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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 시대 - 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수잰 오설리번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11월
평점 :
《 진단의 시대 》 _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_수잰 오설리번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까치2025-11-17
원제 : The Age of Diagnosis: How Our Obsession with Medical Labels Is Making Us Sicker
“진단을 진단한다”
1.
최근 국내 뉴스에 「목 아파(경추통) 병원 갔더니… 검사 62개하고 "50만원입니다"」 이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중앙일보/신성식, 채혜선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기능의학’을 표방하는 의료기관들이 너무 많은 검사를 해서 환자들과 건강보험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공단은 기능의학을 한다고 내세운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형태를 분석했더니 환자가 내원할 때마다 평균 11종의 검사를 했고, 이는 전체의원 평균(회당 5종)의 2.2배에 달한다고 밝혔다(2025. 12.15). 문제는 ‘기능의학’은 의대 교육과정에서 정식으로 다루지 않는 분야라는 것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검사를 많이 할수록 좋지 않겠냐는 긍정적 견해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다. 환자가 병원 여러 곳을 전전해도 확실한 진단을 받지 못한 경우라면 모를까. 검사한 환자의 절반 이상이 고혈압, 고지혈증, 2형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자였다. 수십 가지의 검사를 시행하는 과정을 보면, 마치 어부가 강이나 바다에 던진 촘촘한 그물이 연상된다. 겨우 물만 빠져나갈 수 있는 그 그물에 뭐라도 걸리지 않겠는가?
2.
이 책의 지은이 수잰 오설리번은 신경학과 전문의이다. 복합 뇌전증이 전문 분야이며, 심인성 장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첫 저서인 『병의 원인은 머릿속에 있다』 로 웰컴북 상과 왕립학회 생물학 저술상을 받았다. 지은이가 의사이면서도, 현재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과잉진료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현 의료계에서 시행하는 ‘진단을 진단’ 한다. 병이 있어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진단을 통해 환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질병의 꼬리표가 붙는 순간 환자는 의료관리 영역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식생활이나 운동 등 생활습관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의 상태는 일단 병명이 붙으면 어디 도망도 못 간다. 필자는 평소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 건강인, 반환자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00%건강한 사람은 없다(단지 본인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뿐이다). 반대로 100%환자(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도 없다.
3.
지은이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질환은 헌팅턴병, 라임병과 만성 코로나 증후군, 자폐증, 암 유전자, ADHD, 우울증, 신경다양성 그리고 아직도 이름이 붙지 않은 증후군 등이다. 이 질환 외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성병으로 알고 있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첫 시작은 모녀의 스토리이다. 엄마 스테퍼니는 22살 때, 첫 아이를 임신한지 29주째에 갑자기 쓰러졌다. 자간(임신기간에 혈압이 높아지고 발작이 일어나는 병)으로 진단받았다. 그 뒤로도 발작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의사들마다 진단이 달랐다. 뇌전증, 스트레스성 심인성 발작, 경직성 불완전 마비 등이 대표적 진단이었다. 진단의학의 발전으로 근 30년 만에 ‘유전자 변이체(돌연변이)’로 최종 진단이 내려졌다. 여기까지는 진단의 승리이다. 그러나 진단 다음에 밝고 희망적인 과정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 진단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알려줄 수 없었다.”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스테퍼니는 최종진단을 받고 나서 허탈감에 빠져든다. 지난 세월에 간헐적으로 일어났던 증상들이 언젠가는 호전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치료가 불가한 유전적 질환이라는 꼬리표에 당황스럽다. 지은이가 최종 주치의인지라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겠어요.” 안타깝다. 문제는 스테퍼니의 딸 애비게일이다. 애비게일이 환영받지 못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녀(애비게일)는 엄마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엄마가 어떻게 잘 대처하는 지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진단이 내려지자, 애비게일은 나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4.
임상검사 중 정상 수치에서 약간 벗어나거나 경계선에 걸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치료를 해야 할 상태 또는 차후 관찰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의사의 권한이다. 그러나 경계선에 걸쳐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을 먹는 ‘건강염려증’ 환자들도 상당히 많다. 선명하진 않지만, 이미 병명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당뇨병 이야기를 한다. 2003년 미국 당뇨병협회는 당뇨병 전 단계의 기준이 되는 공복 혈당 정상 수치를 리터당 6.1밀리몰에서 5.6밀리몰로 낮췄다. ‘전 단계’를 조정 한 것이다. 아무튼 이 사소해 보이는 조정으로 당뇨병 전 단계에 속한 사람의 수는 하룻밤 사이에 적어도 2~3배가 증가했다고 추측한다. 이 당뇨병 전 단계의 기준 변동과 다른 포도당 불내성 검사법들을 조합해서 세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중국 성인의 절반 및 미국과 영국 성인의 3분의 1이 당뇨병 전 단계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정상 수치가 변경되었나? “이런 갑작스러운 질병의 진단 기준 수정은 한 위원회가 정상 혈당의 범위를 재정의하자고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뜬금없이 이루어졌다” 과잉진료가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케이스이다. (나도 뜬금없이 드는 생각 “당신들끼리 뭔 작업을 한 것 아니요? 커넥션 또는 카르텔?)
5.
가족이나 지인이 병원에 다녀오면 묻는다. “병원(또는 의사)가 뭐래?” 그 ‘뭐’는 병명 또는 진단명이 궁금해서 하는 말이다. 의료인은 환자들에게 본인이 바로 답하기 버거운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이미 병원에 오기 전에 인터넷 서핑으로 정보를 두둑이 탑재해오기 때문이다. 의료인은 온갖 검사를 처방 한 후 시간을 번다. 지은이는 현재 대중과 의료인은 공동광기(共同狂氣)에 사로잡혀 있다고 표현 한다. 거북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신경과 의사로서 수십 년간 진료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최신의 의학 연구를 이론적인 토대로 삼았다. 의료인들과 일반 독자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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