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자유로운 삶
향봉 지음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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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보태겠습니까. 조용히 스님 말씀 되새기겠습니다.

아가야! 마음이 몹시도 아프구나. 이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란다. 우리처럼 이렇게 만나면 이내 헤어지는 아픔 속에서 나날이 철이 들고, 철이 들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란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 P135

요리학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즐겨 먹는 미역국이 때에 따라 조리법이 진화하여 다양해진 미역국을 먹고 있다. 미역국에 치즈 두 장쯤 넣고 끓이면 미역줄기가 부드럽고 고소하다. 양파를 다져 넣는다든지 된장을 조금 풀어 끓여도 미역국은 다른 맛으로 내게 온다. 사자암에 혼자 머물고 있어 부목처사 몫도 공양주 역할도 나의 차지이다. 그런 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 P78

내 죽거든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길
관이니 상여니 만들지 말길
그저 입은 옷 그대로 둘둘 말아서
타오르는 불더미 속에 던져버릴 것
한 줌 재도 챙기지 말고 버려버릴 것

내 죽거든
49재다 100재다 제발 없기를
쓰잘 데 없는 일로 힘겨워 말길
제삿날이니 생일이니 잊어버릴 것
죽은 자를 위한 그 무엇도 챙기지 말 것
죽은 자의 사진 한 장도 걸어두지 말 것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 지는 들꽃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더러는 빗방울 되어 - P144

영혼이 없다는 내용, 하나만로도 불교도들은 많이 당혹해하며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미 경전에서 밝히셨지만 영혼 따위는 없는 것이다. 육도윤회도 없는 것이다. 당생윤회와 현생정토가 있을 뿐이다.
49재를 아무리 잘 차리고 준비해도 귀신 따위는 오지 않는다. 다녀갈 영혼이나 귀신 따위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49재는 죽은 자를 위함도 있지만 산자의 빈 가슴을 채워주는 의식임도 잊니 말 일이다.

불교는 전생과 내생을 키우지 않는다. 불교는 오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영원하다. 영원한 오늘의 주인공으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 일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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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우체부길 고영훈의 스토리텔링 인도네시아 문화유산답사기 1
고영훈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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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월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뽑은 올 상반기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인도네시아 여행 전에 도서관에서 대충 읽고는 '아무래도 구매해야겠다.' 싶었는데 친구가 생일선물로 책을 고르라기에 주저않고 이 책을 골랐다. 친구 덕분에, 인니 여행 덕분에 찰지게 읽은 책이 되었다. 여행 전에는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며칠 여행했다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와 지리과목은 보기도 싫었는데 삼십 넘어 시작한 여행이 이 과목에 학구열을 일깨워주었다. 대학 시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지도 못한 영어에 대한 해결책을 여행에서 찾았다면 그 후의 삶에서 영어에 대한 원망은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괴로움의 대상 자체였던 영어로 30여 년 간 밥 벌어 먹어야 했다는 게 생각할수록 송구스럽고 아이러니하다. 역시 나는 머리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듯 몸을 움직인만큼만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책도 몸으로 읽어야 머리로 들어온다. 거짓말 못하는 몸 때문에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머리로만 읽은 책들은 몸에 남지 않는다는 걸 이제서야 겨우 깨닫는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서쪽 끝 아냐르에서 동쪽 끝 빠나루깐을 잇는 1,000킬로미터의 도로에 붙여진 이름이 우체부길이다. 이 도로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다엔델스. 1808년부터 3년 동안 제 33대 총독으로 재임했는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우체부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12,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잔인성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이 우체부길을 따라가면서 이 길에 얽힌 역사를 하나씩 짚어가는 게 이 책의 골자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도네시아 역사에 어렴풋이나마 흐름이 잡히는 것같고 흥미도 생긴다. 굳이 남의 나라 역사를 꼭 알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친구 하나 사귄 듯한 뿌듯함이 느껴져서 좋다. 물론 친구의 아픔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책에 소개된 영화를 통해서 아픔을 들여다보았다.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비밀리에 벌어진 100만 명 규모의 대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속 실제 대학살의 가해자들이 직접 살인의 장면을 재연해 낸 충격의 다큐멘터리로, 학살의 가해자들이 스스로 살인(KILLING)을 재연(ACT)한다는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인간의 도덕성과 악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가 제작에 참여하였고, 올해 연작 <침묵의 시선>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알라딘 상품 소개글에서 인용)



영화는 학살의 가해자들이 스스로 영화를 찍는 장면과 그 과정을 찍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자그만치 5년에 걸쳐 찍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주인공)의 심경의 변화를 추적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의 뻔뻔함(전두환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이 후반으로 갈수록 피해자의 입장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절절하게 알게 되는 깨달음으로 변한다. (전두환 일족은 죽을 때까지 깨달을 수 있을까?)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또다른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 2014)은 피해자편이라고 한다. 감독은 가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과 피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인터뷰했는데  


' 가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은 공산당으로부터 국가를 구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고 애국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자 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해됐다는 것이다.' (p.164)


1965년 9월 30일 발생한 공산쿠데타를 진압하면서 희생된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50만 명 비공식적으로 100만 명이며,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학살이라고 한다.


어떤 기시감?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 꼭 우리 나라 이야기 같지 않은가.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광주민주항쟁 등.



별 준비없이 다녀온 인도네시아 여행. 책을 읽고나니 더욱 더 허술한 여행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 유명한 솔로(Solo) 라는 도시에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음식만 축내고 왔었다. 다시 가게 된다면 이 책을 한번 더 꼼꼼하게 읽어야겠다. 인도네시아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해준 이 책, 옥에 티라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오타가 심하고 입말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실렸다는 것. 이를테면 '그라고'. 여행 끝에는 약간 정신이 흐려지기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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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외교관의 여행법 바람구두 여행문고 1
박용민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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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에 읽었으나 가치를 몰라봤던 책. 인도네시아 얘기가 알차게 실려있다. 다행인 건 그래도 책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 책을 읽었다고 읽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 겸손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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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갈 때 미리 정보를 세세히 알고 가는 게 좋을까, 대강만 알고 가는 게 더 설렐까?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는 게 신날까, 제목만 듣고 그냥 직접 보는 게 더 흥미로울까? 그림 전시회를 갈 때 화가에 대한 이력을 살펴보고 가는 게 유익할까,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왜 유명한지 따지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게 더 집중력이 생길까? '더'라는 말을 첨가한 것으로 보아 나는 후자를 따르는 편이다. 미리 아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면 게으른 습성일지도 모른다.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반항 같은 것이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회에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양반은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그림쟁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다. 193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치면 90세인 로즈 와일리에 급관심이 생겼다.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모지스와 같은 분이 또 있구나, 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원래 그림을 공부했는데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40대 중반에야 다시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시작, 70대 중반에 신진작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참 다행이지 싶다.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 Rose Wylie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 Rose Wylie




강릉아트센터



다음은 로즈 와일리의 작품









<인디언을 고문하는 스페인사람들>




<Korean Children Singing> 

노래하는 북한 여학생들. 정치적인 의미는 생각하지 말고 감상하시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천진난만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계산된 의도로 보느냐, 의도 자체를 떠난 무아의 경지로 보느냐...이 둘 사이의 어딘가가 아닐까. 당연한 말인가?




다음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그림











love 와 장갑(glove)이 무슨 상관? love가 쓰인 점이 공통점. 그림으로 나타낸 언어유희가 되겠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가 갈 때까지 간 느낌이랄까. 그림에서 감흥을 찾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일까? 현대미술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



마이클 크레이그는 누구? 설명을 옮기면,


'초창기 개념미술가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그는 교육자로서도 인정받았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특히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양성/배출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데미안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등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가르침 아래에서 각자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 분의 그림을 해석이나 설명없이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현대미술이 불편한 이유.



"나는 늘 경이로운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작품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익숙한 것을 거대해 보이게 하는 것, 이것만큼 쉽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 Michael Craig Martin





저는 감동받지 못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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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취업한 딸이 그간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겠다면서 제안을 했다.1) 선물 2) 딸과 함께 하는 체험. 우리 내외는 2번을 골랐다. 딸은 체험 내용을 2주 동안 철저한 비밀에 부치고 다만 '화성시'가 힌트라고 했다. 낚시? No. 딸기따기 체험? No. 그러면 요트체험이겠네. 으음...맞아! 드디어 디데이. 딸은 교묘하게 행선지를 '경기도 화성시 부근'이라고 네비에 찍었다. 네비에 나타난 전체 지도를 언뜻 보니 바닷가가 아니었다. 길은 점점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00요양원으로 가는 화살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를 요양원에 맡기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요양원 체험? 요양원 봉사활동? 다행히 요양원을 지나쳐 갔다. 길은 더 오솔길로 접어들더니 100 미터 앞쯤 경비행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엉? 비행기네! 딸을 낳으면 부모를 비행기 태워준다더니..이렇게나 빨리 타게 될 줄이야. 




탑승 인원은 두 명. 조종사와 승객.




이런 경비행기도 있고.




운동화 신은 나의 두 발. 




한반도 모양의 공원도 있고




나비 모양의 야구장도 있다.




접니다.^^


오늘도 틈만 나면 입에서 나오는 노래.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딸, 고마워. 엄마, 아버지에게 하는 선물은 이것으로 완성이다. 비행기까지 탔으니 뭘 더 바라겠니. 감격한 이 마음, 늘 기억할게.



경비행기 타기 전 딸이 내 손에 쥐어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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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5-02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요.
대단합니다.
정말 감격하셨겠다....


nama 2023-05-02 08:38   좋아요 0 | URL
그간 진로 때문에 딸아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더 감격이었어요.

얄라알라 2023-05-02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성시가 힌트....
저 역시 포도나 딸기 체험을 생각했는데

어나더 레벨이네요^^

정말 깜짝 선물, 감동입니다
행복하시겠어요

nama 2023-05-02 08:41   좋아요 0 | URL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라로 2023-09-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져요!! 비행기 타기 전 손에 쥐여준 선물도 넘 귀엽구요,, 저도 경비행기 타봤는데 엄청 무서웠던 생각이 나네요.^^;; 화성시에 그런 곳이 있다니,, 제가 사는 동네에도 경비행기장이 있어요. 경비행기 하니까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도 나고,,, 왜 이 좋은 페이퍼에 제가 싱숭생숭인지... 어쨌든 나마님의 행복한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nama 2023-09-04 15:15   좋아요 0 | URL
저는 경비행기가 전혀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차분하고 침착해지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희열을 느껴요. 비행기 조종이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 안타깝네요.

황동이 2023-11-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경비행기 체험에 관심이 있어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들러서 보고 갑니다 : ) 착한 따님을 두셨네요. 왠지.. 같은 비행장인거 같은데, 바닐라스카이에어 라는 업체에서 지금 최저가 행사하고 있더라구요. 전 다음주에 타러 갑니다. 재밌길 바래봅니다 : )

nama 2023-11-18 14:15   좋아요 0 | URL
짜릿한 경비행기 체험이 되시길(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