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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순간보다 읽은 후 오래도록 잔상이 어른거리는 소설이 있다. 별것 아닌 소재인 듯 보이는데 곱씹을수록 그 안의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소설이 있다. 그렇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그 감정이 내것임을, 내가 가졌고 느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소설이 있다. 김지연의 단편집 <마음에 없는 소리>가 그랬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사랑과 쓸모없음. 사랑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쓸모없는 감정들. 욕망과 현실. 직시와 회피. 사랑과 배려. 이런 것들이 계속 떠오르는 단편이다.
* 따로 쓴 감상 → https://blog.aladin.co.kr/nantee/13749711
「굴 드라이브」
암컷 굴이 알을 수천만 개 낳는다고, 몰랐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필리핀 여성 미셸이다.
""서울에는 언제 갑니까?"
"내일 저녁요."
"나도 데려가세요."
"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 말이 완전히 진심인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농담이에요. 앞에 보세요."
미셸은 농담이라며 웃어넘겼다. 농담이라는 말은 참 간편하다. 모든 말들을 금방 가볍게 만들어버린다."
미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제목이 굴 드라이브,이니 나는 내맘대로, 굴 드라이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미셸에게 더 마음 써서 읽었다. 어릴 때 나를 싫어했던 친구가 용서해줄 수 있냐고 묻는 말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화자도 마음에 들었다. "씨발...... 하여튼 맘에 안 들어. 이러니까 싫어했겠지......" 라고 말하는 친구도 좋았다. 소설을 끝맺는 문장들도 좋았다. 화자가 고향에 내려가면 꼭 미셸과도 친구했으면 좋겠다.
「결로」
중고 직거래는 신경쓸 일이 많다. 중고 거래를 떠올리니 당근마켓이 해외로 진출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이 단편은 중고거래 자체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 거래를 기다리며 길에서 만난 여자들 이야기다. 치매, 노화, 여성, 그들의 세월, 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돌봄노동이 딸에게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 현실이 그러하지만 그래도 찜찜하다. 이젠 소설에서도 늙은 어머니를 돌보는 남성을 보고 싶다. 세심하게 신경쓰고 잘 돌보는 남성의 모습이 일상인 세상. 소설에서 "그건 재활용해야 돼!"하고 외치는 여인의 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살짝 신경질이 났다. 이런 모습을 남성에게서도 보고 싶다. '나'는 사이가 좋지 않은 동생을 죽었다고 설명하는데 와, 놀람과 동시에 감동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물건을 판 사람은 기다리기로 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을 테지만 나는 또 내맘대로 그가 화자의 동생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면서 역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을 화자가 그 물건을 사서 정말 다행이라고 혼자 들떠했다.
「작정기」
이 단편에는 실제 죽음이 나온다.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고 그래서 이전의 상황에 그 죽음을 대입해보는 일이 화자에게는 어쩌면 애도의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원진'이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이유가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또다른 복선일지도 모르겠고. 우연과 시간이 겹쳐지고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고 '나'와 원진이 겹쳐지고. 의도치 않았지만 같이 오지 못한 친구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일도.
"나는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바로잡았어야 했을까? 그것은 어떤 빌미가 되었을까. 누군가 원진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간주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원진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미신적이고 원진에게도 옳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런 자책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물리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 세계가 물질로 가득차 있고 설명 가능한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으로 내 죄를 만회하려고 한다. 그런 건 물리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가능하지 않다. 사실 그건 죄도 아니지 않나. 내가 원진을 죽인 것도 아니고 죽음을 사주한 것도 아니고 단지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뿐이다. 내 죄라고 할 만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자책하는 것은 원진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야키토리 가게에서 유코와 남자가 원진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벼운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약한 말들」
내가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봐주는 사람은 없다. 이 단편에도 역시 죽음이 있고 관계의 일상이 있다. 추억이 있고 애도가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단편을 읽을 때 집중력이 흐려졌었나 보다. 가장 불분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다. 다시 읽어봐야 겠다.
"난 너를 알아, 내가 왜 몰라?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혜수는 자신을 잘 모른다고 말했고 정은은 마치 이 세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날 밤 정은은 아주 괴로웠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미쳐버린 채로 잠에서 깰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를 거라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거였다. 그래서 잠들 수가 없었다. 졸음이 밀려왔는데 잠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잠들기 싫어서 엉엉 울었다. 우는 건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었고 결국 울다 지쳐 잠들었다. 창밖의 파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방안까지 스미고 야단스러운 새소리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야 정은은 여전히 자기 자신인 채로 잠에서 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도감 속에서 정은은 또 울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느 날에는 완전히 미쳐버리겠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엔 미쳐버릴 거야.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정은은 미칭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학습한 규칙을 따르며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
"우리가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은 태연해지는 것이었다.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굴기. 그렇게 하면 반복되는 불행들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청년 아닌 청년. 중년 아닌 중년. 이맘때쯤이면 이 정도는 하고 이 정도는 갖고 살고 있어야지, 너는 입때꼇 뭐했니, 남들 다 그렇게 살 때 너만 왜 그러고 있니, 제대로 살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이런 말들이 뒤통수에서 들리는 듯하다. 내내 들어왔던 말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귀로 듣는 것만 같은 소리들, 눈빛들, 태도들. 이십대 아니고 삼십대 아니라도, 아마 죽기 전까지 그런 말을 들을 것이다. 오지랖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소설 속 경상도 사투리가 친근해서 음성 지원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울기 시작할 때」
죽음이다. 이번 죽음은 조금 다르다. 죽음이 글자 속에,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있다. 사람 그 자체다. 마침 이 단편을 읽기 전에 죽으면 마음은 어떻게 될까,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아래와 같은 구절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지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몸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이 없어지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소설 초입부에 등장한 인물 '삼'을 맞닥뜨렸을 때엔, s*o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동명인물이 떠올라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몇 번 삼이라고 불러주었고 나중에는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진짜 이름을 까먹어버렸다"는 문장에서도 웃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웃을 수가 없다.
"삼은 큰돈을 꾸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가족 중 누구 하나가 불치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을 극복하려면 돈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가난은 일종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소할 수 있는 이 질병을 불치병으로 키우는 것이 국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걸 누가 몰라, 하고 대꾸했다. 하지만 삼은 국가가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뉴스를 보지 않았고 선거철이 되어도 투표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힘을 보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회사에 다니며 채무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가 추심명령을 전달했다. 삼은 그때마다 자신이 채무자들을 비난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왜 아직도 가난한 거야, 하고. 그러는 삼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답을 내릴 수가 있었다. 이십사 시간 동안 일만 한다고 해도 그저 살아있느라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삼의 결론은 그래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은 병의 발생이 의지와 관련된 것처럼 말했다."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몰입하다가 화들짝, 다시 소설 도입부를 떠올리는 순간이 온다. '스포일러 포함'에 체크했지만 그래도 말하면 안 될 것같다. 나만 놀랐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일」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데 굳이...... 섹스까지 해야 할까?"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이 단편이 좋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관념인 이성애 이데올로기, 삽입 섹스가 유일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슬쩍 비틀어 꼰 방식이 유쾌했다. 때로 직설적이기도 하다. "몰라. 좆 달린 거 빼면 좆도 없는 것들이 여자 잘 만나고 다니는 거 보면 짜증나. 좆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어." "그건 인정."
어이없이 웃기기도 한다. "그니깐요. 언닌 진짜 좋겠어요. 한남이랑 결혼할 일은 없잖아요. 최고로 부러워. 저도 여자나 만날 수 있었으면 했다니까요."
응원과 지지에 대한 입장 차이 같은 것도. "그러니까 나는 네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인 네가, 자라는 내내 나와의 가정 내 이권 다툼에서 늘 교묘히 우위를 점하던 네가, 나와는 접점이 거의 없어 십 분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무리인 네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생각이란 걸 하든 말든, 이해를 하든가 말든가, 응원이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정말 어쩌라고 싶었지만," / "물론 그게 다 얘가 동성연애 시작하기 전의 일이지만요...... (그때 나는 옆 테니스코트의 언니를 짝사랑해서 혼자서도 맨날 벽 치기를 하러 갔었다.) 근데! 나는 그거 다 이해해줍니다! (예예, 감사합니다.) 이놈의 대한민국에서 나 같은 애비가 몇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시기상조다 이 말이지요. (그놈의 나중에!)"
그러니까 이 단편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 뭘까.
""근데 있지."
"어."
"나도 사랑 같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원에서」
마지막 단편은... 역시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얽혀 있다. 앞의 단편들도 그랬다. 주된 흐름은 있지만 거기에 여러 문제들이 일정한 방향도 속도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물려있다. 단어들을 늘어놓으니 상황이 단어 안에 규정되는 듯해 지웠다. 그렇게 늘어놓기엔 너무... 기분나쁘게 잘 짜여진 현실이다.
"여자가 새로 결혼한다는 단어가 왜 없어? 재가도 있고. 찾아봐, 더 있을걸? 너 지금 너무 한 생각에만 빠져 있어. 그냥 결과를 정해놓고 그 결과로 갈 수 있는 길만 생각하는 꼴이라고. 다른 건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를 않잖아."
"악! 아악! 악!'
나는 기영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무 뜻 없는 비명을 질렀다. 계속 질렀다. 기영의 말을 멈추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비명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가장 흡사했다.
...
나는 기영이 판정관이나 심문관처럼 굴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했다. 팔짱을 끼고 어디 책잡을 데가 없나 따져보기 전에 일단 경청부터 해줬으면 했다. 실수 하나에 나를 의심하지 말고 우선은 믿어줬으면 했다."
이 상황,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상황.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이해하고 또 이해받으려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랠프 니콜스
"잘 듣는 것은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 - 앨리스 두어 밀러
다른 책('아티스트웨이'인용구)에서 가져온 문장이지만,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 속 남자처럼. 이것뿐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모두 익숙하다. 익숙해서 부르르 하게 된다.
***
단편들 모두가, 관계에서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선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단편들을 하나로 꿰뚫는 굵직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비밀의 감정 같은 것들이다. 말로 뱉지 않았지만 느껴버리고 말아서 금이 가고 멀어지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그것은 죽음이고 농담이고 그리움, 사랑, 두려움, 환멸 이기도 하다. 관계에 있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 작가의 소설들은 그런 작업의 일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