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0
강용흘 지음, 장문평 옮김 / 범우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두 분이 어떤 책에서 언급을 했었다. 황병기와 청전 스님. 

책을 소개할 때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일단 구입을 했는데, 책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뭐랄까, 겉표지부터가 80년대 이전을 떠올린다고나 할까. 저자도 낯설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청전 스님의 책에서 이 책이 다시 언급된 것을 보고(그러나 청전 스님의 글에서 소개된 부분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주로 정독을 하는 편인데...),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도 분명 인연이 있는 듯싶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우리 할아버지쯤 되는 분의 자전적 소설쯤 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중국의 한시와 우리 나라의 옛시조, 영미 문학권의 시, 한용운의 시 등을 적절하게 요소요소에 인용한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표현들을 읽는 맛이 독특했다.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하인들 가운데 살구나무 열매를 팔지 않고서는 여러 자식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는 늙은 여자가 하나 있었다. 나의 조모는 그녀를 가엾게 여겨 우리 부엌에서 농산물을 조금씩 나눠줌으로써 그녀의 수고에 대해 후하게 보상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 늙은 여자는 파와 달콤한 참외와 오이를 얻게 되어, 살구를 내다 팔아 생기는 돈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축하였다. 그 목적이란 여성의 권익과도 다소 관계 있고 에피쿠로스 철학사상과도 다소 관계가 있었다.(124쪽) 

.....한국의 음악은 적어도 키츠처럼, 이백처럼 충동적이고 진실한 감동을 표현한다. 

얼마나 대담한 표현인가. 독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현대의 작가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칠고도 대담한 부분이라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귀여운 부분도 있었는데, 당나귀 얘기를 하면서 슬쩍 이솝우화를 끌여들여 글에 재미를 주려고 했는데 시대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시대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세대는 우리 부모님 세대도 아닌, 우리 조부모 세대인데, 북녘에 계셔서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나로서는 참 먹먹한 부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세대에 해당되는 분의 책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놀랍다.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 녹아들어 있어 책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 그리고 이런 표현. 

 "삼밭에서 쑥이 곧게 자란다."

"소금이 물에서 생기듯 남자는 여자에게서 생겨나지만, 그가 여자를 가까이할 때에는 소금이 물에 녹아 없어지듯 다시 녹아버린다." 

할아버지에게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런 표현들을 볼 때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건 부재감이자 결핍이었다. 그리고 단절감이었다. 상실감이기도 했다. 이 책이 잊고 지냈던 이런 상념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부분이 있었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보는 관점이 너무나 비슷해서 놀랍다.

.....중국인은 손님이 왔을 때나 손님이 돌아간 뒤나 한결같다. 중국인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그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인은 손님에 대해서 매우 변덕스럽다. 매우 재빠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다정한 미소, 상냥한 인사, 속 보이는 사교, 이런 것들이 일본인들에게는 있고 중국인들에게는 없다.(253) ....일본인을 아는 데에는 몇 분이면 족하나, 중국인을 아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린다. 한국인은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대체고 그 중간 정도다.(255).....한국인을 정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일본인이라기에는 너무 크거나 탁월하고, 중국인라기에는 너무 세련된 자, 그런 자는 한국 출신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256) 

탁월하지 않은가? 또 하나 있다. 

.....내가 보기에 선교사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착실히 교육을 받은 진지한 유형이었다. 내가 이런 유형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유형은 거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은데, 서양에서는 아무런 일자리도 구할 수 없으니까 동양으로 건너와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요리사와 웨이터와 정원사까지 거느리고 살며 이교도를 얕잡아 보는 유형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노라고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서양이 그를 부적격자로 보고 내쫓은 것이었다.(320) 

마치 현재의 영어 원어민 강사 얘기같다. '착실히 교육을 받는 진지한 유형'이라...더러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썩 드물다.

요즘들어 한동안 소설을 멀리했는데 모처럼 재미있게 읽은 이 책. 기억해야 해, 이런 책은. 

**재미교포 작가의 계보라고 할까. 강용흘, 김은국, 이창래. 80년대 중반에 원서로 읽은 김은국의 <순교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리다가 책을 잃어버려 몹시 아쉽다. 몇년 전 뉴질랜드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창래의 책은 또 언제 읽을라나. 눈이 더 나빠지기전에 읽어야 할텐데. <초당>을 검색해보니 영어로 된 초판본을 10만원에 파는 곳이 있다. 책을 소장하는 것에 관심은 별로 없지만 살짝 마음이 움직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 지리산에서 히말라야까지, 청전 스님의 만행
청전 지음 / 휴(休)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처럼, 타박타박 흙길을 걷는 듯한 평화로움과 맑은 기운을 얻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 런던 아줌마 김은영의 페어플레이한 영국도전
김은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작은 울림이 모여 큰 노래가 되면 세상이 좀 달라질라나. 작은 몸부림이 모여 커다란 파도를 이룬다면 세상이 좀 꿈쩍할라나. 얼마나 치를 떨고 얼마나 몸부림쳐야, 그리고 얼마나 울부짖어야 세상이 좋아질까. 우리나라 교육이 달라질까.  

이 책은, 런던에서 숨통을 찾고 길을 찾은 사람의 작은 몸부림 내지는 울부짖음이라고 할 수 있다. 팡팡 터지는 팝콘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수다를 통해 우리나라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교육을 향해 목청껏 외치고 있다. 런던이라는 '신세계'에서 맞부딪친 경험을 풀어놓으며 속으로 쌓이고 쌓인 원망을 날려보내고 있다. 

저자는 한국 학교와 영국 학교를 이렇게 비교하고 있다. 

...사자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면서 '이게 너에게 주어진 상황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터득해 기어올라와라' 하는 게 한국식이고, 사자 새끼가 받을 충격을 최대한 줄여 효과적으로 빨리 기어올라올 수 있도로 도와주는 게 영국식이다....(31쪽) 

그러나 이게 어디 교육분야에서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온통 나라꼴이 이런데 교육만 붙들고 늘어지면 그건 너무 억울하다.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선진국에 가면 제일 부러운 게 ... 대중교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내버스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이 시내버스이다. 승하차의 편의를 위해 정차시에는 버스의 인도쪽 부분이 살짝 내려앉는다거나, 부저의 부착 위치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든가, 좌석이 높은 경우 발밑에 설치하는 발판의 섬세한 모양새 등  인간적이고 세련된 시내버스를 교토에서 경험하고는 일본과 우리와의 간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인도의 시내버스에선 사람이나 짐꾸러미나 같은 대접을 받는다. 기세등등한 운전기사와 차표 끊어주는 아저씨는 그 세계에선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 콩나물 시루 같은 곳에서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나가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우리 사람 많아요' 이렇게 말하는 인도인도 보았다. 이런 나라에서의 학교 상황은 어떨까?

이 인간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교육 역시 그렇지 않을까. 세상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  

신학년을 앞두고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이 책을 접하니 처음에는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다. 우리보다는 너무나 세련되고 섬세한 영국 교육 얘기를 들으니 너무나 당연한 외침이고 울부짖음이었다.그러나 이 대안 없는 외침은 소리가 아주 여리고 작았다. 아귀다툼 같은 세상을 벗어나 신세계를 찾은 사람의 그 거침없는 목소리는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어쩌라고. 

여기서 아무리 일본 시내버스의 멋진 점을 얘기해봐야 우리가 매일 타야 하는 우리 동네 시내버스만 더욱 더 초라하게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인도의 버스를 보고 위안을 삼을 수도 없잖은가. 

세상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 교육만 쏙 뽑아서 때리는 건 너무나 쉬운 불평불만이다. 외침은 그저 외침만으로 남는다. 큰 노래가 되고 세상을 바꾸는 큰 파도가 되려면 ....되려면..... 

저자의 영국인 남편이 책 말미에 쓴 다음 구절은  전형적인 그네들 관점이다. 마치 영국이 세상의 중심인양.

...Eunyoung has gained an insight into both the Korean and English education systems. She is able to show the benefits of the English system explaining how students who work hard are rewarded with the chance to follow their ambitions. Any disappointing exam results are not necessarily the end of the road. Doing the best you can is highly prized in England and a child who works very hard can be as well regarded as a child who gains high marks effortlessl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책은 확실히 나는 놈 축에 들어간다. 여행기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두루 갖추었고 게다가 세련되면서도 메세지가 분명하다.  

여행 중에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일들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놀랄 만하다. 그 비슷한 흉내마저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많은 외국인들이 인도 전통 악기를 배우려고 모여든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는 러시아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었는데 밤이면 여기저기서 타블라라는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쯤 부러운 생각에 마음 한끝이 슬퍼지곤 했지만 마음의 반은 자포자기 심정이 되곤 했다. 

여행 중에는 늘 이방인이었고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도 못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행생활자'라는 모호한 말도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여행 방법은 다양하면서도 분명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배움의 장소로 택한 곳 중에는 내가 여행한 곳도 몇 군데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곳으로도 만족스러웠으니까. 비교해보면 참으로 초라한 여행이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국적인 정경에 빠져 침만 질질 흘렸던 스코틀랜드에서 이 저자는 양치기 길 들이기를 배우고, 우피치 미술관 관람 하나만으로도 행복에 겨웠던 피렌체에서 이 저자는 예술 강좌를 듣는다. 교토는 또 어떤가. 감히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Learning Travel. 왜 미처 그런 생각을 못해봤을까. 이 저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 책에서는 얻어들을 게 너무나 많다. 그 중 몇가지. 

p.272 ..달을 보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전통이다. 다양한 그림과 시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나는 어느 날 가모 강둑에 앉아 달을 바라보기로 했다. 천년 전에 사가 천황이 그랬던 것처럼.(일본 교토엣 전통 춤과 다도 배우기) 

p.323.....그러고 나서 훌륭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말해야만 하는 것을 우리에게 정리해주었다. " 기본적으로 스트립 댄서들이 옷을 벗는 순서와 똑같이 해야 해요. 벌거벗은 채 무대 위로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옷을 너무 빨리 다 벗어버려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벗어도 안 돼요. 거기엔 리듬이 있어야죠."(체코 프라하에서 글쓰기 수업 듣기) 

p.363 ..나는 올바른 선택과 잘못된 선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였다. 삶이 비상 탈출구 하나 없는 직선 도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며, 삶이라는 길을 걷는 내내 우리에게는 언제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한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는 생각을 점점 더 즐기는 쪽으로 변해왔던 것이다.(프랑스 아비뇽에서 프로방스식 정원에 탐닉하기) 

이 세련된 자신감은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일처럼 보인다. 한 수 배우고 싶어, 이 저자와 나와의 거리를 따져본다. 

며칠 전 엔디 워홀전에 갔을 때였다. 딸아이가 묻는다. " 앤디 워홀이 언제 사람이야?" "음, 1928년생이니까 너희 할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나셨네. 근데 너무 비교된다." 옆에 있던 남편이 볼멘 소리로 한마디 한다. " 사는 방식과 시대 배경이 다른 데 그게 비교가 돼?"  "...그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맛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3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한겨레 신문>을 통해 구광렬 시인을 알게 되었다. 다음이 그 기사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95284.html 

모처럼, 그리고 오랜만에 시집 한 권을 완독(?)했다. 사 놓고 대강 읽다가 내버려둔 시집들이 좀 있기 때문에 '완독'이라는 표현은 내게 약간의 의미가 있는 말이다. 거칠게 읽긴 했지만 산에 오르는 듯한 인내심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 시집이 바로 구광렬의 <불맛>이다. 

먼저 호기심이 생긴 것은 그가 스페인어와 한글로 시를 쓰는 이중언어의 시인이라는 점이었다. 평생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이중언어로 시를 쓴다는 건 경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년의 반을 보낸다는 중남미라는 공간이 그의 시에 어떻게 녹아있을까,도 궁금증을 일으켰다. 

한국과 중남미, 한글과 스페인어. 두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면 언뜻 어릴 때 텔레비전 만화로 보았던 손오공이 떠오른다. 공간 이동을 자유자재로 하는 그 손오공 말이다. '공간'이라는 코드로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시 세계가 얼마쯤 이해가 되고 시 읽기는 '즐거운 노동'이 된다.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지만 다음의 시구를 읽어보면 '경계' 라든가 '공간'의 개념이 잡힌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 은유적으로는 '구석'이라는 공간이 포착된다.

'탄피를 쪼아보던 비둘기/찢어진 포문 속으로/들/어/간/다.....'<대포 속의 비둘기> 

'....살점은 이동하는 것이다/어제 네 살점은/오늘 내 살점이 되고/오늘 내 살점은/내일, 또 다른 살점의 살점이 되니....'<생선> 

'...비뚤비뚤, 이내 흐트러져버리는 줄개미들처럼/뒷사람 풀어지고, 뒤의 뒷사람 풀어지고/풀어졌다 조여지고, 그렇게 환승 내지 환생하는.<신도림역>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지구별의 한복판을 뚫고 불쑥/반대편 이웃 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남반구 북반구 대척점 사람들/모두 한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팔촌, 십이촌 한나무 한가족을 이룰 것이니...'<바오밥>  

'...그래, 그 목줄 2미터는 한계 이상이었다/우주비행사의 생명줄 같은 것이었지만/이제 반지름 2미터의 반질한 반원 속에서도/쑥과 냉이가 솟구쳐 오르니...'<목줄>

때로는 그 경계의 넘나듦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미워할 수 없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의 나의 부재를 못 믿고 후생이 궁금하다며 불속까지 뛰어들려는 내 뿌리'<신경증을 앓는 나무> 

'..사랑을 위해선 머리만을 묻어서도 안 되며/물방울보다 더 차가운 지구별에서의 부화를 위해선/온 몸덩이가 발광해야 함을.'<방충망에 매달린 물방울> 

 공간의 한 개념인 '구석'이란 다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외된 것, 작은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구석을 좋아하는  경우 구석은 '숨는 곳'이자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지구의 이쪽 저쪽을 넘나드는 시인이 찾는 구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반지름 2미터의 반질한 반원 속에서도/쑥과 냉이가 솟구쳐 오르니'<목줄>이라는 시에서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갈대의 울부짖음을 /'<메르세데스 소사> 라는 시구에서도 펄펄 살아있는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외 다른 시들에서도 이 '구석'은 말 그대로  구석구석 발견된다.    

시 읽기는 역시 어렵다. 그래서 이런 독후감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 편 만큼은 그대로 베끼고 싶어서 어설프지만 몇 자 적어봤다.

<메르세데스 소사>   
1. 지구 반대편 구석에서 노래 한 줄로 깨달았습니다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 있다는 걸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묵묵히 구석은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는 걸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 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릴 내준다는 걸  
   그 바람 앞에선 
   작고 낮을수록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걸 
2. ......   
 그 다음은 직접 읽어 보시길.....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나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