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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움직인 100인 - 주공 단부터 류샤오보까지 중국을 움직인 사람들 ㅣ 역사를 움직인 100인
홍문숙.홍정숙 엮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 오늘의 책 〉
《 중국사를 움직인 100인 》 | 역사를 움직인 100인
_홍문숙, 홍정숙 / 청아출판사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많은 왕조와 인물이 등장한다. 제아무리 무한권력을 누리고 천하를 지배했던 인물들도 결국 사라지고 없다. 한마음으로 불노장생을 꿈꾸기도 했겠지만 결국 모두가 떠났다. 이 땅에 잠시 다녀갔을 뿐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사람이 있고, 또한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이 책엔 거슬러 올라가 본 중국의 주왕조 탄생부터 2000년대 초까지 중국사의 큰 획과 전환점을 만든 100명의 인물들이 담겨있다. 인물중국사이다. 주공 단, 진시황제, 제갈공명, 측천무후, 정화, 칭기즈 칸, 마오쩌둥, 류사오보 등 제왕과 책사, 정치가, 탐험가, 발명가, 인권운동가 등 다양하다. 글 중간 중간 400여점의 도판이 글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5챕터로 글을 나눴다. 주나라부터 진나라까지, 한나라부터 수나라까지, 당나라부터 원나라까지, 명나라부터 청나라까지 그리고 중화민국부터 현대(2000년대초)까지이다.
주공(周公)
주공은 주(周)나라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 왕조를 창업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후 주나라의 예악과 법도를 정비하고, 봉건 제도를 정착시켜 봉건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진다. 무왕이 죽은 후에는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약 7년간 섭정하면서 왕실 내외부의 반란을 진압한다. 유가학파는 주나라의 제도 대부분을 만든 그를 성인(聖仁)으로 존경한다.
주공은 성왕이 장성하자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성왕을 걱정하여 《다사(多士)》, 《모일(母逸)》, 《무일(無逸)》 등의 글을 지어 올려 성왕을 권고했다고 한다. 주공은 한때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쫓겨나기도 했으나 곧 다시 돌아와 성왕을 성심으로 보필했다. 그는 임종의 순간까지 자신을 성주(成周)에 매장해 달라고 유언하며, 죽어서도 성왕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주공이 죽은 후 성왕은 과거 병석의 무왕을 대신하여 자신이 병이 들게 해 달라는 주공의 기원문을 보고 감동하여 천자와 같은 형식으로 그의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진승(陳勝)
중국의 왕조를 비롯해서 왕권국가가 유지되는 나라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왕조의 피는 다른가? 그들은 그 알량한 혈통이라는 단어를 앞세울 것이다. 진승이라는 자가 “왕후와 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다는 말인가?”를 했다.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진승은 중국 최초의 농민반란 지도자이다. 진나라의 제2대 황제인 이새 황제 때 오광과 함께 농민반란을 주도했다. 진현을 함락한 후 장초국을 세운다.
진승과 오광(봉기 파트너)의 봉기는 내부분열로 동력을 상실해서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까지 이르진 못했으나 그 파급력은 실로 대단했다. 진승과 오광이 봉기를 일으킨 6개월 동안 전국 각지에서 반진(反秦)봉기가 들끓었다. 진이 통일하기 전 서로 힘을 겨루었던 6국은 이 반란을 틈타 각각 진에 반기를 든다. 제 왕실의 후예 전담(田儋)은 자립하여 제나라 왕위에 올랐고, 위 왕실의 후예 위구(魏咎)는 주시에 의해 위나라 왕으로 옹립된다. 특히 반진 세력들 중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바로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다. 결국 이 둘이 패권을 겨루다 기원전 206년 진 왕조가 멸망하고 한(漢)왕조가 건국된다.
채륜(蔡倫)
제지 기술이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거북이 등껍질, 짐승의 뼈, 금속, 돌 등에 글자를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쪽이나 나무, 비단에 기록을 남겼다. 파피루스나 양피지도 생각난다. 종이가 일으킨 문화혁명은 대단하다, 각 도서관마다 꽂혀있는 책들이 종이의 위대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젠 종이시대가 가고 디지털 시대가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국내 어느 대학에선 도서관 공간을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종이책 수만 권을 파쇄 했다고 한다.
후한 시대 채륜이 제지 기술을 발전시켜 ‘채후지(蔡侯紙)’라는 경제적이고 질 좋은 종이를 개발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채륜은 후한 명제 때 환관으로 입궁한다. 독서를 즐겼던 채륜은 죽간과 목독(木牘, 나무로 만든 책)으로 만들어진 서간을 읽는데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고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105년 황제에게 종이를 바친다.
일반적으로 채륜이 종이의 발명자라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종이는 채후지가 나오기 200여 년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4년 신장에서 발견된 마(麻)로 만든 종이는 1세기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후 1957년 파교, 1973년 거연, 1978년 부풍에서 발견된 종이는 전한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채륜을 종이의 발명자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가 제지 기술을 개량하여 기록하기 좋은 품질의 종이를 만들어낸 인물로 보는 것이 옳겠다.
포청천(包靑天)
이 책에 실린 많은 인물들 중에서 포청천이 눈에 띈다. 포청천은 송나라 시대의 판관으로 청백리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중국 드라마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본 기억이 난다. 포청천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외모가 기억에 남는다. 강직하고 청렴한 관직생활을 지낸 포청천은 생전부터 사후까지 칭송받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포공안》, 《포룡도판백가공안》, 《용도공안》, 《삼협오의》, 《칠협오의》 등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쓰였다.
류샤오보(劉曉波)
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인권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인 류샤오보이다. 가장 최근의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중국 정부의 반대로 빈 의자를 놓은 상태에서 시상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계속해서 중국의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했다. 중국정부에 반체제인사로 지목되어 여러 번 수감 생활을 했다. 6,4 톈안먼 사건을 유혈 진압한 중국정부는 이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박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감시, 연금, 투옥된다. 사건 주도자들 상당수가 이로 인해 중국을 탈출하여 해외 망명을 선택했는데, 류샤오보는 오히려 해외에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국내에 머물며 문필 활동과 민주화 운동을 병행한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을 어떻게 거부했을까?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류샤오보는 중국 법률을 위반해 사법기관으로부터 처벌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은 노벨 평화상에 대한 모독”이라며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류샤오보가 2009년 6월 국가권력 전복 선동죄로 체포, 구속되었을 때, 그는 법정심문과정에서 죄가 없음을 피력한다. 자신은 헌법에 나타난 언론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권 전복을 선동하지 않았다고 변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징역11년 및 정치적 권리 박탈 2년이 추가 확정된다.
투옥 중 2017년 5월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2017년 6월 26일에 가석방된다. 랴오닝성 선양시에 위치한 중국 의과 대학 부속 선양 제1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했으며 2017년 7월 13일에 사망한다. 2017년 7월 15일에 류샤오보의 영결식이 부인인 류샤를 비롯한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화장된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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