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 자서전
스티븐 윌리엄 호킹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호킹을 만나봅니다. 이 책은 호킹이 직접 쓴 자서전입니다. 책의 원제는 [My Brief History]라고 되어있군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이야기, 학문에 대한 그의 여정이 진솔하게 그려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부터 언급이 됩니다. 어렸을 때 호킹은 별로 특이한 점은 없었군요. 내성적 성향입니다. 사회성도 늦었지요.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옥스퍼드에서 태어납니다. 독일은 영국이 하이델베르크와 괴텡겐을 폭격하지 않는 대가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폭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군요. 일종의 안전지대에서 출생한 것이지요. 호킹은 이런 문명화된 합의가 더 많은 도시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어린 나이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당시 옥스퍼드는 학업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답니다. 노력하지 않고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든지,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4등급 성적을 받든지, 둘 중 하나라는 식이었답니다. 옥스퍼드가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본인의 노력은 필요없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런 상태에서 호킹 역시 공부는 대충하고 간신히 졸업합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들어갑니다. 우주론을 공부하고 싶어합니다.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은 직후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합니다. 그 얼마 전부터 몸놀림이 어설퍼지면서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지요. 급기야 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어집니다. 지금도 어려운 병이지만, 그 당시에 의상의 처방은 오직 '비타민'이었군요. 몇 년 안에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제인 와일드라는 여성과 약혼을 합니다. 그 당시 받은 진단명은 루게릭 병이라고도 불리우는 '근위축성측상경화증'입니다. 몸놀림이 갈수록 어설퍼져서 글을 쓰거나 타자를 치기 힘들어지는군요. 어쨌든 제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제인의 수고가 많군요. 호킹은 머리 쓰는 것만이 전부인지라 아이들 양육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군요. 제인과의 결혼 생활은 그리 해피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의 학문은 진전이 있습니다. 중력파(gravitational wave)를 지나 빅뱅으로 넘어갑니다. 1960년대 초 우주론의 중대한 질문은 우주의 시초(origin)가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지요.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시초가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반발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순간은 과학이 무력해지는 지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내려면 종교와 신의 손에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지요. 몇 해전(2010년) 호킹은 그의 책 [위대한 설계]에서 신의 창조론을 부정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호킹은 그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1974년에 왕립학회(Royal Society)회원으로 선출됩니다. 젊었고 하위직 연구 조교수에 불과했던 시점이었으므로 모두 놀라는군요. 그리고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교수로 승진합니다. 몸이 협조를 잘 안해주는지라 이미 4년 전부터 수동 휠체어와 전동 삼륜차를 사용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내 제인은 호킹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앞날을 예비합니다. 이미 그들 사이에 아이들이 셋이나 되는군요. 제인은 호킹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아예 아파트의 방 하나를 내줍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공교롭게 호킹의 몸 상태는 더욱 나빠집니다. 발작적인 호흡곤란이 찾아옵니다. 제인과 이혼. 간호사 일레인과 재혼. 그리고 일레인과도 이혼. 그후 호킹은 독신으로 가정부와 함께 삽니다. 몇 해전엔 호킹의 비서가 자신을 학대했다는 주장을 해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지요.

 

 

 

 

그의 유명한 저서 [시간의 역사]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이 책을 읽다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국내에서도 오래 전에 출간되었던 [시간의 역사]를 서고에서 찾아보니 암만 찾아도 안 보이는군요. 누가 가져간 것인지, 누구에게 주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시간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1천만 권 이상이 팔렸답니다. 그가 일반 독자를 겨냥하여 우주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을 처음으로 품은 것은 1982년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의도 중에는 돈을 벌어서 딸의 학비를 대겠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딸 루시는 그때 학교 졸업반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킹이 책을 쓰게 된 주된 이유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그가 느끼는 대로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서 출간된 그의 전문적인 책들은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지요. 그가 일반 출판사와 섭외 중에 이렇게 이야기했다는군요. '공항의 서점에서 팔릴만한 책'. 물론 호킹도 출판사도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왜 그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호킹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장애를 딛고 이론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흥미로운 사연이 책의 판매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책 말미엔 이런 글도 붙였군요.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영광스러웠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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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한 문학의 강의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7
움베르토 에코 지음, 손유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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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릇 역량있는 작가들은 독자들의 기다림 타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코가 안내해주는 문학의 숲길을 거닐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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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한 문학의 강의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7
움베르토 에코 지음, 손유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한다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공부 벌레'이기도 하고 '언어의 천재'이기도 합니다. 재능이 많은 분이기도 하지만, 노력이 더해졌다고 생각듭니다. 나에게 선하고 강한 자극을 주는 분이지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한 마디 했군요. '방대한 중세 세계라는 원자재로 희한한 베스트셀러를 써낸 작가'. 그의 최신작[프라하의 묘지]는 진작 구입해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역시 중세가 무대이지요.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하버드 대학에서 한 여섯 '문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꼭지글의 제목에 '숲'이라는 단어가 4군데 들어가는군요. '숲 속으로 들어가기', '루아지의 숲', '숲 속에서 서성거리기', '상상의 숲', '저 이상한 세르반도니 가' 그리고 '허구적 칙령들'입니다.


에코가 '숲'이라고 표현 한 것은 문학의 무대, 분위기 나아가서는 '문학'이라는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 문학의 숲 속을 걸어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 또는 몇 개의 길을 가보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숲을 걸으면서 왜 어떤 길은 이용할 수 있고, 또 어떤 길은 이용할 수 없는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자 하는 1차원적 수준의 모델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는 표현을 하는군요. 예를 들면,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이 과연 고래를 잡을 것인가,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나오는 레오폴드 블룸이 1904년 6월 16일 스티븐 디덜러스를 몇 차례 만나고 난 후에 또다시 그를 만나게 될 것인지 등.


'모델 독자'라는 표현이 생소하시지요? 1차원적 모델 독자가 있으면, 2차원적 수준의 독자가 있겠지요. 에코는 "모든 텍스트는 2차원적 수준의 모델 독자에게도 말을 건네는데, 이런 독자는 주어진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독자를 원하는지 궁금해하고, 모델 작가가 어떻게 독자의 지침이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독자를 가리킨다."  모델 작가의 목소리가 그것을 애써 찾으려는 2차원적 수준의 독자에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텍스트는 애거서 크리스타의 유명한 탐정 소설 [로저 애크로이드의 살인]을 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 책에서 '나'라고 말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독자가 읽는 텍스트를 실제로 쓴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나아가선 그(화자)는 자신의 일기에 대한 모델 작가로도 행세합니다.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영화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가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던가, 주인공이 아닌 것이지요. 문학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성거림'의 대표주자는 프루스트라고 생각듭니다. 오죽하면 출판업자가 그의 작품을 거부하며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나의 이해가 느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잠들기 전에 자리에서 뒤척이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 30 페이지를 할애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불면증 환자도 읽다가 잠이 들 지경입니다. 아, 프루스트가 그런 의도로 썼을까요?  "나(프루스트)는 비록 잠 못들어도 당신(독자)이라도 주무시구려."  예술 형식에선 시간의 경과가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스토리 진행 시간이 [읽는 시간]과 일치하는 예술 형식들이 존재하는데, 음악과 영화가 대표적인 케이스지요. 영화에서는 스토리 진행 시간이 줄거리 시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음악에서는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회화나 건축 같은 공간 예술들은 시간과 무관합니다.


에코는 서성거림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포르노 영화 쪽으로 빠지네요. 그는 한때 포르노 영화 여부를 가려내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도덕군자라면 노골적이고 상세한 성행위 장면들이 있는 영화를 포르노 영화라고 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포르노 여부를 가리는 많은 재판에서 어떤 작품들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실주의적인 목적에서, 혹은 윤리적 이유에서 그런 장면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에코가 간파한 것은? "포르노 영화는 노골적인 성적 장면들을 보려는 관객들의 욕망을 채워주려고 만들어지지만, 1시간 30분 가량의 성행위 장면을 중단 없이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우들이 피곤해서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관객들도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행위 장면들은 줄거리 전체에 분산되어 있어야만 한다."   리뷰 마무리가 4르노 이야기가 되어 좀 그렇습니다만, 무릇 역량있는 작가들은 독자들의 기다림 타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코가 안내해주는 문학의 숲길을 거닐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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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삶 - 과학과 철학의 소통
이정일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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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뇌에 균형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곧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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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삶 - 과학과 철학의 소통
이정일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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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이전에 너무 세분화된 학문이 문제다.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젠 너무 흩어졌다고 생각하는지 통섭, 융합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특히 과학과 철학의 흐름은 원래 하나였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분지된 간격이 너무 벌어져버렸다.

 

저자 이정일 교수는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철학에 있어서 고전이 아직도 우리에게 생생하게 말을 걸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고전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무엇인가.' , '무엇을 위한 철학인가?'라는 물음은 분명한 방향이 있지만, 그 답과 해결은 미완성 상태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마도 현재진행이라는 것이 답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서의 힘은 원리를 이해하고 지배하는 데 있다. 학문의 정체를 표현한다면, 바로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과학과 철학은 그런 면에서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책은 총 4부 12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제1부에서는 학문일반과 우리의 일상생활 모두가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과의 연관을  2부에선 학문일반과 과학의 관계. 3부에선 근대 학문의 근본 위상을 검토하고 있고, 마지막 4부에선 인간의 실천적 삶이 어떻게 의미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수학의 세계는 오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오류는 곧 오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괄적인 과학의 마당에선 가설의 오류 역시 발견의 계기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한다. 수학은 문제풀이지만 과학은 가설 검증이기 때문이다. 가설이 오류라는 것은 그 오류가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기되었다는 데 그 기본 특징이 있다.

 

칸트는 학문이 상아탑에만 머무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학교개념'과 '세계개념'으로 구분했다. 칸트는 학교와 세계를 공간적인 크기로 나눈 것이 아니다. 사유의 크기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학교라는 메타퍼는 강단철학을 의미하며 학술적인 철학을 의미한다. 강단철학에 만족하는 그룹은 순수한 이론의 차원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에 대한 희망사항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적 행복과 초자연적 행복으로 구분했다. 자연적 행복이란 현실에서 우리 인간이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덕을 충족하는데서 오는 삶을 말했다. 여기에 빠진 것이 있다. 물질이다. 좀 더 솔직한 표현으론 '재물'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를 물으면서 우리의 삶이 존재로 넘어가길 바랬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프롬 영감님, 나도 존재가 좋으나 소유가 없으면 존재 자체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찌하리요?" 아직 답장을 못 받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초자연적 행복이란 절대자 신을 만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을 뜻한다. 신을 관조하며 사는 삶. 신이 나와 함께 한다는 일상은 인간의 삶에 엄청난 반전을 줄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챙겨할 것을 모두 챙겼을 때 행복하다고 한다. 이 점에서 행복은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좀 더 존재론적으로 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철학자들이 '애쓰고' 있다.

 

저자는 책의 후반 '짧은 단상들'에서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의견, 취미, 생각, 세계관, 정치적 견해들,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이해, 사랑, 아름다움의 대상과 기준, 도덕적 태도 등에 대해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 전공자인 저자는 주로 자연과학부 학생들과 공대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강의록을 정리한 것이다. 자연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진 뇌에 균형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곧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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