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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왜 안돼요? - 남들처럼 산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정제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왜 안돼요? 】 - 남들처럼 산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_정제희 (지은이) | 21세기북스 | 2018-10-23
소녀의 아버지는 외항 선원이었다. 아버지가 오랜 항해를 마치고 집에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첫 번째 이유였다면, 두 번째 이유는 아버지가 두 손 가득 갖고 오는 선물 때문이었다. 외국 물건을 구경하기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 아버지가 가져온 선물보따리엔 색연필, 초콜릿, 과자, 장난감, 책, 시계 등등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포장지나 상자에 적혀있던 다채로운 외국어였다.
처음 아랍어를 접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초콜릿 박스 뒤편에 아랍어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그때는 그게 아랍어인줄도 몰랐다. ‘아니 이게 대체 그림이야 글자야?’ 싶었다. 아랍어 문자를 차용해서 쓰는 이란어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은 채 소녀는 고등학생이 된다. 그리고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결국 어렸을 적 초콜릿 박스에서 봤던 옛 사랑 ‘이란어’를 전공하기로 마음먹는다. 고3 담임선생님이 걱정 어린 조언을 해준다. “이란어과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데, 좀 불안하지 않겠니? 나중에 취업도 그렇고..” 망설이던 이 책의 저자 정제희는 하나밖에 없다는 이란어과가 더더욱 매력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음에 결정을 내린다. “선생님, 전 이란어과 지원할게요!” 본인은 비교적 쉽게 결정한 듯한데,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은 그저 걱정뿐이었다. “선택에 앞서 우선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실수할 때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양분이 될 것이다.” 진로 문제로 갈팡질팡하는 청소년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물론 부모들에게도 참고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후, 잠시 방황을 하는 사이에 학사경고를 받기도 하고, 취업을 위해 이곳저곳에 문을 두드린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작명소를 찾아가 원래 갖고 있던 한글이름을 ‘횃불 같은 제목’ 정제희(題曦)로 바꾸면서까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란으로 날아가서 대학원에 입학(드라마틱하다), 학업 중에 통번역으로 학비를 보태고 실력도 쌓는 시기를 보낸다. “진짜 중요한 건 요령을 부리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저자가 걸어가는 길들은 가히 ‘맨땅에 헤딩하기’의 연속이었다. 롤 모델이 없다보니 스스로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했다.
저자의 현주소는 국내에 유일무이한 이란어 전문회사 ‘이란아토즈’의 대표다. 사람들이 ‘이란어 통역사’라고 히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고, 매주 학원에서 이란어 강의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이란어로 먹고 사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의 과정 중 시행착오와 실수조차도 담담하게 적어놓았다.
페르시아 왕국 시절인 2500년 전부터 생산된 페르시아 카펫 이야기도 마음에 남는다. 완전 손으로만 만들어지는 이란산 카펫을 페르시아 카펫이라고 한다. 어떤 카펫은 짜는 데만 꼬박 몇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비싸고 귀한 카펫이 완성되면, 그곳 사람들은 그 카펫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고 한다.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듯하다. 이 사람 저 사람 발에 밟혀 하얗고 빨갛게 고운 카펫에 검댕이 묻어 회색이 된다. 카펫을 빨면 구정물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 행위는 그곳 사람들의 관습이라고 한다. “소중하고 귀한 카펫일수록 여러 사람이 밟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페르시아 카펫의 색이 선명해지고 무늬도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자신을 대입시킨다. “나도 페르시아 카펫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담금질을 하는 시기라고, 그렇게 밟히고 내동댕이쳐지다 보면 언젠가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카펫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남들이 다 가는 쉬운 길, 평범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며 힘을 내고 있는 저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잘 못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요즈음에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직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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