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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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_ 이해인 (지은이) |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12-20

 

 

이해인 수녀님의 근간 에세이집이다. 평소 수녀님이 쓰신 시를 즐겨 읽는 편이다. 수녀님의 글들 모두 그렇지만, 특히 시는 참 맑다. 난해하지도 않다. 미사여구도 없다. 그저 평안한 영혼의 호흡만이 느껴진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는 나를 위로하는 날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_나를 위로하는 날전문.

내가 나를 못살게 굴 때마다 나에게 들려주는 시().

 

 

기다림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설렘과 그리움을 사랑하며 여기까지 온 세월의 선물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각기 다르겠지만, 그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하면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동행의 첫걸음입니다.” 라는 말도 오버랩 된다. 책의 대부분은 지은이가 지난 6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것들을 중심으로 모았다. 그 중 한 파트는 지은이가 20대 첫 서원하고 나서 쓴 일기 중에서 추려 뽑았다. 그 시절 빛바랜 사진들도 담겨있다. “너무 오래전의 기록이고 내 영혼의 맨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망설임이 없지 않았으나 20대 젊은 수녀의 풋풋함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아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오랜 세월 나의 충실한 애인이 되어준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2008년 여름부터 시작된 지은이의 암 투병 과정 속에서도 그 특유의 따뜻한 미소와 마음가짐을 느끼게 해주는 글들이다. 해방둥이시니까 칠순을 몇 해 넘기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 같으시다.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도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지은이에게 민들레의 영토로 시작된 시의 산실이며 기도의 못자리였다. 그 수도원에 자리한 해인글방을 다녀간 방문객들이 남긴 삼십여 권의 방명록 중에서 의미 있는 글 일부도 발췌하여 책에 실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서울 또는 다른 지방으로 이동 중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 이 땅에 고운 흔적을 남기고 떠난 여러 사람들. 20171118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가르멜 수녀원에서 선종하신 친 언니 데레사 말가리다 수녀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 고 이태석 신부, 고 장영희 교수, 고 마더 데레사와의 만남 등등이 이어진다.

 

 

법정 스님과는 종교를 떠나 영적 교류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를 지은이의 글을 통해서 종종 접했다. 법정스님과 오랫동안 편지글로 교류하셨다고 들었다. 법정스님의 편지는 워낙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원본 그대로 나눠주고 났더니 남은 게 얼마 없다고 한다. 때론 복사라도 하고 줄 걸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그 또한 욕심인 것 같아 잊어버리기로 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2004년 성탄에 지은이에게 도착한 스님의 글이 소개된다. 예년과 같이 성탄축하 메시지인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심한 역정과 꾸지람이 담긴 글이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람결에 소문을 들었다면서 수녀님이 나에게서 받은 편지로 신간을 준비한다는데 절대 안 된다는 글이 담겨있었다(누군가 카더라 통신을 전한 모양). 법정 스님은 단호하게 그 편지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하도 속이 상해서 만인의 존경을 받으시는 대단하신 스님께서 어찌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심한 말을 하시느냐, 나는 단 한 번도 편지로 책을 엮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본인에게 사실 확인을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몰아세우시는 게 야속하다. 스님의 글 때문에 나의 성탄은 기쁨 아닌 슬픔으로 얼룩지게 되었다고 답신을 했다. 지은이는 토라지고, 스님은 아차 싶어서 달래느라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새해에는 좀 더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에게 힘든 일이 있다고 내내 침울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기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얼굴에는 웃음을 마음에는 기도를 담고 하루 한 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살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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