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지음, 최진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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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미로는 마치 이 세상과 모든 세상사가 오류와 혼동, 불안정과 곤경, 거짓과 속임, 걱정과 비참함,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혐오스러움과 절망만이 지배하고 있거나 이와 비슷한 것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천국은 마치 자기 마음속의 집에 거하며 그 안에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는 자가 영혼의 참되고 충만한 평화와 기쁨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이 세상에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며 돌아다니는 두 명의 동행자가 등장합니다.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며 주제넘게 참견하는 '호기심'('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는 자'라고도 부름)이라는 동행자와 이 세상의 속임수를 진리인 양 말하는 '선입견'('현혹자'라고도 부름)이라는 동행자입니다.

 

저자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순례자)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성적 분별력을 지니기 시작할 무렵, 깊이 생각한 끝에 가능한 한 아주 안락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직업]생활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호기심'이라는 자입니다. 저자 코메니우스가 이 '호기심'이라는 동행자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당시(근세 초기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만물박사'는 순례자에게 세상은 미로와 같기 때문에 혼자서 [세상 속으로]들어가지 말라고 꼬드깁니다. 한술 더떠 자기를 믿고 따라오면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많은 비밀 장소로 안내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또 누군가가 한 사람 나타나서 참견을 하는군요. 바로 '현혹'이라 불리우는 자입니다. 그는 '호기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이곳저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이 자네의 임무라면, 그들이 봐야 할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은 내 임무라는 것을 모르는가?" 졸지에 순례자는 두 사람의 동행자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만물박사는 순례자에게 안경을 씌워주는군요. 그 안경은 '선입견'이라는 유리알과 '습관'이라는 테두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동행자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도시를 바라봅니다. 멀리서 볼 때 도시는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는 세상속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미로입니다. 여섯 개의 분주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여섯개의 거리는 17세기 당시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 삶의 주요 영역(결혼 제도와 생활, 상인 계층, 학자 계층, 정치가 계층, 종교인 계층, 군인 계층)을 의미합니다. 순례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호기심'과 '선입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요. 그러나 순례자는 '선입견'이라는 유리알과 '습관'이라는 테두리로 만들어진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 속 군상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들입니다. 언젠가는 변화가 되어 본 모습을 보게 되길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부분중에서 특히 시선이 '도서관'을 묘사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스위스의 시골마을 장크트 갈렌에는 수도원 도서관이 있는데, 이 도서관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도서관 현관에는 그리스어 팻말이 붙어 있는데 ‘영혼의 요양소'(또는‘영혼을 위한 약방)’이라고 되어 있다합니다. 책을 통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름답습니다.

 

이 책의 순례자도 도서관으로 안내됩니다. 그 방(도서관)은 상당히 넓어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긴 벽에는 나무 상자와 선반으로 된 수많은 서가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책들은 수십만 개의 수레로도 다 실어 나르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서가마다 제목과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곳이 뭐하는 곳이죠? 약국인가요?" 순례자가 묻습니다. 동행자가 답합니다.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약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약국이라 할 수 있지, 즉, 이곳은 도서관이라네. 보게나, 무한한 지혜의 보물이 여기에 잔뜩 쌓여 있다네!". 학자들이 들어와서 책을 뽑아 질겅질겅 씹기 시작하는군요.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순례자가 책을 씹어 먹고 있는 학자에게 묻습니다. "맛있습니까?"  "씹고 있는 동안은 쓰고 신맛이 나지만, 조금 있으면 단맛으로 변한답니다." "(이렇게 씹어 먹는) 이유가 뭐죠?" "더 확실하고 더 쉽게 저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효력이 내 몸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순례자는 그를 좀 더 자세히 쳐다봅니다. 정말 그는 튼튼하고 적당하게 살이 쪘으며, 건강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고, 눈은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말씨는 신중했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모습이 전부입니다.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렇게 자기 만족으로 그쳐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외에 순례자가 본 세상의 모습은 대부분이 너무 답답하다 못해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광야로 가서 은둔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세상을 등지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동행자들이 놓아주질 않는군요. "저는 불의, 속임, 유혹, 거짓, 잔인한 일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수천번이라도 죽는게 낫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살기보다는 죽고 싶어요, 이제 저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살펴볼 거예요."

 

2부는 크리스쳔들이 믿음을 재점검해보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을 느낍니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죽은 자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순례자에게 한 음성이 들립니다. "네가 나온 본향으로 돌아가라, 네 마음의 골방 속으로 들어가 네 뒤로 문을 닫아라!" 말씀대로 따르자 갑자기 한 줄기 밝은 빛이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그 빛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순례자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참 된 평안을 느낍니다.  황폐해진 마음이 회복되어 결국 마음의 천국을 발견하고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작품은 기독교의 고전으로서,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표현 기법으로 서술된 점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도 종종 비교됩니다. 지은이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 는 현대 교육학의 체계를 놓은 교육학의 대가이자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로 서양 교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17세기 당시 교육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개신교 목사요, 신학자요, 언어학자요, 평화 운동가 및 정치 사상가로서 인간성 회복과 세상을 개선하는 일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17세기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봉건 질서제도의 붕괴, 교회와 신앙의 권위 약화, 이성 중심의 학문방법론 및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간 삶의 많은 영역에서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극적인 30년 종교전쟁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 결코 순탄치 못했던 그의 삶의 여정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약 200여편의 글들을 남겼습니다. 1670년 11월 15일 소천해서 암스테르담 근교 나르던(Naarden)에 묻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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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살았을까 - 나를 찾아 떠나는 3일간의 가치 여행
정진호 지음 / 아이지엠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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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은 '어른아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른같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같은 어른 이야깁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누군가 이런 말을 한숨 쉬듯이 토해낸다면, 뭐라고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그러게, 왜 그렇게 살았니!"하고 핀잔하고 마시렵니까? 내 이야기는 아닐까요? 저는 이러한 상황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걸어온 인생의 길이 짧지 않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얼마전에 읽은 책 [나에 대하여]도 3일간의 여정이더니만, 이 책도 '나를 찾아 떠나는 3일간의 가치 여행'이란 부제가 붙어 있군요. 3일이면 충분한가 봅니다. 아니 최소한 3일 정도는 집중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는 이야기겠지요. 아님, 작심삼일의 연속이던가..
 
"진짜 어른은 자신이 누구이고, 살아가는 존재 이유를 알고, 살아갈 방향을 스스로 세우고 있는 이를 뜻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가짜 어른들이 많습니다. 가짜 어른이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핵심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이 책보다 앞서 출간된 [일개미의 반란]에 소개된 이솝 우화를 제외한 수천 가지의 신화와 우화들 중 우리의 삶에 잔잔한 파고를 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속에 우리의 삶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핵심가치들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직장과 사회, 가족과 사랑, 미래와 꿈, 자기가치경영 그리고 책에서 느낀 점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시간인 '자기가치경영 워크숍' 등입니다. 이 '자기가치경영 워크숍'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적어보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두 적는 시간이 3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도록 권유합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금욕을 실천하는 수도원에 욕망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울에 올라선 뒤 눈금이 요동치는 수도사들은 각자 독방에 들어가 긴 시간 동안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수도사들은 한 명씩 저울에 올라갔습니다. 눈금은 늘 그랬듯 요동치며 수도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수도사가 올라서자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산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에 죽은 수도사의 영혼이었다고 합니다."

 

죽어야 욕망도 같이 죽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욕망의 힘은 사그러질줄 모릅니다. 그저 달래고 어르며 누르고 있을 뿐이지요. 두더지잡기 식으로 힘겹게 머리를 들여보내고 있을 뿐이지요. 욕망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요. 나를 상하게 하고, 남을 힘들게 하는 욕망이 문제입니다. '선한 욕망'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책에는 동서고금의 많은 예화들과 저자의 일상 주변에서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만 몰두하느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을 느끼는 시간도 갖습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시골에 무명의 여류 피아니스트의 연주 광고가 붙었습니다. 이 여류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라고 자신을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작은 마을에 진짜 리스트가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 여류 피아니스트는 리스트의 제자이기는 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명의 여류 피아니스트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했지요. 그러나 한참 고민을 하던 이 피아니스트가 리스트를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기로 합니다. 이 대목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점수를 많이 주고 싶습니다. 리스트를 찾아간 이 피아니스트는 리스트에게 용서를 빌며 자신이 형편상 제대로 된 스승에게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리스트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피아노를 쳐보라고 합니다. 리스트는 연주를 들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고 잘하는 부분을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이제 내 앞에서 연주를 하고 내가 고쳐주었으니 당신은 내 제자가 맞다. 자신감을 가지고 연주를 하고, 연주 마지막에는 나의 스승 리스트가 직접 연주를 하겠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깁니다. 나의 배려는 한 사람을 크게 살릴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책에 실린 여러 예화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으로 무언가 결정을 못 내리고 좌충우돌 할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일상의 언어로 독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또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자극 주고 있습니다. 나는 현역에서 무엇을 이루었으며 어떤 찬사를 듣고 있는가?  나의 꿈, 가슴 설레는 미래의 모습, 나의 비전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떠한 타협도 없이 지킬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조직원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들을 진작 내 안의 나에게 물어봤으면 아마도 나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외에도 깊이 있는 질문을 나에게 물어가며 가치 있는 내면여행을 떠나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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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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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魔女-, 프랑스어: Chasse aux sorcières)은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에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마녀사냥'을 '마녀재판'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 위키백과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의 논지를 마녀사냥에 대한 역사나 마녀가 보이는 특징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마녀를 만들어내는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녀 프레임(framing theory)'에서 사용하는 용어법을 응용했다고 한다. 프레임 이론은 특정 대상을 제시하는 방식이 우리가 취하는 선택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 설명해준다. 우리 선택이나 판단은 프레임에 따를 뿐 이성에 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레임이론은 이성적 선택 이론에 도전하는 새로운 관점이다.

 

여러 이유에서 마녀사냥이라는 주제는 역사학이나 문화 인류학, 여성학에서 중요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지역과 시기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저자는 마녀사냥을 특정시기에 발생한 역사적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 정치적 문제를 해명 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중요한 요인은 '중세적 세계관'의 붕괴이다. 종교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에 갑작스럽게 균열이 발생한다. 요한 아우징아에 따르면 중세적 세계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곧 질서였다. 모든 삶이 기독교라는 종교작 믿음을 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 산업사회의 일꾼들은 더 이상 종교적 일상에 묶어 둘 수 없는 변화가 오게 된다.

 

그러나 '마법'이라는 단어만을 놓고 본다면, 마녀와 연결지어 사냥이나 처형까지 가게 된 것은 의문점이 많다. 마법이란 것이 꼭 위해적인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법은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마녀사냥 이전까지 마법은 과학적 인식에 기반을 둔 테크놀로지와 공존했다.

 

충분히 짐작되는 부분이지만, '마녀'라는 이미지가 종교세력에 반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 결과는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을 때는 가톨릭교회가 가장 약했을 때였다. 이것은 권위 또는 권력에 공백이 발생했을 때 종교적 광기가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도 마녀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다.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가톨릭에 의해 그 명예가 복권되었지만, 이 당시 상황은 거부할 수 없는 크나큰 힘이 지배적이었다. 종교적 신암심과 합리적 지식이 만났을 때 이 조합이 어떻게 순식간에 집단적 광기로 돌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어떻게 '마녀사냥'이 유행병처럼 퍼져 나갈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공을 인쇄술의 발달로 들고 있다. 책이 출판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하인리히 크라머의 [마녀의 해머]라는 책은 공식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인준을 받고 제작을 하게 된다. 그 내용은 마녀를 색출하는 방법과 소추 방법 그리고 재판과 고문, 유죄 판정, 선고 방법까지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마녀사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고 수많은 여성이 마녀라는 명목으로 희생되었다. 그 후 중세 임상의학이 태동하면서 '마녀사냥'도 그 불길이 사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마녀사냥은 한갖 중세때의 이야기거리로 남게 될 것인가? 개인적인 의견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누군가를 '마녀'로 지목하려고 눈이 빛나고 있다. 선한 의지가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보다 그 반대에서 힘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어둠 속에서 불을 보듯 분명한 일이다. 저자는 '마녀'이야기를 역사상의 문헌과 자료를 통해 소상하게 소개해주고 있지만, 마녀가 만들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와 대중들이 그 흐름에 아무 생각없이 동참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녀는 다시 사유되어야만 한다. 그 사유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현재를 벗어 날 수 있는 출구를 내면에서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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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바보들 - 틀린데 옳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의 심리학
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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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결엔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야만 하는 부담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러면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과학과 정치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 있는 증거들은 과학 논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비교할 때 각기 그들은 심리적 요구. 도덕적 직관을 포함한 여러 특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차이점들이 지구온난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출생 여부에 관한 이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진실인가에 관한 정치적 싸움 뒤에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보수, 보수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다소 비판적인 내용일색입니다. 예를 들면 오바마의 출생문제를 놓고 보수주의자들은 그가 케냐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출생증명서는 속임수나 위조라고 까지 합니다. 경제분야에서 많은 보수주의자들의 잘못된 관점 중 하나는 감세가 정부 세입을 증가시킨다는 생각이랍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이 관점을 공공연히 옹호했다는군요. 그럼 과학분야에선 어떨까요. 저자가 가장 깊이 염려하는 영역이라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과학계의 일치된 의견을 수용하는 사람은 단 18%이고, 인간의 진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각각 45%와 43%라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현대 과학 지식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저자는 이 같은 오류와 오해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의 삶, 경제, 국가, 지구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전쟁과 평화, 건강과 안전, 역사와 돈, 과학과 정부에 대한 진실을 거부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진보주의자보다는 보수주의자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우선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이것은 지능에 관한 주장이 아니다. 나는 보수주의자가 일정방식으로 진보주의자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집단은 그냥 다르다. 진보주의자들 역시 심리에 뿌리를 둔 자신들만의 약점이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똑똑한 바보들]은 5부로 되어있습니다. 뇌부터 다른 보수와 진보, 보수주의자의 심리 코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보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정치실험실에서 온 놀라운 보고서 등입니다. 보수와 진보. 이 둘을 양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꼭 그렇게 나누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에선 이 양극의 논리가 나라 전체 나아가선 세계정세를 좌지우지 할 수 있기에 무관심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003년도에 미국심리학회에서 발간된 [심리학 회보]에 실린 내용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내용은 지난 50년간 정치적 보수주의를 주제로 실시한 연구들에서 나온 88개의 자료를 검토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12개국에서 실시되었으며 거의 23,000명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은 이 리뷰를 맹렬하게 공격했지요. 이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명망있는 학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정치적으로 보수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다양한 심리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리 특성들 중에는 좋게 들리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독단적임,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을 못 참음, 죽음을 두려워 함(공통 사항이겠습니다만), 새로운 경험에 대해 덜 개방적임, 사고 과정에 통합적 복합성이 적음, 종결에 대한 욕구가 큼 등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연구에 참여한 저자들은 보수주의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보수주의는 변화에 대한 저항 및 불평등에 대한 수용과 불합리를 강조해 핵심적인 심리 필요를 만족시키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 뒤에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결하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뭔가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믿고 있는 것을 바꾸지 않고 고수해 불확실과 두려움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심리학자들은 빅 파이브(big five)라는 널리 인정되는 척도를 고안해냈습니다. 빅 파이브 특성은 사람의 성격을 5가지로 나누는데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 신경증(Neuroticism) 등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니셜을 따서 OCEAN 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다섯 가지 특성 모두를 크고 작게 갖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빅 파이브 특성 중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성향이 갈라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성실성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일관되게 개방성 부분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고 합니다. 이를 심리학자 로버트 맥크레이가 간단히 표현했습니다. "개방적인 사람들은 어디서나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방성은 지적 유연성과 호기심에서부터 예술을 즐기고 창의적인 기질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폭넓은 성격의 특성입니다. 개방성은 실험적이고, 생활 방식과 선택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인생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특성이기도 합니다.

 

침실을 들여다보고 보수냐 진보냐를 가름하는 대목이 있군요. 그대는 어느 쪽이신지요?
"보수주의자들의 침실에는 생활을 더 계획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인 달력이나 스탬프 같은 것들이
있었고, 잘 정돈되어 있고 청소도구들이 가득했다. 방에 빨래통, 다리미, 다리미판, 줄, 실이 있었다. 실내 장식도 평범한 경우가 많았으며 스포츠 용품, 여러 깃발, 성조기 같은 것이었다. 보수주의자의 공간은 더 성실함을 반영했지만 덜 개방적이기도 했다.

 

진보주의자들의 아파트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더 엉망(덜 성실)이었지만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넘쳐났다. 다양하고 많은 책들. 여행, 민족적 이슈, 페미니즘, 음악에 관한 책. 다양하고 많은 음악 CD, 월드 뮤직, 포크, 클래식, 록, 옛날 노래 등. 특히 여행과 관련된 물건들이 많았다. 세계 지도, 여행 관련 서류, 여행 책자, 다양한 문화의 수집품 등.'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중립인가? 그렇진 않아보이는군요. 약간 진보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입니다.하긴 이러한 주제를 갖고 이만큼 책을 쓸 정도면 진보주의 성향이 아니면 힘들지요. 보수니 진보니 양극화를 달리고 있는 모습은 그리 지혜롭지 않습니다. 어쩌다보니 어느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한 목소리를 보태고 있는 것 뿐이지요. 50 : 50 이 아닌 49 : 51은 이미 2이나 차이가 나지요? 어느 쪽이 더 우세하느냐에 따라 그 성향이 구분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마인드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균형감이지요.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도 필요하고 진보도 필요합니다. 서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책의 장점은 보수와 진보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으로 설명해나간 부분에 있습니다. 계속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재료로만 쓰여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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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서재 - 나만의 도서관을 향한 인문학 프로젝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머리 싸매고 책과 씨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핑계를 대는 것은 '시간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으려해도 하루에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 서적들, 소위 베스트셀러 라고 내세우는 인터넷 서점의 얼굴 마담들. 그 중에서 참으로 내게 필요한 책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가며 사람과의 인연도 좋아야겠지만, 책과의 인연도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느 블로그 대문에 이런 말을 걸어놨지요.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애틋한 사랑을 만남과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 정여울은 책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거대한 책더미 속에 파묻혀 길을 잃기보다는, 내 마음의 빛깔과 소리에 따라 언제든 골라 읽을 수 있는 좀 더 작고 아늑한 내 마음의 서재를 꿈꾼다."  사람을, 여행을, 문학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정여울은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삶'에 조용히 노크하기, 그것이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서재' - 시선과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난무하는 요즈음에 마음에 와 닿는 진솔한 울림입니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 추천도서 목록을 뒤지던 중 번뜩 깨달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렇게 평생 '타인의 목록'만 넘보다가는, 결코 나만의 '마음속 서재'를 만들 수 없겠구나. 그리고 뒤이은 깨달음은, '앞으로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의 목록' 때문에 '이미 읽은 책들이 놓일 마음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 새로운 책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오직 저자가 읽은 책들로만 이루어진 작고 아름다운 마음의 도서관을 가꾸기로 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읽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퍼뜨려 나누는 것'이랍니다.

 

인문학, 또는 교양이 진정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면, 그것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곧 나의 손과 마음을 순수하게 보듬어안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저자는 교양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소개합니다. 사교계 데뷔를 위해 춤을 교양의 한 부분으로 익혀나가는 과정 중에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봉사하는 교양. 물론 금방 탄로가 나는 부분이지요. 주인공 토니오는 집단적 교양의 인프라에 사육당하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내면 탐구에 빠져 글쓰기와 글읽기에 탐닉하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진정한 교양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기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조용히 덧붙입니다.

 

'지름신은 콤플렉스 환자에게 해열제만 주신다' 의외로 주변에 쇼퍼홀릭이 많습니다.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소비'로 극복하려 한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명품에 집착하는 선을 넘어 '성형중독'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결핍에 호소하는 소비의 형태가 '가상의 소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진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기를 읽고, 진짜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이 덜 위험하다고 언급합니다. 경제적이기까지 하겠지요. 콤플렉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가상으로 설정한 후, 그렇게 날조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결점을 폭로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매우 예리한 관찰입니다.
괴테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어떤 대상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지혜로운 삶은 그 어떤 대상을 찾느냐가 숙제인 듯 합니다.


'재능'이 뭘까요? 내가 찾아낸 내 안의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이 그저 갖다 붙여준 이미지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사랑하는 일,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내 재능이고 내 적성이라고.." 무슨 일을 하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잘 하는 일인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만한 일인가. 나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을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지요. 저자는 덧붙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 한 방'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재능=직업=인생'이라는 위험한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답니다. 재능은 삶의 토양의 '비료'는 될 수 있어도 '흙'자체가 되지 못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잔잔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좋아하는 꽃향기나 향긋한 커피내음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듯이 마음을 안정시켜줍니다. 그 이유는 저자의 겸손하면서도 내면적인 힘이 묻어 있는 글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만나야 하는지, 책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느니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은 후 아니면 그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투명한 나 자신과 만나는 비밀 통로로서 '글쓰기'를 권유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정면에 내세워 '마음의 서재'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정작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사랑, 삶, 아픔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나답게 세운 상태에서 열린 마음으로 서로가 만나는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자고 손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삶을 '책'이 곁에서 조용한 친구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마음을 전달받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詩가 있어서 옮겨봅니다.
미국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의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라는 詩입니다.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독자는 책이 되고 여름 밤은

 

책의 살아 있는 마음 같았다
집은 고요하고 세상은 조용했다

 

말은 책이 없는 양 말하여지지만
독자는 지면 위에 몸을 굽히고

 

굽히고 싶어하고, 무엇보다도 책이
진리인 학자이고 싶어하고, 그에게

 

여름 밤은 생각의 완전함 같기를
집은 고요하고 고요할 수밖에

 

고요함은 의미의 일부, 마음의 일부
그것은 지면에 다다가 차오른 완전함

 

그리고 세상은 조용했다, 조용한 세상의 진리
그 안에 다른 의미가 없는, 그것은 바로

 

조용함이며, 바로 여름이며 밤이며
독자가 몸 굽히고 그 자리에 책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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