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 언저리길 걷기여행 길따라 발길따라 5
길을 찾는 사람들 지음 / 황금시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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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안내자 삼아, 며칠 전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보았다. 2009년 8월 현재 총 연장 300km 가운데 70km, 5개 구간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데 그 중 제5구간을 걸었다. 동강리에서 시작해 수철리에서 끝나는 11.9 km 구간으로 4시간이 걸리는 코스이다. 잠시 책에 나와있는 설명을 들어본다. 

p.56 이제 임천강을 벗어난 지리산 둘레길은 우리 현대사의 상흔이 서린 '산청.함야사건추모공원'으로 길손을 이끈다. 386기의 유골이 안장된 추모공원을 지나면 지리산 둘레길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는 상사계곡 숲길이 기다린다. 이어 가야왕국의 내력을 간직한 왕산 자락의 쌍재와 고동재를 잇는 낡은 옛길은 몸에 맞는 헌 옷처럼 편안한 안식을 준다. 어디를 보아도 허튼 구석 없이 잘 짜인 길이다. 지리산을 생각하면 늘 이 길이 눈에 밟힌다. 

직접 가보지 않고 이런 글을 읽었다면 먼저 코방귀를 뀌었으리라. 그러나 직접 이 구간을 걸어보니 이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며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알게 된다. 구석구석 잘 다듬어놓은 길에서 이 길을 닦은 뭇사람들의 노고를 읽었으며 지리산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랑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길이다, 결코. 

잠시 떠오르는 길 하나. 영국의 하워즈라는 동네는 소설<폭풍의 언덕>이 태어난 곳으로 낮은 구릉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한겨울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 구릉들을 이틀에 걸쳐 걸어본 적이 있다. 소설의 유명세 탓에 더불어 주가가 올라간 이 동네에서는 사실 이 길 말고는 특별히 볼 것도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소설 덕분에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나야 그곳에서 3일 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어떤 이는 3주씩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는 길을 닦은 사람들의 노고라든가 애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소설의 배경이 된 시골 구릉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리산의 이 5구간을 걸으면서 내내 안타까움이 일었다. 어디에 내 놓아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트레킹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길인 것이다. 그렇다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리산 둘레길은 2011년에 전 구간이 완성된다고 한다. 기대가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으며 승용차를 타고 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간 방법은, 우리는 두 집에 식구들이 2명과 3명으로 각각 승용차가 있었는데 차 한 대는 종점인 수철리에 놔두고 다른 한 차로 모두 옮겨탄 후 시작점인 동강리로 이동하여 트레킹을 시작했다. 수철리에서는 먼저 주차해놓은 차에 모두 탑승하고는 다시 동강리로 가서 각각 자기 차량에 올랐다.  

이런 저런 점이 보완된다면 이 지리산 둘레길은 너무나도 훌륭한 트레킹 코스로 명성을 날리게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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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9일. 10여분 전 11시. 예술의 전당 앞. 누가 아는 체를 하여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내 오랜 친구 J가 나를 보고 반색을 하는 거다. 얼마 전 여행도 함께 하였던 친구다. 11시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단다. 나 역시 11시에 친구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만나기로 한 친구들은 연중행사처럼 일 년만에 만나는 대학 때의 친구들이다. 

우연의 해후에 마음이 붕 뜬다.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역시 친구가 좋다. 

각자 친구들을 만나고서 함께 관람한 전시가 바로 이 루오전이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또 제각기 오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서는 충분했던 것 같다. 

루오라는 화가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 보도자료만 보아도 될 것 같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8778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림에 붙인 작품 제목이다.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다'처럼 시적인 울림이 있는 제목이 많은 데 루오가 직접 붙였다고 한다. 특히 <미제레레>라는 일련의 작품에 붙인 제목에 눈길이 가서 작품도록을 사볼까 하고도 생각했으나 참기로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는데 먼저 위 기사에 실린 글에서 조금 인용해보면,

다만 루오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완벽을 추구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한 일화로 당시의 드가, 세잔, 마티스, 피카소의 수집가로 유명한 화상 볼라르(A. Vollard 1865~1939)가 있었는데 그는 루오를 높이 평가해 그 작업실을 통째로 산다. 그런데 그 화상이 1939년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 이후 루오와 볼라르집안 사이에 소유권문제로 재판이 열리고 1944년 루오가 승소해 그의 작업실작품을 돌려받으나 그 중 315점은 공증인이 보는 데서 태워버린다. 1958년 루오가 죽자 그의 미망인이 그림을 1963년 국가에 기증했고 퐁피두미술관에서 보관해왔다.


전시회 한 코너에서는 루오가 그 315점의 그림들을 불 속으로 던지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치열한 작가 정신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온통 불 속으로 던질 것 만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나름 충격적이었다.

다만 우연히 해후한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쁨처럼 그저 가끔은 삶의 여정이 아름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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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힘이 세다 - 앙성댁 강분석이 흙에서 일군 삶의 이야기
강분석 지음 / 푸르메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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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준비없이 귀농한 사람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닦았다. 오래전, 늦게 귀가한 막내 오빠의 밥상을 건성 차려주며 수저를 빠뜨렸다가 마지못해 던지듯 건넸던 일화를 잊지못해, 나이가 들어서 오빠에게 쓴 참회의 편지는 내 마음을 후비는 것만 같았다. 그 비슷한 추억이 어디 한 둘이랴.  

한평생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늙은 소의 눈물 이야기, 기르던 개가 죽은 이야기. 왜 그렇게 하나같이 절절하게 다가오는지...

초보 농사꾼의 경험담은 한꼭지 한꼭지가 내 일처럼 느껴졌다. 나도 몇년 전, 농사꾼 흉내를 내봤기에 이야기 하나 하나가 건성으로 들리지 않았다. 뽑아도 뽑아도 왕성하기 이를 데 없는 바랭이라는 잡초와의 싸움. 시어머니의 못마땅한 눈초리에 주눅이 들던 경험. 마침내 백기를 들고 농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밭을 그대로 방치하던 해, 나보다도 더 크게 자란 개망초를 보며 억장이 무너지던 경험. 한 달에 기름값 30만원을 들이며 열심히 주말마다 다녔건만 수확물이라고는 고구마 몇 상자, 콩 두어 말, 늙은 호박 두어 개가 전부. 취미라고 하기에는 남편이나 나나 치러야 할 댓가가 너무나 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취미로 보였겠지만... 

평생을 농부로 사시는 친구 부모님이 떠올랐다. 땅 값이 많이 올라서 땅만 팔아도 여생을 편안하게 사시련만 그런 생각은 절대로 안하신단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일을 하신단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세상에서 자기 부모님을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을 존경하는 내 친구가 나는 몹시도 부럽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로부터 이해는 받았을지언정 존경까지는 받지 못하셨다. 

밭일 하시다가도 딸내미 친구가 왔다고 하시던 일 접고 따끈한 밥을 지어주시곤하던 친구 어머니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 큰 마음을 나는 절대로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폭우, 태풍, 폭설 같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을 잃는 것...(137)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직간접적으로 겪었다. 동네가 폐쇄적일수록 더 심하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그간의 경험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하고 결국은 나를 여러번 울게 했다. 

결론삼아 저자가 정리한 '귀농 10계명'은 말 그대로 공감 100배. 

1. 몸과 마음을 함께 준비한다. 

2. 가족의 동의와 협조는 필수적이다. 

3. 부자로 살고 싶다면 귀농을 포기하라. 

4. 힘들더라도 덩어리 땅을 확보하라. 

5. 주택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말라. 

6. 맹지는 결단코 구입하지 말라.......(두말할 필요없이 절대적인 조건이다, 경험상) 

7. 작물 선정은 신중을 기하라. 

8. 마을 주민은 사돈같이 대하라.......(이것도 절대적인 계명이다) 

9. 귀농단체를 이용하라. 

10. 자연과 닮아가라....(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준다, 진심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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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가는 길
정찬주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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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며칠 전 헌책방 <아벨>에서 구입한 책이다. 내가 2권, 딸아이가 3권 골랐는데 현금만 받는다고 해서 2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평소 카드를 애용하는 지라 내 지갑 속에는 많아야 3만원 정도 있을 뿐인데 이 날은 그것마저도 없었다. 내심으로는 1~2천원 정도 깎아주려니 했는데 절대 안된다고 하면서 딸아이더러 책을 포기하라고 한다. 내가 고른 책이 좋은 책이라며. 한푼도 깎아주지 않는 주인 아주머니의 그 고집스러움이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그 고집 덕택에 이 헌책방은 쉽게 문을 닫지 않을테니까. 

2001년도에 출간된 책에, 헌 책이라 그런지 여러 면에서 퀘퀘한 냄새를 풍긴다. 간단히 "내가 오르고 있는 ...."이라고 하면 좋을 것을  "나그네가 오르고 있는 ..."  식의 표현 부터가 그랬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투 덕분에 이 책을 단번에 읽을 수 있었다. 뭐야 대체... 

돈황의 석고굴에 대한 지은이의 무한 애정과 탐구심을 접하고 보면 처음의 떨떠름한 감정은 어느 새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또한 <장자>를 마음 다잡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돈황(실크로드)에 관한 책을 쓴 사람들은 많다. 구입해놓고 처박아둔 책도 네 권 정도가 있다. 엔제 사두었나 싶은 책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저런....정수일, 차병직, 전인평 등... 옛맛이 묻어나는 이 책을 읽고나니 비로소 이제는 그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돈황, 하면 작가 윤후명이 떠오른다. 그의 소설집 <돈황의 사랑>(1983년)을 비롯하여 그의 소설에 탐닉하던 한 시절이 있었다. 아련한 그리움 혹은 슬픔 같은 게 떠오른다. 내용은 다 잊었지만. 

중국 작가 위치우위의 <중국문화기행>도 떠오른다. 대단한 기행문이라고 감탄했었다. 

내 삶의 갈피에 묻어두었던 돈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이 책. 책도 인연이라고, 이 책과의 인연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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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 러시아 예술기행 이상의 도서관 6
이병훈 지음 / 한길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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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오랫동안 사랑한 나라, 러시아. 러시아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인은 러시아를 사랑하는 인간이라고! 그에 따르면 나도 러시아인이다. 내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어준 땅. 러시아는 나의 정신적인 고향이면서 끝내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나라다.(p.393)  
   

러시아에 대한 도저한 애정이 느껴지는 모스끄바 예술기행서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모스끄바. 내가 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책이다. 모스끄바에 널려있는(?) 박물관, 극장, 미술관, 그리고 산책로들. 그 풍부함이 진하게 전해져오면서 가슴 한 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일렁인다. 내가 도대체 지금까지 어딜 싸돌아 다닌 게야? 

이 책은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감성,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까지의 노력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똘스또이, 뿌쉬낀, 도스또예프스끼, 고골, 체호프, 마야꼬프스끼, 뚜르게네프, 빠스쩨르나끄...고3때 학교 단체관람-그 시대에는 그게 유일한 영화 관람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으로 보았던 <닥터 지바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20대의 백수 시절에 읽었던 똘스또이와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 소설들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건 이미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 두루두루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문학은 그렇다치고. 러시아 미술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내가 감탄하면서 읽은 부분도 단연 이 러시아 미술 부분이다. 깐딘스끼와 샤갈 정도만 알고 있을뿐 대부분 생소한 화가들이었지만 그림들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한다. 러시아 미술사에 한번 도전해봐? 

'굴랴찌'라는 단어를 기억해두자. 우리말로 '산책하다'라는 뜻이란다. 이 굴랴찌는 러시아인의 생활문화와 정신문화의 토대라고 한다. 

러시아 예술의 요람이라는 <아브람째베보>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모스끄바에서 6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 당대 유명한 작가들의 회합장소로 쓰였던 저택이다. 이곳을 노래한 글이 또 내게는 인상적이다. 인용한다.(p.269) 

   
 

 아름다운 곳  

빠른 물길 위 언덕에 

녹음이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눈앞에 다가서네 

거기 공원이 있어 

숲 그늘을 깊고 

물은 넘쳐흐르네 

연못은 무릎 아래 찰랑대고 

집은 무엇에도 부럽지 않네

 
   

어제는 딸아이와 생태공원으로 산책(굴랴찌)하러 나갔다가 산책이 끝나자 그 길로 동인천가는 버스에 올랐다.  배다리에 있는 유명한 아벨서점(헌책방)에 들렀다가 반가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 러시아 예술기행 2. 이병훈 지음)였다. 지금 막 읽기를 끝낸 책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흠...내게도 이런 우연의 운이 있다니. 가격은 절반가. 빨리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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