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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단편집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평점 :
1. [변신]의 작가 카프카를 만난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20세기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카프카의 문학은 20세기 중반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다시 발굴되어 높이 평가를 받는다. 모든 몽환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 악몽과 부조리함을 연상시키는 형용사인 '카프카적'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카프카의 전체 작품에 흐르는 일관된 분위기는 '소외'이다. 현대인이 겪는 소외와 사회에서 개인의 고립을 정확하고 예리하며 파격적인 형태로 묘사해내고 있다.
2. 이 책에는 [선고], [변신], [시골의사],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단식 광대]등 5편이 실려 있다. [선고]는 'F를 위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기서 F는 카프카가 만난 첫 여인이자 후에 두 번에 걸쳐 약혼과 파혼을 했던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를 가리킨다. 첫 문장은 (소설을 읽을 때는 첫 문장에 관심이 간다. 첫 문장이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으면 읽고자 하는 욕구가 감소된다) '아주 화창한 어느 봄날 일요일 오전이었다.'라고 시작된다. 다음이 기대되는 문장이다.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3. [선고]. 시작은 화창한 봄날인데 끝은 그렇지 못하군요.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있으나 서로에게 '먼 그대'입니다. 약혼을 앞둔 아들은 멀리 외국에 있는 어릴 적 친구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친구는 러시아에 있군요.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썼노라고 이야기를 꺼냅니다. 처음에 아버지는 짐짓 그 친구를 모르는 척 합니다만, 급기야 그 친구가 마치 당신의 아들인 것처럼 표현하고 진짜 아들은 천하의 원수처럼 대하는군요. 우선 아들의 약혼녀를 마땅치 않게 생각합니다. 아니 매우 싫어합니다. 부자지간 말다툼 끝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고'를 내립니다. "이제 내가 너에게 익사형을 선고하노라!". 안타깝게 말대로 됩니다. 아들은 대문을 뛰쳐나와 차도에 나섰는데, 무엇인가에 의해 물가로 내몰리는군요. 그리곤 강물로 떨어집니다. 카프카는 이 단편소설에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이 책을 옮긴이 권혁준의 표현을 빌리면 '결혼으로 인해서 예술가적인 자아가 침해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작가의 은밀한 소망이 투영되었다.'이다.
4. [변신]. 연도 수는 기억못하지만 아마 세 번째 읽는 듯하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에서 한 흉측스러운 갑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외판원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잠시도 쉬지 못하고 돌아가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가족들과 회사에선 그 일상의 바퀴가 멈추자 득달같이 그의 방문을 두드려댄다. 그레고르는 그의 몸에 닥친 변화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보니 차마 방문을 열 수가 없다. 결국 그의 흉측한 모습이 드러나자 직장의 지배인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나고 가족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레고르와 가족 사이의 갈등이 주제가 된다. 고립이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변한 그레고르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 마음 아파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의 자리로 몰린다. 마침내 그레고르가 숨을 거둔다. 남은 가족들은 몇 달 만에 해방감을 맛보면서 모처럼 가족 여행을 떠난다.
5. 카프카는 이 작품 [변신]에서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전해주고 싶었을까? 주인공이 비록 흉칙한 모습으로 비참하고 외로운 최후를 맞이했지만, 이렇게라도 일상의 삶에서 놓여지길 원하는 마음을 표현했을까? 나의 삶은 접어놓고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을까? 어쨋든 그레고르에게 짊어졌던 어깨의 짐이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그가 그렇게 변신을 하자 남은 가족인 부모와 여동생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꼼짝들을 안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선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업작가가 되지 못한 카프카의 마음 속 바램도 반영이 된 듯하다. 그래도 그렇지 보기에도 흉측한 갑충으로 변신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6. [시골의사]는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역시 '소외'가 주제이다. 이방인이 타지에서 겪는 고통과 불이익을 그리고 있다.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는 원숭이 빨간 피터가 학술원 회원들에게 지난 5년간 자신이 원숭이의 본성을 버리고 걸어온 인간화의 길에 대해 회상하며 보고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억하는 사람도 제법 많겠지만, 국내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장기 흥행에 성공했던 추송웅의 모노드라마[빨간 피터의 고백]의 원작이다.
7. [단식 광대]는 1900년대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에 장기간 단식하는 행위를 일종의 기예로 여기며 공연한 인물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관객이 있고, 단식자가 음식을 먹는 것을 감시하는 (야간)감시자가 있다. 그리고 공연 매니저가 있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저 단식하는 날짜만 기록된 우리를 바라보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인간이란 참으로 연구대상이다. 단식광대의 인기가 시들해짐에도 불구하고 단식을 밥먹듯 하는 공연자는 이런 말은 한다. "왜냐하면 저는 제 입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음식을 찾아냈다면, 이런 이목을 끄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배불리 먹었을 것입니다." 요즘 이런 사람들을 거식증(拒食症)이라 한다.
8. 카프카는 문학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충격'이라는 표현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큰 고통을 주는 불행처럼,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서 떠나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충분히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