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오브 조이
도미니끄 라피에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다보니 TV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오버랩 됩니다. SBS의 '힐링 캠프'입니다. 게스트는 연예인 차인표씨입니다. 인도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이야깁니다. 원래는 그의 아내 신애라씨가 갈 예정이었으나 여의치못하게 되자 차인표씨에게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그 때만해도 나눔과 베풂이 마음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그는 모든 자원종사자들이 자비를 들여서 오가는데, 그는 그 일을 주관하는 단체에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주문했답니다. 그 이유는 본인의 인기를 이용해서 사진이나 찍고 홍보를 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판단이었답니다. 어쨌든 그 단체에선 항공권을 구입해줬고, 예정일이 되자 인도로 향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기전 주관하는 단체의 리더가 차인표씨에게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게 되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저 그 아이들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도 그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차인표씨는 '뭐 그 정도 쯤이야'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6~7살 쯤 되는 사내아이가 먼저 악수를 청합니다. 차인표씨가 그 손을 잡으며 부탁받은 그 멘트를 날리려던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내적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 소년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년의 손과 눈빛을 통해 들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는 음성은 나의 삶에 크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006년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무대는 바로 그 인도땅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 제작이 되었지요(1992년.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  저자는 캘거타에 간 어느 날, 인력거를 타고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아니러니 하게도 '환희의 도시'라는 뜻의 아낭 나가르라는 슬럼가였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양의 부유한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용기와 사랑, 나눔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걸 소유한 듯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성자(聖者)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랍니다.

 

'환희의 도시'에서는 테레사 수녀뿐 아니라 프랑스 신부인 폴 랑베르처럼 그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기구는 커녕 기본적인 약과 주사제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환자들이 그저 죽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탄탄대로의 의학과정을 마친 미국 플로리다 출신 젊은 의사는 그가 학교에서 미처 익히지 못한 병과 환자들을 위해 땀을 흘립니다. 물론 그 역시 자원봉사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과 궁핌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자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이 대서사시를 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수개 월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합니다. 이 점이 저자의 열정과 진실성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듭니다. 자료 조사와 몇 차례 현지 답사 정도로 쓴 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거처한 오두막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의 초라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쪽방 수준입니다.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 방. 쥐와 지네가 들들끓었고 소나기가 내릴 때마다 물과 오물이 넘쳐 들어옵니다. 저자는 결핵환자들, 나환자들, 거세 당한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일상을 이해합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 시간속에서 그는 이렇게 소회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면 조그만 호의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작품에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중심 인물인 인도의 서른 세살 농부 하사리 팔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하사리는 동부 벵골지방의 방쿨리 도시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던 하사리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대지주들의 농간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집을 모두 뺏기게 됩니다.

 

어떡하든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땅을 소작해야했지요.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주고 나면 쭉정이 밖에 남지 않을 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충해와 가뭄으로 결국 하사리는 캘거타로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하사리처럼 고향을 떠나온 다른 가족들처럼 역앞에서 노숙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매혈(賣血)을 해서 가족들의 끼니를 때웁니다. 하루에 바나나 한 쪽만 먹어도 감지덕지한 삶이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력거를 끌게 됩니다. 대단한 발전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체력으로 달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사리의 딸이 초경을 치루고 결혼을 하게 될 나이가 되었군요. 신부의 지참금 문제가 매우 심각하군요. 정부에서 아무리 규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하사리는 뼈를 판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립니다. 인도의 인체 골격 시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 갖고는 매우 부족합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체 골격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거액의 가격표가 매겨진 후 서구사회로 건너갑니다. 물론 뼈를 제공하는 것은 사후에 처리됩니다. 완성 처리된 골격에 붙여지는 가격표에 비해선 거의 푼돈이나 다름 없는 돈을 받고 뼈까지 팔아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사리는 힘들게 딸을 결혼시키고 난 후 그간의 쇠약해진 몸에서 그나마 붙어 있던 생명력이 떠나갑니다. 하사리의 뼈는 계약서대로 이행됩니다.

 

인도라는 나라.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이해하기 힘든다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 모두에 있습니다. 어두움은 과연 그 나라엔 정부의 행정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피아와 같은 암흑세력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엔 언급이 안되었지만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 동부의 오리사 주를 방문했답니다. 최근 부족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지역에서 갈등과 내란이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그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이미 부족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물질적 원조를 목표로 하는, 충분한 기금을 가진 정부 프로젝트와 법적 장치가 이미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원래 도우려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도는 세게에서 이슬람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이슬람교도의 본거지입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수백만 의 시크교(15세기 인도에서 힌두교 신앙과 이슬람 신비 사상이 결합되어 탄생한 종교)신자와 기독교인이 있고, 상당히 많은 자이나고, 불교, 조르아스터교, 유대교 공동체도 있습니다. 인도에는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도 없다 합니다. 게다가 오늘날 인도에서는 수백 가지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도 언어상의 문제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종종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것에 감사" 를 마음에 담습니다. 작품에 그려지는 하층 인도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거의 귀족같은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과연 그럴까? 설마?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나오는지 경이로울 따릅니다. 앞서 언급드린 프랑스 신부 랑베르가 어느 인도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을 접대하는 데 극진했다. 랑베르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 식구가 뛰어나와서는 벵골 사람들이 끔찍이도 좋아하는 온갖 사탕과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를 대접하는 데 식량을 써 버려 며칠 먹을 그들의 양식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럼 현재 '환희의 도시'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책과 영화로 소개된 이후 '환희의 도시' 까지는 아니더라고 '희망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상조회의 회원이 7,000명이 넘어 섰다고 합니다(지금은 더 늘어났겠지요). 물론 모두 인도가 아닌 타국 사람들입니다. 무료진료소, 허약한 어린이들을 위한 회관, 산원(産院), 노인과 극빈자들을 위한 무료 급여소,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소, 성인을 위한 가내 공장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결핵 조기 발견 계획도 수립됩니다. 이어서 벵골 지역에서도 가장 빈곤하고 뒤처진 지역의 관개와 우물 파기, 무료 진료소 설립이 추진됩니다. 인도에서도 최하의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던 이곳 '환희의 도시'는 보석상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들어서고 사무원들과 공무원들, 상인들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주거시설이 철거되고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문제가 나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자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좋은 소식이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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