하던 때에, 파브리누스는 바로 승리를 황제에게 양보하였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그런 말 마시오. 그래 30군단을 지휘하는 그가 나보다 박학하지 못하단 말이오?"라고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아시니우스 폴리오를 공격하는 시를 썼다. 그러자 폴리오는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나를 추방할 수 있는 자에게 대항해서 글쓴다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오." 그의 말이 옳았다. 왜냐하면 디오니시우스는 시로는 필로크세노스를, 산문으로는 플라톤을 당해 내지 못하자, 하나는 채석광으로 중노동형을, 하나는 노예로 팔아 아이기나 섬으로 쫓아냈다.


8. 논변의 기술에 대하여


토론의 훈련 1021

우리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 있는 훈련법은, 내 생각으로는 사람과 논변(論辯)하는 일이다. 나는 이 방법이 인생의 어느 다른 행동보다도 더 감미로운 일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에서 만일 내가 이제부터 무언가를 택해야만 한다면, 듣기와 말하기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보기를 버리는 편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테네 인들은, 더욱이 로마 인들은 이 토론의 훈련을 숭상했다.


병적인 저속한 정신들과 교섭하는 일 1022

우리의 정신은 힘차고 조절된 정신과의 의사 소통에서 강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적인 저속한 정신들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자주 상종함으로써 얼마나 타락하며 손해를 보는 것인지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보다 더 잘 전염하여 퍼지는 것은 없다. 나는 경험으로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알고 있다. 나는 토론과 변론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과 하며, 나 자신을 위해서 한다. 왜냐하면 세도가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며, 서로 다투어 자기 재치와 말주변을 펼쳐 보이는 일은 점잖은 사람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팔을 내밀기는 커녕 1023

어떤 반대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정당한가를 보지 않고, 옳건 그르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가만을 생각한다. 우리는 팔을 내밀기는커녕 발톱을 내민다.


너무 명령조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1024

나는 진리가 어느 누구의 손에서 발견되었다 해도 기꺼이 환영하며, 그것이 아무리 멀리서 오는 것일지라도 마음 편하게 항복하고 무기를 그 앞에 내놓는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식으로 너무 명령조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내 문장에 대해서 하는 비평에 한 팔 빈다. 글을 고쳐야 할 필요에서가 아니라 예절상의 필요에서 고쳐 본 일도 흔히 있다. 쉽사리 양보해서 남에게 좋은 일도 해 주어, 아무라도 내게 알려 주고 싶은 일을 자유로이 알려 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히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그렇게 하도록 끌어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생각을 고쳐 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남을 고쳐 줄 용기도 갖지 못하고 서로 늘 숨겨 가며 말한다. 나는 남의 판단을 받아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기 때문에, 내 판단이 두 형태 중의 어느 편에 있어도 무방하다. 내 생각 자체가 나의 생각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남이 반대하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하기는 나는 그의 책망에 대해서 내가 주고 싶은 권위밖에는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 의견을 좇아 주지 않으면 모욕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믿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일을 공연히 알려 주었다고 후회하는 자들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너무 고압적으로 나오는 자와는 인연을 끊는다.


자기의 우월감과 상대편에 대한 경멸감보다 더 우리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1024

소크라테스가 자기 논거에 대한 반대를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는 것은, 그의 역량이 대단히 컸으며 확실히 장점이 자기 편에 있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반대를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기의 우월감과 상대편에 대한 경멸감보다 더 우리를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없고, 이치로 보아서 약한 편이 도리어 고마운 마음으로 자기를 바로 세워 주는 반대 의견들을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본다. 사실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자들보다도 나를 거칠게 다루는 자들과 더 자주 사귀려고 한다. 우리를 숭배하고, 우리들 앞에 자리를 물려주는 자들과 상종하는 쾌락은 멋쩍고 해롭다. 안티스테네스는 어린아이들에게 자기를 추어주는 자들을 결코 고맙게 여기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할 때의 나 자신에 대해서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

 

참을성 없음 1029

그런데 웬말인가? 내가 사물들을 사실보다 다르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나는 참을성 없음을 한탄한다. 무엇보다도 이 참을성 없음은 옳은 자에게서건 그릇된 자에게서건 매한가지로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바와 다른 형태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은 속 좁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 항상 있는 어리석은 수작을 가지고 짜증내며 분개하는 것보다 더 심하고 고질적이며 괴퍅한 일도 없다. 이런 심정은 주로 우리 자신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 철학자(헤라클레이토스를 말함)는 자기를 고찰하는 동안 눈물을 흘릴 기회가 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7현(七賢)의 하나인 뮈손은 티몬이나 데모크리토스에 지지 않는 기분으로 있었는데, 누가 왜 혼자서 웃고 있느냐고 묻자, "내가 혼자 웃고 있는 것이 우스워서"라고 대답하였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 1029-1030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수작을 나는 날마다 말하고 대답하는 것인가! 그러니 남의 생각을 따라서는 얼마나 더 자주 할까! 내가 그 때문에 꿍꿍 앓고 있다면 다른 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며, 냇물은 우리가 걱정할 것 없이 또는 적어도 우리를 휩쓸어 가게 하지 말고, 다리 밑으로 흘려 보내야만 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몸이 비틀어졌거나 못생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충격을 받지 않으면서, 어째서 정신이 비뚠 사람에게는 화내지 않고 볼 수가 없단 말인가? 이런 악덕스런 거친 마음씨는 잘못 자체보다도 판단하는 자에 매여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 말을 항상 입에 담아 두자. "내가 무엇을 불건전하게 보는 것은 나 자신이 불건전한 까닭이 아닌가?" 자신에게 잘못은 없는가? 남의 잘못을 알려 준다는 것이 도리어 내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던가? 정히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잘못을 힐책하는 것은 현명하고도 거룩한 훈계이다. 우리가 서로 맞대놓고 하는 책망뿐 아니라 모순된 일에 관해서 따져 보는 이치와 논법까지도 대개는 우리에게 되걸어 올 수 있으며, 우리는 칼로 자신을 찌른다. 이런 일에 관해서 옛 사람은 무게 있는 예를 상당히 남겨 주었다. 다음 어구를 생각한 사람은, 여기에 들어맞게 아주 묘한 말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                                                                       (에라스무스)

우리 눈은 뒤의 것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에 백 번은 이웃 사람들의 문제로 자신을 비웃으며, 우리 속에서 더 분명히 보이는 결함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보며 미워한다. 그리고 뻔뻔스럽고 부끄럼이 없는 그들의 일에 놀란다.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1030∼1031

나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누구건 비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는 아무도 비평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 말은 우리의 판단력이 당장 문제에 오른 자를 공격해 본다고 해서, 그것이 내적 비판으로 우리 자신의 잘못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속의 악덕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자가, 다른 사람의 악덕에는 그 근본이 덜 모질고 덜 악질이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없애 주려고 애쓰는 일은 자비로운 봉사이다.

그런데 내 잘못을 보고 알려 주는 자에게, 그도 역시 그 결함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격에 맞는 대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하여튼 알려 준 일은 진실하고 유익하다. 우리 코가 멀쩡하다면 우리 은 그것이 우리 것인 만큼 더 구려야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와 자기 아들과 다른 한 사람이 어떤 폭력이나 부정 행위로 죄를 지었을 경우, 자기가 맨 먼저 재판소에 가서 형 집행인의 손으로 자기 죄를 씻어 달라고 간청할 것이고, 둘째는 자기 아들을 내보내고, 마지막에 다른 사람을 내보내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이 교훈은 그 어조가 매우 고매한 것으로서, 적어도 자기 양심이 하는 처벌에는 자기가 먼저 나서야 할 일이다.



경험 1032

경험의 수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것들이 지니는 이유과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달아 보고 비교해 보며 소화하고 증류시켜야만 한다.


결과로서 의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1034


"결과로써 의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 격언은 용인되어 왔다. 카르타고 인들은 지휘관들이 그릇된 의견을 냈을 경우, 요행히 일이 잘 수습되었을 때라도 그들을 처벌했다. 그리고 로마 국민들은 지휘관의 행위가 그의 행운과 부합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위대한 승전에서도 개선 행진을 거절하는 수가 흔히 있었다. 대개 세상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 운이 모든 일에 대해 그 지배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우리의 오만함을 꺾어 버리는 데 재미를 들이고, 서투른 자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니, 도덕에 대항해서 그런 자들에게 행운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순전히 운으로 꾸며지는 일에 참여해서 옹호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중에 가장 단순한 머리를 가진 자들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매우 큰 사업을 해치우는 예를 날마다 본다. 마치 페르시아 인 시람네스가 그의 계획은 대단히 현명한데 일의 성사는 늘 실패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기를, 일의 계획은 자기 뜻대로 꾸미지만 일의 진행은 운이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말을 거꾸로 돌려서 대답할 수 있다.

이 세상사의 대부분은 제대로 되어 간다.

운명은 그들의 길을 헤쳐 나간다.      (베르길리우스)


우리는 거의 판에 박힌 습관으로 참여하는 것에 불과 1035

결과는 흔히 극히 서투른 행위에도 권위를 준다. 우리는 거의 판에 박힌 습관으로 참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개는 머리를 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과 남이 한 일을 본받아서 한다. 그 성취한 사업이 위대한 데 놀라서, 나는 전에 그런 일을 끝까지 성취했던 자들을 통해서 그들의 동기와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평범한 의견밖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가장 속되고 늘 쓰이는 의견이 본때는 나지 않지만 실천에는 가장 확실하고 유리한 것이다.


행운과 불운 1035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보며, 자기 손으로 자기 사업의 진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의 기도는 허황된 일이다. 특히 전략의 고찰에 있어서 허황되다. 우리들 사이에 가끔 보이는 군사상의 예보다도 더 용의주도한 신중성은 없었다. 그것은 이 대도박의 마지막 결판에 대비해서 중도에 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예지와 사고력 자체가 대부분은 우연에 매여 있다. 내 의지와 사유는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움직이며, 그 중에도 많은 움직임은 나 없이도 되어 간다. 내 이성에는 매일 돌발적인 충동과 동요가 있다.

심령의 모양은 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은 이때는 이 생각,
한 가닥 회오리바람이 구름을 밀고 가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베르길리우스)

(나의 생각)

베르그손과 프루스트가 끊임없이 탐구하던 대상인 '자아', 그리고 프로이트가 마침내 과학적으로 찾아낸 '무의식'을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참으로 인간 내면을 너무나 잘 들여다 본 정말 놀라운 인물이다.


가장 약지 못한 자들 1036

도시에서 가장 권세 있고 사업이 융성해 가는 자들을 보라. 대개는 그들이 가장 약지 못한 자들이다. 여자나 어린아이나 미친 사람들도 능력있는 제왕들과 맞설 정도로 큰 나라들을 다스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꾀 있는 자들보다 우둔한 자들이 대개 더 성공한다고 투키디데스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행운의 결과를 총명의 탓으로 돌린다.

사람이 성공함은 단지 행운의 덕택이다.
그런데 그의 득세를 보고서
우리는 그 수완을 칭찬한다.      (플라우투스)

그 때문에 어떻게 보건 사건의 결과는 우리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는 내 말은 옳은 것이다.

(나의 생각)

내가 종사하는 '업계'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득세'를 보고 '그의 수완'을 칭찬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1036∼1037

그런데 나는 마침 권세 있는 자리에 올라앉았을 때에만 보아야 한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렀다. 사흘 전에는 그를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 다음에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생각 속으로 위대성과 능력의 모습이 흘러들며, 그의 지위와 권위가 증대했으니 그의 인품도 훌륭해 졌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그를 그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숫자판을 보고 하는 식으로, 그의 직위의 특권에 따라서 인물을 판단한다. 다음에 운이 틀려서 그가 보잘것없이 되어 다시 일반 사람들 속에 섞여들었다고 하자. 저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높이 추어올렸던 것인가 그 원인을 따지며 놀라서 물어 본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그는 거기 있을 때 다른 능력은 없었는가? 제왕들은 그런 애매한 능력에 만족했었나? 우리는 정말 잘난 사람에게 걸렸군! 하며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생각)

내 주변에도 '그게 바로 그 사람인가?'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을 수 있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내 이성은 그들 앞에 굽혀 숙이게 되어 있지 않다. 굽어지는 것은 나의 무릎이다."라는 몽테뉴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말과 다르게 말하는 자는 1038


파격적인 운을 타고난 인물이 자기 식탁에서 경솔한 말들이 주책없이 오가는 자리에 한 몫 거들어 간섭하며, 바로 "이 말과 다르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쟁이 아니면 무식꾼이지만······" 하고 말을 시작했다. 손에 단도를 들고 하는 이 철학적인 날카로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위험한 수법,
기초가 박약한 자들, 자기 무식을 탄로시키는 것 1039

그들이 어구에 윤곽을 지어서 의미를 수습하며 "어찌어찌해서 이렇다. 이러니까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내가 그렇게도 평범한 일로 보는 이런 보편적인 판단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들은 온 국민들을 뭉쳐서 전체로서 보고 인사하는 자들이다. 이 국민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사람을 따로따로 지적하며 이름을 불러서 인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수법이다. 그런 데서 나는 날마다 더 자주 지식의 기초가 박약한 자들이 똑똑한 체하며, 어떤 작품을 읽고 그 아름다운 점을 지적하려다가 당치 않은 곳에 탄복하는 꼴로 그 작가의 탁월한 점을 알려 주기는커녕 자기 무식을 탄로시키는 것을 보았다.

베르길리우스의 시 한 쪽 전체를 듣고 나서, "그것 참 좋군!" 하며 탄성을 올리면 그것은 확실하다. 약은 자들은 이렇게 해서 면한다. 그러나 시 한 구절씩을 따라가며, 명확하게 추려 낸 판단으로 한 훌륭한 작가가 어떤 난점을 극복하고 어떤 점에 가치를 높이는가를 지적하려고 하며, 낱말과 어구와 착상을 하나하나 저울질해 보는 일에서는 어서 물러나라! "각자의 어법을 검토할 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그 사상의 근거를 파고들어 알아보아야 한다."


음악가 1040

어리석음과 지각의 혼란은 잠깐 가르쳐 주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을 교정하는 문제에는, 막 전투하려는 마당에 군대의 사기를 북돋워 달라고 재촉하던 자에게, "사람들은 훌륭한 연설 한마디로 당장에 용감해지거나 잘 싸우게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좋은 노래를 듣고, 바로 음악가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키로스가 대답한 말이 바로 적용된다. 그것은 미리 오래 두고 꾸준한 훈련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풋내기들의 상대 1040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지식을 열심으로 교정하며 깨우쳐 가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나 지나가는 자를 붙들고 설교하며, 그의 서투르고 무식한 점을 교정하려는 버릇을 나는 매우 언짢게 본다. 나는 말을 주고받는 상대가 그러해도 교정해 주는 일은 거의 없다. 무슨 선생이나 된 것처럼 초보부터 깨우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두 버려 둔다. 내 기분은 글 쓰는 데나 말하는 데나 풋내기들의 상대로는 맞지 않는다. 어느 모임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가지고는 그릇되고 어리석은 말이라고 판단해도, 나는 말로건 몸짓으로건 결코 간섭하지 않는다. 그뿐더러 어리석은 자가 어떠한 이치에 만족하기보다도 자기 어리석음에 더 만족하고 있는 것을 보는 일보다 울화가 터지게 하는 일은 없다.


당나귀보다 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1040∼1041

완고하거나 주책없는 논법이 그 주인들의 마음을 안심과 유쾌한 기분으로 채우는 자리에서, 자기는 총명하기 때문에 만족이나 자신을 갖지 못하며, 늘 불만을 품고 자리를 떠야 하는 경우는 불행한 일이다. 이런 때에는 가장 서투른 자들이 남을 경멸하고 어깨 너머로 넘겨다 보며, 토론에서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거두고 돌아간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오만한 말투와 유쾌한 얼굴이 좌중에서 우위를 차지하는데, 이 좌중이란 대개 이해력이 약하고 판단력이 없으며, 진실한 장점을 식별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자기 사상을 열렬하게 고집 세우는 것은 어리석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그래, 확고하고 결단적이며, 경멸조이고 명상적이며, 장중하고 근직한 것으로 당나귀보다 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격에 맞지 않는 분노 1041


사람들은 대개 힘이 부족하면 얼굴빛과 목소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격에 맞지 않는 분노는 앙갚음보다 자기 약점과 참을성 없음을 한꺼번에 폭로한다. 우리는 가끔 침착한 기분으로 모욕을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이라도, 이 흔쾌한 잡담에서 상대편의 불완전하고 숨겨진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피차 유익하게 우리의 결함을 서로 알려 준다.


자기 작품에는 1042


나는 사람들이 남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도 판단할 눈이 없는 것을 본다. 자기 작품에는 애정이 섞일 뿐 아니라, 그것을 깨닫고 식별해 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 자체의 힘과 운의 힘으로써 직공(작가)의 착상과 지식 이외에 그를 도와주며 직공의 역량을 넘는 수가 있다. 나로서는 남의 작품 가치를 내 것보다 더 흐리멍덩하게 판단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 《에세이》도 때로는 얕게, 때로는 높게 아주 줏대 없이 평가한다.


축소판 1042


한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모두 어리석은 축소판이다.


선행과 보답 1042


"선행은 그 부채를 보답할 수 있는 한도에서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너무 초과하면 감사 대신에 우리는 증오로 이것을 갚는다."(타키투스) 그리고 세네카는 힘차게 말한다. "보답할 수 없음을 수치로 여기는 자는 보답해 줄 자가 없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더 비굴하게 둘러서 말한다. "그대에게 부채를 다 갚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대의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타키투스에 대한 서평 1043∼1046

나는 요즈음 타키투스를 단숨에 읽었다. (그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20년 전부터는 한 시간을 계속해서 읽은 적이 없었다.) 나는 용덕이 높을 뿐더러 그 능력과 착한 마음으로 지조가 견고하며, 그 형제들 역시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 전부가 그의 인격을 지극히 존경하는 한 귀인의 권고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작가로서 이 작가만큼 공적 사건의 기록에 개인적 행동 습관과 경향에 관한 고찰을 섞어 넣는 예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행적들 뿐 아니라, 특히 신하들에 대한 잔인한 처사까지, 그 모든 종류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잡다하던 제왕들의 생애를 좇아 보게 되었다. 그는 온 세상의 전쟁과 동란에 관한 것보다도 이런 면을 고찰하고 진술하기에 더 강력하고 흥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저 아름다운 죽음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지루해질까 염려하는 듯 대강 넘겨 버렸기 때문에, 나는 늘 그를 거칠다고 보고 있다.

이런 형태의 역사는 한층 더 유익한 것이다. 공사(公事)의 움직임은 운의 지도에 더 매여 있고, 개인적인 일은 우리들의 지도에 달려 있다. 이것은 역사의 서술이라기보다도 차라리 하나의 판결이다. 여기는 이야기보다 교훈이 더 많다. 이것은 읽을 책이 아니라 연구하고 배워 갈 책이다. 옳은 일에 관한 교훈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세계를 다루는 지위를 잡은 인물들의 준비와 장식을 위한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고찰의 기초이다. 그는 자기 시대의 수식적인 문체를 좇아서 예리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견고하고 강력한 이치로 변론한다. 당대의 사람들은 너무 과장된 표현을 즐기며, 일 자체에 첨단적이고 기묘한 것을 찾아보지 못하면 언어에서 그런 표현을 빌려 오는 것이었다. 그의 문장은 적잖이 세네카와 닮아 있다. 그의 글은 더 풍요하고, 세네카의 문장은 더 날카로운 것 같다. 그의 저작은 현재의 우리 상태와 같은 혼란되고 병든 국가를 섬기기에 더 적합하다. 우리는 자주 그가 우리를 묘사하고 비판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문장이 자기 사정에 관해서 진술한 것을 보면, 그는 진실하고 강작하고 용감하며, 미신적인 도덕이 아니라 철학적인 너그러운 도덕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증언하는 데 과감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 한 병사가 나뭇짐을 지고 가다가 추위로 손이 그 짐에 얼어붙었는데, 어찌나 심했던지 손이 들러붙어 팔이 떨어져 죽어 있더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일에는 이만큼 위대한 증인의 권위에 굴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다.



9. 허영에 대하여



도끼가 빠지면
1049


나로 말하면, 덧신 하나를 비뚤게 신으면 셔츠도 망토도 거꾸로 입는 식의 못된 버릇을 가졌다. 나는 반만 바로 갖기를 경멸한다. 나쁜 상태에 있을 때에는 나쁜 편으로 가려고 악을 쓴다. 절망으로 자포자기하며, 타락의 방향으로 멀어지게 두고, 사람들 말처럼 도끼가 빠지면 자루까지 내던진다.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은 남이 보지 못한다 1050

옛말에 나오듯, 예쁜 구두에 발 벗겨진 것⑵은 남이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그대 가정의 평화로운 질서를 꾸며 보이느라고 얼마나 힘이 드는가. 아마도 그 살림을 유지하기에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⑵ 플루타르크의 이야기, 한 로마 인이 예쁜 아이까지 낳아 준 미모의 아내를 내쫓았다고 친구들이 책망하자 "이 구두는 새롭고 예쁘지 않은가?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발이 벗겨진 것을 그대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네"라고 대답하였다.



수입의 계산에서가 아니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교양으로 1051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거든, 빈곤에 앞장서 비용을 삭감하기 위해 줄곧 달음질쳐 보라. 이것이, 그리고 빈궁에 쪼들리기 전에 내 행실을 고치는 일이 그것에 대비하는 방책이다. 게다가 나는 가진 것보다도 적은 것으로 지낼 수 있는 상태를 여러 한계로 마음속에 세워 보았다. 만족하고 지내는 상태 말이다. "수입의 계산에서가 아니고 각자의 생활 방식과 교양으로 그대의 부는 측정되어야 한다."(키케로)


  

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1051

여행은 그 비용 때문에만 힘이 든다. 그것은 힘겨울 만큼 무거운 부담이다. 수행원을 데리고 가는 습관은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체면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한을 짧게, 그리고 횟수를 뜨게 해야 하며, 저축해 놓은 여윳돈만을 사용하는 까닭에, 여유가 생기기까지 연기하며 때를 기다린다. 나는 돌아다니는 쾌락 때문에 휴식의 쾌락을 제쳐놓고 싶지는 않다. 그 반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거들고 가꾸어 주도록 하고 싶다.



잔글씨, 가시들 1052

가장 자잘하고 드러나지 않는 피해가 가장 괴롭다. 잔글씨가 눈을 아프게 하고 피로시키는 것처럼, 자디잔 일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 아무리 크고 맹렬한 불행보다도 수많은 자잘한 불행들의 뭉치가 더 사람을 해친다. 가정 생활의 이런 가시들은 엉겁결에 닥쳐오며 가늘고 빽빽하게 돋아나면서 위협도 없이 우리를 더 날카롭게 물어뜯는다.


한 방울의 물 1053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루크레티우스)


남의 집 것 1053


디오게네스는 내 생각과 같이, 어떤 종류의 포도주가 가장 맛 좋더냐고 누가 물어 보자, "남의 집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집 짓는 재미 1054


사람들이 대단한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 집짓는 재미도, 사냥도, 정원가꾸기도, 은퇴 생활의 다른 취미들도 내게 그렇게 큰 흥미를 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내게 불편한 다른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괴로운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안이하고 내 인생에 적합하기만 바라고, 그것을 강력하고 박식한 것으로 가지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자루에 쑤셔 넣으면 1059


어떻든 나는 우리의 예로, 인간 사회는 무슨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서로 매이고 얽혀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마치 잘 결합되지 않은 물체들을 질서 없이 자루에 쑤셔 넣으면 그들끼리 서로 자기들 속에 얽매이는 방식을 찾아가며, 때로는 기술적으로 정리해 넣은 것보다 더 잘 자리잡는 식으로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갖다 놓아도 움직이며 서로 덮치다가 서로 쌓이며 정돈되어 간다.


불행의 더미 1064


자기보다 못한 예를 보면 마음이 좋고 자기보다 나은 자들을 보면 마음이 언짢아지는 것은 우리들 악덕의 소치이다. "만일 여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한데 뭉쳐 쌓아놓고 이 불행의 더미를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면, 그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가졌던 불행을 택하지 않을 자가 하나도 없다"고 솔론은 말하고 있다.


되풀이해서 하는 말 1066


되풀이해서 하는 말은 호메로스에 나오더라도 지루해진다. 일시적이며 피상적이고 외관뿐인 것은 더욱이 질색이다.

세네카의 문장에서와 같은 유익한 사상이라도 교훈조로 된 것은 내게는 정말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스토아 학파의 버릇으로, 모든 제목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먼저 내세우는 것들을 이모저모로 글을 쓸데없이 길게 되풀이하며,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이치와 논법을 늘 다시 인용하는 수작이 비위에 거슬린다.


과중한 기대 1067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자기에게 과중한 기대를 걸게 하기보다 더 불리한 일은 없다."(키케로)


확실히 둘 1069


지금의 나와 조금 전의 나는 확실히 둘이다.

(나의 생각)

철학자 베르그손의 생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 1071

그런데 사람은 권한으로 살아야 하지, 어떤 보답이나 혜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의협적인 인물들이 은혜를 입고 살기보다는 죽기를 원했던 것인가!) 나는 무슨 종류이건 부채를 지는 일은 피한다. 그 중에서 특히 명예에 대한 부채는 싫어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무엇이건 받고 그 때문에 내 의지가 감사라는 자격에 저당잡혀지는 것보다 더 값비싼 것을 알지 못한다. 그보다는 돈을 받고 해 주는 봉사를 받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하다. 진정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자들에게 돈밖에는 내놓지 않는데, 다른 자들에게는 나 자신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굴복의 신세 1074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야심적이고 특권적인 신분인 만큼 남의 것을 받는다는 일은 굴복의 신세이다.


신세지는 일 1075


늘 친숙하게 보는 것처럼, 아무나 무턱대고 일을 시키고 그 신세를 지는 자들은 이 신세지는 일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가를 어느 현자가 한 만큼 조심스레 헤아려 본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신세는 때로는 갚아 주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신세진 일이 결코 풀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 팔꿈치를 사방으로 휘두를 자유를 찾는 자에게는 그 얼마나 구속인가!

 

여행을 즐기는 이유 1078

나는 여행을 즐기는 이유를 물어 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버리고 떠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이제부터 찾아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파리를 찬양함 1078∼1079 

 

파리는 어릴 적부터 내 마음을 차지해 온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는 훌륭한 일들도 더러 있었고, 아름다운 도시들을 많이 보아 갈수록 이 도시의 아룸다움에 정이 들게 되었다. 나는 이 도시 자체를 사랑한다. 외국의 화려한 장식을 뒤집어쓰는 것보다도 있는 그대로가 더 좋다. 나는 이 도시의 흠이나 오점까지도 마음에 들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한다. 나는 이 위대한 도시에 의해서만 프랑스 사람이다. 인구도 위대하고 그 자리잡은 품위도 위대하며, 특히 가지 각색의 물품이 풍부한 것이 비길 수 없이 위대하다. 프랑스의 영광이며 이 세상의 가장 고상한 장식들 중의 하나이다.

 

여행은 유익한 수양 1080

이런 이유들 외에도 내게는 여행이 유익한 수양으로 보인다. 심령은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물들을 주목하느라고 계속적으로 훈련 받는다. 그리고 내가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사람에게 끊임없이 다른 나라의 색다른 생활과 사상과 습관 등을 제시해 주며, 우리들의 천성인 끊임없이 변해 가는 형태를 음미시키는 것보다 인생을 형성하는 데 더 효과적인 학문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하는 말 1081


여러분들은 내가 처자가 있는 늙은 몸으로 이런 수고를 즐겨 계속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자기 없이도 집안일이 잘 되어 가고, 그 전의 형태가 뒤집히는 일이 없게 살림에 질서를 세워 놓았을 때에는, 가정을 버려 두고 떠나기에 알맞는 때이다. 자기 집에 충실치 못한 집지기를 남겨 두고 궁핍에 대비해 놓을 생각도 없이 떠나는 것은 철부지보다 더한 일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집을 비우면 문제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부 간의 애정적 의무로 말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오래 한데 붙어 있으면, 너무 끈적해서 도리어 애정이 손상되고 냉각될 우려가 있다. 남의 여자는 모두가 점잖은 여자로 보인다. 그리고 계속해서 늘 쳐다보고 있으면 서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 때에 느끼는 쾌감을 알아볼 수 없는 것도 누구나 다 경험해 보는 일이다. 이런 이별은 내 식구들에 대한 새로운 사랑으로 나를 채워 주며, 내 집 살림에 더 정다운 맛을 다시 돌려 준다. 생활을 이렇게 바꾸어 주면 내 욕망을 한때는 이 편으로,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편으로 일깨워 준다.


이집트에 있는 친구의 배가 불러진다 1082


나는 우정이라는 것의 손이 무척 길어서,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 다른 구석까지라도 뻗쳐 서로 잡을 수 있음을 안다. 그리고 특히 서로 염려해 주는 편지를 꾸준히 주고받으며, 우정의 의무와 추억을 잠 깨워 주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스토아 학파들이 말하듯 현자들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친밀해서, 하나가 프랑스에서 식사하면 이집트에 있는 친구의 배가 불러진다고 하며, 아무 데서라도 하나가 손가락을 뻗치기만 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위의 모든 현자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한 말은 옳다.


상상력 1082


소유와 향락은 주로 상상력의 소관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우리가 손에 잡은 것보다도 더 열렬하고 계속적으로 품어 갖는다. 그대의 나날의 명상을 검토해 보라. 친구와 같이 있을 때가 친구와 가장 같이 있지 않을 때임을 알 것이다. 그가 자리에 있으면 그대의 주의력이 해이해져서 어느 시각에나 기회에, 그대 생각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자유를 갖게 한다.


먼가? 가까운가? 1083


만일 우리가 손에 잡히는 것밖에 누리지 못한다면, 돈도 금고 속에 있으면 내 것이 아니고, 아이들도 사냥 나갔으면 내 아이들이 아니겠지? 우리는 이런 것을 더 가까이하기를 원한다. 들에 있으면 먼 것인가? 반나절쯤의 거리라면? 뭐? 40km 떨어져 있으면 먼가? 가까운가? 그것이 가깝다면 44km는? 48km는? 52km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 보자. 아내가 남편에게 "몇 걸음에서 가까움이 끝나고, 몇몇 걸음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고 결정해 준다면, 내 의견으로는 그녀가 남편을 그 중간쯤에서 잡아 둘 일이다.

돌아감이 늦으면,
당신의 아내는 애인이 있다든가,
다른 여자의 사랑을 받는다든가,
음주나 방탕으로 좋은 일을 당신 혼자만 보고
나쁜 일은 자기의 차지라고 생각한다.      (테렌티우스)

(나의 생각)

몽테뉴의 이 책에서 테렌티우스가 너무 자주 나온다.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도 '테렌티우스'를 만났다. 그의 대표작은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인 듯한데, 몽테뉴 때문에『테렌티우스 희곡선』(범우문고판)까지 사 봤으나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라는 작품은 없었다.


진실한 우정 1084


진실한 우정에서는, 나는 이 부문의 전문가이지만, 친구를 내게로 끌어오기보다 나 자신을 친구에게 내준다. 나는 그가 내게 해 주는 것보다도 내가 그에게 더 잘해 주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자기에게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란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며, 떨어져 있는 것이 그에게 유리하고 필요하다면 여기 있는 것보다도 나에게 더욱 마땅하다. 그리고 서로 소식을 통할 방법이 있는 동안은 진실한 부재(不在)가 아니다.


40이나 50세 전에 1085

청춘이 정열을 추구하는 것은 용서하고, 노년이 쾌락을 찾는 일은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불타는 정열을 조심성으로 은폐했다. 이제 늙어서는 음산한 심정을 방종으로 풀어 준다. 그 때문에 플라톤의 법칙은 편력을 더 유익하고 교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40이나 50세 전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바로 이 규칙의 제2항으로 60세가 넘어서는 편력을 금지하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이에 길을 떠나다가는 그 먼 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아니오?"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여행을 완수하려고 떠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움직이는 것이 기분 좋은 동안은 움직여 보려고 하는 것이다. 바람을 쏘이기 위해서 나는 바람을 쐰다. 이득이나 토끼를 보고 달려가는 자는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오, 친구 하나! 1089


오, 친구 하나! 이 말의 사용은 물과 불 같은 요소들보다도 더 감미롭다고 한 옛말은 얼마나 진실한가!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1096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것을 나 혼자 지어냈고 아무에게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면 화가 난다. "예지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진다는 조건으로 하기라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세네카) 또 한 사람은 그것을 더 심한 어조로 말하였다. "만일 한 현자가 모든 필요한 사건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알아 둘 가치 있는 사항을 자유로이 관찰하며 한가롭고 여유있게 연구하는 생활을 가졌다면, 그리고도 외롭고 쓸쓸함이 어느 인간도 결코 만나 볼 수 없을 정도라면 그는 인생에서 물러날 일이다."(키케로) 아르키타스의 말에,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택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한 말은 내 성미에 맞는다. 그러나 어색하고 서투른 동행과 여행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하는 편이 낫다.

(나의 생각)

미국에서 홀로 골프를 치다가 이글을 하고 "야호!"하고 소리쳤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어서 그 자리에서 '골프채를 부러뜨리고 말았다'는 어느 선배의 얘기가 떠오른다. 함께 기뻐해 주는 친구가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철학 강의 1099

철학 강의를 들어 보라. 착상과 웅변과 지당한 말은 당장에 그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대를 감동시킨다. 그대의 양심을 건드리거나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양심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닌가? 그래서 이리스톤은 "목욕이나 공부는 몸을 닦아서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껍데기에 구애되는 것은 좋지마는, 그것은 속의 골수를 뽑아 낸 다음이라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잔에 가득한 좋은 술을 마시고 나서, 판에 새겨진 그림을 감상하는 격으로 말이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잘못인가? 1101

우리는 하느님 뜻대로의 착한 사람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리 식으로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예지는 스스로에게 정해준 의무를 결코 완수해 본 일이 없다. 그것을 수행하였다 해도, 인간 예지는 더한층 어려운 의무를 정해 놓고 그것을 갈망하고 주장할 것이리라. 그만큼 우리 심정은 자기 지조를 지키지 못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잘못을 범하라고 자신에게 명령한다. 자기와는 다른 존재의 이치를 가지고 자기 의무를 결정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누구에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인가?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잘못인가?


'로마'라는 장소 1108

나는 나 자신을 이 세기에는 쓸모 없는 인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기로 뛰어들며, 그들에게 완전히 반해서 옛날의 그 자유롭고 정의롭고 융성하던 로마에(나는 로마의 시초나 노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를 느끼며 열중한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 거리와 옛 집터와 세상의 양극까지 이르는 그들의 깊은 폐허를 그렇게 자주 찾아 보아도 흥미를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그것을 기억해 두는 일, 권장되는 인물들이 자주 찾아다니고 살고 하던 곳인 줄을 알아 방문할 때에, 그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듣거나 작품을 읽는 것보다도 어느 점에서 더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은 우리들의 본성이 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 공상의 속임수에 의한 것인가?

"장소가 회상시키는 힘은 그렇게도 크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의 그 힘은 무한히 크다. 어디를 걷든지 우리는 역사의 유적 위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키케로) 나는 그들의 용모와 자세와 의복을 고찰해 보기가 재미난다. "나는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내 입에 올려 보며, 그것을 내 귀에 울려 오게 한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면 이런 위대한 이름들 앞에 일어선다."(세네카) 그 어떤 부분들도 위대하고 감탄할 만한 이런 사물들 중에, 나는 바로 그 평범한 부분들에 감탄한다. 나는 그들이 잡담하며 산책하며 식사하는 것을 보았으면 한다. 그들의 살아가고 죽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들을 좇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시범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그 많은 훌륭하고 용감한 인물들의 유적과 모습들을 경멸한다는 것은 배은망덕이 될 일이다.

우리가 보는 저 로마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자격으로 우리나라의 왕실과도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하다. 그것은 인류 공동의 보편적인 유일한 도시이다. 그 곳에서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수도이며 스페인 사람이건 프랑스 사람이건 그 곳에서는 자기 나라에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나라의 제왕이 되려면 어느 나라이건 기독교 국가의 국민이면 충분하다. 이 아래 세상에 이 도시만큼 하늘이 많은 은총을 내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주는 고장은 없다. 그 폐허까지도 영광스럽고 당당하다.


나 자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1112

나는 어느 시의 백성도 못 되는데,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고 이후까지라도 가장 고귀한 도시의 시민이 된 일에 대단히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하는 식으로 주의해서 자기를 관찰한다면, 나와 함께 허황함과 부질없음으로 충만해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내가 그런 부질없는 것을 벗어던지기는 나 자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 편이나 다른 편이나 모두가 다 거기 절여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는 자들은 좀 나은 축일는지, 그 역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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