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걷고 그곳에서 숨 쉬는 도시생활자 여행기
김대욱 글.사진 / 예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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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 쉴틈'과 '숨쉴틈'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쉼표(,)하나 차이다. 쉼표는 생(生)과 사(死)로 구분되기도 한다. 한 호흡 들이마시면 이승이고, 한 호흡 내쉬며 멈추면 저승이다. 유명한 성악가 한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회를 마치고 쓰러졌다. 숨을 쉬어야 할 곳에서 숨을 못 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이 책의 저자 김대욱은 자연을 동경하지만 웬만해서는 서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서울형 인간이라고 한다. 서울형 인간. 저자가 다락방 같은 도시 속 따뜻한 장소들을 발견하고 틈틈이 걸으며 시간을 관찰하고 공간을 매만진 기록이 바로 이 책 [숨, 쉴틈]이다.


3. 이런 면에선 나하곤 코드가 맞다. 여행을 떠나 본 것이 언제였던가? 마지막으로 다녀 온 때는?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을 더듬다 그만 둔다. 딸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여름 휴가나 가끔 여행을 다녀오긴 했다. 이젠 그 딸이 결혼을 해서 곧 아기엄마가 된다. 한참을 여행다운 여행을 못 떠났다. 그저 가끔 학회 세미나 참석차 지방에 다녀오는 정도다. 외국에도 나가긴 했으나 여행은 아니었다.


4. 그래도 어딘가에 취미를 체크하는 일(인터넷 사이트에 가입 신청시)이 종종 있다. 어김없이 '여행'에 표시를 한다. 왜 여행을 못 떠나는가? 우선은 시간이 없다. 정말 시간이 없다. 그럼 나중에 시간이 나면 여행을?  모르겠다. 지금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꼭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5. 나의 문학소년 시절에 쓴 詩 한 귀절이 생각난다. 친구와 동해안에 다녀와서 집에 왔을 때로 기억된다. "집에 왔다. 나의 방문을 연다. 나는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나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세상이라 이름 붙여진 방에서 또 다른 나의 공간인 나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일까" 


6. 서론이 길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나의 이야기는 이 책의 향을 2/3 이상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여행을 통한 이국적인 느낌을 받으려는 기대는 아예 접는 것이 좋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은 저자의 방에서 시작해 방에서 끝난다. 저자에겐 방이 우주다. 시인(김경주)의 詩에 담긴 한 귀절을 그의 방에 꽉 채운다. "방을 밀며 나는 우주로 간다."  이 시인은 나보다 한 수 위다. 나는 기껏 세상까지 간 것이 전부인데, 김시인은 우주까지 뻗어나간다.


7. 숨, 쉴 틈  :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뻐근해질 때마다 가만히 시간이 그리는 그림을 들여다봤다.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꼭 숨 쉴 틈이 보였다. 나는 그 틈을 통해 숨을 쉬면서 먹먹함을 흘려보내고는 했다. 그건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나만의 짧은 여행이었다."


8. 저자에겐 깨어나는 새벽 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여행이다. 아니 꿈 속에선들 그 여행이 그칠까. 나와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몸은 예있으나 마음은 세계로, 우주로 뻗어나가지 않던가. 저자에게 하루는 여행이다. 매 순간이 새롭고, 눈을 돌리면 볼거리 천지다. 사람들은 흔히 반복되는 일상이라며 매일의 지루함을 호소하지만, 그는 매일 시간여행을 떠난다. 어제와 똑 같은 시간, 장소라도 그 속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없는지, 어제와 다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9. "오늘도 다 갔네."  "하지만 내일이 있으니까, 뭐 괜찮아."

 저자는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내놓는다. " 당신에게만 살짝 고백한다. 사실 나는 여행 중이다.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여행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젠 아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이다. 저자가 매일 매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10. 나 역시 거의 매일 저녁 여행을 떠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행이다. 현재 나의 여행은 '독서'다. 어제 이 시간엔 니체를 만났다. 그의 눈빛이 강렬했다. 어찌하다가 정신이 그리 춤을 추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하길 "몸이 안 따라주니 정신이 너무 앞서간 모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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