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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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처럼 핸디한 책을 손을 잡았습니다. 스캐닝하듯 책을 볼 때 그랬습니다. 중간 중간 아가들 책에 나오는 삽화처럼 수채화같은 은은한 톤의 그림을 보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웬걸요 작은 책을 꽤 진지하게 봤습니다. 다독가이며 속독가를 자처하는 내겐 드문 일입니다. 


2.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무겁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에 실린 글과 말들이 예사롭게 넘길 부분들이 아닙니다. 혹시 이 책을 만나게되면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3. 책 제목이 좀 그렇지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라. 원제 역시 같습니다. [The Uncommon Reader]입니다. 책을 펼치면 윈저 성이 나오고, 프랑스 대통령이 얼굴을 비치고, 이 책의 주인공인 영국 여왕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조금 긴장이 됩니다. 뭐야? 왕실 스토린가? 영국 여왕 퀸 엘리자베스 2세. 이 분 아직 살아계시지요? 


4.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들어가보니, 아직 정정하시군요. 올해 87세랍니다. 장수하시는군요. 훌쩍 건너 뛰어서 뒷 부분으로 가보면 여왕이 80세 생신 축하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국 총리가 나서서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리고 싶다고 하자 여왕이 이런 말을 하는군요. "너무 법석을 부리지는 맙시다. 짐이 여든 살이고 이 자리가 생일 파티인 것은 사실이지만, 축하할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축하받을 것도 없지만 한 가지를 짚으라면, 적어도 짐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나이에 다다랐다는 것이지요."  


5. 실화냐구요? 실제로 책에 실린 일들이 영국 왕실에서 일어난다면, 영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변화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렇다고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구요. 이쯤에서 이 책의 작가 '앨렌 베넷'을 소개합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익살스럽고 통렬한 문체와 이야기로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답니다. 이젠 눈치채셨지요? 이 책은 2007년에 출간되었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세계 삼십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는 점도 덧 붙여드립니다.


6. 작가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가? 키워드는 [독서]입니다. 독서가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는구나. 자신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변화를 주는구나. 물론 그 변화는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만, 아뭏든 책의 맨 마지막에 여왕이 하는 말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작가의 희망사항이기도 하겠지요.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여왕이 살아 생전에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아직 읽었다는 이야긴 못 들어봤기에..)만약에 읽는다면 어떤 마음을 갖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7. 공사다망하신 여왕님이 어느 날 운명처럼 영국 왕실 정원에 가끔 오는 '웨스트민스터 시영 이동 도서관' 차에 오른 것이 화근입니다. 여왕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자로 된 것이라곤 공식서류에 도장을 찍는 일이 전부였던 여왕에게 책은 그저 장식용에 불과했을 뿐이었는데 여왕의 손에 책이 들려지고, 읽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책에 빠집니다. 아주 푹 빠집니다. 여왕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무슨 책부터 읽어봐야 하나 허둥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작주의'로 바뀝니다. '전작주의'는 또 무슨 소리냐구요? 한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어서 그 작가의 작품을 줄줄이 찾아 읽는 것이지요. 그리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직 그 만한 작가를 못 만났다구요?


8. 여왕이 책에 빠지면서 당황한 것은 왕실 사람들과 관료들 그리고 왕실의 시종들까지도 혼란에 빠집니다. 이해가 안 되시지요? 쉽게 설명드리면 콘티에 맞춰서 대사를 읊어야 할 출연자가 애드립을 연발하는 바람에 다른 출연자가 보조를 못 맞춘다고 할까. 아니 책에 실린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드리면 여왕의 존재는 이미 상징적인 것으로 굳혀져 있으므로, 주위 사람들은 여왕이 그 역할에만 충실해주기를 원하는데 사람이 변하고 있으니 작당해서 여왕이 책을 못 읽게 하려는 계획까지 동원됩니다. 여왕이 더욱 사려깊어지고, 배려심과 인내심이 생기고, 이제껏 아무 생각없이 잘 해왔던 공식행사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여왕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멋진 연기를 해야하는 관료들은 죽을 맛입니다. 


9. 작가가 여왕의 말과 생각을 빌려서 독서에 대해 이야기한 몇 꼭지만 옮겨보렵니다.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책은 상상력에 불을 붙이는 폭탄이지."  "책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죠."


10. 후반부로 갈수록 여왕이 확실하게 변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에서 '일반적인 독자'로 갔다가 다시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로 갑니다. 결국 다시 원점(책을 안 읽는 상태)으로 갔냐구요? 예, 맞습니다. 그러나 업그레이드 된 상태입니다. 이젠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책을 쓸 단계까지 갑니다. 이 점은 저와 같은 과입니다. 여왕은 이 땅에 머무를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이겠지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권해주면 좋겠습니다. 아, 책을 읽으면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더군다나 여왕이 이렇게 변할 정도면 책, 정말 대단한데. 하는 마음만 심어주어도 언젠가 책과 친해지겠지요. 꼭 먼저 읽어보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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