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고 되뇌일만한 구절들이 너무 많다. 어찌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어찌보면 ‘득난’이나 기득권인 그를 보며 생각한다. 그가 진골이었다면, 그가 문무왕 시절에 활약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은 힘이 넘쳤고, 이방인으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들은 슬픈 시름이 가득했다. 불교의 가르침을 말할 때는 그 깨달음이 엄청나 놀라웠고, 삼국유사에서 보던 기이한 이야기들은 반가웠다.
할리퀸 소설부터 로설을 지나 로판이라… 로설을 종이책으로 읽던 때 좋아했던 책이 ‘연록흔’이랑 ‘공녀’, ‘빛과 그림자’,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영원보다 긴 사랑’ 등등 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주와 남주의 성격과 위치가 조금씩 바뀌긴 했다. ‘루시아’, ‘김비서’, ‘재혼황후’를 넘어 로판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제법 흥미진진하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연애는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남녀 모두 세상을 버려야 했고, 염라 대왕은 자신이 은퇴하기 위해 박생을 꼬드겨야 했고, 용왕의 집을 다녀 온 한생은 이 세상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승이라는 곳이야말로 벌 받는 곳일지도 모른다.
여자의 심리를 잘 나타낸 소설이라는 평을 봤는데, 그냥 각각의 사람들의 감정을 그려낸 것이지 않을까. 우네의, 조제의, 이와코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하나 밖에 읽지 않아 ‘조제’란 이름이 주인공인 소설을 알지 못한다. 조제는 사강의 소설이 그리는 것들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