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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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10. 자기 의지의 아낌에 대하여


소란스럽게 꿈틀거리지 않으면 1116

어떤 일에 흥분해서 거기 잡혀 끌려 드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그들에게 상관 있는 일이거나 없는 일이거나, 어디를 가도 그 모양이다. 그들은 일이 있는 데서나 의무를 진 데서나 무차별하게 끼어들어 간섭한다. 그리고 소란스럽게 꿈틀거리지 않으면 산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위해서 일을 찾는다."(세네카)


이런 것만이 우리가 인색해야 유익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 1116

아무도 남에게 자기 돈은 나눠 주지 않으나 각자는 남에게 자기 생명과 시간을 나눠 준다. 이런 것만이 우리가 인색해야 유익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이보다 우리가 더 낭비하고 있는 것도 없다.


초조는 시간을 늦춘다 1121


철학은 우리가 받은 모욕에 대한 징벌에서, 거기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흩뜨리기를 바란다. 그것은 복수를 덜 하라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더한층 확실하고 준엄한 일격을 가하기 위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것은 지장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분노는 마음을 혼란시킬 뿐 아니라, 그 자체로써 징벌하는 자들의 힘을 피로하게 한다. 그 열기가 그들의 힘을 마비시키고 소모시켜 버린다. 초조하게 굴면 "초조는 시간을 늦춘다"(퀸투스 쿠르티우스) 조금합이 다리를 내밀며 거기 걸려서 멈추게 한다. "조급은 오히려 얽혀들게 한다."(세네카) 예를 들면, 내가 보통의 습관에서 보는 것처럼, 탐욕에는 그 자체보다 더 큰 장애가 없는 것이다. 탐욕이 더 긴장되고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소득은 더욱 적어진다. 일반적으로 탐욕은 후덕함이라는 가면을 쓸 때에 더 빠르게 재물을 얻는다.


결국 어떠한 부유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122

인간이 스스로 만족할 줄을 안다면
그는 상당히 풍부할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못한 바에,
결국 어떠한 부유가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루킬리우스)

소크라테스는 어떤 자가 많은 재물과 보패와 값비싼 가구 등으로 화려한 행렬을 차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물들을 나는 욕심내지 않은 것인가!" 하고 말했다. 메트로도로스는 하루에 콩 12온스로 살아갔다. 에피쿠로스는 그것도 들지 않았다. 메트로클레스는 겨울에는 양 떼들과 같이 자고, 여름에는 사원의 울 안에서 잤다.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세네카) 클레안테스는 자기 손으로 살아가며, 할 수 있다면 다른 클레안테스 하나쯤은 더 살리겠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1133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다. 내 습관에 부족한 것은 내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온 생활 상태를 축소시키고 줄여 놓는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복이 터진들 무엇하리 1123

나는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거나 길들지 않은 새로운 방식에 몸을 던져 볼 나이는 이미 지났다.

재산이 느는 것도 귀찮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 될 때는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큰 복이 내 손에 굴러떨어진다면, 왜 내가 그것을 누릴 수 있던 때에 오지 않았던가 하고 슬퍼할 것처럼

내가 향락지 못한다면 복이 터진들 무엇하리.      (호라티우스)


울화만 터지게 하는 선물 1123


이제 떠나려는 나의 일이니, 사람들과의 교섭에 필요하다고 배우는 예지 같은 것은 아무나 오는 사람에게 쉽사리 넘겨 주었다. 그것은 식사가 끝난 뒤의 겨자 격이다. 나에게 쓸모없는 보배는 소용이 없다. 이미 머리가 없는데, 학문이 무슨 소용이랴? 제때에 오지 않고 철 늦게 와서 울화만 터지게 하는 선물은 오히려 운이 나에게 주는 모욕이고 총애를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다. 나를 지도하기는 이제 그만두라. 나는 더 길이 없다. 그 많은 종류의 능력들 중에 참을성 만으로 충분하다. 폐가 썩어 가는 가수에게 탁월한 최고음의 능력을 주어 보라. 또 아라비아 사막으로 보내져 숨어 사는 사람에게 웅변술을 주어 보라.


출발점에서 멈추지 않는 자는 그 진행을 정지시킬 마음이 없는 것이다 1131

나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내 감정의 흥분을 그 시초에 막으며, 힘이 들기 시작하는 문제는 열중하기 전에 포기해 버린다. 출발점에서 멈추지 않는 자는 그 진행을 정지시킬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정열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문을 닫지 않는 자는 들어오고 나서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을 잘 처리하지 못한 자는 끝처리도 못할 것이다. 흔들리는 것을 떠받치지 못한 자는 쓰러지는 것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바시락거리는 것 1131

나는 폭풍의 시작을 알리는 잔 바람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만지작거리며 바시락거리는 것을 때맞게 느낀다. "심령은 압도되기 오래 전에 동요된다."(세네카)


일이 진행되면 1133


일을 시작할 때에는 우리는 일을 이끌어 가며 마음대로 해 나간다. 그러나 다음에 일이 진행되면, 일이 우리를 이끌며 흥분시켜서 우리가 그 뒤를 쫓아가야만 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의 경우 1137

누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당신 부친은 평화롭고 통치하기 쉬운 커다란 영토를 남겨 줄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 소년은 그 부친이 많은
승리를 거두고 정치를 올바르게 해 가는 것을 보고 시기하였다. 그는 유약하고 부드럽게 세계 제국을 누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에 가서 알아볼 수 있는 이 영광이란 대체 무엇인가? 1138


의식해서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적어도 야심을 가지고 야심을 배격하자. 모든 종류의 인간들에게 굽실거리며 구걸하게 하는 그런 비속하고 거지 같은 명성과 영광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을 경멸하자. 무슨 더러운 방법이건 어떠한 천한 값으로라도, "시장에 가서 알아볼 수 있는 이 영광이란 대체 무엇인가?"(키케로) 이렇게 영광을 얻는 것은 불명예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영광을 탐하지 말자. 모든 유익하고 순진한 행동을 가지고 뽐내는 일은, 이런 일을 심상치 않고 희귀하게 보는 자들이 할 일이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에게 힘이 든 가치로 올려놓는 것이다.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1139


선한 행동의 명성이 높아 감에 따라 나는 그 선한 점이 선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도 명성을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을 억누른다. 드러내 놓은 것은 반은 이미 할인된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그것을 성취한 자들의 손에서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거나, 점잖은 사람들이 다음에 그것을 택하여 세상에 묻혀 있는 것을 드러내고 그 자체가 좋으므로 세상에 알려지고 드러날 때에, 한층 더 운치가 나는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지 않고 성취된 행적이 훨씬 더 찬양할 만하다고 본다"(케케로)고 세상에서 가장 허영스런 인물은 말한다.



11. 절음발이에 대하여


자기 사상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생각 1144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사상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생각보다 더 강한 욕구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 보통 수단으로 부족하면 우리는 명령과 폭력과 화형까지도 사용한다. 진리에 관한 최선의 감식이 광신자의 수가 현자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신도들에게 맡겨지도록 일이 되면 큰 불행이다. "판단력의 모자람이 없는 것만큼 범상한 일은 없다는 격이다."(키케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권위 1144


다음에는 이것이 증거와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권위와 그 증언에 세월의 관록이 붙어서 더 지각 있는 자들에게 전파되어 간다. 나로서는 나 하나가 믿지 않는 일은 믿는 자가 백이 되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사상을 햇수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나의 생각)

주식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누구누구도 샀다고 하더라. 누구누구도 좋게 본다고 하더라'는 식이다.


나 자신보다 더 확실한 괴물이나 기적은 본 일이 없다 1145


나는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확실한 괴물이나 기적은 본 일이 없다.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피곤한 일도 습관이 되어서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찾아보고 알아보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나의 기형적인 꼴에 놀라며, 더욱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것 같다 1146


우리는 모든 사물들을 규범을 세워서 단정적으로 말한다. 로마에서 하던 재판소의 어법으로는, 한 증인이 자기 눈으로 보았다고 진술하고 재판관이 가장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판결할 때에도, "이런 것 같다"라는 어법을 쓰기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확실하다고 단정해서 말하면, 나는 그것을 진실된 일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진다. 나는 우리 말투 중에 말의 의미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혹시, 어쩌면, 어떤 사람들 말이, 내 생각에는" 식의 어법을 좋아한다.



12. 인상에 대하여



비밀스러운 광명을 발견하기에는, 소크라테스의 경우 1153∼1154


우리는 톡 쏘고 부풀어올리고 기교로 팽창된 것밖에 우아한 맛을 보지 못한다. 순박성과 단순성 밑에 흐르는 우아미는 우리와 같은 천하고 상스런 취미에는 걸려 오지 않는다. 그런 것에는 미묘한 미가 숨어있다. 이런 숨겨진 비밀스러운 광명을 발견하기에는 깨끗이 씻어진 명철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 순박이라는 것은 우리들로 보면 우둔의 사촌뻘이며 비난받을 소질이 아니던가? 소크라테스는 타고난 범상한 동작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여 간다. 농사꾼도 그렇게 하며 여자라도 그렇게들 한다. 그는 마부·농담꾼·나막신장이·토역장이의 말투밖에 입에 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범속한 행동들에서 끌어 낸 귀납이며 유추이다. 아무라도 그것을 이해한다. 우리 따위, 어려운 학설로 명성을 떨치지 않은 모든 것은 평범하고 비속한 것으로 보며, 겉모양과 허식으로 꾸며 보이지 않으면 풍부성을 알아 주지 않는 우리들은 그렇게 비속한 형태로는 그의 고상하고도 찬란하고 감탄할 만한 사상들을 결코 식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겉치장으로만 꾸며져 있다. 사람들은 바람으로만 속을 채우고 고무풍선처럼 둥실둥실 떠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헛된 생각을 내놓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인생에 더 밀접하게 필요한 사묻들과 교훈을 찾아 주는 데 있다.

그는 또 항상 변함 없고 한결같았다. 그리고 몸을 솟구쳐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기질로 자기 정력의 궁극에까지 올라갔다. 더 자세히 말해 보면, 그는 아무것도 올려놓은 것이 아니고, 도리어 자기를 끌어 내려서 그 근원의 본성으로 돌려 놓으며, 정력과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 나갔다. 카토의 경우는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긴장의 자세이며, 그의 생애와 죽음의 고매한 행적에서는 늘 위풍있게 말을 타고 있던 그의 풍모가 명백하게 느껴진다.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땅으로 기며 유연하고 평범한 보조로 가장 유용한 사상을 다루고, 그의 죽음에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역경에 처해서도 인간다운 삶의 길을 밟아 갔다.


멈출 줄 모른다 1155

사람은 어떤 일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멈출 줄 모른다. 탐락이건 재산이건 권력이건, 그는 자기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의 탐욕은 절제가 불가능하다. 알고자 하는 욕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가 해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스스로를 위해 끌어 내며, 지식의 유용성을 그 재료가 있는 한 확대시킨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연구에도 무절제 때문에 고생한다."(세네카)

아그리콜라의 모친이 그 아들의 맹렬한 학문 연구 의욕을 억제하였다고 타키투스가 칭찬한 것은 옳은 일이다. 확고한 눈으로 보면, 학문은 다른 재물과 같이 인간이 타고난 고유의 약점과 허영이 많이 섞여 있는 값비싼 것이다.


학식의 사용 1155


학식의 사용은, 다른 식량이나 음료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대체로 우리가 사들인 물건은 그릇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며, 거기서 그 가치를 우리 마음대로 심사해 보고, 어느 시간에 얼마나 가져다 쓸까를 정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학문은 우리 심령밖에는 당장 다른 그릇에 담아 둘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지식들을 사들일 때에 그것을 삼켜 버리며, 장터에서 나올 때에 벌써 몸이 그 해독을 입었거나 그 때문에 개선되었거나 한다. 그 중에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심령에 장애와 부담밖에 안 되며 우리를 치유해 준다는 핑계로 해를 끼치는 것도 있다.


책은 나를 훈련은 시켜 주었을망정 가르쳐 준 것은 별로 없다 1156

내가 키케로의 《투스쿨라나에》(키케로의 대표적 작품)를 못 읽어 보았더라면 죽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진실로 죽음을 마주 대하고 보니, 말재주는 좀 늘었으나 마음에는 별로 얻은 것이 없다고 느낀다. 마음은 내 본성이 만들어 준 그대로이며, 사람들과 공통의 보조로 싸움을 위해서 무장하고 있다. 책은 나를 훈련은 시켜주었을망정 가르쳐 준 것은 별로 없다.

뭐라고? 학문이 새로운 방어책을 가지고 우리가 타고난 불운에 대항해서 새로운 방비로 무장해 주려고 시도하다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이치와 묘책을 지닌 것 이상으로 이 인생이라는 불운이 바로 거창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인상을 우리의 사상 속에 깊이 새겨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은 학문이 우리를 쓸데없이 깨우치는 묘책이다. 속이 가장 짜이고 현명한 작가들을 두고 보아라. 그들은 옳은 논법을 둘러서 얼마나 경박한 다른 논법들을,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이 빈 논법들을 뿌려 놓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언어만의 헛된 말재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유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달리 쓸데없이 너저분한 이론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 서적 속에도 빌려 왔거나 모방했거나 해서, 이런 식의 문장이 상당히 여러 군데에 끼여 있다. 그러므로 좀 묘한 구절을 힘차다고, 날카로운 점을 견고하다고, '마시기보다도 맛보기에 더 좋은 것'(키케로)을 가지고 잘되었다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재치가 아니라 심령이 문제될 때에'(세네카) 마음에 드는 것 모두가 배불려 주는 것이 아니다.


세네카 vs 풀루타르크 1157

세네카가 죽음을 준비하는 데 들인 노력을 본다면, 그가 마음을 단단히 잡고 안심하려고 진땀 흘리며, 이 외나무다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죽을 애를 써 가며 허우적거리던 꼴을 본다면, 만일 그가 죽을 때에 아주 씩씩하게 체면을 유지하지 못했던들, 나는 그에 대한 평판을 뒤집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고민이 그렇게까지 자주 일어난 것은, 그 자신이 열정적이고 괄괄한 성격이었던 것을 보여 준다. 위대한 심령은 더 고요하고 침착한 태도로 표현된다. "정신은 한 색채를 가졌고 심령은 그보다 다른 색채를 가진 것이 아니다."(세네카) 그는 그의 논법으로 설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점에서 그의 적수인 죽음에서 몰려 지낸 것을 보이고 있다.

플르타르크의 태도는 한층 더 경멸조이고 풀려 있던 만큼, 내가 보기에 그만큼 더 씩씩하고 사람을 설복시키는 힘이 있다. 나는 그의 심령이 더 침착하고 절제된 동작을 가졌다고 쉽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전자는 한층 더 생기 있어서 우리를 자극하고 놀라 일어나게 하며 정신에 더욱 감명을 준다. 후자는 더 태연하여 꾸준하게 우리를 만들어 주고 세워 주고 힘돋워 주며, 우리의 이해력을 더욱 감동시킨다. 전자는 우리의 판단을 앗아간다. 후자는 그것을 얻게 한다.


대지 위를 내다보자 1157


우리가 이런 학문의 노력으로 자기를 무장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대지 위를 내다보자. 거기 퍼져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가엾은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니 카토니 모범이니 교훈 등은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본성은 그들에게서 날마나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강직한 지조와 인내의 효과를 끌어 낸다. 그들 중에 가난을 가난으로 알지 않고, 죽음을 자진해서 바라거나, 또는 죽음의 고비를 놀라지도 괴로워하지도 않고 넘기는 자들을 얼마나 예사로 보는가?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 1161


플라톤은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병폐를 고치려고 폭력으로 평화를 문란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민을 살육하고 피를 흘려 가며 하는 개혁을 용인하지 않았다. ······ 나는 이 방면에는 플라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플라톤주의자였다. ······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이런 가장 못된 사태를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를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택하며, 아주 확실하게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가장 명백한 원칙을 가지고 자기 영혼의 구제를 찾고, 하느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정부와 관리와 법률을 둘러엎고, 어머니(조국)의 사지를 찢어서 옛날의 적에게 갉아먹게 던져 주고, 동포애를 골육상쟁의 증오심으로 채우고, 마귀와 광귀들을 원군으로 청하면서, 하나님의 법의 거룩한 평화와 정의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이해력이 우둔한 수작을 본 자가 하나라도 있을까 자주 의심을 품어 본다.


야심과 탐욕과 잔인성과 복수심은 그 자체로서 본연의 기세를 충분히 갖지 않았다. 그런 것을 정의와 신앙의 영광스런 자격으로 뜨겁게 해 주고 부채질해 주자. 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함이 합법적으로 되고,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도덕의 망토를 입는 꼴보다 더 괴악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신보다 더 심한 기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을 구실 삼아 범죄를 은폐한다."(티투스 리비우스) 플라톤에 의하면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이다.


상상한 고통 1170


"불행으로 겪는 고통은 상상한 고통보다 덜 느껴진다"(퀸틸리아누스)고 한 말은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한 작가에게서 실제로 나온 말이다.


죽음과 삶에 대한 걱정 1170


우리는 죽음의 근심으로 삶을 방해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을 방해한다. 하나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죽어 갈 때밖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1171


나는 내 이웃에 사는 농민들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본성은 그에게 죽어 갈 때밖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더 점잖게 해치운다. 이 철학자는 죽음과 죽음에 관한 오랜 예측 때문에 두 번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의견에 따르면, 가장 예측하지 않은 죽음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가벼운 죽음이다. "필요하기 전에 고민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는 일이다."(세네카)

사상에서 생기는 이 괴로운 심정은 우리의 호기심에서 나온다. 우리는 미리 내다본다고 하며, 본성이 정해 준 일을 앞질러서 지배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장애만 끼친다. 아주 건강할 때에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식사할 때에 입맛마저 잃는 수작은 의사들이나 할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1172∼1175


"여러분, 내가 당신들에게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청한다면, 그것은 내가 이 세상의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사물들에 관한 더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다른 자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는 내 고발자들의 밀고에 걸리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는 죽음과 사귄 것도 아니고, 죽음을 아는 것도 아니며, 아무도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자기 소질을 시험해 본 자를 본 일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죽음을 알고 있다고 미리 추측합니다. 나로서는 죽음이 무엇인지, 저승에서는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죽음은 무관심한 일이고, 어찌 보면 죽음은 바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 가는 일이라면, 그렇게 많은 작고한 위인들과 같이 살러 찾아가서, 이승에서의 불공평하고 부패한 재판관들과 상관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할 만합니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소멸이라면, 그런 오래고 평화로운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좋은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고요한 휴식과 꿈도 갖지 못하는 깊은 잠보다 더 감미로운 일은 느껴 볼 수 없습니다."

······

죽음은 삶과 똑같이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이다. 죽음이 대자연에게 그의 작품들의 계승과 변천을 가꾸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이 우주 공동체에서 죽음이 손실과 파멸보다도 출생과 증식에 더 봉사하고 있는 이상, 무엇 때문에 본성이 죽음에 대해 증오심과 공포심을 조성하게 할 필요가 있는가?

이와 같이 만물이 새롭게 된다.      (루크레티우스)

많은 생명들은 죽음에서 출생한다.      (오비디우스)

한 생명의 쇠잔은 다른 생명으로의 통과이다.


인용으로 내 책을 장식한다면 1176


어떤 자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하고도 플라톤과 호메로스를 인용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원본에서보다도 상당히 다른 곳에서 따왔다. 힘도 안 들이고 능력도 없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자리 주위에 있는 수천 권의 책들 속에서, 생각만 있다면 나의 이 인상론(人相論)을 장식하기 위해서 들추어 보지도 않은 어느 표절자들 열두엇에서 즉각에 빌려 올 것이다. 인용으로 내 책을 장식한다면 한 독일 작가의 권두사(券頭辭)를 따오기만 해도 된다. 그것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속이며, 욕심나는 영광을 구걸하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1177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연구의 노력을 아껴 두고 상투어로 잡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부한 소재 외에는 소용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지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아주 재미나게 에우티데모스를 질책하던 식으로, 학문의 우스운 성과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데 소용된다. 나는 작가가 여러 박학한 친구들에게 이것을 조사해 달라고 하고, 이 다른 재료로 저것을 꾸며 달라고 당부하며, 자기로서는 연구하지도 않고 들어 본 일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이 알지 못하는 재료의 묶음을 기교있게 엮어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책을 꾸며 놓는 것을 보았다. 잉크와 종이만이 자기 것일 뿐이다. 그것은 솔직히 말한다면 어떤 책을 사거나 빌려 오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책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알림이 아니고,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는 바, 그가 책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나는 그 많은 빌려 온 것으로부터 어떤 것은 태평하게 표절하며, 그것을 가장하고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용도에 사용한다. 그 글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거기에 내 손으로 다른 특수한 의미를 주어 가며, 그것을 그만큼 아주 순수하게 남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도둑질한 것을 드러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들은 법 앞에서는 나보다 신용이 있다. 우리 따위의 본성론자(本性論者)들은 인용하는 명예보다도 창작의 명예를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게 평가한다.


60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1177∼1178


내가 학문을 가지고 말하고 싶었더라면 더 일찍이 말했을 것이다. 즉, 내가 재치도 있고 기억력도 더 좋았고 공부하던 때에 가깝던 시절에 써 보았을 것이다. 그때에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들, 그때의 젊은 패기에 지금보다는 더 자신을 가졌을 것이다. 게다가 운이 이 작품을 통해서 내게 베풀어 주는 이런 우아한 혜택이, 그때에는 더 유리했을 것이다. 이 소질을 크게 가진 내 친지들 중의 두 사람은 60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40대에는 글 쓸 생각을 않고 있다가, 재질의 반은 잃었다고 나는 본다. 성숙기에는 청춘기처럼 그때의 결함이 있고, 그 결함이 더 심해진다. 그리고 노년기가 이런 일에는 다른 어느 시절보다도 나쁘다. 아무라도 자기 노쇠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 내보이며, 그가 나이의 은총을 잃은 자이고 몽상가이며 정신이 잠든 자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 기분으로 표현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미친 수작이다. 우리 정신은 늙어 가면서 변비증에 걸리고 오그라든다.


미모, 자연의 특권 1179

미모가 얼마나 강력하고 유쾌한 소질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아무리 자주 말해 보아도 부족하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짧은 시기의 폭군이라고 불렀고, 플라톤은 그것을 자연의 특권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미모보다 더 신용을 얻는 특권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교제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미모는 앞으로 나타나며, 경이로운 인상으로 지대한 권위를 가지고 우리의 판단력을 유혹하며 독점한다. 프리네가 만일 그녀 옷깃을 슬쩍 벌리며 미모로 재판관을 유혹하지 않았던들, 탁월한 변호사에게 걸려서 소송 사전에 패소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온 세상의 주인이던 키로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가 이 미모를 끝까지 중시했다고 본다. 그리고 대 스키피오도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 말로는 '좋다'와 '아름답다'에 같은 낱말이 쓰인다. 그리고 성경에는 자주 아름답다는 말을 '좋다'는 말로 표현한다. 나는 플라톤이 야비하다고 말했지만, 옛날 시인에게서 따온 노래에 따라 건강·미모·부유를 선(善)의 범주에 넣은 것에 찬성하고 싶다.

 Phryne. 그리스의 창녀로 오만과 탐욕의 전형. 프락시텔레스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소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 1179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휘하는 권한이 미의 부류에 속한다고 하였고, 사람의 미가 신들의 모습에 접근할 때는 그는 당연히 똑같이 숭배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누가 그에게 어째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물에게 더 오래  더 자주 따르며 친하게 지내느냐고 물어 보자, 그는 "이 질문은 소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은 그들의 미모 덕택으로 수업료를 치렀고 예지를 얻었다.


미는 선과 두 치 상관으로 아주 가깝다 1179

내가 부리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역시 미는 선과 두 치 상관으로 아주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얼굴의 특징이나 모양,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으로 어떤 내적인 기질과 장차 올 운을 점치는 얼굴의 금들은 직접적으로 미와 추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좋은 향기와 명랑한 공기가 그것만으로 늘 건강을 약속하지 못하는 식이며, 둔하고 후덕하지 않은 것이 반드시 고치기 힘든 병이 유행할 때의 열병을 앓게 하는 나쁜 기운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용모라는 것은 증거가 박약한 보증이다 1180

용모라는 것은 증거가 박약한 보증이다. 그렇지만 용모에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만일 내가 사람들을 매질해야 할 처지라면, 약속을 어기고 배반할 인물이라는 것이 뚜렷이 이마에 박혀 있는 악인들을 더 혹독하게 다룰 것이다. 어떤 얼굴들은 다행히 호의를 얻고, 다른 얼굴들은 운 나쁘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덕한 얼굴과 바보 얼굴, 엄격한 얼굴과 가혹한 얼굴, 심술궂은 얼굴과 고민하는 얼굴, 경멸조의 얼굴과 우울한 얼굴, 또 서로 다른 비슷한 소질의 얼굴들을 분간하는 기술이 있을 것 같다. 오만하고도 쓰디쓴 미모가 있고, 또 다른 상냥한 얼굴, 그리고 더 넘어서 멋쩍은 얼굴들도 있다. 이런 인상으로 미래의 사건들을 예언한다는 일은 불확실한 것으로 남겨 둔다.


우리가 우리 권한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1182

우리는 일을 충분히 하늘에 맡기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이 아닌 것을 우리 멋대로 하다가 실패하는 수가 많은 듯하다. 어떻든 우리의 계획은 너무나 자주 잘못된 길로 간다. 하늘은 각기 특권에 대항해서 인간의 예지가 그의 권한의 폭을 넓히는 것을 시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권한의 폭을 넓히려고 하면 더욱 좁혀 버린다.


13. 경험에 대하여


헤엄 잘 치는 선수라야 한다
1190


사람들은 그들의 타고난 정신적 병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의 정신은 고치 짓는 누에처럼, 뒤져보며 찾아보며 끊임없이 뺑뺑이를 돌아 꾸며 가고, 자기 일로 자기를 틀어막아서 그 속에 질식한다. '끈끈이통에 빠진 생쥐'(라틴 속담)이다. 정신은 멀리 무엇인지 모르는 공상 속의 광명과 진리 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쪽으로 달려가는 동안, 그는 길에서 많은 장애와 곤란에 부딪히며 새 길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길도 정신도 잊어버리고 만다.

그것은 이솝의 개들과 똑같은 격이다. 이 개들은 바다 위에 무엇인지 죽은 시체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접근할 수가 없자, 이 물을 들이켜서 가는 길목을 말리려고 하다가 질식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크라테스라는 자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장을, 이 학문의 깊이와 무게 속에 빠져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독자가 "헤엄 잘 치는 선수라야 한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진짜 작가는 드물다 1191

우리는 사물을 해석하기보다도 해석을 해석하는 데 더 일이 많으며, 책을 놓고 쓴 책이 다른 제목을 두고 쓴 것보다 더 많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주석하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주석으로 웅성거린다. 진짜 작가는 드물다.

우리 세기의 주요한, 그리고 가장 평판 높은 학문은 학자들을 이해할 줄 아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모든 연구의 공통적이고 마지막 목표가 아닌가?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 1191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내 책을 늘려 간 것인가! 어리석고말고,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자들을 두고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자기 작품에 그렇게도 자주 곁눈질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작품을 위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이고,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를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흔히 똑같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다른 점에서보다도 이 점에서 내가 더 자유로워야 하지만, 내가 나의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 하는 식으로 나와 내 문장에 관해서 쓰고 있는 이상 내 제목은 그 자체로 뒤집히는 터이니, 모두가 이 변명을 받아 줄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너무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1195

감옥은 밖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불쾌하다. 나는 너무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내가 서인도의 한구석에 가는 것을 누가 금지한다는 말만 들어도 어느 점에선 살아가기가 전보다 불쾌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른 곳에서 더 개방된 땅이나 공기를 발견하는 한, 나는 숨어 지낼 곳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다 1195

나는 다른 주제보다도 나 자신을 더 연구한다. 이것이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다.


무지와 호기심 없음 1197

오오, 무지와 호기심 없음은 잘생긴 머리를 얹어 놓기에 얼마나 기분좋고 폭신하고, 그리고 몸에 유익한 베개인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통고 1198

저마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통고는 매우 중대한 효과를 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저 학문과 태양의 신(델포이 신전에 있는 아폴론)은 그가 우리에게 충고해야 할 일을 모두 포함시킨 듯, 이 말을 자기 신전의 장면에 새겨 놓게 했던 것이다. 플라톤도 역시 예지는 이 명령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의 문장에서 자세히 이것을 증명한다.


자신을 안다는 문제 1198∼1199

어느 학문에서나 이해하기 어려운 성질과 어둡고 어려운 성질은 그 학문을 닦는 사람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까지에는, 역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문을 밀어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아는 자는 알기 때문에 물어 볼 필요가 없고, 모르는 자는 무엇을 물어 보아야 할까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물어 볼 거리가 없다는 플라톤식의 묘한 논법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을 안다는 문제에서, 각자가 자기를 만나고 혼자 단정하고 만족하는 것, 각자가 자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고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의 문장에서 에우티데모스에게 가르친다.


이 자아 속에 너무나 무한한 깊이와 다양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1199

나는 이 일밖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로서 이 자아 속에 너무나 무한한 깊이와 다양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이제껏 내가 배운 것에는 내가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 것인가를 알게 된 일밖에 다른 성과가 없다. 내 판단력이 약하다는 것을 너무 자주 깨달아 온 까닭에 나는 겸양해지고, 내가 명령받은 신앙에 복종하고, 사상은 항상 냉철하게 절도를 지키는 경향을 갖게 되고, 그리고 자기 역량에 자신을 가지고 수양과 진리의 적인 방약무인하게 투쟁조로 나서는 오만한 태도에는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명령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들이 내놓는 천치와 같은 수작은 종교와 법률을 세우는 문체에 있다. "확언과 증명을 지각과 인식에 선행시키기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키케로)


확언과 고집 1199

아리스타르코스는 옛날에는 현자가 겨우 일곱 사람 있을까 말까 했고, 그의 시대에는 무식자가 겨우 일곱이나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지금의 우리 시대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닐까? 확언과 고집은 명백하게 어리석은 표징이다.


지금까지 생존했던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따라서 1200

나는 내 경험으로 인간의 무지를 강조한다. 그것은 인간의 학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식이다. 내 의견이나 자기들 의견과 같은 허망한 사례들을 가지고 이 무지의 사상을 품고 싶지 않은 자들은, 신들과 인간들의 증명으로 지금까지 생존했던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따라서 이 말을 인정해야 한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 그대들이나 나나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으러 가자. 거기서는 나도 그대들과 함꼐 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 본다 1200

내가 이렇게 오래 주의하여 나를 고찰하는 노력은, 남의 일도 어지간히 판단할 수 있게 나를 수련시켜 준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일보다 더 적절하고 용납될 수 있게 말하는 일도 드물다. 나는 내 친구들보다도 더 정확하게 그들의 사정을 보고 식별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는 내가 하는 말의 적절함에 경탄하며 그 말로 자기 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비춰 보는 수련을 쌓아서, 이 점에 몰두해 연구하는 소질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생각해 볼 때에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일들 중에 필요한 것은 용모·기질·사상 등 거의 다 놓치지 않고 주목한다. 나는 피해야 할 일, 좇아야 할 일 등 모든 것을 연구한다. 이렇게 해서 친구들이 밖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들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강인한 귀, 특별한 우정의 표시 1201

우리는 자기를 솔직하게 비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강인한 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이 쓰리다고 느끼지 않고 남의 비판을 참고 듣는 자는 드문 까닭에, 우리에게 감히 비평을 시도하는 자는 특별한 우정의 표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좋게 해 주려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모욕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전하게 사랑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못된 소질이 착한 소질보다 강한 자를 비판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플라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자에게 지식과 호의와 과감성이라는 세 가지 소질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대단히 중요한 연구 과제 1204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건강을 대단히 중요한 연구 과제로 하라고 충고하며, 이해성 있는 사람은 자기 몸을 단련하고 음식은 가리는 데 조심하며, 무엇이 자기에게 좋고 나쁜가를 의사보다도 더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습관이 가진 전능한 힘 1205

습관은 우리의 생명에 하고 싶은 대로 형체를 만들어 준다. 습관은 전능한 힘을 갖는다.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 1208


자기의 팔 힘만으로 살아가는 내 하인들과 나와의 차이를 보라. 스키타이 족들과 서인도 사람들은 형체나 힘으로는 나와 별로 다른 점이 없다. 거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부려 보았더니, 얼마 안 가서 그들은 그전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밥 잘 먹고 옷 잘 입으며 지내던 내 집에서 떠나버렸다. 그 중의 하나가 그 뒤에 돌아다니며 쓰레기더미에서 조개나 주워 먹고 끼니를 때우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아무리 달래고 위협해 보아도 그는 궁핍 속에서 얻는 감미로운 맛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거지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위풍과 탐락이 있으며, 그들에게도 직책이나 직무와 정치적 질서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버릇의 성과이다. 버릇은 우리를 자기 멋대로의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현자들은 그 때문에 부리는 습관이 즉시 우리를 좋은 형태로 만들어 주기 쉽도록 가장 좋은 형태 속에 박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변화와 변종으로 만들어 간다.


곰팡이가 끼어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1208

어떤 젊은이는 자기 정력을 일깨워서 거기에 곰팡이가 끼어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방어하기 위해서는 규칙들을 문란시켜야 한다. 세상의 명령과 훈련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만큼 어리석고 허약한 생활 태도는 없는 것이다.

점잖은 사람에게 가장 반대되는 태도는 어떤 특수한 방식에 너무 마음을 쓰며 매여 지내는 일이다. 생활 태도는 부드러운 융통성이 없으면 특수한 것이 되고 만다. 친구들이 하는 일을 기력이 없어서 못하거나, 또는 감히 할 생각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부엌이나 지키게 하라! 다른 곳에 가면 어디서도 점잖지 못하다.


규칙이 괴롭힌다 1212∼1213

한편에서는 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다른 편에서는 규칙이 괴롭힌다. 아무리 해도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쾌락을 좇으며 저지를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힘들지 않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쉬운 것이 수상하게 보인다.

여러 사물들에 대한 나의 욕망은, 그 자체가 상당히 묘하게 조화하여 내 위장의 건강에 적응해 주었다. 소스의 신맛과 쏘는 맛은 젊었을 때에는 구미에 맞았었다. 그 후에는 내 위가 그런 것을 받지 않으니 내 입맛도 바로 변해 버렸다. 포도주는 병자에게 해롭다. 그것은 맨 먼저 내 구미에서 벗어나 억지로 권해도 싫어졌다. 내가 받아서 불쾌한 것은 무엇이든지 내 몸에 해롭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는 것은 아무것도 해로운 것이 없다. 나는 기분에 맞는 행동으로 해를 입어 본 일이 없다. 그래서 모든 의료법이 결정한 것을 아주 대폭적으로 내 쾌락 앞에 양보시켰다. 그리고 젋었을 적에는,

사랑이 붉은 옷자락을 날리며
내 주위를 이러저리 즐겁게 돌아다닐 때,      (카툴루스)

나는 누구만큼이나 방자하게 정욕에 사로잡혀 지냈으며,

나는 싸울 때마다 상당한 영광도 거두었다.      (호라티우스)

돌격보다도 차라리 끈덕지게 오래 끌었으며,

여섯 번까지 지탱했던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오비디우스)

내가 얼마나 어린 나이에 처음 애정의 압제에 부딪혔는지 고백해 보면, 실은 불운도 있고 기적도 있었다. 그것은 정말 부딪힌 일이었다. 그때는 선택이라는 지각이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너무 오랜 이야기라서 내 일이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기가 처녀였던 시절의 생각이 안난다던 카르틸라(Cuartilla, 페트로니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여자)의 기억에 비겨 볼 수 있는 일이다.

가련한 일 1213

 

희망하는 데까지 약해지며 시들어 간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어조 1214

 

어조에는 가르치는 목소리가 있고, 아첨하는 목소리가 있고, 또한 꾸짖는 목소리가 있다. 나는 내 목소리가 상대편에 도달할 뿐 아니라 그 상대편을 쳐서 찌르기를 원한다. "양보다 질로 듣기에 적합한 어조가 있다."(퀸틸리아누스)

 

말은 반은 말하는 자의 것이고, 반은 듣는 자의 것이다. 듣는 자는 그 말의 어조에 따라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마치 공 치는 자들 사이처럼 받는 자는 치는 자의 잡는 동작과 치는 형태에 따라서 몸을 움직이며 준비하는 식이다.


질병 1215

질병은 생길 때부터 제한된 운명과 지속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그것을 강제로 단축시키라고 하다가는 연장시키고 키워 가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병을 진정시키는 대신에 자극한다. 나는 고집세워서 병에 대항하여도 안 되고, 또 얼빠져서 약하게 병에 넘어가도 안 되며, 그 반대로 병의 상태와 우리의 조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 크란토스의 의견을 좇는다. 병에게 지나갈 통로를 주어야 한다. 병을 제대로 두면 그것이 덜 오래 몸에 머무르는 것임을 보았다.

 

인간 조건 1216

 

어느 누구건 다 당하는 것을 자기가 당했다고 불평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그대 하나아게만 부정한 법률이 부과되었거든 불형하라."(세네카) 한 늙은이가 자기의 건강을 힘차게 보존해 달라고, 즉 그를 다시 젊게 해 달라고 신에게 요구하는 꼴을 좀 보라.

 

어리석은 자야! 어째서 이런 유치한 축복기도로

헛된 소원을 올리는가?                                     (오비디우스)

 

이건 미친 수작이 아닌가? 인간 조건에는 그런 일이 담겨져 있지는 않다. 통풍 · 담석 · 소화불량 같은 것은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징조이니, 그것은 긴 항해에서 더위가 비와 바람을 만나는 격이다.

 

 

기억력 1220

나는 기억력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에 종이로 이 기억력을 만들어 간다.

 

 

영광을 주기 위해서 1221

 

스토아 학파가 악덕이 도덕을 거들어 그 가치를 올려 주기 위해서 세상에 들여온 유용한 것이라고 말하듯, 우리는 그만큼 더 지당한 이치로, 자연은 쾌락과 평안과 건강에 봉사하여 영광을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통을 빌려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군대 생활 1225

군대 생활보다 더 재미나는 것은 없다. 맡아 보고 집행하기가 고상하며(왜냐하면 도덕 중에 가장 강하고 너그럽고 숭고한 것은 용덕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고상하다. 자기 나라의 안전과 위대성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보편적으로 정당하게 유익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모두가 귀족이고 젊으며 활동적이고, 그렇게 많은 비극적인 풍경을 예사롭게 관망하며, 기교 없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격식 없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나, 수많은 행동의 다양한 변화, 듣기에 경쾌하고 가슴에 열정이 좋게 하는 군악의 웅장한 화음, 이 직업을 실천하는 명예, 그 벅차고 힘든 일까지도 내 마음에 드는데, 플라톤은 이것을 너무 천하게 보고 그의 《국가론》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도 참여시키고 있다.


50세 1226

나는 지난번에 56세를 넘어섰다. 50세란, 어떤 국민들은 이 나이를 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인생의 아주 적당한 종점으로 정해 놓았던 나이로, 이것은 이유 없는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불확실하고 짧기는 하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이 나이를 훌쩍 넘었기 때문에, 젋었을 떄의 건강과 안일을 못 가졌다고 불평할 거리는 거의 없다. 나는 정력과 쾌활성은 말하지 않는다. 정력이 이 한계 너머까지 나를 따라올 이유는 없다.

이제부터는 애인의 집 문턱에서
궂은 날을 무릅쓰고 기다려 볼 기운조차 없다.      (호라티우스)


팔자가 좋은 소리 1228

세상에는 메추리고기를 두고도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없으면 괴로운 환자와 같이 구는 사람들도 있다. 팔자가 좋은 소리이다. 그것은 괴벽 중에서도 괴벽한 취미이다. 그것은 팔자가 편해서 보통 모두가 먹는 것에는 염증이 나는 취미이다. "그것으로 사치가 부유의 권태를 면하려고 한다."(세네카) 남이 즐기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고,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고,

간소한 식사로 마련한 채소 요리로 만족하지 않으면, (호라티우스)

그것은 악덕이 본질이다.


올라가게 하기 보다는 1229

어린아이들은 평민답고 자연스런 법칙으로 운에 맡겨 제대로 되어 가게 두라.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에 단련되는 습관에 맡겨 두라. 그들을 다음에 험난한 생활로 올라가게 하기보다는 내려오게 할 일이다.


레오니다스의 딸 1230


나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이며 딸인 켈로니스의 아름다운 마음을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지. 그의 남편 클레옴브로토스가 혼란의 틈에 부친 레오니다스에게 대항해서 우세하던 동안,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추방당한 부친의 어려움 속에 그의 편을 들며 승리자에게 반대했다. 그런데 운이 뒤집힌 다음 이 여자는 행운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 남편의 편을 들며 그가 패하여 달아나는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자기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자기가 가련하게 보아 주는 편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선택의 길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세도가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약한 자들에게는 거만하게 굴던 피로스보다는 당연히 플라미니우스의 본을 더 좇고 싶다. 그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온 채로 죽는 것으로 느낀다면 1231

하느님은 사람들의 생명을 조금씩 빼앗아 가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내리는 혜택이다. 이것은 노령의 단 하나의 소득이다. 마지막에 죽는 것은 그만큼 온전한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며, 그만큼 고통도 덜 받을 것이다. 이런 죽음은 사람의 반이나 반의 반쪽밖에 죽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내 이 하나가 아프지도 않고 힘도 안 들이고 빠졌다. 그것은 이 이의 상태로서 자연스런 한계였다. 그리고 내 존재의 이 부분과 다른 부분들은 이미 죽었고, 내가 정력이 왕성하던 시기에 가장 생기 있던 다른 부분들은 이미 반은 죽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무너져 가며 나로부터 빠져 나간다. 죽음으로의 뜀박질이 이렇게까지 진척되어 있는 것을, 내가 이제 온 채로 죽는 것으로 느낀다면 내 오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나는 오성이 그렇게 어리석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수명의 한계는 70 1231


내 죽음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이제부터는 운명에게 혜택을 요구하거나 바란다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내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며, 여기서 위안을 느낀다. 사람들은 옛날에는 인간이 키가 컸던 만큼 더 오래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옛날 사람이던 솔론은 인간 수명의 한계를 70으로 잡고 있다. 옛날의 그 '탁월한 중용'을 그렇게도 찬양하며, 중용의 절도를 가장 완벽한 것으로 간주하던 내가, 어이없게도 내 수명은 터무니없이 높게 요구해야 할 일인가? 자신의 흐름에 거꾸로 되어 가는 것은 모두 불쾌해야 할 일이며, 자연대로 되어 가는 것은 항상 유쾌해야 할 일이다. "자연과 합치하여 생성하는 사물과 형상은 모두 선(善)이라는 수(數) 중에서 계산되어야 한다."(키케로) 그 때문에 플라톤은 부상이나 질병이 가져오는 죽음은 횡사라고 불러도 좋으며, 노령이 우리들을 그리로 인도해서 닥쳐오는 죽음은 모든 것 중에 가장 가볍고 어느 점에서 감미로운 죽음이라고도 하였다. "청년에게는 난폭이, 노년에게는 성숙이 생명을 빼앗아 간다."(키케로)


지난 날의 내 그림에서 얼마나 더 멀어진 것인가! 1232


죽음은 사방에 우리의 생명과 섞이며 혼동된다. 쇠퇴가 그 시간에 앞서 오며, 바로 우리가 나아가는 길 속에 섞여 든다. 나는 25세와 35세 때의 내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미 몇 갑절이나 내가 아니게 되었던가! 지금의 내 그림은 나의 죽음의 그림자보다도 지난날의 내 그림에서 얼마나 더 멀어진 것인가!


누구와 같이 먹는가를 1233


나는 에피쿠로스가 하던 식으로 무엇을 먹는가보다도 누구와 같이 먹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킬론이 페리안드로스의 초청을 받고 그 향연에 참석하는 것 같이 식사할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전에는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일을 칭찬한다. 나는 사람과의 교제에서 얻는 취미보다 더 맛좋은 조미료는 없다고 본다.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재미 1236


우리의 쾌락들 사이에도 질투와 시기가 있다. 이런 것들끼리는 서로 상극이며 서로 방해를 놓는다. 진수성찬을 잘먹기로 유명한 알키비아데스는 이야기하는 재미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식탁에서는 악사들도 내보냈다. 플라톤은 그 이유를, 연회석에 악사들과 가수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예지로운 인사들이 그런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즐기는 좋은 말과 재미나는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평민들이나 하는 버릇이라고 하였다.


크세르크세세스의 경우
1237

나는 자연스런 쾌락을 너무 탐하는 것도, 그런 취미에 반대하는 것도 똑같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본다. 크세르크세스가 모든 인간적인 탐락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탐락을 찾아오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포고하더니, 그는 맹추같은 자였다. 그러나 본성이 자기에게 주는 탐락을 단절해 버리는 자도 그에 못지않은 천치이다. 쾌락은 추구해서도 피해서도 안 된다. 쾌락은 받아야 한다. 나는 쾌락을 좀 걸쭉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며, 기꺼이 본성의 영향을 향해 이끌려 간다. 쾌락의 헛됨을 과장해 보아도 소용없다. 그것은 충분히 느껴지며 충분히 드러나보인다. 우리의 정신과 아울러 쾌락에 싫증이 나게 하며, 흥을 깨트리는 구실을 하는 병든 정신의 간섭을 거부하자, 정신은 그 만족할 줄 모르며 변하기 쉬우며 변덕스런 성질에 따라서, 그 자체와 그것이 받아들이는 사물들을 어느 때는 지나치게, 어느 때 늘 모자라게 다루고 있다.


일상생활은 정상적인 직무 1239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는 똑같이 자기들의 가장 위대한 사업을 수행하는 중대한 시기에도 본성의 쾌락, 따라서 필요하고도 정당한 쾌락을 아주 충만하게 누리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정신의 풀림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런 격렬한 직무와 힘든 사색을 그들 마음의 정신으로 일상 생활의 실천에 굴복시켜서, 심령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은 정상적인 직무이고, 다른 것을 비정상적인 직무라고 보았다면 그들이 현명하였다.


뭐? 당신은 살아보지 않았단 말이오? 1239


우리는 대단한 바보들이다. "저 사람은 그의 일생을 한가롭게 보냈지.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한 일이 없네"라고 우리들은 말한다. "뭐? 당신은 살아보지 않았단 말이오? 그것이 당신의 직무들 중의 기본적일 뿐 아니라, 가장 훌륭한 일이오." "사람들이 내게 중대한 일을 다루어 볼 처지에 두었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완을 보여 주었을 것이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생각해서 조종할 줄을 알았소? 당신은 모든 일 중의 가장 위대한 일을 수행한 것이오."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 1239∼1240

본성이 자기를 나타내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운수 따위는 상대할 거리도 안 된다. 본성은 모든 층계에서 똑같이, 마치 장막이 없는 것처럼 그 뒷면까지도 나타내 보인다. 계락을 꾸밀 것이 아니라, 행동 습관을 꾸미는 것이 우리가 할 업무이다.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행실에 질서와 안정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걸작은 우리가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지배한다, 재물을 모은다, 건설한다는 따위의 모든 일들은 기껏했자 부수적이며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 군대의 장군이 방금 공격하려고 하는 돌격구(突擊口)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마음을 터놓고 한가로이 담소하는 장면이나, 천지가 자기와 로마의 자유에 반대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때에 브루투스가 순회 근무에서 물러나와 밤의 몇 시간을 안심하고 사학자 폴리비오스를 읽으며 주(註)를 달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하찮은 심령들이나 자기 일의 무거운 부담에 눌려 지내며, 그런 일에서 완전히 풀려나와 채워 두었다가 다시 잡아서 처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오오, 나와 함께 가장 독한 시련을 겪어 온 용감한 전사여,
오늘은 그대 근심을 술잔에 담그라.
내일 우리는 망망한 대해로 배 띄워 나가리라.
                                                                       (호라티우스)

농담으로건 진담으로건, 소르본 대학의 신학주(神學酒)와 향연은 속담에도 오르지만, 그들이 오전은 유익하고 근직하게 학문의 단련에 보낸 만큼, 저녁 만찬은 태평하고 더 유쾌하게 든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라고 본다. 다른 시간들을 잘 사용했다는 생각은 식탁에서 더 정당하고 맛있는 향미가 된다. 현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저 두 카토가 도덕을 위해서 남이 모방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놀라는 바이지만, 그들의 그 어색할 만큼 엄격한 심정은 그들 학파의 교훈을 따라서 인간 조건의 법칙과 비너스와 바쿠스의 법칙에도 유순하게 복종하며 그 법칙들을 즐겼던 것이다. 그들 학파는 완벽한 현자에게, 인생의 다른 모든 의무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탐락의 습성에도 똑같이 기술이 있고 이해가 깊기를 요구하고 있다. "미묘한 판단력을 가졌으면, 미묘한 구미도 가져야 한다."(키케로)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가짐 1240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넉넉함과 편안함은 강력하고 후덕한 심령에 경이롭게 영광을 주며, 그들에게 더 적합한 일로 보인다. 에파미논다스는 자기 도시(테베시를 말함)의 청년들의 무도회에 참가하여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 자기와 같은 혁혁한 군공(軍功)을 세우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풍속 개혁을 성취한 자의 명예에 손상을 주는 일로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소문을 받은 늙은 스키피오는 감탄스러운 많은 행동을 했다. 그중에, 그가 유치하게도 능청하게 라엘리우스와 바닷가를 따라 거닐며 조개껍데기를 골라 줍기에 흥겨워하며, 공기놀이 장난을 즐기고, 날씨가 나쁜 때에는 방 안에 들어앉아 가장 평민적인 비속한 행동을 묘사하여 희극을 꾸미는 일로 재미삼으며, 머리는 한니발에 관한 대책과 아프리카 원정 계획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그가 시칠리아에 가서는 로마에 있는 그의 적들이 이를 박박 갈며 시기할 정도로 여러 학교를 찾아가 철학강의를 들었던 일보다 더 그 인물에 매력을 주는 일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1240∼1241

소크라테스가 아주 노령에 이르러서도 시간을 내어 댄스와 악기 연주를 배워 가며, 이것으로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 인물이 그리스 군대 전체 앞에서 심오한 사상에 사로잡혀 정신을 잃고 황홀해서 하루 종일, 그리고 하룻밤을 서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가 적에게 압도당한 것을 보고 군대의 많은 용감한 사람들 중에서 맨 먼저 구원하러 달려가 자기 몸으로 그를 가리며, 무기를 휘둘러 적군을 흩어져 달아나게 한 일이 있었다. 또 30명의 폭군들이 괴뢰들이 테라메네스를 처형하려고 할 때에, 이 부당한 처사에 그와 함께 분노한 전 아테네 시민들 중에서 맨 먼저 그를 구원하려고 나섰다가, 테라메네스가 직접, 겨우 시종 두 명밖에 데리고 있지 않았는데도 굳이 말렸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의 대담한 기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미소년의 구애를 받고 강요당했을 떄에도 엄격하게 욕심을 억제한 일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완벽한 형태의 본보기 1241

그는 27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굶주림과 추위와 말 안 듣는 어린아이들의 보챔과 아내의 바가지 등쌀에 시달렸고, 마침내는 고발과 포학과 투옥과 쇠사슬과 독배형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인물은 교제의 의무로 술마시기 내기에 초청되면, 군대 중에서도 역시 승자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공기놀이와 목마타기를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에도 우아한 품이 있었다. 왜냐하면 철학에 말하기를, 현자에게는 모든 행동이 똑같이 적합하며, 똑같이 영광을 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형태의 본보기를 이 인물의 모습에서 찾아볼 일이며, 그리고 그 모습을 귀감으로 삼기에 결코 물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인생의 충만하고 순결한 사례들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가르쳐 준답시고 좋은 점이라고는 단 한 주름 있을까 말까 하며, 우리를 도리어 뒤로 퇴보시키고, 고쳐 주기는 고사하고 타락시키는 어리석고 못나고 부족한 자들을 날마나 우리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람 노릇을 잘 하는 것 1241

세인은 잘 속는다. 사람들은 넓게 열린 큰길을 취하기보다도, 그 끝이 도로 표시와 경계선이 되는 언저리를 따라 가기가 쉽다. 또한 본성보다도 기교를 따르기가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상한 품이 훨씬 적고 권장할 것이 못 되는 일이다. 심령의 위대성은 높이 올라가고 앞으로 나가는 일보다는 한계를 정하여 조절할 줄 아는 데 있다. 심령은 넉넉한 것은 모두 위대하다고 보며, 탁월한 것보다는 중용이 되는 사물들을 사랑함으로써 그 높이를 보인다. 사람 노릇을 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정당한 일은 없으며, 이 인생을 자연스럽게 잘사는 길을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든 학문은 없다. 그리고 질병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병폐는 우리의 존재를 경멸하는 일이다.


절제를 지키게 할 일 1242

신체가 병들었을 때에, 전염되지 않게 영혼을 떼어 내고 싶은 자는 할 수만 있으면 용감하게 해 보라. 다른 데서는 그 반대로 영혼이 신체를 도와서 애호하고, 그 본연의 쾌락에 참여하여 즐기기를 거절하지 말 일이며, 영혼이 더 현명하다면 분수 없이 하다가 불쾌한 일을 섞지 않도록 절제를 지키게 할 일이다. 무절제는 탐락이 주는 고치기 힘든 병이다. 그리고 절제는 결코 탐락의 징벌은 아니다. 그것은 쾌락에 맛을 더한다. 탐락을 최고선으로 세우던 에우독소스와 탐락을 대단히 높은 가치로 올려 놓던 그의 동료들은, 그 둘 사이에 특별히 모범적으로 지켜 오던 절제의 방법으로 이 탐락을 가장 우아하고 감미로운 진수로 맛보았던 것이다.


고통과 탐락 1242

고통은 그 연약한 시초에는 무엇인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탐락은 그 과도한 끝장에서 피해야 할 무엇이 있다. 플라톤은 이 둘을 짝지으며, 고통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똑같이 강인함이 맡은 역할이라고 보려 한다. 이들은 두 줄기 샘물이다. 거기서 국가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때맞춰서 길어 낼 때에 그는 행복하다. 첫번 것은 필요에 따라 약으로 써야 하며, 또 하나는 목마른 때에 마시되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된다. 고통· 쾌락·사랑·미움 등은 어린아이가 맨 먼저 느끼는 일들이다. 만일 거기 이성이 솟아나서 그런 사물들이 이 이성에 적용되면 그것이 도덕이다.


나는 시간을 어루만지며 매달린다 1242

나는 나 혼자 쓰는 어휘를 가졌다. 나는 날씨가 나쁘고 불편할 때에는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좋으면 시간을 보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시간을 어루만지며 매달린다. 나쁜 날씨는 달음질쳐 보내고, 좋은 날씨는 주저앉게 하고 싶다. 이 '소일(消日, passe temps)'과 '시간을 보냄(passer le temps)'이라는 평범한 말투는, 인생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이 인생을 흘려서 놓쳐 보내고 모면해 가며, 자기들이 알 수 있는 한 이 일생을 어떤 귀찮은 경멸할 거리인 것처럼 무시하고 도피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습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다르게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갑절은 인생을 즐긴다 1243

"깨닫지 못하는 자의 인생은 희열이 없고 혼돈스러우며 미래의 일만을 생각한다."(세네카) 그 때문에 나는 인생을 잃어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잃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며, 그렇다고 귀찮고 괴로운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가 재미나는 자들만이 죽는 것도 불쾌해지지 않는다고 해야만 격에 맞는 일이다. 인생을 즐기는 데는 그 법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갑절은 인생을 즐긴다. 왜냐하면 즐기는 정도는 어느 정도 노력하는 열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내 생명을 시간적으로 아주 짧게 보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나는 인생의 무게로 늘려 놓고 싶다.

나는 인생이 빨리 달아나는 것을 재빨리 잡아서 멈추게 하고 싶다. 그리고 생명을 정력 있게 사용함으로써 그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충하며, 삶의 소유가 더 짧아짐에 따라 인생을 더 심오하고 충만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겠다.


희망의 노예 1244

그들은 현재 가진 것은 제쳐 두고, 희망의 노예가 되어서 환상이 그들 앞에 그려 보이는 그림자들과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며,

죽은 뒤에도 춤을 춘다고 하는 유령들과도 같이,
또는 수면 속에 우리 감각을 기만하는 헛된 꿈과도 같이,      (베르길리우스)

이런 헛된 생각들은 사람이 그것을 좇아가면 그들도 발걸음을 멀리 떼어 급하게 달아난다. 알렉산드로스가 자기 사업의 목적은 오직 일하는 데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이, 인간들이 추구하는 성과와 목적은,

무엇이건 할 거리가 남아 있으면
아무것도 해 놓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루카누스)

그저 추구하는 데 있다.


인간적인 것, 참으로 유치한 수작 1245


헐학 사상들 중에서 나는 가장 견실한 것, 다시 말하면 가장 우리의 것인 인간적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내가 생각하는 바는 내 행동 습관에 맞게 낮고 천하고 하찮은 것이다. 철학자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을 속세적인 것에, 합리적인 것을 비합리적인 것에, 엄격성을 관대성에, 정직을 부정의에 결합시키는 일은 야만적인 결합이라고 하며, 탐락은 현자가 맛볼 가치가 없는 짐승들의 소질이고, 그가 젊고 예쁜 아내에게서 얻은 단 하나의 쾌락을 말을 탈 필요가 있을 때에 장화를 신는 식으로 올바른 일을 행하는 양심적 쾌락이라고 맹렬한 기세로 설교하는 것은 참으로 유치한 수작이다. 마치 그의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이 아니면 그들 아내의 처녀성을 빼앗을 권한도 정력도 생기도 없다는 말투다!


본성은 상냥한 안내자이다 1245


본성은 상냥한 안내자이다. 그러나 상냥하기보다도 더 현명하고 올바르다. "우리는 사물들의 본성에 침투하여 그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키케로) 나는 사방으로 이 본성의 자취를 찾는다. 우리는 그것을 인공적인 기이하고 묘한 자취와 혼동하여 왔다. 그리고 아카데미(플라톤) 학파와 페리파토스(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최고선은 이 본성을 따라서 살아감을 말한다. 그 때문에 정의하여 표현하기가 힘들다. 이와 가까우며 본성에 동의함을 말하는 스토아 학파의 최고선도 역시 그렇다.


신성한 진리 vs 인간적 허영, 이 둘을 서로 봉사하도록 내어줄 일 1246

어떤 행동들이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덜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신들은 항상 이 필연성과 공모한다고 옛 사람(시모니데스를 가리킴)은 말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 보아도 그들은 쾌락과 필연성의 결합이 대단히 적절한 일이라는 생각을 내 머리에서 말끔히 떨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처럼 서로 통하게 결합되어 짜여진 구조를 갈라서 분리시켜려는 것인가? 그 반대로, 이 둘을 서로 봉사하도록 매어 줄 일이다. 정신은 그 둔중한 신체를 잠 깨워서 활기를 줄 것이며, 신체는 정신의 경솔함을 붙들어서 잡아매어 둘 일이다. "누구라도 영혼의 본성을 최고선으로 앙양하고 육체의 본성을 악이라고 처단한다면, 그는 확실히 영혼을 육체적으로 총애하고 육체적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적 허영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선물에는 우리가 보살펴 줄 가치가 없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 머리털 하나하나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그 조건에 따라 인도하는 일은 형식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이 사명은 명확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조물주는 우리에게 이 사명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수여했다. 권위만이 오로지 오성 위에 지배력을 가지며, 그리고 외국어로 말할 때에 더욱 무게를 가진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공격하자. "인간이 행해야 할 것은 저주해 가며 비굴하게 행하고, 육체적 영혼은 각각 다른 방면으로 밀려, 자신을 이렇게도 반대되는 동작들로 분열시키는 일이 바로 천치의 수작임을 부인할 길이 있는가?"(세네카)


글쎄, 좀 보라 1246


글쎄, 좀 보라. 자기 머릿속에 처넣은 사상 때문에 맛있는 식사도 돌아다 볼 생각을 않으며, 이런 먹는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서야 되느냐고 불평하는 자의 잡념과 허상을 마음놓고 그대에게 말하도록 해 보라. 그대는 식탁의 모든 반찬들 중에 그의 영혼이 말하는 그 훌륭한 이야기보다 더 멋쩍은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대개의 경우 우리가 지켜보는 것은, 지켜보기보다는 잠자고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과 의향은 그대의 스튜 요리만한 가치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르키메데스의 황홀경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존경할 만한 심령들이나 하는 연구 1247

나는 여기서 저 신앙과 종교의 열성을 가지고 항구적이며 의식적으로 거룩한 사물들을 명상하도록 길러진 자들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다. 또 생기 있고 새로우며 강렬한 희망의 노력으로 썩지 않는 단 하나의 영원한 쾌락으로서 기독교적 욕망의 종국적 목표이며 궁극적 한계인 영원한 양식을 미리 맛보며, 우리의 활동적이고 애매하고 궁색한 안락에 기대하기를 경멸하며,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양식의 사용을 쉽사리 육체에게 맡겨 버리는 것은 존경할 만한 심령들이나 하는 연구이다.


시간을 아끼자 1247

나는 항상 평범한 사이에서도 가장 천상적(天上的)인 사상과 가장 현세적 행위가 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았다. 저 위대한 인물 이솝은 그 주인이 걸어가며 오줌을 깔기는 것을 보고, "이거 어디 되겠습니까? 다음에는 달음질치며 똥을 싸야 할 일이 아니오?" 하였다. 시간을 아끼자. 우리에게는 아직도 너무 한가롭고 잘못 사용되는 시간이 많다. 우리 정신은 자기의 필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이 조그만한 공간에서 아마도 신체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고는 일하기 위한 다른 시간들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모양이다.


치명적으로 천한 것 1247

우리의 학문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이 가장 비천하고 세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생애에서, 자기를 신격화하는 생각보다 더 치명적으로 천한 것을 알지 못한다.

필로타스는 이 대답으로 그를 재미나게 풍자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를 신들 축에 넣어 준 주피터 신 암몬의 신탁 편지를 가지고 그와 함께 즐기며 말했다. "그대를 위해서 내 마음은 대단히 기쁘오. 그러나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의 척도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살며, 그에게 복종해야 할 자들을 가련히 생각하오." "그대는 신들에게 굴함으로써 세상에 군림하는 것이다."(호라티우스) 아테네 인들이 자기들의 도시에 폼페이우스가 왕림하는 것을 환영하는 얌전한 글귀는 내 뜻에 맞는다.

그대는 자기를 인간으로 인정하니,
그만큼 그대는 신이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아미오 역)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 1248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인 완벽이며, 신성함과 같은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죽마(竹馬)를 타고 높이 올라 보아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죽마 위에서도 우리는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 위에서도 역시 우리 궁둥이는 자리에 앉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 1248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내 생각으로는 터무니없는 기적 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로 질서 있게 처신하는 인생이다.


노년의 축원 1248

그런데 노령기는 좀더 부드럽게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건강과 예지의 수호자이면서 유쾌하고 사귐성이 있는 이 신(아폴론 신을 말함)에게 노년기의 축원을 바치자.

라토나의 아들이여,
내가 받은 재산을 굳건한 건강과 아울러 내게 주도록 간청하노라.
그리고 나의 지적 소질이 온전히 머무르도록 기도하노라.
내 노년기로 하여금 추악한 꼴이 되지 말고,
아직도 칠현금을 탈 수 있게 해 다오.      (호라티우스)

(끝)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① (1∼116쪽)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② (114∼349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① (351∼593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② (595∼728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③ (733∼865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① (870∼994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② (995∼1112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③ (1116∼1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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