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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책
B.J. 노박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3월
평점 :
쎄인트의 冊이야기 2016-068
【 그림 없는 책 】 B. J. 노박 / 시공주니어
『그림 없는 책』 이 책을 만나는 순간, 내 젊은 날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1980년대 초쯤, 「아무것도 아닌 책」이 잠깐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서점에 갔던 길에, 그 책을 들춰봤더니..나 원 참..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백지였다. 종이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 당시 흔한 누르스름한 갱지였다. 그런데 책값을 보니 다른 책과 별 차이가 없었다. 글자가 빼곡히 차 있고 편집과 제본에 공을 들인 책과 거의 비슷한 책값은 그냥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서, 후배한테 그 책을 선물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문학 동인 활동을 하면서 간간히 시를 썼는데, 후배가 하는 말 “그 책에 시를 쓰면, 시집이 되지요..” 그래서 한 번 더 웃었다. 지금 그 책은 서고(書庫) 어디에 있나 모르겠다. 한번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詩도 좀 적어놓긴 했는데..
이 『그림 없는 책』을 「아무것도 아닌 책」과 비교한다는 것은 책과 작가에 대한 모독이다. 단지 그림책에 그림이 없다는 것은 썰렁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도대체 뭔 배짱으로? 그림책에서 그림을 빼고 책을 만들었담?
첫 장을 열면, “이것은 그림이 없는 책이야.” 라는 글이 책의 한 쪽 면을 온통 차지하고 손님을 맞는다. “그래. 그림 없는 책을 읽고 싶진 않을 거야. 재미없을 테니까.” 어쩌라는 이야기야? 책을 덮으라고? 그런데, 책을 덮긴 커녕 다음엔 뭐라고 그러나 이야기 좀 들어보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니, 이것도 작가의 능력이다. “따분하고 딱딱할 게 분명해. 그런데....” 이런 얼른 뒷장을 넘겨본다. 그런데 다음엔 무슨 이야기가? “책을 읽을 때에는 꼭 지켜야 할 게 하나 있어. 책에 나오는 말을 몽땅 다 큰소리로 읽어야 한다는 거야.” “뭐라고 적혀 있든지 말이야.”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읽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의 강요와 아내의 압박을 못 이겨, 마지못해 책을 읽어주던 아빠들이 찔끔거릴 말이 적혀있다. “이 책은 말이야, 책 읽어주는 어른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리거든..”
이 책의 띠지엔 이런 글이 담겨있다. ‘유아책의 고정관념을 깬, 그림이 단 한 장도 없는 화제의 베스트셀러 출간!!’ 2014년 9월 미국 출간 이래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읽고 또 읽고 싶어 하고, 읽어달라는 책. 그림이 단 한 장도 없으나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책. 『그림 없는 책』의 지은이 B. J. 노박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스페인어문학을 수학한 코미디언으로 소개된다. 아마도 지은이는 이 책의 모티브를 말의 힘과 웃음의 파장력을 매일 매순간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희극배우의 일상에서 붙잡았을 것이다. 텍스트와 그림을 청각과 시각으로 전달하는 것이 전부라는 그림책에 대한 생각, ‘어린이 책은 그림이 갑이다’라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는 책이다. 나는 그림이 있는 책이 더 좋지만, 이런 책 한 번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책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대답해준다. 하지 마! 손대지 마! 라는 말만 할 줄 아는 엄마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오로지 글과 글자에 집중하게 한다. 그림이 있는 그림책보다는 어떤 면에선 아이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상상력을 더 자극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