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 개념과 역사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5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광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실험을 편집한 TV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화장실 앞에 남녀 표시판중 그 모양은 그대로 두고 색깔만 바꾸었습니다.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은 남자 화장실은 청색, 여자 화장실은 적색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의 색깔을 바꾸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거의 50% 정도는 색깔만 보고 바꿔 들어갑니다.

 

기호학 책을 보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호학이 이런 그림이나 색깔이야기만 한다면 머리 아플 일이 없는데,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참, 화장실 이야기 한 김에 한 가지 더. 인터넷 서핑 중 보게 된 사진 한 장. 보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지방의 어느 등산로 초입으로 보이는데, 화장실 입구 흰 벽에 커다란 그림 한 장이 걸려있습니다. ‘똥’그림입니다. 화투에 있는 그 ‘똥’입니다. 일본 사람들까지는 알아보겠지만, 서양인들의 눈엔 무엇으로 보일까요? ‘화랑’으로 보여 지진 않을까요? 이 역시 기호는 기호인데, 글로벌화하지 못한 기호라고 생각이 듭니다.

 

움베르토 에코 - 이 분의 작품을 한, 두 권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박학다식맨(?) 인줄 알 것입니다. 이 분 출생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드라마틱하지요. 에코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소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코라는 성은 〈ex caelis oblatus (천국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시청 직원이 버려진 아이였던 그의 할아버지에게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 선물의 대부분을 차지 한 것 같습니다. 학자로, 소설가로 큰 족적을 남기고 있지요.

 

이 책은 저자가 기호학 관련 책을 여러 권 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호학 입문서로서 꾸준히출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세 가지 특징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현재 기호학이 다루는 모든 주제보다는 다양한 기호의 개념을 분석하고자 했다.

둘째,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기보다는 다양한 기호 이론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였다.

셋째, 기호의 개념이 특수 기호학이나 언어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철학 사조의 전체적인 역사를 훑어 보고자했다.

 

책은 크게 5개 섹터로 구성되었습니다. 기호학적 과정, 기호의 분류, 구조주의적 접근방법, 기호의 생성양식 그리고 기호의 철학적 문제들이 그것입니다. 기호는 앞서 이야기한 그림이나 문양은 물론 광범위하게는 언어, 문자, 몸짓 등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것〉입니다. 이 책은 〈기호의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기호학은 기호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소개되지만 기호란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기초하여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작동하는 과정이자, 과정의 원료가 된다고 합니다. 기호학적 과정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요소로서 기호와 의미과정의 요소로서 기호로 나눠지지요. 한 권의 책은 다양하게 조합되는 기호들의 길고 긴 연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두 가지 기호 즉, 〈인공기호〉와 〈자연기호〉를 구분했습니다. 인공 기호란 정확한 규약에 따라 (인간 또는 동물일수도 있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기호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단어, 그래프 기호, 그림, 음표 등) 이런 기호의 근원에는 항상 〈발신자〉가 있다. 자연 기호에는 의도적인 발신자가 없으며, 자연적 근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징후나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간염으로 진단하게 되는 피부의 반점들,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 비를 예고하는 먹구름 등). 환희와 같은 무의식적인 기호들처럼 자연 기호들이 특정한 심리 상태의 징후로 나타날 때는 〈표현적 기호〉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호들이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은 표현적 기호들조차도 사회화된 언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런 언어로서 분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후각기호, 촉각기호, 미각기호, 시각기호, 청각기호 등의 범주가 〈의미군 〉으로 불리어진다.”

 

저는 별도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책에서 낯익은 용어들을 대하며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구조주의, 음소계열, 음의 변별적 특징을 갖는 최소단위인 음소, 대립, 변별적 자질, 음성학 등. 굳이 어문계열이 아니더라도 기호학에 대한 개념 정립과 소통의 배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에코에 대한 단상 하나 - 90년대 중반. 국내에 에코의 ‘푸코의 진자’가 처음 번역 소개되었을 때부터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코 - 푸코 - 사이코.'  교정을 보던 편집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