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홍콩 여행은 결국 쇼핑 여행이었다. 

아주 소박한 여행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가족 여행이 이번만은 예외적으로 쇼핑으로 점철되는 여행이 되고 말았으니... 

여행을 끝내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세관 심사를 거치지 않는가. 늘 배낭을 메고 다니다 보면 세관을 통과할 때 아무도 가난해 보이는 우리 가방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나도 사실은 한번 쯤 가방 검사를 받고 싶은 거다. " 가방을 열어 보십시오."  "왜요? 걸릴 게 없는데요?" "그래도 좀 봅시다." "......" 이런 대화를 늘 상상하곤 하는 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있긴 있었다. 지난 번 인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 수화물로 부친 우리 배낭 중에서 큰 배낭이 영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네.' 결국엔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데 가방 전면에 웬 딱지가 붙어 있어서 읽어보니 문제가 있으니 확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검사대로 가 보니 가방 안에 20센티미터가 넘는 칼이 들어 있어서 걸렸다는 거다. 칼? 우다이푸르에서 산 은도금이 된 장식용 칼이었다. 말이 칼이지 칼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모양만 칼이었다. 게다가 20센티미터도 안된다. 담당자의 주의를 듣는 것으로 끝난 해프닝이었다. 

세 식구가 한 사람 당 티셔츠 한 장과 브랜드 신발 한 켤레씩을 샀다. 브랜드라야 우리가 평소 애용하는 프로스펙스나 아식스 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하지만...이 기본 쇼핑 구조에 이런 기회가 또 있겠느냐며 남편이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우리 수준보다 약간 높은 티셔츠 한 장 추가, 독일제 트레킹화 한 켤레.(이걸 살 땐 내 인상이 더러웠었다고 한다. 뭘 또 사느냐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등산 모자. 옆에서 구경만 하던 딸아이도 모자 한 번 써보더니 마음에 들어한다. " 너 그거 사야, 쓸 일도 없잖아, 학생이..." 내 말에 토라져버린 딸아이. "내께 없어서 맨날 엄마,아버지꺼 쓰잖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모자 추가. 

늘 백팩을 지고 다니는 나 역시 욕심이 있어 멋진 가죽 백팩을 사고 싶어했다. 홍콩섬의 스탠리마켓에서 여러 개를 보았지만 검증 안 된 물건들인지라 그냥 포기하고 왔었는데 마침 이곳 shopper's lane의 한 매장에서 자그마하게 생긴 백팩을 하나 찾아냈다. 핸드백보다는 크고 보통의 백팩보다는 좀 작은 크기에 방수 커버까지 갖춘 완전한 백팩이었다. 무엇보다 방수 커버가 마음에 들었다. 빗속 퇴근길용으로 딱이다 싶었다. 값을 치르고 다리도 쉴 겸 실내 벤치에 앉아 각자 전리품을 감상하는데 남편이 내 백팩을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태그에 웬 아이들 그림이야." 자세히 읽어보니 어린이용 등산용 백팩이었다. 그냥 아동용이라면 어떻게 써볼 셈이었는데 이건 유치원생이었다. 단어도 선명한 kindergarten! 왜 이제야 이 글자가 눈에 들어오나. 그래도 혹시나 해서 어깨에 메어보니 끈 길이는 다 맞는데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었다. 메어보나마나한 일. 추가비용을 치르고 다른 것으로 교환하는 데 옆에 있는 딸아이가 창피하다며 시종 입을 다물고있다. 입가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역시 웃음을 무느냐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 저 청년말이야, 아까 나한테 물건 갖다 준 사람 아니지?" "응, 다른 사람 같애." 그런데 저 청년은 왜 아까부터 우릴 보고 웃는거야?"

쇼핑을 끝내고 밖에 나오니 밤 10시였다. 하나 더 살 게 있었는데 벌써 저 집은 셔터를 내렸다며 남편은 끝까지 아쉬워했다.  

마지막 날, 공항 버스를 타기위해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세찬 빗줄기를 뚫고 나아가는데...느닷없이 남편이 어떤 가게로 뛰어 들어간다. 티셔츠 두 장을 단숨에 고르고 단숨에 값을 치른다. 동네의 허름한 구멍 가게 같은 옷가게에서였다. 그렇게나 찾던 밤색 티셔츠가 아니냐며 흥분해 있다. 말리고 어쩌고 할 겨를이 없었다. 딸아이와 나는 황당한 시선을 주고 받고 있는데 남편은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화가 나다가도 일순간 안쓰러움 같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삼일 후.  

"우리 또 홍콩에 갈 수 있겠지?" 

"또 가지 뭐." 

"쇼핑 또 하자. 당신 트레킹화 빨리 신어서 닳게 해버려. 그러면 또 사러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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