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이야기 - 세계 거물들은 올해도 그곳을 찾는다
문정인.이재영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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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고대 로마 시대의 공공 집회 광장에서 유래한다. 이곳에서 포럼 디스커션(forum discussion)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행하던 토의 방식의 하나로 사회자의 지도 아래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연설을 한 다음, 그에 대하여 청중이 질문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흔히 줄여서 포럼이라고 쓰고 있다. 현시대에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국제회의에서부터 크고 작은 단체가 진행하는 갖가지 회의까지 포럼이라는 이름아래 모인다.

 

 

 

2. [다보스 포럼]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1월 하순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 칸톤(州)의 해발고도 1천575m 알프스 산맥 자락에 있는 조그만 마을 다보스에서 개최하는 연차 총회를 의미한다.

 

3. 1971년 다보스포럼이 생기기 전만해도 국제사회에서 '포럼'이라는 형식의 회의 자체가 그리 익숙한 틀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비공식대화를 나눈다는 개념이 더욱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 이 책은 제목에서 시사해주고 있듯이 [다보스 포럼]에 대한 이야기다. 다보스 포럼은 탄생후 40년이 지난 지금 명실공히 지구촌을 통틀어 가장 많은 주목을 맏는 국제회의이다. '다보스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5. 이 책엔 두 사람의 필진이 참여했다. 한 사람은 수년간 교수 요원으로 다보스포럼에 참여해온 외부 전문가였고, 다른 한 사람은 포럼을 준비하는 주최 측 요원으로 일하며 현장을 지킨 내부자이다.

 

6.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내부자였던 이재영 의원이 회고하는 '안에서 본 다보스포럼'이다. 포럼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WEF의 조직체계와 운영방식,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다보스포럼의 성공 요인과 앞으로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를 분석했다. 2부는 지난 5년간 패널로 참석해온 문정인 교수가 쓴 '밖에서 본 다보스포럼'이다. 3부는 이러한 안과 밖의 시각을 조각퍼즐처럼 입체적으로 그러모으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7. 포럼의 사상적 기반은 슈밥 교수의 '다중이해관계자 이론'에 기초한다. 기업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이론은 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 개인 및 집단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언어가 다르고 습관과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지라도 기본적인 개념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속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8. 그렇다면 다보스포럼과 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견해는 어떤가? 무수한 비판들을 '존재적 비판'과 '기능적 비판'으로 나누어본다. 먼저 존재적 비판은 다보스포럼의 핵심 사상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포럼의 사명, 회원 구성, 운영 방식'등 전반적인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9. 학계에서도 다보스포럼이 세계화를 주도한다는 비판은 이어진다.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다보스 문화'라는 표현을 만들어 모든 국제적인 집단을 이끌거나 세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점유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다보스 사람'으로서 다보스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한다고 지적했다.

 

10. 비난과 달리 비평이나 비판은 성장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다보스 포럼]이 명실공히 지구인의 나눔과 공유, 발전의 자리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화 시대에 [다보스]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다음 세대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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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노멀 - 디지털 혁명 제2막의 시작
피터 힌센 지음, 이영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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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나돌면서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아우가 형을 밀어내듯이 세상의 모든 변화는 그렇게 가고 있다. 후배가 선배를 앞서간다. 디지털 후배는 아날로그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안다.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조금만 더 봐드리지요. 그 자리에 넘 오래 버틸 생각은 하지 마십시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이 책의 키워드인 디지털과 아날로그 라는 단어에 떠오른 단상이다.

 

2. 저자 피터 한센은 유럽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미래학자. 기술이 사회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하는 선도적 사상가로 소개된다. 책은 총 9장으로 되어있다. 뉴노멀 시대의 도래, 한계들, 새로운 원칙들, 고객 전략, 정보 전략, 경영, 혁신, 기술 전략 그리고 뉴노멀 그 너머를 향해 등이다.

 

3. "이젠 디지털도 식상하다. 새로운 시대가 온다." 이를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여정이라고 표현한다면, 뉴 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일반화'가 될 것이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의 환경은 계속 디지털화되어 왔고, 여정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부터는 디지털이 표준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시점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세상이 디지털화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공통된 특성을 띠게 될 것이다."

 

4. 디지털 혁명의 두 번째 여정에서는 조직을 부각시키고 차별화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여정에서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진기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게 경쟁우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뉴 노멀 시대엔 기술에 대한 접근이 일용품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차별화하려면 조직의 다른 역량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5.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을 구분하는 실험 방법엔 미소와 함께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디지털)카메라 하나를 올려 놓고 "이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디지털 카메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이는 디지털 이민자이고, 그냥 '카메라입니다"라고 답하면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디지털 원주민이라면 평생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해보지 않았을 테니 '그냥' 카메라라고 답한다.

 

6.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 대부분이 아날로그 시대를 거쳐왔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차라리 그때가 좋았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 변화의 시간과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는 만큼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향수병에 젖어 있진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디지털'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면 할수록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보인다고 할 정도인데 이 상황에 아날로그 운운하는 것은 분위기가 넘 고풍스럽다. 박물관으로 보내질지도 모르니 조심할 일이다.

7. 자, 그렇다면 디지털 이후 세대는 완벽할까? 디지털을 당연시 여기는 세계를 뜻하는 뉴노멀은 멋진가? 저자는 뉴노멀 시대의 한계점을 열거한다. (정보의)길이,깊이, 가격, 인내심, 프라이버시,인텔리젠스 나아가선 조직의 한계점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8. 이 책에서 펼치는 논지가 개인이 아닌 기업의 방향에 치중하고 있지만, 아무리 거대한 그룹일지라도 결국은 개개인의 집합체이므로 참고를 해야 할 부분이 많다. 뉴노멀의 새로운 원칙들을 살펴본다. 1) 디지털 고장에 대한 허용치는 0이다. 2) '충분히 훌륭한'기술이 '완벽한'기술에 앞선다.  3) 완전책임 시대를 구현한다.

 

 

9.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질과 방향성도 달라진다는 말이 된다. 각 기업은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라고 있다. 기업 마인드와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뉴노멀 시대에 생존하려면 개개의 소비자들이 자기가 맞춤화된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뉴노멀 시대에 성공하려면 새롭게 떠오르는 경향들을 파악한 뒤, 이를 활용해 고객들의 디지털 경험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견해가 뒤따른다. 이래 저래 공부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트렌드도 잘 읽어야하고, 여론에도 민감해야 한다.

 

10.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지금 당장 적용해 볼 부분이 눈에 띈다. '휴지통을 자주 활용하라'. "아마도 컴퓨터에서 가장 활용이 안 되는 기능이 휴지통일것이다. 휴지통은 1984년 매킨토시에 가장 처음 등장했다. 그 시대의 사양은 무엇인가를 드래그해서 휴지통에 집어넣어 파일을 삭제하는 정도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휴지통은 더 재미있게 만들어져야 했다. 그랬으면 아마 더 많이 활용했을텐데.." 우리가 만들어내는 정보는 쓰나미 수준인데, 버리는 것은 매우 인색하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해야겠다. 저자는 우리의 IT옷장이 너무 거대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오래된 것들을 못버리는 탓이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옷장을 정리 할 때 1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었으면 재활용함으로 던지듯이 문서나 파일도 그리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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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걸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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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어둠의 기록

 

하늘빛이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시간적 이미지는 바로 동 트기 전 그 어둠의 시간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죽었으나 산 사람처럼

 

살아 있는 자뿐 아니라, 죽은 자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사로잡고 있구나!    - 마르크스, 『자본론1』서문에서

 

“마르크스도 신은 아니지!” 마르크스가 서두를 연다. 쇠 우리 안에 갇혀 노란 횃대 위에 앉아 깡마르고 기다란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말라빠진 기다란 두 팔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늙은 매 같은 ‘너’는 추호도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을 던진다. “마르크스는 이미 우리에게 숱한 고통을 안겨줬어!”

 

이 소설의 서술자(화자)는 ‘너’는 누구인가? 그의 존재감을 파악하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소설은 쇠 우리 안에 갇힌 서술자가 쏟아 내놓는 언어의 기록이다. 월요일 오전, 시내 제8중학(우리나라의 중고등과정) 고3 교실이 묘사된다. 직무에 충실한 물리교사 팡푸구이가 수업 중에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교단 위에 엎어졌다. 학생들이나 교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용사 리위찬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여인이다. 카리스마와 팜프마탈의 소유자다. 그녀의 남편 장츠추 역시 제8중학 물리교사다. 팡푸구이와 장츠추의 집은 서로 얇은 벽하나 사이를 두고 이웃해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서로 닮았다. ‘아름다운 세상’ 장례미용사 리위찬은 어렸을 때부터의 행적이 그려진다. 알뜰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경제 감각이 있는 여인이기도하다. 그녀는 어려서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리위찬의 어머니는 비록 지금은 병상에 누워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지내지만, 한창때는 온 도시를 주름잡던 풍류미인이었다. 이 모녀 사이엔 공통의 비밀이 있다. 역시 소설에선 한 역할을 단단히 하는 왕 과장(나중에 부시장이 됨)이다. 이미 그에겐 예쁘고 상냥한 아내와 천진난만하고 활발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모녀는 왕 과장을 공유한다. 그 반대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저자는 공직자와 권력자들의 성적으로 심히 부적절한 관계를 도마 위에 올린다.

 

일찌감치 장례 미용직에 배치된 리위찬은 처음엔 그 일이 몹시 마땅치 않은 듯 했지만, 이내 적응이 되어 특급 장례사로 시의 모범 노동자로 나아가선 ‘삼팔홍기(三八紅旗) - 중화인민공화국의 전국 부녀연합회가 ’4대 현대화‘에 이바지한 여성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칭호-의 기수가 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장례미용사를 스토리 전면에 내세웠을까.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하지 않는 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나는 장례미용사가 전체적인 스토리를 리드해가는 이유를 작가가 현재와 과거의 중국의 모습 중 감추고 싶은 모습이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하긴 어느 나란들 감추고 싶은 역사의 시간들이 없기야하겠냐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중국의 현실은 여전히 덮어두고 싶은 일들, 포장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충분히 사람의 이목을 끌만한 매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 서방세계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할까. 딱딱하게 굳은 이미지의 공산당 간부의 모습일까? 아니면 리위찬처럼 때로는 사람을 혼미(昏迷)하게 만드는 모습일까? 리위찬은 죽은 자를 산자처럼, 아니 그 이상 더 미화(美化)된 상태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최근 그녀의 작품 중 내세울만한 것은 어렸을 적 그녀에게 성(性)을 지도해줬던 왕부시장이다. 업무 중 급사(急死)한 배불뚝이 부시장을 좀 더 격무에 시달리다 순직한 이미지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다. 배도 얼굴도 홀쭉하게 만든다. 이 기술은 후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신은 계속 죽은 사람으로 있어야 해

 

물리교사 팡푸구이의 죽음은 제8중학뿐 아니라 도시의 모든 인민교사들에게 동정과 존경을 받는다. 그의 죽음이 스스로 의도한바가 아니었지만 마치 우리의 전태일을 통해 노동자들의 인권밭에 생명력이 부여된 것처럼 팡푸구이를 통해 교사들의 직무여건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인민들은 “교사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져라! 중년 교사들의 봉급을 인상하라!”고 외쳤고, 돈 잘 버는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에게 의연금을 걷어 ‘중년 교사를 위한 건강기금’을 설립하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팡푸구이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팡푸구이가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살다보면 늘 돌발적인 사건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기 십상이지. 이렇게 틀어진 계획은 운명의 변화를 야기하고, 역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날마다 모든 개인의 신상에, 모든 가정에, 모든 나라에 일어나고 있어. 마르크스주의자는 우연성과 필연성으로 이런 현상들을 해석하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운명과 하늘의 뜻으로 이런 현상들을 해석하고..”

 

정신이 든(살아난) 팡푸구이는 장례식장 냉동고에서 탈출한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온몸에 석회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향한다. 문을 두드린다. 온 몸이 하얀 남편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그의 아내 투샤오잉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귀신이야!”. 그리고 기절한다.

 

결국 집에도 못 들어갔다.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갈 데라고는 이젠 한 곳 뿐이다. 동료 교사 장츠추의 집이다. 그의 아내는 시의 모범 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로, 이름은 리위찬이다. 작가는 이미 리위찬의 존재를 앞서 여러 번 언급했음에도 마치 처음인 듯 그녀를 소개하며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 팡 선생님, 당신 죽은 거 아니었어요?" 장례미용사가 놀라서 물었다. ”내가 선생님을 냉동고에 들여놓았잖아요?“ 장츠추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팡 선생, 자네 죽은 거 아니었어?“ 이쯤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죽은 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났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나. 에헤라디야~ 하고 말면 이야기도 끝이다. 문제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소설의 무대가 사회주의체제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당신이 죽었대도 좋고, 죽지 않았대도 좋아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대도 좋고, 처음부터 죽은 게 아니었대도 좋아요.” 그녀(리위찬)가 말했다. “어차피 선생님 사정이니까. 하지만 시에서는 선생님이 죽은 줄 알아요. 장의사에서도 선생님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학교에서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투샤오잉(팡푸구이의 아내)과 팡룽,팡후(아이들)도 선생님이 죽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선생님은 살아 있을 수 없어요.”

 

결론이 묘하다. 살아 있을 수 없다니. 그럼 제대로 죽으란 이야긴가. 확실한 것은 현재 상황에 팡푸구이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야말로 전국적인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죽어야 산다는 말이 있다. 팡푸구이가 죽음으로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 모두가 덕을 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가족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다.

 

 

페이스 오프

 

밤새 그들(팡푸구이, 장츠추, 리위찬)은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결론을 뽑아낸다. 팡푸구이가 그 자리에 함께 있긴 했으나, 그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바로 옆인 자기집에 가서 자신의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을 뿐이다. 장츠추 부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고비이자, 대목인관계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장례미용사는 장츠추와 비슷하게 생긴 팡푸구이의 얼굴을 약간 매만져(그런데 사실 약간이 아니었다) 장츠추 대신 제8중학 물리교사로 보낸다. 장츠추는 교사 월급에 목을 매고 사느니 진작부터 장사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했으니 장사꾼이 되어 돈을 번다. 두 사람이 번 돈을 합한 다음 둘로 나누어 두 집안의 생활비로 쓴다. 부엌에 팡푸구이를 위해 침대를 하나 놓는다. 팡푸구이는 투샤오잉과 계속 동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등이다.

 

어찌보면 황당한 결론이지만, 어쨌든 세 사람에겐 최상의 합의점이었다. 그러나 희극처럼 시작된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될 줄은 세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나 혼자 결정해서 시행해야 할 일은 혹시 잘못 되더라도 나 하나의 실책이나 피해로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럿이 어우러져 결론을 내린 경우 역시 잘 못된 방향으로 나갈 경우에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다. 서로 상대방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많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이다.

 

어쨌든 팡푸구이는 동료교사인 장츠추의 얼굴을 카피한다. 장례미용사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집에서 성형수술을 한다. 그녀가 메스를 댄 것은 단지 죽은 자와 산자의 차이다. 아니 죽었다 다시 살아난 얼굴이다. 얼굴을 칭칭 감았던 붕대를 풀고 맞닥뜨린 팡푸구이와 장츠추는 서로 심한 당혹스러움을 견디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 사람 모두 상상조차 못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팡푸구이는 그의 아내 투샤오잉에게 비록 얼굴은 바뀌었지만 '내가 당신 남편이야!'하고 몇 번을 대시했으나 거듭 히스테릭한 반응만 왔을 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건과 인물들의 갈등이 때로는 돌직구로 때로는 매우 서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가히 언어의 예술사다.

 

 

자, 그렇다면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하나. 분필. 소설의 서술자는 쇠 우리 안에 갇힌 채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팡푸구이도 될 수 있고, 장츠추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소설에선 이어지진 않았으나 후에 팡푸구이의 페이스 오프가 탄로 나면서 지엄한 당과 순진한 인민을 우롱한 죄로 쇠 우리안에 갇혀 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서술자가 오로지 분필만 먹는다는 것이다. 일체의 음식을 모두 거부하고 오직 분필만 먹는다. 청자들은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끊임없이 서술자에게 분필을 공급한다. 색색가지 분필을 먹은 서술자는 그 값을 하기 위해 역시 색깔 있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쏟아낸다. 분필은 판서(板書)용이다. 식용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이 결국 문자로 기록된다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곧 언어가 아닌 문자라는 것이다. 이는 이 소설의 작가 모옌이 관모예라는 본명이 있지만,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이란 필명을 쓰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즉, 서술자는 작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둘. 리비도.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19금에 가까운 리비도 기운이 덮여있다. 독자에 따라선 자칫 성애(性愛)소설로 비쳐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가 매우 서운하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입부분에 나오는 여주인공(킬러)의 도발적인 성욕(카페에서 처음 본 남자에게 ‘당신 그것 쓸 만하냐 묻는다.’.)을 접하면서 ‘이런, 이런 책이었어?’하고 책을 덮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작가가 그려내는 리비도는 부와 권력집단의 부도덕하고 절제되지 못하는 성(性)을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인간들의 원초적인 감정과 욕구가 리비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고 있을 뿐이다.

 

셋.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등. 지금 중국의 지도부는 급속히 전개되는 자본주의 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저 좋게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금력(金力)또한 권력(權力)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예의 주시하면서 염려하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정치와 경제력의 결탁이 일부 집단에게만 부의 축적이 이뤄진다는 경제적 불균형도 그려진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영원한 레지스탕스 슬라보예 지젝이 그의 저서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오늘날 중국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 중 하나.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의 목표는 (새로운 지배층인)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 지도자들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이 담보하는) 안정적 위계질서 없이는 자본주의의 불안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 길을 택하게 될까? 더 일반화하자면, (구)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영자로 재부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그들의 뿌리 깊은 적대감이 부르주아 계급 없는 관리자 체계를 지향하는 최근 자본주의의 추세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이다. 양쪽 모두, 과거 스탈린의 말대로 "조직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넷. 교육현장에 대한 염려. 이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비춰진 교사들의 처우문제와 교육현장은 그래도 우리가 좀 낫지 않나 싶다. 오죽하면 학교를 때려치고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은 줄줄이 강물로 뛰어들고 있다.

 

다섯. 열세 걸음. 책을 읽기 전에 진작부터 제목에 마음이 머물렀다. 왜 열세 걸음일까? 열세 걸음밖에 못 나간 것이 아니라, 열세 걸음이나 걸어 간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3이란 숫자가 길(吉)한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답이 나오겠거니 했다. 여덟 걸음에 답이 나왔다. 참새 시리즈의 한 꼭지 같은 글이 실려있다. “...만일 참새가 열세 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자네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린다지 뭔가!”

 

멈춰야 할 때가 있고, 나아갈 때가 있다. 현재 중국은 광속도 정도가 아니라 마하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작가는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디 중국의 상황에만 대입시키랴. 우리는 너나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분위기다. 시력 시야 모두 시원찮은 양무리가 앞서가는 양의 꼬리만 보며 모두 절벽 끝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간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아무리 높은 산도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 내가 살고 남도 살리는 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나는 이리 달려가고 있나 자주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게 된다.

 

여섯. 기다림과 문 두드림. ‘하늘빛이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말을 다시 옮긴다. 소설의 결말엔 마음이 아프다. 좀 더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좀 더 지혜롭게 서로 마음을 모아 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얇은 베니어판 한 장 이웃해있지만, 먼 그대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애달프다. 지독한 어두움은 새벽하늘과 바통 터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왜 생각 못했을까. 좀 더 기다렸으면 좋았을텐데..

 

문 두드림. 소설의 초반(페이스 오프 전까지)엔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는 ‘문 두드림’이 있다. 독자의 의식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작가가 의식적으로 그리하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살아가며 필요한 부분이다. ‘깨어있음’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중국의 활동 작가 중 모옌과 함께 옌렌커를 주목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옌렌커가 세 살 아래)인 두 작가의 공통점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써야 하고 읽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건필을 빈다. 그저 나는 열심히 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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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원매 지음, 최일의 외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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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전문

 

이 시는 시인(원매)이 살던 강소성 남경을 떠나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가다 금산과 초산이 있는 진강시를 거의 눈앞에 두기까지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남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시인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긴장될까. 더군다나 외로운 나룻배에 혼자라니. 내가 다가간 것이 아니라, 금산과 초산이 마중 나온다는 표현이 백미다. 금산과 초산은 지금의 전장시 일대에 있는 풍광이 기려하고 아름다운 산이라고 한다.


원매(袁枚, 1716~1798)는 청조(淸朝) 강희 55년 3월 절강성 전당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원매의 생애는 대략 학문 정진과 구직 시기, 관직 재임 시기, 수원(강년현 소창산)거주 시기, 명승지 유람 시기 등 모두 네 시기로 나뉜다. 일찌감치 관직에 오르며 그의 역량을 발휘했지만, 마치 시종처럼 온종일 고관들을 접대하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그리고 문학 창작에 전심전력을 다하기 위해 관직을 물러난다. 그는 "공업을 세움이 나라에 보답하는 길이지만 문장에 종사함도 역시 나라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원매는 원래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해 직접 자연 산하를 둘러보고 흥취를 느끼려는 유람벽이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명승지 유람시기는 그의 나이 67세 때부터 82세 까지다. 배로, 가마로 또는 걸어서 명승지를 돌아보며 스냅 사진을 남기듯 詩로 남겼다.

 

옆으로 납작한 봉우리 /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 /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연이어져 걷고 또 걷는다 /  이윽고 한 봉우리 앞에 이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데 / 내가 가마꾼에 업혀 하늘로 올라간 건 아닐까 의심이 든다 / 가마꾼이 웃으며 말한다 / "여기가 동정서산 표모봉의 가장 높은 꼭대기랍니다."  / 멀리 사방으로 하늘을 보니 끝없이 푸르고 / 만 줄기 흰 물결은 시야를 어지럽힌다 / 유리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호수에 비친 대지는 잠겨 있고 / 몇 갈래 밥 짓는 연기 아래 인가가 숨어 있다 / 몸소 속세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 어떻게 호수 한가운데 산이 있음을 알았겠는가! / 오직 배와 노의 힘을 빌려야만 / 사람 사는 세상과 서로 소통할 수 있으니 / 무릉도원처럼 닭 울고 개 짓는 소리 들으며 / 태호의 늙은 어부는 분주하다 / 그렇지 않다면 설사 신선이라도 바라보기만 한 채 다가갈수 없을테니 / 천추만대에 걸쳐 누가 봉래궁에 이를 수 있겠는가! / 하느님이 내가 온 걸 시샘이나 하는 듯이 /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 가마 덮개가 떨어졌다 다시 날아가고 / 갓끈은 목에 걸기 어렵다 / 차가운 구름이 입안에 가득하건만 삼킬 겨를도 없이 / 교룡의 기운 같은 비바람이 사람에게 다그쳐 온다 / 두려움에 오래 머물기 어려워 / 안개 속에서 저절로 발길이 돌려졌다 / 자줏빛 고래는 오지 않고 누런 학은 멀리 있어도 / 노부는 길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바람이여, 바람이여, 나에게 불어오는 이유가 있음을 아나니 / 세상에 제일 높은 사람은 되지말라 나에게 권하는 것이리라.

                      - '표묘봉에 올라' 전문.

 

표모봉은 태호(太湖) 동정서산(洞庭西山)의 서남쪽에 있으며 해발 337미터다. 동정서산의 최고봉으로 태호 72봉 중에서 으뜸을 차지한다. 항상 운무에 싸여 있기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표묘한 선경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은 가장 높은 표묘봉에 오래 서 있지 못하도록 비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마치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권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높다고 칭송해주는 사람은 언젠가 같은 입에서 가장 낮은자로 불려질 수도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높다고 자만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은 무엇으로 치유될꼬.


원매시의 특징

청대(淸代) 중엽의 주요 시론가이자 시인이었던 원매는 시단에 성령설(性靈說)을 제창하며 시에 성령(性靈)을 자유로이 표현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성령설은 청대 시단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 규범에 구속되어 있던 청대의 시가를 해방하는 역할을 했다. 원매가 말하는 성령은 크게 성정(性情)과 영기(靈機)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다. 성령의 '성'이 성정이라면 '영'은 영기라 할 수 있다. 성정의 의미는 대략 시인의 진실한 감정이란 뜻으로, 영기는 시인이 천부적으로 지닌 재능과 영감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원매는 시에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적 재능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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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동물이 정말? - 우리가 몰랐던 동물에 대한 놀라운 사실 Wow! 정말? 시리즈
엠마 다즈 글, 마크 애스피널 그림, 존 우즈워즈 자문, 김보미 옮김 / 솔빛길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 진짜?  대화 중에 나오는 이 말은 진위여부를 떠나서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순간. 진짜 그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2. 그동안 몰랐던 정도가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읽던 부모가 아니면 절대 모를 이야기들.  고릴라는 사람 흉내내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같은 잠자리에서 하루 이상 자지 않는다고? 매일 밤 잠자리 찾아나서는 것도 일이겠네..아니, 그냥 서로 돌아가면서 자면 되겠구나. 오늘은 고릴라A, 내일은 고릴라B의 잠자리..등등. 동네 한바퀴.

 

 

 

 

3.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난다. 타조알을 삶는 모습을 봤는데, 대단했다. 숫자로 표시되니까, 더 리얼하다. 타조알 한 개의 무게는 달걀 24개의 무게와 같다. 알의 길이가 15cm. 너비는 13cm. 타조알 한 개를 삶으려면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단다.

 

4. 글보다는 그림이 돋보이는 책이다. 당연 글은 그림을 보충해준다. 그림으로 꽉 찼다. 등장하는 동물 가족들은 고릴라, 타조, 벌새, 악어, 사자, 치타, 바닷가재, 상어, 코끼리, 사향고양이, 캥거루, 코뿔소 외에도 여러 동물들의 독특한 특성과 재미있는 사실이 좋은 일러스트와 함께 나와 있다.

 

 

 

5. 글쓴이 엠마 다즈는 영국 켄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편집자이다. 일러스트 마크 에스피널은 오렌지, 타임 아웃 등 다수의 잡지에 활동을 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6. 황제펭귄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저 '대단하군!'이라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암컷펭귄은 알을 하나 낳고 먹이를 먹으러 떠난다. 암컷이 없는 17주 동안 수컷 펭귄이 알을 품는다. 그런데 가슴에 품는 것이 아니라, 알이 얼지 않게 하려고 알을 자신의 발 위에 올려놓는다. 떨어뜨리는 순간 끝이다. 펭귄은 알을 다시 집어 올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목숨 걸고 지켜야한다. 암컷이 돌아 올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꼼짝을 못하니 못 먹는것이다. 암컷은 알하나 낳아놓고 어찌 그리 오래 비우는지 모르겠다. 사람같으면 곰국이나 끓여놓고 간다지만..아뭏든 지독한 부정(父情)이다. 알을 떨어뜨렸다간 새끼도 잃고, 암컷한테 당할 공격이 상당할 테니..나는 펭귄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6.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자존감이 상승된다. 물론 아이의 성격에 따라선 '잘난 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니까 봐주자. 하긴 이 책의 편집자도 어린 시절에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이 모여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지식에 대한 추구를 만든 원천이 되었다고 하니 아름다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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