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단편집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이상 지음, 이재복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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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製가 되어버린 天才’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땐 戀愛까지가 愉快하오.      (날개)

 

이상(李箱, 1910~1937)을 다시 만난다. 오랜만에 대하는 그의 글들이건만 푸릇푸릇 살아있다. 그의 글에선 비릿한 내음이 난다. 은빛 비늘에 눈이 부시다. 때로 아니 거의 그의 글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글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육신의 편치 않음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참으로 높이 올라가 있다.

 

肉身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疲勞했을 때만 精神이 銀貨처럼 맑소. (날개)

 

그의 몸은 말할 수 없이 疲弊해 있고 그의 정신은 맑다 못해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날개에서.. 그는 안해(아내)의 직업이 자못 궁금하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단다. 가슴이 저며온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 明晳한 사람이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저 독자에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입장을 이해해주기 바랄 뿐이다. 마치 독백처럼 늘어놓는 그의 글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퇴색되긴 커녕 더욱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새롭게 편집된 이 단편집엔 날개 외에 「終生記」,「지주회시」, 「逢別記」, 「失花」 등이 실려 있다. 「종생기」는 거의 유서 분위기다. 그러나 그의 육신이 비록 생명을 잃을지언정

“.... 退色한 亡骸우에 鳳凰이 와 앉으리라.” 는 氣槪를 잃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殞命하였다. 나는 자든 잠 ― 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드냐 ― 을 깨이면 내 痛切한 生涯가 開始되는데 靑春이 여지없이 蕩盡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었지만 歷歷히 目睹한다. (종생기)

 

 

李箱은 외롭다. 그의 존재감은 가히 넘볼 수 없다. 아마도 이 힘으로 버텼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冷水 한 목음을 먹고도 넉넉히 一世를 威壓할 만한 ‘苦言’을 嫡嫡할 수 있는 그런 智慧의 實力을 갖었다. (종생기)

 

 

지주회시는 ‘거미가 돼지를 만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편을 읽다보면 누가 거미이고, 누가 돼지인지 알 수 있다. 왜 거미와 돼지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李箱은 여전히 바라보는 입장이다. 아니 이 단편에선 좀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어색하다. 아무래도 그는 일상의 편린들과는 거리를 좀 두는 것이 좋겠다. 그답지 않다.

 

그날밤에그의안해가층계에서굴러떨어지고 ― 공연히내일일을글탄말라고어느눈치빨은어룬이타일러놓섰다. 옳고말고다. 그는하로치씩만잔뜩산(生)다. 이런 복음에곱신히그는딩어리(주:벙어리)(속지 말라)처럼 말(言)이없다. 잔뜩산다. 안해에게무엇을물어보리오? 그러니까안해는대답할일이생기지않고 따라서부부는식물처럼조용하다. 그러나식물은아니다. 아닐뿐아니라여간동물이아니다.          (지주회시)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고 했다가 여간 동물이 아니라는 표현에 깊은 공감이 간다. 부부라는 관계에선 어쩌면 동물적인 감각과 기질을 서로 덮어 누르면서 식물처럼 감추고 사는 것이리라.

 

 

「봉별기」는 李箱과의 끈질긴 인연인 그녀 錦紅을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누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그려갈 수 있었을까. 거의 실시간으로 말이다.

 

「失花」에는 李箱이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서 생활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책을 엮은이 이재복에 의하면 그곳에서 삼사문학 동인들과 교유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1937년 3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의 모든 작품(시 56편, 소설 16편, 수필 35편)은 21세부터였다. 더욱이 처음 각혈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첫 작품인 《십이월 십이일》을 발표한 시기(1930년)가 같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몸의 모든 에너지를 글쓰기로 소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의 생명력은 길다.

그는 떠났지만 누군가의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날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ㅅ구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ㅅ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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