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읽기(시도)이므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어떤 내용인지는 이미 안다. 이 책을 언제 읽었나 찾아보니 2020년 9월이다. 무려 2년 전! 자 그렇다면 이번의 읽기는 그동안 내 생각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혹은 변화하지 않았는지를 살필 좋은 기회다. 그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구절들이 있을 수도 있다.(아마 많을 것이다.) 2년이라는 갭을 생각하니 좀 즐거워진다. 내용에 대해서는 즐거워할 수가 없지만. 문제는! 나 토요일에 여행 가거든??? 10월 말까지 느긋한 시간이... 없을 예정이거든??? 하. 어떡하지. 예전에 읽을 때 간단히 메모 형식으로 글을 남기기는 했으나 성에 차지 않았었다. 이번엔 좀 조목조목 읽고 쓸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시간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응?)
포르노에 대한 내 생각은 그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반대합니다, 여성혐오와 폭력으로 점철된 포르노! 이랬는데, 며칠전 읽은 책 한 권 때문에 아주아주 조금 흔들흔들하고 있다. 구분이 필요하다. 이게 구분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데 바람직한 상황에서 바람직한 전제가 있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가지만(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안다고! 하지만) 포르노에 대한 내 거부감이 너무 커서 이해와는 별개로 용인&동조하고 싶지는 않... 물론 거기서 말하는 포르노는 <포르노랜드>에서 비판하는 '곤조포르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남성들이 포르노를 대하는 태도로는 그 저자의 의견이 지지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 그러므로 책을 읽는 여성들도 쉽게 거부감을 가져버릴 거라는 사실도 자명... 그런 이유로, 그런 일부분 때문에, 그 책을 무지무지 소개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다.ㅠㅠ 아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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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잡지, 포르노 업계, 심지어는 일부 페미니스트조차 이런 변화를 두고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축배를 드는 동안, 나와 대화를 나누는 많은 여학생들은 그 축제를 즐기지 못한다. 그들은 압박받고, 교묘하게 조종당하고, 획일화된 모습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고 느낀다. 이들이 만나는 남자는 포르노 섹스를 기대한다. 그것은 유대감도 친밀함도 없이 익명으로 전개되는 섹스이며, 그것을 얻지 못한 남자는 그저 다른 여자를 찾아나설 뿐이다. 여자가 남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포르노 문화에서는 어떤 여자든 어느 정도까지 통상적인 '섹시함'의 기준을 충족한다면 다른 여자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머리말, 전자책 25/433)
'그것을 얻지 못한 남자는 그저 다른 여자를 찾아나설 뿐이다.' '어떤 여자든'
이런 구절들을 읽는데 마침 이번주에 읽었던 다른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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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섹스를 묘사하는 수많은 글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섹스하는 것을 자랑삼아 강조한다. 리사 웨이드가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이뤄지는 섹스를 연구한 보고서에서 밝혔듯, 남성은 파티에서 뒤에서 다가가 여성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는 것으로 성적 의도를 표현한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뒤에서 다가가는 탓에 여성은 자신의 엉덩이를 건드리는 페니스가 누구의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끝나나> 116)
여성이 누구든, 이름이 무엇이든, 몇 살이든, 상관없다. '그녀'는 '엉덩이'를 가졌으니까. 이렇게 확실하게 여성을 성기로만 보는 경우라니. 그렇게 이루어지는 캐주얼 섹스(대체로 여성에게는 거부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와 상황들이 있다.)는 아래의 장면처럼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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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이자 작가 겸 배우인 리나 더넘의 작품에 등장하는 섹스는 철저하게 날것이다. 리나 더넘의 2010년 영화 <타이니 퍼니처>에 나오는 섹스 장면은 (좀 우울하기는 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 두 사람은 대략 십 초 정도 키스를 한다. 남자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아무 말 없이 여자의 머리를 자기 아래쪽으로 밀어낸다. 남자는 여자에게 "더 세게 빨아"라고 말하며, 쉴새없이 울려대는 여자의 스마트폰에 대고 욕을 한다. 그 다음에는 허둥지둥 여자의 몸을 돌려 뒤쪽으로 삽입한다. 남자는 피스톤 운동을 하다가 사정을 하는데, 사정까지 고작 일 분도 걸리지 않는다. 남자는 단 한 번도 여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오라의 표정은 흥분 상태에서 당황함, 약간의 실망감, 그리고 체념으로 변해간다. 관계 후에 남자는 문자를 확인하면서 작별인사를 한다. 이 장면을 보면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당황스럽고, 현실적이다." (페기 오렌스타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전자책 75/438)
(영화 속 여자와 남자는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다... )
포르노 문화로 인해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심하게 왜곡되는 건 당연지사다.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친밀감 따위 개나 줘버려 마인드'로(대부분의 남성은 친밀감이 뭔지 모른다) 여성을 쾌락 충족의 도구로 사용하는 남성의 행태다. 그 저변에는 포르노 문화가 있다. 문제는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곤조포르노 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이미 어딜 봐도 그런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유모차를 탄 아기들도 길거리 광고판에서 벗은 여자의 몸, 얼굴 없이 (흔히 쇠사슬과 함께) 진열된 여자의 몸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자본주의 상품과 여성의 몸을 결탁시킨 광고들, 포르노 간접 광고, 일상에서 들리는 성적 대상화 발언들... 끝이 없다. 와 진짜 이 문화 어떻게 바꾸나???
머리말 겨우 읽고 페이퍼 하나 겨우 남기고 오늘은 여기서 뿅.
+ <포르노랜드>와 함께 보려고 꺼내놓은 <포르노 판타지>를 방금 펼쳐봤는데(이 책도 2020년에 <포르노랜드>와 함께 읽었었다) 아 이런 이 책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워쩔. 오늘은 13일이지만이지만이지만이지마아아아안... 저기 근데 여행 갈 때 이 두 권을 들고 갈 수는... 없지는 않지만... 내 눈 내 머리 내 감정 어쩔? 안 돼. 그럴 순 없지. 월말까지 다 못 읽을 수도 있으니 이번엔 느긋하게 11월에라도 리뷰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