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포르노랜드 : 당신이 웃어넘긴 야동의 실체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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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다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읽을 때의 분노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같은 급하고 후달리는 마음도, 다른 일, 다른 시간과 함께 무뎌진다. 시간이 가는 그만큼, 포르노도 ‘발전‘할 것이다.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고 제대로 된 정책도 시급하다. 시급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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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내 그런 기분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 집 내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고 싶은 마음 굴뚝.

딱히 할 것도 볼 것도 있지 않은
뚜렷한 목적 없는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하게 되는 시간.

드디어 내일 집에 간다.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몰려오는 오후.
무조건 걷기보다 어디든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 기술 연마 필수, 지금은 그 기술 써먹는 중.

앉아서 쉴 때 읽으려고 전자책 들고 나왔지만
눈이 무겁다. 밀려있는 책들 어쩔. 나는 말이야, 책을 읽을 수 있는 여행을 원한다고.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젊은 시절.(물론 나는 지금도 젊다.😜) 나만의 여행 패턴이란 게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는 책 읽을 거면 여행을 뭣하러 오냐고 할 지도 모르는데 ㅋㅋ 숙소에 퍼져서 책 읽는 여행 좋지 않나요?

어쨌거나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최고다. 누가 됐든 함께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불만도 생긴다. 내 맘대로 안 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또 한번 실감한다.

내 여행 패턴에 대해 고민하면서.
안경을 벗으면 몇 미터 앞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내 시력을 걱정하면서.
어딘가에서 바람에 실려오는 하수구 냄새를 피할 도리 없이 맡으면서.
빵집의 에스프레소가 어째서 2,20유로인가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글감을 휘갈겨놓은 수첩을 뒤적거리면서.

그런데
빠리에는 책방도 많고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좀전에도 길가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를 보았고 좀더 전에도 지하철에서 아이 셋 데리고 탄 남자가 책을 펼쳐 읽는 걸 보았고 그 전에도 어제도 그저께도 길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까페에서 책을 읽는 여자들을 보았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만큼은 종이책과 인간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만.

책을 읽기에는 머리와 눈이 무겁고 손글씨를 쓰기에는 손목이 아프고 멍 하자니 너무 멍해서 북플을 열고 수다 삼매경.

집에 가서 쓰러지지 않으면 ㅎㅎ 다음주에 나타날게요. 뿅.



(책 이미지 넣고 싶어 ㅎ 여행 중 간간이 매우 간간이 들여다보는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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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3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소에 퍼져서 책 읽는 여행은 늘 로망이에요! 왜 뭐 때문에 그런건지 나도 몰라요.ㅋㅋㅋ
어쨌든 집떠나면 고생 뭐 이런 말이 생각나는 글이에요.ㅎㅎㅎㅎ 돌아오심 푹 쉬셔요,, 쉬시면서 여행하는 동안 내가 왜 그랬지? 뭐 그딴 생각 하지마시길요.^^;

난티나무 2022-10-31 21:52   좋아요 0 | URL
같은 로망을 가진 라로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은 진리일까요?ㅠㅠ
 

여행 중에도 틈틈이.

겨우 책 몇 글자 보는 정도.
<포르노랜드> 읽을 수 있겠어? 했는데
서정적인 글보다 오히려 더 잘 읽히는 건 반전이다. ㅋㅋ
재독이라 그럴지도.
대신 글을 쓸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

북플 글도 대충 휘리릭, 제대로 못 읽음.
당분간 이럴 예정.






아마 포르노가 그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대항하는 가장 목소리 큰 논리는 "포르노는 판타지다"라는 주장일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판타지는 머릿속에 존재하고 그 안에만 머무르며, 관계, 섹스, 사람, 친밀감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로는 절대 새어 나가지 않는다. 남자는 포르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이미지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포르노를 재미있는 판타지로 즐길 줄 아는 교양 있는 소비자로 선을 넘는 형위나 유치한 플롯, 과장된 신체 묘사는 물론, 매번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오르가슴을 느끼고 남자는 다량의 정액을 분출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터무니없는 성적 장난질을 그저 즐길 뿐이라는 얘기다. 포르노가 끝나면 남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은 채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일부 포르노 옹호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반박하는 사람은 판타지와 현실을 혼동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7/433)

아이러니하게도 포르노는 판타지라고 주장하는 측이 놓치고 있는 짐은 실은 포르노가 우리의 상상력과 성적인 창조성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르노가 전달하는 이미지가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내용이 반복적이고, 정신이 둔해질 만큼 단조롭기 때문이다. (211/433)

"포르노는 강간으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 대신, 포르노의 메시지가 우리의 현실과 문화를 형성하는 방식에 대해 더 섬세한 질문을 던진다면, 이미지가 곧 강간으로 이어진다는 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재정립함으로써, 포르노의 서사가 그 일관성과 통일성으로 만들어 낸 세계관이 이용자의 사고체계에 통합되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해, 인지, 해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214/433)

남아와 성인 남자는 비디오 게임, 영화, 텔레비전, 광고, 남성잡지에서 그러한 이미지를 접하며, 그 이미지는 그들에게 여성, 남성, 섹슈얼리티에 관한 서사를 제공한다. 포르노의 역할은 이 같은 여성에 대한 문화적 메시지를 가져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는 간결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부 미디어 이미지는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미디어 연구에서는 이를 ‘다의적polysemic‘이라고 한다) 특히 곤조 포르노의 경우 - 여성을 향한 노골적인 멸시와 여자가 굴욕당하고 폄하당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끝도 없이 보여주는 서사를 통해 남자에게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들은 성차별적 대중문화 이미지로 가득한 사회에서 자란 덕분에 어느 정도의 포르노적 시선을 이미 체득한 상태다. (215/433)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집단이라면 누구나, 미디어 이론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깨달은 사실, 즉 미디어 이미지가 억압당하는 집단을 체계적으로 비인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안다. 이 이미지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집단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억압을 합리화하는 메시지의 더 광범위한 체계 안에 연루되어 있고, 그것이 가진 권력은 대개 태도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묵인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나온다. (217/433)

텔레비전에서 예컨대 흑인이나 유대인을 계속해서 인종차별적 혹은 반유대주의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나 시트콤이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백인 남자가 이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가격하고, 목을 조르며 그들의 입에 이물질을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추측건대 격한 항의에 부딪힐 것이고, 그러한 이미지는 단지 판타지라는 이유로 옹호받지 못할 것이며 보이는 그대로 간주될 것이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가하는 가혹행위다.
포르노는 폭력에 성적인 외피를 덧씌우며 그것을 비가시화하며, 결과적으로그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은 반폭력주의자가 아니라 반섹스주의자로 규정된다. (218/433)

포르노가 강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포르노를 이용하는 모든 남자가 강간을 저지르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상화하고, 합리화하고, 묵인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이 ‘강간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들은 폭력과 학대로 가득한 섹스를 당사자 모두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섹시‘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포르노의 메시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정상적이며 용인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사회의 규범을 갉아먹는데, 사실 이 규범은 남성지배적 사회에서 이미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량 생산된 이미지 대다수가 여자에게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신체 온전성이나 영역, 경계가 없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들 이미지는 총체적으로 작용해 그러한 경계선을 넘는 행위를 여자가 원하고 즐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포르노가 그 이용자에게 전파하는 다양한 강간 신화 중 일부이다. 포르노에는 다른 수많은 신화가 내재해 있는데, 모두 성폭력을 폭력의 행위가 아니라 합의에 기반한 행위로 묘사하는 게 목적이다. (234/433)

포르노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질문을 뒤집어 보는것이다. 포르노가 이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대신,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을지 물을 수 있다. 즉, 남자가 포르노의 서사에 대항하려면 어떤 것에 노출되어야 할까? 나를 비롯한 미디어 연구자들은 자본주의와 짝을 이루는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의 지속적 유입으로부터 사람들의 면역력을 길러주는 방법을 논의할 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대개 그 해답은 그것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여 소비 이데올로기의 허위적 본질을 드러내고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있다. 포르노의 반이데올로기 또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메시지를 방해하고 파괴해야 하고, 포르노만큼 강력하고 즐거워야 하며, 남자에게 포르노 속 여성의 이미지는 허구이고, 특정한 형태의 섹스만을 팔기 위해 꾸며낸 거라고 설득해야 한다. 또한 이 대안 이데올로기는 이성애 섹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며, 그것은 성 평등과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 그러한 페미니즘 이데올로기에 노출된 남성은 극히 드물다. 남자(그리고 여자) 대다수는 성 불평등이 자연스러우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현실인 것처럼 느낄 정도로 지배적인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매일 주입당하며 살아간다. 포르노는 이 이데올로기를 최대한으로 뽑아먹을 뿐 아니라. 그것을 포장해서 고도로 성애화한 형태로 남자에게 돌려준다. 그것에 대항하는 반이데올로기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같이 달콤한 성차별 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사고방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포르노는 사회화의 유일한 행위자는 결코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우리신체에 미치는 영향 덕분에 강력한 설득의 도구가 되었으며, 남자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자기가 당연히 갖는 인권을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지는 존재로 보는 능력을 잠식하고 있다. (237/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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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포르노랜드 : 당신이 웃어넘긴 야동의 실체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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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깐 본 티브이프로그램에 미국의 ‘반전’ 배우들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지도 벌써 생각나지 않으려 하지만 남자고 유명 배우였고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는데(한국프로그램) 그 ‘힘든’ 과정에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해 이혼”한 것을 고통스러운 이혼 뭐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아놔. 지가 잘못해서 이혼한 걸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한참을 버럭버럭했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잠깐 펼친 <포르노랜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 사진은 아래에 있다.
“21세 때까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파산이라는 소용돌이를 통과해야 했으며 마침내 …에 이르렀다.”
이 부분은 타임지 기사의 일부이다. 심지어 플린트(잡지 허슬러를 만든 인물)를 까내리는 기사다. 그런데도 결혼 이혼 파산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70년대 기사나 2022년 티브이프로그램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발화의 형식은 바뀌지 않는다. 언제까지 남성의 ‘힘들었던’ 삶을 영웅화할 것인가. 언제까지 우쭈쭈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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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5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기사는 뭔가 스트립 클럽을 열었다는게 구국의 영웅쯤 되었다는 투로 말하네요. ㅎㅎ

난티나무 2022-10-17 01: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스토리. ㅋㅋㅋ 그나마 되게 부정적으로 쓴 기사인데도 우쭈쭈.ㅋㅋㅋ

호우 2022-10-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바람돌이님 의견에 동감. ‘마침내‘ 스트립 클럽 여덟개를 열어 성공한 인생이 되었다는 뜻인가요? 으이 ㅆ.

난티나무 2022-10-17 01:37   좋아요 0 | URL
그러니 다른 성공 스토리는 어떻겠습니까.. ㅠㅠ
 
















두번째 읽기(시도)이므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어떤 내용인지는 이미 안다. 이 책을 언제 읽었나 찾아보니 2020년 9월이다. 무려 2년 전! 자 그렇다면 이번의 읽기는 그동안 내 생각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혹은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살필 좋은 기회다. 그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절들이 있을 수도 있다.(아마 많을 것이다.) 2년이라는 갭을 생각하니 좀 즐거워진다. 내용에 대해서는 즐거워할 수가 없지만. 문제는! 나 토요일에 여행 가거든??? 10월 말까지 느긋한 시간이... 없을 예정이거든??? 하. 어떡하지. 예전에 읽을 때 간단히 메모 형식으로 글을 남기기는 했으나 성에 차지 않았었다. 이번엔 좀 조목조목 읽고 쓸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시간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응?) 


포르노에 대한 내 생각은 그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반대합니다, 여성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포르노! 이랬는데, 며칠전 읽은 책 한 권 때문에 아주아주 조금 흔들흔들하고 있다. 구분이 필요하다. 이게 구분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데 바람직한 상황에서 바람직한 전제가 있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가지만(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안다고! 하지만) 포르노에 대한 내 거부감이 너무 커서 이해와는 별개로 용인&동조하고 싶지는 않... 물론 거기서 말하는 포르노는 <포르노랜드>에서 비판하는 '곤조포르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성들이 포르노를 대하는 태도로는 그 저자의 의견이 지지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 그러므로 책을 읽는 여성들도 쉽게 거부감을 가져버릴 거라는 사실도 자명... 그런 이유로, 그런 일부분 때문에, 그 책을 무지무지 소개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다.ㅠㅠ 아 슬퍼. 



◦◦◦

"주류 잡지, 포르노 업계, 심지어는 일부 페미니스트조차 이런 변화를 두고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축배를 드는 동안, 나와 대화를 나누는 많은 여학생들은 그 축제를 즐기지 못한다. 그들은 압박받고, 교묘하게 조종당하고, 획일화된 모습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고 느낀다. 이들이 만나는 남자는 포르노 섹스를 기대한다. 그것은 유대감도 친밀함도 없이 익명으로 전개되는 섹스이며, 그것을 얻지 못한 남자는 그저 다른 여자를 찾아나설 뿐이다. 여자가 남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포르노 문화에서는 어떤 여자든 어느 정도까지 통상적인 '섹시함'의 기준을 충족한다면 다른 여자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머리말, 전자책 25/433)



'그것을 얻지 못한 남자는 그저 다른 여자를 찾아나설 뿐이다.' '어떤 여자든' 

이런 구절들을 읽는데 마침 이번주에 읽었던 다른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

"캐주얼 섹스를 묘사하는 수많은 글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섹스하는 것을 자랑삼아 강조한다. 리사 웨이드가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이뤄지는 섹스를 연구한 보고서에서 밝혔듯, 남성은 파티에서 뒤에서 다가가 여성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는 것으로 성적 의도를 표현한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뒤에서 다가가는 탓에 여성은 자신의 엉덩이를 건드리는 페니스가 누구의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끝나나> 116) 



여성이 누구든, 이름이 무엇이든, 몇 살이든, 상관없다. '그녀'는 '엉덩이'를 가졌으니까. 이렇게 확실하게 여성을 성기로만 보는 경우라니. 그렇게 이루어지는 캐주얼 섹스(대체로 여성에게는 거부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와 상황들이 있다.)는 아래의 장면처럼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

"페미니스트이자 작가 겸 배우인 리나 더넘의 작품에 등장하는 섹스는 철저하게 날것이다. 리나 더넘의 2010년 영화 <타이니 퍼니처>에 나오는 섹스 장면은 (좀 우울하기는 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 두 사람은 대략 십 초 정도 키스를 한다. 남자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아무 말 없이 여자의 머리를 자기 아래쪽으로 밀어낸다. 남자는 여자에게 "더 세게 빨아"라고 말하며, 쉴새없이 울려대는 여자의 스마트폰에 대고 욕을 한다. 그 다음에는 허둥지둥 여자의 몸을 돌려 뒤쪽으로 삽입한다. 남자는 피스톤 운동을 하다가 사정을 하는데, 사정까지 고작 일 분도 걸리지 않는다. 남자는 단 한 번도 여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오라의 표정은 흥분 상태에서 당황함, 약간의 실망감, 그리고 체념으로 변해간다. 관계 후에 남자는 문자를 확인하면서 작별인사를 한다. 이 장면을 보면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당황스럽고, 현실적이다." (페기 오렌스타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전자책 75/438)


(영화 속 여자와 남자는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다... )


포르노 문화로 인해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심하게 왜곡되는 건 당연지사다.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친밀감 따위 개나 줘버려 마인드'로(대부분의 남성은 친밀감이 뭔지 모른다) 여성을 쾌락 충족의 도구로 사용하는 남성의 행태다. 그 저변에는 포르노 문화가 있다. 문제는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곤조포르노 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이미 어딜 봐도 그런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유모차를 탄 아기들도 길거리 광고판에서 벗은 여자의 몸, 얼굴 없이 (흔히 쇠사슬과 함께) 진열된 여자의 몸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자본주의 상품과 여성의 몸을 결탁시킨 광고들, 포르노 간접 광고, 일상에서 들리는 성적 대상화 발언들...  끝이 없다. 와 진짜 이 문화 어떻게 바꾸나??? 


머리말 겨우 읽고 페이퍼 하나 겨우 남기고 오늘은 여기서 뿅. 


+ <포르노랜드>와 함께 보려고 꺼내놓은 <포르노 판타지>를 방금 펼쳐봤는데(이 책도 2020년에 <포르노랜드>와 함께 읽었었다) 아 이런 이 책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워쩔. 오늘은 13일이지만이지만이지만이지마아아아안... 저기 근데 여행 갈 때 이 두 권을 들고 갈 수는... 없지는 않지만... 내 눈 내 머리 내 감정 어쩔? 안 돼. 그럴 순 없지. 월말까지 다 못 읽을 수도 있으니 이번엔 느긋하게 11월에라도 리뷰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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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0-14 0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대답하주지 않는 질문들.. 을 사야겠네요?
언급하신 영화속 장면, 아주 많은 영화에서 그런 장면들이 보여지죠. 제가 봤던 영화 <블루 발렌타인>에서도 콘돔 없이 갑자기 남자가 뒤에서 순식간에 시작하고 끝을 내거든요. 여자는 콘돔 없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남자는 그냥 합니다. 둘은 연인 사이었고요. 그리고 여자는 네, 혼자! 임신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죠.. 후..

난티나무 2022-10-14 23:58   좋아요 0 | URL
후아... 맞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영화속 섹스신...ㅠㅠ
책들을 훑어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책이 빨리 나왔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이성애와 연애, 사랑, 에 대한 책이요. 똑똑한 여자들아, 책 좀 더 많이 써줘라요~~~~~~!!!! 더더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얄라알라 2022-10-1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의점 담배 광고가 (잠재적 소비자가 되야만 하는) 청소년 타겟으로 낮게 설치되었던 데 시정 요구가 있다는 글 읽었었는데....


난티나무님 글 읽다보니, 유모차 탄 아가들도 고개 돌리면(다행이 글자도, 광고 뉘앙스도 모르지만), 여성의 몸 사진이나 요란한 광고문구를 볼 수 있는 세상 맞네요....흑..

난티나무 2022-10-15 00:00   좋아요 0 | URL
원치 않게 끊임없이 그런 이미지들을 접합니다. 담배도 알콜도 모두 그렇지만 이 포르노문화는 어떻게 규제/처벌해야 하는지 아득하네요. 개념 없는 정치인들,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얄라알라 2022-10-14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만에 다시 읽으시며, ˝내 생각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혹은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살필 좋은 기회˝라 하시는 난티나무님께,
지금 제가 옆에 두고 읽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개정판 후기 문장을 올려드리고 싶어졌어요. 당연히 이미 읽으셨고, 마음에 새기고 계실지 모르는 문장이겠지만요....


˝부끄러움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나는 자기 변화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나를 바꾸고 이저노가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쓴다.‘는 미셸 푸코와 같지는 않겠지만....(288)


저는 [포르노랜드] 이번 주말부터 읽기에 합류하겠나이다!

난티나무 2022-10-15 00:01   좋아요 1 | URL
오 <페미니즘의 도전>! 저도 2년 전쯤 읽었을 텐데 조만간 다시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맞아요, 자기 변화를 위해!!! 나는 귾임없이 변한다!!!ㅎㅎㅎ

<포르노랜드> 화이팅입니다. 아주 그냥 욕지기가 수시로 나오지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