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 우체부길 고영훈의 스토리텔링 인도네시아 문화유산답사기 1
고영훈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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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6월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뽑은 올 상반기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인도네시아 여행 전에 도서관에서 대충 읽고는 '아무래도 구매해야겠다.' 싶었는데 친구가 생일선물로 책을 고르라기에 주저않고 이 책을 골랐다. 친구 덕분에, 인니 여행 덕분에 찰지게 읽은 책이 되었다. 여행 전에는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며칠 여행했다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와 지리과목은 보기도 싫었는데 삼십 넘어 시작한 여행이 이 과목에 학구열을 일깨워주었다. 대학 시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지도 못한 영어에 대한 해결책을 여행에서 찾았다면 그 후의 삶에서 영어에 대한 원망은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괴로움의 대상 자체였던 영어로 30여 년 간 밥 벌어 먹어야 했다는 게 생각할수록 송구스럽고 아이러니하다. 역시 나는 머리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듯 몸을 움직인만큼만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책도 몸으로 읽어야 머리로 들어온다. 거짓말 못하는 몸 때문에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머리로만 읽은 책들은 몸에 남지 않는다는 걸 이제서야 겨우 깨닫는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서쪽 끝 아냐르에서 동쪽 끝 빠나루깐을 잇는 1,000킬로미터의 도로에 붙여진 이름이 우체부길이다. 이 도로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다엔델스. 1808년부터 3년 동안 제 33대 총독으로 재임했는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우체부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12,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잔인성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이 우체부길을 따라가면서 이 길에 얽힌 역사를 하나씩 짚어가는 게 이 책의 골자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도네시아 역사에 어렴풋이나마 흐름이 잡히는 것같고 흥미도 생긴다. 굳이 남의 나라 역사를 꼭 알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친구 하나 사귄 듯한 뿌듯함이 느껴져서 좋다. 물론 친구의 아픔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책에 소개된 영화를 통해서 아픔을 들여다보았다.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비밀리에 벌어진 100만 명 규모의 대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속 실제 대학살의 가해자들이 직접 살인의 장면을 재연해 낸 충격의 다큐멘터리로, 학살의 가해자들이 스스로 살인(KILLING)을 재연(ACT)한다는 전대미문의 방법으로 인간의 도덕성과 악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와 '에롤 모리스'가 제작에 참여하였고, 올해 연작 <침묵의 시선>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알라딘 상품 소개글에서 인용)



영화는 학살의 가해자들이 스스로 영화를 찍는 장면과 그 과정을 찍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자그만치 5년에 걸쳐 찍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주인공)의 심경의 변화를 추적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처음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의 뻔뻔함(전두환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이 후반으로 갈수록 피해자의 입장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절절하게 알게 되는 깨달음으로 변한다. (전두환 일족은 죽을 때까지 깨달을 수 있을까?)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또다른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 2014)은 피해자편이라고 한다. 감독은 가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과 피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인터뷰했는데  


' 가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은 공산당으로부터 국가를 구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고 애국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자 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해됐다는 것이다.' (p.164)


1965년 9월 30일 발생한 공산쿠데타를 진압하면서 희생된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50만 명 비공식적으로 100만 명이며, 같은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학살이라고 한다.


어떤 기시감?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 꼭 우리 나라 이야기 같지 않은가.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광주민주항쟁 등.



별 준비없이 다녀온 인도네시아 여행. 책을 읽고나니 더욱 더 허술한 여행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 유명한 솔로(Solo) 라는 도시에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음식만 축내고 왔었다. 다시 가게 된다면 이 책을 한번 더 꼼꼼하게 읽어야겠다. 인도네시아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해준 이 책, 옥에 티라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오타가 심하고 입말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실렸다는 것. 이를테면 '그라고'. 여행 끝에는 약간 정신이 흐려지기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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