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2016-020

 

우리 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톰 미첼 / 21세기북스

 

 

어쩌다 펭귄하고...

 

 

어느 책에선가 남극의 펭귄 이야기를 읽다가 눈물겨운(아니 거의 목숨을 건)부성애에 감동했다. 암컷이 낳아 놓은 알을 발등 위에 올려놓고 거의 망부석처럼 서 있는 것이다. 바닥은 차가운 얼음 덩어리, 알을 발에서 떨어뜨리는 날은 내 새끼가 태어나기도 전에 얼어 죽게 두는 것이다. 떨어뜨린 알은 펭귄의 생물학적 특성상 다시 발등에 올려놓을 수가 없다. 그러니 수컷은 그 알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나중에 암컷에게 들을 폭풍 잔소리를 생각하며 견뎌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새 암컷들은 어디로 갔다더라?

 

 

이 책을 처음 대할 땐, 소설의 소재가 특이하구나. 펭귄과 동거라? 그러나 읽다보니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는 것에 놀란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작가의 어머니는 실제로 악어를 세 마리나 키우셨단다. 그 어머니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악어들을 기른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열여섯 살 때까지 싱가포르에 살다가 잉글랜드로 돌아가게 되자, 절친 한 사람이 작별 선물로 알 세 개를 줬다. 그런데 작가의 어머니가 잉글랜드의 어느 오두막집에서 긴 휴가를 보내는 동안 이 알들이 자연 부화되어 새끼들이 태어난 것이다. 악어들이 점점 덩치가 커지자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가 없게 되고, 결국 동물원의 관리인들이 그 악어들을 데려갔다.

 

 

 

영국태생인 작가는 그 특유의 호기심과 모험심의 영향을 받아 20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에서 기숙학교 교사로 생활했다. 작가는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 친구 덕분에 우루과이에 있는 휴가용 아파트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던 중에 마젤란펭귄 후안 살바도르(작가가 지어준 이름)와 운명적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초.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펭귄들이 바다 수위를 표시하는 기둥부터 북쪽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길게 누워 있었다. 펭귄들은 끈적거리고 역겨운 기름과 타르에 숨통이 막힌 듯 기름범벅이 된 채로 죽어 있었다.” 펭귄들의 사체 더미 속에서 꼼지락 거리는 생물체를 발견한다. 그 틈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의 펭귄이었다. 작가 말로는 그 펭귄은 4.5킬로그램 정도의 무게였다고 한다. 고심 끝에 그 펭귄을 감싸 안고 아파트로 왔다. 그리고 일단 기름범벅의 펭귄을 씻기기 시작한다. 힘들다. 그 와중에 손까지 물려서 피가 철철 난다. 일단 펭귄의 몰골을 회복시켜주고 작가는 고민에 휩싸인다. 여기서 살 것도 아니다. 곧 아르헨티나로 가야한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펭귄을 키우다니. 펭귄 사육에 대한 책도 없다. 동서남북 휘둘러봐도 펭귄을 사육한 경험자도 없다(요즘처럼 인터넷이 전 세계를 아우르기 전이다). 다시 바다로 보내줘야겠다. 맑은 바닷물에 넣어주면 어디든 알아서 가겠지. 그래서 가방에 잘 담아 다시 집을 나섰다. 거기서 후안(펭귄의 이름)과 헤어졌으면 이 소설의 이야기도 끝이다. 그런데 아, 이 녀석이(암수 구별은 안 되어 있지만..)기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작가가 차도를 건너는데, 겁도 없이 차도로 내려서서 열심히 달려온다. 뒤뚱뒤뚱 참 끈질기게 따라온다. 그러니 어쩌겠나, 같이 살아야지.

 

 

 

작가가 잘 키워서 그런지, 소설 속 후안의 모습은 점잖다. 가방에 넣은 채로 이동 중 버스 안에서 쉬~를 하는 바람에 온 버스 안이 이상야릇한 비린내로 진동을 시킨 것 말고는..(시치미 뚝 떼고 버스가 서자마자 내렸다). “동반자로서 후안 살바도는 성가신 친구였다. 매일 먹이고, 씻기고, 운동 시키고, 놀아줘야했다. 하지만 자진해서 도와주겠다고 나서준 수많은 봉사자들 덕분에 그 짐을 상당히 많이 덜 수 있었다. 후안은 매주 3~4킬로그램의 청어를 먹었다.(...) 하지만 나는 들인 돈보다 훨씬 귀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었다. 그 나이에(20대 초반) 어떤 것을 책임졌던 경험은 내 인성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후안 살바도 역시 내가 해준 것보다는 내게 준 것이 훨씬 더 많은 친구였다.

 

 

 

소설은 펭귄을 키우며 발생한 에피소드와 70년대 아르헨티나의 정국 상황이 주 내용이다. 의아한 것은 동물원에서 자란 펭귄도 아닌 것이, 사람과의 교류가 매우 빠르고 지혜로운 점이다. 펭귄은 점차적으로 작가의 주변에서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감이 되어간다. 이젠 나이가 제법 든 작가가 젊은 날, 펭귄과 함께 한 일상을 회고 형식으로 서술했다. 작가가 이야기한 책임감, 동물과 인간과의 교감, 생명의 소중함 등등을 생각하게 하는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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