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내 짝꿍 때문에 괴로웠다. 허구헌날 연필이나 지우개 등을 빌려달라고 하는 통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반대로 어떨 때는 엄지만한 그림책을 가지고와서 온통 그 그림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기도 했다. 영어로 된 그 작디작은 그림책은 돼지 세 마리와 늑대가 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지금도 돼지들이 만든 붉은 벽돌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림책 구경으로 잠시 황홀하기도 했지만 문구류를 빌려달라는 청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연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한가지 꾀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시선의 방향을 잠시 확인한 후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연필을 주워서 슬쩍 다른 곳에 감추었다. 그런 후 짝에게 좀전에 빌려간 내 연필을 달라고 했다. 짝은 빌려가지 않았다며 당황해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짝이 연필 따위로 나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 짝꿍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학교는 등교길이 만만치 않았는데 별다른 교통수단도 없어서 왕복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다녀야 했다. 밭길, 산길, 과수원길, 공동묘지길 등을 두루 거쳐야 하는 등하교길은 자연 이런저런 친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딱히 친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걷는 사람이 그날의 친구가 되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종종 그 짝꿍과도 함께 걷곤 했다. 헌데 이 친구는 좀 남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절대로 알 수 없는 세상의 비밀 한 조각씩을 물어다주는 것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성교육을 이 친구로부터 귀동냥으로 배운 것이다. 한편으로는 친구의 조숙함이 놀랍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부럽진 않았다. 이 친구는 언니, 여동생과 함께 보육원(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안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이 친구와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학교성적에 일희일비하던 내가 이 친구의 어려움을 살피거나 마음을 주었을 리는 없었다. 나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으로 되어 갔으니까.

 

가끔 이 친구가 떠오른다. 부모와는 재회했는지, 언제 보육원에서 나왔는지, 얼굴이 곱던 이 세 자매는 그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부디 무탈하게 살고 있기를.

 

미안하다 친구야. 연필 따위로 째째하게 굴던 친구를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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