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했다. 많이 늦지 않은 저녁이다. 몸에 밴 음식 냄새를 씻어내느라 아주 오랜만에 비누를 사용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싫은 점 하나는 몸에 배는 냄새였다. 내용물이 끓는 냄비 앞에 서 있노라면 아침에 감은 머리카락, 아침에 갈아입은 옷이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전이라도 한 장 부칠라치면 그 날은 얼굴에서도 기름 냄새가 난다. 어제 새로 입었는데 또 갈아입어야 하다니. 어제는 볶음요리를 하는 주방에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냄새가 온몸에 배어버렸다. 한 끼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세탁물을 늘리고 샤워까지 해야 한다면 이것은 효율적인가? 그러니까 지금 샤워와 음식과의 상관관계를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 "너무 늦었네." 유도라는 그렇게 말했었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잠시 누워 있을래?" 그가 침대 위 자기 옆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총알처럼 뛰어 올랐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오늘 아침 이후로 몸을 씻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저...... 저 어차피 샤워를 해야 해서요." 

 유도라는 이미 책을 집어 든 뒤였다. "잘 자렴, 치카."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내 방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서 온수기의 불을 켰다. 유도라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전자책 338/539) 



 아! 우리의 '오드르'는 머릿속에 샤워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샤워를 하지 않았기에 침대에 같이 있음에도 유도라에게 손을 대지 못했(않았)다. 기본 중에 기본 아닌가? 섹스 전에는 샤워를 한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유도라에게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영화 속 섹스장면들이 생각난다. 그들(여자와 남자)은 사무실에서, 골목에서, 지하실에서, 창고에서, 들판에서, 아무튼 그곳이 어디든, 샤워실이 딸린 호텔방이라 하더라도, 씻지 않고! 그대로! 고고씽!!! 가장 최악은 공중화장실. 우리 나라 화장실은 깨끗하니깐요?????? 어제 본 드라마에서도 그들(여자와 남자)은 외출했다 집에 들어가 그대로 엉겨붙었고 옛날에 본 드라마에서도 옴팡지게 온몸에 땀을 흘린 여자가 남자 집에서 엉겨붙었으며 옛날에 본 영화에서도...... 


 나는 오드리 로드가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었으리라 짐작한다. 어쩌면 자기검열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전자라고 믿고 싶다. '오염된' 섹스 장면을 너무 많이 봐왔다. 우리에겐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고 로드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그러니 로드님이시여, 좀더 자세하게 묘사 좀 해주시면 안 되렵니까????? 


 + 안타까운 한 가지 : 여자와 남자가 키스할 때, 여자와 여자가 키스할 때, 어느 쪽에 '흥분' 혹은 '이입'하십니까? (아... 혹시 남자와 남자?? 혹은, 구별 없이??) 나는 이성애자일까, 궁금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성애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후자가 궁금한데 몰입은 안 됩니다. 섹스 장면도 마찬가집니다. 자꾸 보다 보면 달라질까요? 그러나 재미집니다? 로드님이 그것만 재밌게 썼겠습니까? 페이지터너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 힝... 


+ 머리카락 말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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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2-20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정. 덜 읽은 표가 나는 말을 했다. 키스를 보고 ‘흥분’하는 건 육체의 반응일 뿐이라고, 이성애가 주입된 결과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성급하게 로드의 ‘성애’를 ‘이성애적’ 시각으로 보는 것같다. 어쩜 그의 묘사는 그리도 아름다운지.

단발머리 2023-02-20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 다 좋아하지만, 요즘 너무 텐션 터지시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섹스 글에 이렇게 강하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부탁드려요^^

난티나무 2023-02-20 19:50   좋아요 0 | URL
텐션이 좀 ㅎㅎㅎ 그렇죠?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
저는 그저 단발머리님이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는 게 쏙쏙 좋을 뿐이고요~~~~~~ ♥️♥️♥️😍😍

다락방 2023-02-2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난티나무 님과 같은 불만을 가지고 쓴 글이 많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맨발에 구두 신은 여자의 구두를 벗겨주면서 섹스할 때 그 발냄새를 어쩔려고 그러나 싶고요, 그리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여자가 오럴 해줄 때 그 고추 냄새는 정말 ㅠㅠ 왜들 저렇게 씻지 않고 냄새나고 더러운 몸으로.. ㅠㅠ 너무 싫어요 ㅠㅠ
일전에 애인에게 섹스할 때 뭐 특별히 주의할게 있냐고 해서 무조건 씻고 해야 한다고 말했던 생각이 나네요. 나갔다 들어와서 손도 안씻고 어딜 만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3-02-20 12:02   좋아요 0 | URL
구두만 벗겨주고 끝나면 다행.......
스타킹 신었던 그 발에 입맞추고 이러면..... 하 도저히 몰입 불가. ㅋㅋㅋㅋㅋㅋ
주말에 본 영화(프랑수아 오종, <영 앤 뷰티풀>)에서는 심지어 섹스하고 나서 씻지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젠장

다락방 2023-02-20 12:11   좋아요 1 | URL
진짜 미치겠어요. 발가락에 키스하거나 발가락 입에 무는 거 저도 좋다 그겁니다. 그런데 그 전에 좀 씻으라고요. 왜 냄새나는데 그걸 참아가면서 .. ‘사랑하면 냄새가 안나‘이딴건 말짱 거짓말 입니다. 냄새 잘만 나죠. 사랑한다고 냄새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흑흑 너무 싫어요 ㅠㅠ 저는 그런 섹스신에 몰입이 안돼요 ㅠㅠㅠ

잠자냥 2023-02-20 12:28   좋아요 0 | URL
영화에서 제발! 아침에도 양치질하고 딥키스하자.... 뽀뽀까진 인정... ㅠㅠ
(근데 왜 우리 난티님 방에서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20 13:45   좋아요 1 | URL
그럼 이쯤에서 멈추는 걸로...흠흠..

난티나무 2023-02-20 19:55   좋아요 0 | URL
저 안 그래도 영화 이야기 하면서 그, 맨발구두쪽쪽 그거 떠올렸어요. 다락방님 글도.^^ 저는 어제 드라마 보면서, 많은 수의 남자들이 화장실 가서 오줌누고 손도 안 씻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윽. 어느 드라마에서인가 본 장면이기도 하고요.

잠자냥님 와 진짜 공감. 아침키스 시러요. 냄새 나... 나도 나고 너도 나고 에브리바디 나.........

그래서 저는 오드리 로드가 넘나 좋았습니다! 흠흠.
 

읽고 있는 책들 정리해보기. 리뷰도 페이퍼도 못쓴 책들이 여전히 많다. 왜때문에 뇌세포가 가동하지 않는 느낌이지. 2월이다. 그래서 그렇다. 그렇다고 치자.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숙제처럼 여겨지는 두꺼운 책들이 있다. 그 중 한 권이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이다. 4분의 3 가량 읽었다. 오 많이 읽었어! 로렌스 분석 끝부분과 헨리 밀러 그리고 장 주네 작품 분석한 부분이 남았다. 솔직히 이 사람들 작품 이야기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ㅎㅎㅎ 너무 열심히 분석해놓아서 또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프로이트도 아주 대차게 까주셨고.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1970년)의 '충격'이 짐작되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은 2023년. 페미니즘 비평서 몇 권을 읽고 뛰어난 학식을 갖추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책 몇 권 읽었다고 밀렛의 책이 좀 심심(?)하게 느껴진다. 어쩔. 다 읽고 뭐라도 쓸 수 있을까?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일까? ㅠㅠ















스크로파 <더웜카인드> 

얼마전에 앞부분 좀 읽다가 멈췄던 책이다. 다시 처음부터 읽고 있는 중. 부제가 '우리의 손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이다. 앞부분 읽을 때 이건 옆지기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읽히기도 했다. 같이 읽고 토론하면 좋을 듯. 좀더 읽어봐야 하겠다. 너무 앞부분이라. 책날개의 저자소개를 보면 스크로파의 이름 설명이 나온다. 라틴어로 암퇘지를 의미하며 동일 유래를 가진 이탈리아어 스크로파는 돼지 / 정숙치 못한 여성을 가리키는 속어로 쓰인다고. '이 이름은 타인이 우리에게 정숙치 못한 여성이나 혹은 돼지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두려워하던 과거의 우리를 넘어서려는 시도입니다.' 
















앨리슨 스톤 <페미니즘 철학> 

음 이것도 서문과 1장만 읽은 상태. 뭔가 되게 똑부러지는 느낌을 준다. 1장에서 '섹스', '젠더' 의 구분, 그것에 대한 페미니즘의 여러 주장들, 저자의 주장 등이 정리되어있다. 아주 유익했다. 나중에 또 페이퍼를 쓸 수도 있겠지만 한없이 모호하고 경계가 없어보이는 섹스/젠더를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해서 깔끔완벽하게 뭔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말은 아니다.^^;; 뒷부분 기대 중. 
















케이트 만 <남성 특권> 

이 책은 3월 여성주의읽기 책인데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던 책이라 본의 아니게 선행학습하는 중이다.^^;; 따라서 긴 말은 생략한다. 다음달에 페이퍼 쓰겠음. 
















김현주 <하는, 사랑> 

산 지는 꽤 됐지만 이제야 꺼내보는 소설. 이 책은 왜 샀냐 하면. 제목의 '하는'이 '섹스하는'이기 때문이다. 이성애섹스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었겠다고 지금은 추측하지만 초반 읽으면서 아... 나 이거 왜 샀지... 일케 되어버리는 거.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읽어보기는 할 텐데, 진도 나가기가 힘드네? 힘들다. 하. 남편 사정액을 왜 받아먹으라고 시키는 거야. 웩. 심지어 그거 포르노에서 나온다고 말도 하면서. 뒤로 가면 좀 재밌을까? 끙. 















오드리(오드르) 로드 <자미> 

가장 최근에 산, 따끈따끈한 전자책. 처음에는 로드의 엄마 때문에 이상야릇(?)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솟더니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은 조금 심드렁해졌다가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여자랑 섹스하고 쾌락과 욕망을 탐구하는 로드를 보면서 괜한 질투심도 품고, 단순하지가 않다?? 아무튼 이거도 다 읽고 뭐라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일단 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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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2-16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자미 진짜 책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앨라이하게 되지 않아요? 또 혼자 벅차오릅니다.. 웜카인드 얼마전에 서점에서 손에 들었다가 내려놨는데 토론감 내음이 나는 책이군요. 다음번에 마주치면 펼쳐봐야겠습니다.

난티나무 2023-02-16 01:44   좋아요 3 | URL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말이 왜 생각나죠.ㅎㅎ 나도 내 떡잎 찾고 싶다… ㅠㅠ 지금 찾아도 나무 되긴 글렀지만 어쨌든 잃어버린 거 찾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ㅎㅎㅎ 로드는 너무 재주꾼이네요!!!!!
웜카인드 앞부분 저는 좋았거든요. 좀더 읽어볼게요.^^

유수 2023-02-16 13:42   좋아요 0 | URL
로드도 자기 혼란의 시기를 고스란히 겪어 내서 그런 거잖아요. 난티님 떡잎 문제 없음!

난티나무 2023-02-16 23:49   좋아요 1 | URL
이런 말 좋아요!!!!! 필요함!!!!!! ㅋㅋㅋㅋㅋㅋㅋ 🥰🥰🥰

바람돌이 2023-02-16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만만치 않은 책들이네요.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에서 또 자극받고 있습니다. 아 진짜 저는 한달에 한권 읽기 따라가기도 너무 벅차요. ㅠ.ㅠ

난티나무 2023-02-16 23:47   좋아요 2 | URL
이전에 (이성애)섹스 관련 책들을 읽었더니 머리가 아파서 ㅋㅋㅋ 좀 가벼운(?) 거 읽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이도저도 싫을 땐 놀러가기!!!! 라고 외치면서~ㅎㅎ (아 놀러가고싶다) 권수만 많고 영양가는 흠흠… ^^;;;;;;;

얄라알라 2023-02-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정리하려고 룰을 세우면, 저 같은 경우에는 계속 계속 리뷰를 못 올리게 될 듯 합니다. 요샌 벌려만 놓고 수습 못하는 읽기의 연속이라. 난티나무님, 이렇게 중간중간 정리하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계속 갈 책과, 좀 오래 쉬어갈 책도 걸러질 것 같고.

저도 요새 점점 서가가 무거워져서 중간 정산을 해야겠네요^^

ZAMI 평은 알쏭달쏭,^^ 그래서 더 궁금증을 키워주네요 ㅎ 다 탐나요

난티나무 2023-02-20 05:01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저도 그래요.^^;; 수습 못하는 읽기의 연속...ㅠㅠ
머리가 안 돌아요.ㅎㅎㅎ
자미, 음, 거의 다 읽어가는데 뭐라고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 여성의 욕망에는 ‘동의’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캐서린 앤젤 지음, 조고은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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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연연하지 말고 읽으시길. ‘섹스‘가 언젠가 좋아지기야 하겠지만(진짜?) 그 미래는 너무 머니,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섹스와 관련된 모든 거짓과 위선을 고민해보기를. 개인주의와 섹스를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여성이 ‘자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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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흥분에 대하여) 


(이렇게 매 장마다 페이퍼 쓰려고 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 3장도 따로 페이퍼를 쓰려고 창을 열었으나 뭐라고 써야 할지 생각은 안 나고 그래서 밑줄긋기 옮겨보고 이렇게 그냥 4장으로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몇 글자 써야지 하고 끄적거려본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섹스에서 '흥분'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아니, 그러고 보니 '흥분'과 '욕망'에 대해서 생각은 많이 했다. 앞뒤전후 맥락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로는 부르짖어놓고 정작 내 생각에는 맥락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았네???^^;; 무엇보다 인간에게 섹스는 무엇인가, 기혼여성/남성에게 섹스는 무엇인가,가 너무 최우선의 질문이었기에. 뭐 아직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고민들 속에 최근에야 흥분과 욕망이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의문을 갖게 되었다. 알긴 뭘 알아. 하. 나는 너무 모르겠다, 아직. 그러니까 개념을 정리하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내 경우로 가져오면, 수많은 상황들이 뒤섞이면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 그래도 어쩌면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것을 지금 책으로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리는데 이런 상태도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중요한 건, 여성의 욕망뿐 아니라 남성의 욕망에 대해서도 알 만큼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이성애자 남성이므로. 남성 욕망 탐구 안 하려 했는데. 탐구 말고 그냥... 맥락만 짚어보는 정도로만 하자. 아니, 그런데 저자가 말하지 않나? 여성의 욕망이 왜 탐구되어야 하나? 나는 왜 내 욕망을 알아야 하나???? 욕망을 '제대로' 알면 나는 해방되는가? 무엇으로부터??? 아니다. 저자가 하려는 말은, 여성의 욕망에 대한 설명이 '남성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이다. 요점 파악은 중요하다. 암만. 그러면 여성욕망보다 남성욕망의 역학에 대해 더 탐구하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띠로리.   그런데... 나는 정말 이성애자일까??? @@ 왠지 도루묵이 생각나네. 책 읽는 거 말짱 도루묵??? 뱅글뱅글 돌아서 제자리에 돌아오는 게 뭐가 있더라. 아무튼 가끔 나는 이렇게 뱅글뱅글 돌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어딘가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때가 있다. 





... 사실, 많은 성 연구자는 성기의 흥분은 섹스 도중에 여성을 부상, 외상,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온 자동적 반응으로 추정한다. <있는 그대로 오라>에서 에밀리 나고스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기의 반응은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쾌락조차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반응일 뿐이다." "

(118~119) - P118

그러나 과학 연구가 섹스를 다시 좋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 성기의 반응이 정말로 결정적인 데이터이자 가장 핵심적 정보인가? 브룩 매그넌티는 <섹스의 신화>에서 "여성들이 자신을 흥분시킨다고 보고하는 것과, 실제로 그들의 몸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밝힌다. 우리는 "무엇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험 결과는 연구자들에게 상당히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매그넌티의 견해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섹슈얼리티는 그 사람의 생리적, 성기적 반응에 존재하며, 정신, 자아, 인격은 단순히 뒤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비슷하게 - P124

비슷하게 알랭 드 보통은 애액이 흐르는 질과 솟아오른 음경은 "신실함의 명확한 대리인"이라고 썼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동적이라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적인 것은 단순히 하나의 반응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생리적 반응은 신실함을 지닐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신실할 수 있을 뿐이다. 생리적 흥분은 성적 욕망에 관해 아무것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은 흥분에 대해서조차 아무것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 P124

우리가 쾌락에 관심이 있고 열정만큼이나 동의에 관심이 있다면, 주관적인 것이야말로 정확히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매우 중요한 대상이다. 우리는 가짜 과학주의의 이름으로 여성의 몸이 하는 일을 물신화하기보다, 그 모든 복잡성 속에서 여성이 말하는 바를 우선시해야 한다. - P137

작가, 픽업 아티스트, 크리스천 그레이가 알려주듯 여성은 자신의 몸이 ‘애원‘하고 있다는 진실로부터 단절되어 있거나 진실에 정직하지 못하다. 반면에 비아그라의 설명틀 안에서 남성의 감정은 그의 몸이 말하는 진실로부터 ‘단절될‘ 가능성이 없었다. 반대로 자신의 발기불능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향한 관심에 대한 남성의 주관적 감각은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이지, 그의 몸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인격이 육체와 맺는 관계는 여성과 남성에게서 각기 다르다. 남성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여성은 그렇지 않다. - P138

그러나 섹스를 다시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부담은 왜 꼭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 즉 우리가 밝혀낸 여성에 대한 진실이 떠안아야 하는가? 왜 여성이, 왜 섹슈얼리티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명백하게 집단적인 현상의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가? 심지어 그 현상은 남성성의 규범과 밀접하게 얽혀 있지 않은가? - P148

여성에게 자신의 억압된 욕망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고, 인지하고, 말하라고 요구하면서 우리는 자기 지식을 억압과 대립시키고 자기-투명성을 어둠과 대립시킨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자신을 강제적으로 다루게 만드는 죄를 짓는 셈이다. 성 연구도 이렇게 엄격한 관점을 적용한다. 과학적 지식이 여성의 힘을 기르고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섹스, 즉 흥분되고 즐거우며 비강제적인 섹스를 원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지 않아야 한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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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1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은근히 페이퍼 쓸게 많아 보이더라구요.ㅎㅎ 저는 다 읽고 쓰려다 흐지부지된ㅠ 생각해보니 난티나무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안보셨을듯ㅋㅋ)영화 닥터스트레인지 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우주정복자가 나오는데
이름이 도루마무예요ㅋㅋㅋ

난티나무 2023-02-13 15:47   좋아요 1 | URL
아 도루마무가 거기 나오는 이름이었군요?! 미미님 글도 봤고^^ 애들이 도루마무도루마무거래를하러왔다 이러고 놀던데 저는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하고 그랬네요? ㅋㅋㅋ 어쩜 이름을 그렇게? ㅎㅎㅎ
그러나 저는 도루묵 도루마무 하면 안 되는데 말이죠… 흐융 😢
 
















이 책으로 미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의 역사와 그 흐름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고 인종간, 성별간, 계급간의 갈등, 그 복잡한 관계의 역학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아주 유익한 독서였다. 막 재밌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딴나라 역사이기 때문인 듯하다. 관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항상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반성의 자세를 갖게 된다. 한국의 역사에 무지, 여성사 무지, 정치사 무지, 대체로 다 무지한 탓이다. 독서가 천편일률적으로 '서양'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일단 사놓은 책부터 몇 권 읽으려고 주섬주섬... 책도 백인지향인 것같아 씁쓸하다. 외국저자의 책 한 권을 살 때마다 한국저자의 책 한 권을 사는 식은 어떨까. 몰라서 못 읽는 책도 많을 것같다. 한국의 좋은 책들, 묻혀있는 책들, 좀 발굴해서 수면으로 띄워주시길. 훌륭한 저자들이 좋은 책 많이많이 내주시길.) 


일차적 책 감상은 이게 다다.^^;; 책 뒷부분(11~13장)은 따로 더 쓸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읽다가 딴생각 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아래처럼. 


.......... 


" 흑인 여성의 클럽 운동은 단호하게 흑인해방투쟁에 전념했지만 그 중간계급 지도자들은 때로는 안타깝게도 흑인 대중에 대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210) 


: '엘리트주의적인 태도' ->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는 엘리트의 자세 


" 웰스는 이런 무거운 짐을 바로 짊어지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종주의 반대 운동에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개인적인 고난이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213) 


: '개인적인 고난' -> 개인적 고난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 


" 그리고 때로는 "부르주아 이웃과 자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녀' 욕설에 참여하는" 죄를 범한다." (261) 


: -> 남의 험담에 동참하거나 뒷담화를 선동하거나



.......... 


각각이 고민해볼 주제이다. 명확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이 주제들에 대해 내 생각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뭔가 꺼림직하다.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도 결국은 나를 어떤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거기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본답시고 '아래'로 규정지은 곳을 내려다보는 건 아닌가? 

그래서 아래와 같은 구절들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 


"프레데릭 더글러스는 19세기의 가장 명민한 흑인해방 지지자였음에도 자본가에 대한 공화당의 충성심을, 그리고 이들에겐 흑인 참정권에 대한 초기의 요구만큼이나 인종주의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평등권협회 내 흑인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비극은 참정권이 흑인들에게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더글러스의 입장이, 어쩌면 여성참정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인종주의적 완고함을 부추겼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142) 


"...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유색인종이 정직함이나 청결함, 믿음직함이라는 면에서 너무 폄하된다고 생각해요. 내 경험상 그 사람들은 모든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어요. 완벽하게 정직하고요. 정말 그부분은 더 할 말이 없어요.


인종주의는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백인보다 흑인 하인을 더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이 흑인을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들은 실제로는 하인-솔직히는 노예-은 천생 흑인의 숙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52)


"백인 여성들은 더 나은 일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 가사노동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153)


"앤젤리나 그림케가 「남부의 기독교 여성들에게 호소함(Appeal to the Christian Women of the South)」에서 선언했듯 노예제에 맞서지 않은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의 비인도성에 대해 무거운 책임이 있었다." (157) 


"수전 B. 앤서니는 어떻게 인권과 정치적 평등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기 조직 회원들에게 인종주의 문제에 침묵하라고 조언할 수 있었을까?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그리고 특히 그 인종주의적 요소-가 정말로 테러의 실제 이미지를 모호하고 사소해 보이게 만들고, 고통받는 인간의 끔찍한 비명을 잘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으로, 그러다가 침묵으로 희석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192)


.......... 



내가 '나'로 세상을 본다는 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그냥 '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위치한 자리, 즉 나의 상황, 내 곁에 있는 사람, 그(들)의 위치, 나와 그(들)과의 관계,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역학들, 기타등등의 복잡한 맥락 속에 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 위치는 움직인다. 개인적 위치에서 사회적 위치로 나를 옮겨놓으면(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또다른 내가 있다. 전체 속의 나. 전체를 이루는 부분인 나. 그 또한 간단하지 않다. 개인적 위치의 나일 때처럼 전체의 부분인 나에서 파생되는 관계의 역학이 거기에도 있다. 이것도 이분법적 발상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러저러한 개인적 맥락을 가진 인간이고 아시아의 한 나라 한국의 여성이면서 '백인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동일시의 함정에 빠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항상 거울을 앞에 두고 내 정체성을 정의하며 사는 것 또한 웃기는 일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말이다, 이 사회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내 위치를 착각할 수 있다. 또는 '안정된' 위치로 정해두고 거기 안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 태도가 언행에서 나온다. 나는 '나'로 세상을 보고 있나? 그 '나'는 내가 위치지은 그곳에 있는 '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나 이렇게 끄적거리는 글도 무서워질 때가 있다. 

고통에 위계를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고통은 저것보다 크기가 작으니까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내 고통'이 가장 큰 법이다. 흑인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따라오게 마련인 '고통'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방해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사람들을 봐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위치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내 위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언행일치로 이어지는가 하는 질문은 늘 나를 찔리게 한다. 책의 구절들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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