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지만지 고전선집 661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지음, 정정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그 해 겨울은 원 없이도 눈이 많이 내렸다. 시장에서는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우선 큰 눈덩이를 굴렸다. 눈사람의 배가 될 부분이었다. 그 다음에 만든 좀 더 작은 눈덩이는 어깨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작은 눈덩이를 굴려서 눈사람의 머리를 만들었다. 검은 석탄으로 단추도 달아 주었는데, 다 잠글 수 있도록 위에서 아래까지 촘촘하게 박아 넣었다. 코는 당근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줄지어 아이들의 집을 찾아온다.

 

처음에는 신문가판대 아저씨다. 눈사람의 당근 코가 문제였다. 본인의 빨간코를 빗댄 것이라고 한다. 기분이 나쁘단다. 추워서 그런 거지 보드카를 마셔서 그런 것이 아니란다. 한사코 본인은 술꾼이 아니라고 큰소리친다.

두 번째는 마을조합장이다. 눈덩이를 그렇게 쌓아놓은 것은 마을 조합에 도둑놈위에 도둑놈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기분이 몹시 나쁘단다.

세 번째 방문객은 지역회의 의장이다. 역시 눈사람이 화근이다. 아니 눈사람은 아무 잘 못 없는데 모두 난리다. “나는 집에서 단추를 풀고 다니는데 그건 내 사적인 문제요. 그러니 댁의 아이들이 그걸 우스갯소리 삼을 권리는 없단 말이오. 머리에서 발끝까지 촘촘히 붙어 있는 그 단추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소. 내 다시 말하오만, 내 집에서 내가 바지를 벗고 다니건 말건 그건 댁의 아이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오. 명심하시오!”

 

아이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아이들 아빠는 사회적 분위기상 아이들에게 벌을 준다. ‘저녁을 굶기고 구석에 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한다. 그 후 아이들은 다시 눈사람을 만들 기회가 되었다. 이제는 모델이 분명히 정해졌다. 신문가판대, 조합장, 의장아저씨를 만드는데 아이들의 의기가 투합 되었다. 그리고는 즐겁게 작업에 착수했다.

 

 

 

 

다소 썰렁한 느낌이드는 풍자적 단편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세상에는 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 또한 없다. 단지 시간이 개입될 뿐이다. 작금의 정당화는 차후엔 변명이 된다. 역사상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단편이 42편 실려 있다.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고 있다.

 

저자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폴란드의 대표적 극작가이자 단편소설 작가, 만평가다. 1930년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 근처 보젱친에서 출생. 해외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희곡 덕분이다. 므로제크의 희곡작품들은 도덕적 희곡 또는 철학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곡작품과 매우 흡사한 자신의 산문 작품 속에서, 므로제크는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 쪽으로 움직여간다. 부조리한 유머를 사용해 지역 정서와 진보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의 작품들은 폴란드 계엄(Martial Law)시절 폴란드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았고, 지하 출판을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1950년대 폴란드의 민초들이 당했던 상황은 1960년대 이후 70, 80년대의 암울했던 국내 상황과 흡사하다. 깨끗하고 정당한 방법의 권력 승계가 아닌 정권의 탈취는 언론, 출판, 집회 및 개인적 표현의 자유부터 접수한다.  그 어둠의 시기에 ‘타는 목마름’으로 봄날의 바람이 우리의 가슴속으로 들어와주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저자는 이 짧은 단편 속에 폴란드가 처했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폴란드인들의 입가에 짧은 미소와 울창한 숲 속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희망의 햇살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라 믿고 싶다.

 

이 책을 번역한 정정원 교수는 대학원 시절 폴란드어를 공부하면서 한 편 한 편 번역을 하다가 결국 전편을 다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번역본이 ‘좋은 추억’으로 컴퓨터 한 구석 ‘므로제크’ 라는 폴더에 수줍게 자리잡게 되었는데, 어느 날 다시 꺼내 읽으면서 묘한 재미와 독특한 감동이 몰려 왔다고 한다.

“1950년대 폴란드라는 나라, 폴란드 정부, 폴란드 관료주의, 폴란드 공산주의 등에 대한 풍자가 21세기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 정부, 한국 관료주의에 대한 풍자로 자연스럽게 투영되고 있었다.”

 

이 단편의 타이틀이 된 〈코끼리〉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이 배경이다. 이 동물원은 코끼리가 없는 대신에 토끼 3000마리로 대신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의욕만 앞서는 과잉충성 동물원장의 아이디어로 공기를 가득 채운 그럴싸한 고무 코끼리를 만들어 세워두게 되었다. 특별히 굼뜨다는 안내문과 함께.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이 동물원으로 현장 학습을 오게 되는데, 그들은 4000킬로그램에서 6000킬로그램까지 나가는 가장 무거운 육상동물인 코끼리가 미풍에 실려 하늘 높이 올라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 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유리창을 깨는 건달이 되었고, 더 이상 코끼리를 믿지 않게 된다.

 

어디 코끼리만 못 믿었겠는가.

소설에는 언급이 안 되었지만, 학생들이 이러지 않았을까?

 

“이 세상에 믿을 넘 하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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