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SE - 아웃케이스 없음
존 카니 감독, 글렌 한사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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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3,4교시는 적응활동 및 자치활동 시간이다. 옆 반에서는 부침개며 떡볶이며 뭘 해먹느냐고 야단들이다. 

"우리도 뭐 해먹어요." 

"흠, 너희들은 말야, 영양 결핍 상태가 아니거든. 영양 과잉 상태야. 그래서 먹는 건 좀 참아줘." 

한 마디로 제압(?)하고, 아이들의 마지못한 환희 속에 보여준 영화가 이 <once>였다. 

줄거리는 생략. 

평소 헐리우드 영화에 심하게 중독된 아이들에게 이런 류의 영화는 잘 먹히지 않는다. 초반의 흥미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아니 꺼져가는 아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끝까지 붙들고 있자니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했다. 

영화가 드디어 끝났다. 반응? 없었다. 어서 집에 가잔다. 

once의 의미를 아이들이 한번쯤 생각해볼까? 한 순간의 사랑. 그런 사랑 한 번 해봤어. 음, 한 때였지. 한 순간이었어. 옛날 얘기야. 한 때 그랬어....그래서 애절하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것을. 그 한 순간의 사랑의 의미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기억해줄까? 

아이들에게 공부란, 콩나물에 물 주는 거라는 말에 늘 공감을 한다. 콩나물에 뿌려주는 물은 절대로 그대로 고여 있지 않는다. 물이 훑고 지나가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것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고이지는 않지만 그 물을 먹고 성장한다. (단 썩지 않게 주어야 한다. 옆에 있는 딸아이가 덧붙이는 말.)

영화 한 편으로 두 시간을 때우며 애써 자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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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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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이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수많은 일들을, 한홍구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꼭 집어서 그게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겠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또 다른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살아온 부모 세대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거쳐온 분들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우리 세대 역시 만만찮은 시대의 중압감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지만 아픈 일이기도 하다. 

아프다는 건, 종결을 지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피부로 느끼는 문제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사교육 문제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표현은 딱 한 마디. 속수무책.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도 많다는 나라에서 엉킨 실타래 같은 이 문제를 아무도 풀지 못한다. 기막히지 않은가. 차라리 웃긴다고나 할까. 이 기막히고 웃기는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니 우리 모두는 갇혀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갇혀있는 섬나라이다. 

p.328 '죄수의 딜레마'라고 게임이론에서 쓰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잡혀왔다. 똑같이 부인하면 두 사람 다 3개월만 형을 살면 된다. 나만 자백하고 상대방은 자백하지 않으면 나는 풀려나고 상대방은 6개월을 산다. 둘 다 자백하면 같이 6개월을 산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상대방을 믿고 둘 다 부인하는 게 가장 공평하고 좋다. 하지만 신뢰할 수가 없는 거다. 저 혼자 잘살겠다고 자백하면 나는 부인하든 말든 6개월을 산다. 결국 두 사람 다 자백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징역 6개월 사는 거다. 이 논리가 사교육 시장에도 적용된다...모두 과외를 하면 모두 안 했을 때와 똑같아지는 거다. 

속수무책. 

수수방관. 

지독한 세월을 살고 있다. 우울하다, 지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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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8시 20분 부터 시작된 중학교 3학년 시학력평가는 오후 4시 30분에 5교시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시험과목은 국, 수, 영, 사, 과. 예종이 울리면 교사들은10분간 답안지와 시험지를 배부하고, 학생들이 치르는 실제 시험 시간은 70분씩이다. 가히 수능에 버금가는 중학생용 버전이라고나 할까. 워낙 이런 시험은 돌발적이고 연중행사용이라 한번 심하게 눈 흘기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긴하다. 늘 그랬으니까. 그런데 오늘 시험은 너무나도 돌발적이라서 시험을 끝내고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방학을 앞두고 방학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그때는 말 한마디 없었다.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개학이 되어 학교에 출근하고 교직원 조회에 들어가보니 바로 다음 날이 시험날이었다. 그것도 진짜 성취도 평가가 아니라 진짜 전국실시 성취도 평가를 대비한 모의 학력평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험의 실제 수준은 어떤가. 이런 시험을 대비하여 시험 때만 되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영어 시험에서는 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생각해라. 너희들이 그 많은 단어를 다 알겠느냐. 때에 따라 이 말은 교내 시험을 치를 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단어가 들어간 문제를 출제할 경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과 같은 시험에서는 평소에 내가 하는 이런 말들 가지고서는 약발이 서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해지는 편이 낫다. 교과서는 별로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너희가 알아서 사교육으로 실력을 끌어 올려라, 라고.  

전교 1~2등을 다투는 녀석에게 물어본다. 시험 볼 만하니? 네, 그저...괜히 물어봤다. 뻔한 대답인데.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대답은 커녕 반응도 없기에 한번 예의상 물어봤을 뿐이다. 선두 그룹에 있는 몇 명에게는 실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도 없는 그저 시키는대로 치러야 하는 귀찮고 성가신 시험일 뿐이다. 교육도 1%만을 위한 교육이 되어 가는가.  

마지막 5교시, 교실을 나서려는데  비몽사몽을 오가며 시험을 치르던 앞자리의 한 남학생이 옆 자리의 친구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늘 시험은."

몸서리 친 하루였다.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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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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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5. 도쿄의 상점들은 많고 다양하지만 그 모든 상점에 다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코의 상점들은 사람에 따라 접근 가능한 층위가 나뉘어 있다....명쾌하게 그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단계가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그러니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도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가게들이 원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일본어를 좀 하는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가게들이 첫 번째 범주 안쪽에 있다....일본어를 유창하게 잘하고 일본의 문화에 정통한 사람만이, 아니 그런 사람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다.....그렇게 상점 문화의 심장부까지 들어갈 수 없다 해도 어쨌든 도쿄에서의 쇼핑은 상당히 유쾌한 경험이다....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롤라이35 라는  카메라 얘기를 길게 할 때는 좀 짜증 나기도 했다.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때문이었고 '책 한 번 쉽게 쓰는군.'이라는 불만도 생겼다. 이 작가가 찍은 사진도 좋지만 그래도 이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것은 결국 글이 아니던가.  

감칠맛 나는 글을 야금야금 읽으며 끝내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짧은 여행이 아쉽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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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홍콩 여행은 결국 쇼핑 여행이었다. 

아주 소박한 여행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가족 여행이 이번만은 예외적으로 쇼핑으로 점철되는 여행이 되고 말았으니... 

여행을 끝내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세관 심사를 거치지 않는가. 늘 배낭을 메고 다니다 보면 세관을 통과할 때 아무도 가난해 보이는 우리 가방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나도 사실은 한번 쯤 가방 검사를 받고 싶은 거다. " 가방을 열어 보십시오."  "왜요? 걸릴 게 없는데요?" "그래도 좀 봅시다." "......" 이런 대화를 늘 상상하곤 하는 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있긴 있었다. 지난 번 인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 수화물로 부친 우리 배낭 중에서 큰 배낭이 영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네.' 결국엔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데 가방 전면에 웬 딱지가 붙어 있어서 읽어보니 문제가 있으니 확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검사대로 가 보니 가방 안에 20센티미터가 넘는 칼이 들어 있어서 걸렸다는 거다. 칼? 우다이푸르에서 산 은도금이 된 장식용 칼이었다. 말이 칼이지 칼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모양만 칼이었다. 게다가 20센티미터도 안된다. 담당자의 주의를 듣는 것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세 식구가 한 사람 당 티셔츠 한 장과 브랜드 신발 한 켤레씩을 샀다. 브랜드라야 우리가 평소 애용하는 프로스펙스나 아식스 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지만...이 기본 쇼핑 구조에 이런 기회가 또 있겠느냐며 남편이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우리 수준보다 약간 높은 티셔츠 한 장 추가, 독일제 트레킹화 한 켤레.(이걸 살 땐 내 인상이 더러웠었다고 한다. 뭘 또 사느냐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등산 모자. 옆에서 구경만 하던 딸아이도 모자 한 번 써보더니 마음에 들어한다. " 너 그거 사야, 쓸 일도 없잖아, 학생이..." 내 말에 토라져버린 딸아이. "내께 없어서 맨날 엄마,아버지꺼 쓰잖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모자 추가. 

늘 백팩을 지고 다니는 나 역시 욕심이 있어 멋진 가죽 백팩을 사고 싶어했다. 홍콩섬의 스탠리마켓에서 여러 개를 보았지만 검증 안 된 물건들인지라 그냥 포기하고 왔었는데 마침 이곳 shopper's lane의 한 매장에서 자그마하게 생긴 백팩을 하나 찾아냈다. 핸드백보다는 크고 보통의 백팩보다는 좀 작은 크기에 방수 커버까지 갖춘 완전한 백팩이었다. 무엇보다 방수 커버가 마음에 들었다. 빗속 퇴근길용으로 딱이다 싶었다. 값을 치르고 다리도 쉴 겸 실내 벤치에 앉아 각자 전리품을 감상하는데 남편이 내 백팩을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태그에 웬 아이들 그림이야." 자세히 읽어보니 어린이용 등산용 백팩이었다. 그냥 아동용이라면 어떻게 써볼 셈이었는데 이건 유치원생이었다. 단어도 선명한 kindergarten! 왜 이제야 이 글자가 눈에 들어오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어깨에 메어보니 끈 길이는 다 맞는데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었다. 메어보나마나한 일. 추가비용을 치르고 다른 것으로 교환하는 데 옆에 있는 딸아이가 창피하다며 시종 입을 다물고있다. 입가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역시 웃음을 무느냐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 저 청년말이야, 아까 나한테 물건 갖다 준 사람 아니지?" "응, 다른 사람 같애." 그런데 저 청년은 왜 아까부터 우릴 보고 웃는거야?"

쇼핑을 끝내고 밖에 나오니 밤 10시였다. 하나 더 살 게 있었는데 벌써 저 집은 셔터를 내렸다며 남편은 끝까지 아쉬워했다.  

마지막 날, 공항 버스를 타기위해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세찬 빗줄기를 뚫고 나아가는데...느닷없이 남편이 어떤 가게로 뛰어 들어간다. 티셔츠 두 장을 단숨에 고르고 단숨에 값을 치른다. 동네의 허름한 구멍 가게 같은 옷가게에서였다. 그렇게나 찾던 밤색 티셔츠가 아니냐며 흥분해 있다.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었다. 딸아이와 나는 황당한 시선을 주고 받고 있는데 남편은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화가 나다가도 일순간 안쓰러움 같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삼일 후.  

"우리 또 홍콩에 갈 수 있겠지?" 

"또 가지 뭐." 

"쇼핑 또 하자. 당신 트레킹화 빨리 신어서 닳게 해버려. 그러면 또 사러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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