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물
와카츠키 치나츠 감독, 오구리 슌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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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오랜만에 남매 3명이서 옹기종기 모여 봤다. 겁증도 많으면서 유독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막내와 가족과 함께가 아니면 공포영화를 거의 즐기지 않는 둘째와 어떤 공포영화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이렇게 세 명은 밤 12시 불을 끄고 이 영화에 주목했다.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막내는 중간 중간 놀래놓고선 하나도 안 무섭네..라는 반응. 둘째는 무섭다.. 앞으론 뭐 안 주워야지..라는 반응. 나는 하.. 일본공포영화 다시는 안 본다.. 지루하다..는 반응.

예쁘장하게 생긴 우리의 주인공 '나나'는 동생 '노리코'와 함께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병문안을 가던 중 노리코의 친구 '타카시'를 만난다. 타카시는 정말 바보같이 귀신에게 끌려가는데, 예고편에서 나온 장면이라 그런지 식상했다. 하여간 귀신도 참 너무하다. 하필 타카시를 데려갈 게 뭐람. 어린 애를 말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창창한데...

나나와 같은 반인 카나에는 남자친구 시게루로부터 지하철에서 주운 팔찌를 선물로 받는다. 물론 샀다고 거짓말한 시게루의 말을 믿은 카나에는 그 팔찌를 예쁘다며 팔에 차지만, 그 날 이후 죽을 때까지 카나에는 그 팔찌를 풀지 못했다. 시퍼렇게 멍이 든 팔을 보고 있으니 마치 동화 빨간구두가 생각났다. 발목이 잘릴 때까지 춤을 멈추지 못했던 그 불쌍한 여자애 이야기 말이다. 거기서 모티브를 딴 게 아닐까 싶던 찰나, 시게루가 열차사고로 죽는다. 어린애는 그냥 막 끌고 가더니 다 큰 애는 끌고 가기 힘들었는지, 죽여서 데리고 가네.. 카나에 역시 귀신이 밀어붙여서 죽여버린다.

벌써 세 명이 우연히 주운 물건 때문에 죽었다. 왜 일까.. 왜 물건을 주우면 죽는걸까? 영화 속에서 귀신은 시종일관 '돌려줘...'를 외친다. 아니, 뭘 돌려달라는 건지 말을 해야 돌려주지.. 말을 안 하고 무턱대고 돌려달라면, 누가 알아듣고 돌려준단 말인가. 귀신도 참 어이없다.

나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고들 속에서 동생인 노리코를 잃어버린다. 심장이 약한 엄마에게 말 못한 채 노리코를 찾는 나나. 필사적인 그녀 앞에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고, 의문은 서서히 풀려가는데...

일본 공포영화는 일상을 추구한다. 영화들 대부분이 자주 쓰는 물건들이나, 자주 접하는 것들이다. '링'이 그랬고, '착신아리'가 그랬다. '주온'이나 '검은 물 밑에서'는 집과 관련된 공포영화였다. 그리고 주로 심리적으로 공포감을 형성하려고 한다.

모순적으로 소재는 일상성을 추구하지만,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미국 호러물 '13일의 금요일밤'에서 제이슨이 단순히 그 장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살해했듯, 일본 공포영화에서도 그 물건을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영화 말미에 가면 왜 죽였냐는 물음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들은 '그냥' 죽였으니까. 복수도 심판도 아니다. '그냥'

이 영화에는 야차녀가 나온다. 물론 다 잘라먹고 왜 야차녀를 봉인해 둔 듯한 신전 같은 게 있는지, 정확히 그 야차녀를 모시던 곳인지 봉인한 곳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야차녀는 자신의 공간에 꾸역꾸역 시체들과 원혼들을 쌓아놓을 뿐이다.

그래. 물건을 주우면 꼭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하자. 이 영화가 내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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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브랜드 이미지 실추?

인사팀에서 들은 이야기.

회사에서 사회환원사업으로 후원하는 단체중 칠드런세이브가 있다.
칠드런세이브는 주로 아동폭력이나 방임으로 고통받던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으로,
결연위탁이나 시설보호를 받기 전의 중간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직접적인 학대의 희생자인 경우도 있지만,
가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은 편이다.

회사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번에는 특별히 운동화를 선물해주기로 했는데,
워낙 대량구매를 해야 하다 보니 직거래를 위해 공장으로 연락했다가 여기저기 퇴짜를 맞았단다.
화승산업(르까푸, 월드컵, K.swiss), 나이키 등의 유수한 브랜드에서
대량구매의 이유를 묻더니 그런 아이들이 신으면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으니,
차라리 현금으로 후원 해줄 수는 있어도 팔 수는 없단다.
하아, 정말 기가 막힌 고급화 전략이다. 고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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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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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낀다. 내가 독일어를 잘 해서 원서를 읽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번역한 책의 문체가 이토록 유려할진대, 원서로 읽으면 그 감동이 사뭇 더 깊어지지 않겠는가. 허나 나는 그냥 번역된 책이라도 열심히 뒤적일거다. 배우고픈 언어가 어디 독일어 뿐이겠는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뽑아 올린 12가지 이야기들은 세계사,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서양사에서 유명한 사건들이다. 오직 하나, 천년 제국 비잔틴을 무너뜨린 내가 좋아하는 마흐메트 이야기만이 동양과 서양을 관통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인류 역사를 바꾼 순간들이란 제목은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라면 칭기즈칸 이야기도 넣었을텐데. 광기와 딱 들어맞는 인물이 아닌가. 여전히 우리사회에 깔려있는 서양 동경하기가 남아있는 제목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래서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헨델의 메시아. 그가 생애를 통틀어 단 한 번, 신의 은총을 입어 작곡했다는 그 신성한 곡. 내가 신자가 아니라서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다지 큰 영감을 주지 못했다. 남들이 좋다고, 불멸의 곡이라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 프랑스 혁명을 달군 노래 라 마르세예즈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그 곡이 내게 광기로 다가올 수는 없다. 하지만 위의 두 곡 모두 한 세대를 통과해 아직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걸 보면, 역사는 츠바이크의 말처럼 어느 순간 별처럼 나타나 모든 에너지를 응축하여 한 인간을 통해 광기로서 그 빛을 퍼뜨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한 사람의 천재에게만 그 짐을 지우는 건 오만이 아닐까. 한 사람의 천재가 나기 위해 수없이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어쩌면 천재는 그들의 에너지를 모아 그들 모두를 대표하여 그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우연이란 존재가 역사를 좌지우지 한 건, 어쩌면 그건 필연일지도 모르지만, 두 가지 이야기다. 마흐메트의 비잔틴 제국 함락과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 것. 역사가 결정지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이 두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 시대를, 한 국가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전쟁 중에 성문 하나를 잠그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열린 성문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비잔틴은 망했을테지만, 그 천년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 줌의 재로 화해버리다니.. 마치 한 편의 블랙 코메디를 보는 듯하다. 워털루 전투는 또 어떠한가. 역사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을까. 나폴레옹이 더 이상 세계를 호령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니 극적 탈출을 감행한 그의 곁에 결단력 있는 장군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패배가 결정지어진거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덧붙인 에필로그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신을 섬기고 노동자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대지주에 백작이라는 귀족이다. 이런 괴리를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마침내 생의 마지막에 와서야 끝장을 내버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뭐, 작품을 볼 때 작가까지 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딜가나 탐욕은 화를 부른다. 황금에 대한 광기에 휩싸여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 두 사나이, 발보아와 수터. 둘 다 불한당이었으니, 역사에 이 정도라도 이름이 남아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물론 침략 당한 자들의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역사일테고. 특히 발보아. 이 사람은 시대의 죄인이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와 그가 이끈 사람들이 죽인 원주민의 숫자를 떠나서 그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들이 짓밟은 문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제발 그네들의 입장에서 개화이니 문명을 전달했다느니 하는 개소리는 집어치워주길. 황금 때문에 눈이 멀어 서로를 살상하는 게 어딜 봐서 문명인가. 이들이 발견한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다. 스페인의 땅이 아니다.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땅이다.

차라리 불굴의 의지로 대양 간 케이블을 깐 사이러스 필드야말로 영웅이지 않을까.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외치던 일을 여러 번이나 실패하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낸 그 집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광기라고 생각한다.

레닌의 이야기가 너무 짧게 다루어져 아쉬웠다. 역사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게 바로 레닌이었으니. 그런 방식으로 러시아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그가 탄 봉인열차야말로 새로운 한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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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츠바이크에 대한 찬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알라딘 내에서. 아직 한 권도 접하지 못했는데.

꼬마요정 2007-05-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정말 정열적이면서도 격렬해서요.....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간답니다. 그래서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문체에서 반하고, 내용도 친근감 있어서 내용에도 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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