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가 친구들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내가 굶어죽을까봐 어찌나 걱정하는지 내가 무슨 전래동화에 나오는 떡목걸이 목에 걸고 굶어죽은 남자인 줄 알았다. 오히려 자기랑 있으면 뭘 먹어야할 지 고민인데, 혼자면 먹는 걱정 안 해도 되니 좋구만. 남편은 자기가 요리도 잘 하고 먹는 것도 좋아해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는 걸 원하고, 나는 대충 아무거나 주워 먹는 걸 좋아해서 가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니까.

 

아니, 나도 혼자 잘 할 수 있다고. 혼자 밥도 잘 먹고, 보리차도 끓여 놓고(물론 보리를 너무 많이 넣긴 했지만), 청소도 하고 한다고.

 

근데, 천장에 붙어 있는 모기는 못 잡았다. 키가 작아서 의자 가지러 간 새 날아가고 없는거다. 결국 물렸다.ㅠㅠ

 

오랜만에 혼자 있으니, 책 널부러놓기 딱 좋다. 하루 배송으로 책도 샀다. ㅎㅎ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졸았다가 냥이들이 밥 달라고 깨워서 밥 주고.. 뭔가 푹 쉰 느낌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어느 날...

 

그래도 남편이 빨리 오면 좋겠다. 젤 친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니 뭔가 허전하네.

 

그래서 선택한 책!

 

첫 장부터 베껴 쓰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난 무위도식이 좋은데 책들은 날더러 자꾸 노력하라 하네.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삶을 사는대로가 아닌 생각한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나를 위한 삶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영혼이 하는 일이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으려면, 종심(從心) 즉 70이 되어야 하는걸까. 아니, 70이 되어도 안 될 거 같다... 공자조차 일흔 살에야 다다를 경지인데 하물며 나는.

 

게다가 세네카도 그러지 않았나. 사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고, 죽는 것을 배우는 데에도 평생이 걸린다하니..

 

내가 책을 읽고 위로 받는 건... 사는 법을 배우고 또한 죽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일이겠지. 이럴 땐, 예술가나 배우, 가수들이 부럽다. 그림을 그릴 때, 음악을 연주할 때, 연기를 할 때, 노래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들이 말이다. 그런 쪽으로는 재능도 없고, 노력 할 생각도 없는 나는 결국 공부...만 했는데,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 먹고 살려고 일을 하고, 그 일은 스트레스를 주고, 일과 취미를 같이 하기 위해 시간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고.. 하아...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노는 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아, 물론 한국 사회는 '노는 법'도 잘 모르지...

 

물론, 세네카는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란 무엇일까.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마음대로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상태,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

 

언제쯤 알 수 있을까. 그 해답을.

그렇지만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한다면 우리의 수명은 가장 큰 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지요. 하지만 인생이 방탕과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버리면, 좋지 못한 일에 인생을 다 소모하고 나면, 그때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강요에 못 이겨 인생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오. (p.8)

마치 폭풍이 그친 뒤에도 너울이 이는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니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지요.

그들은 자신의 행운에 질식되어가고 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부는 무거운 짐인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능과 달변을 보여주려고 매일매일 피 말리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요!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요.(p.11)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서 남이 거만하다고 감히 불평을 늘어놓아도 되는 것인가요? 그대가 누구든 간에 아무튼 그분은 거만한 눈길로라도 언젠가 그대를 알은 체했고, 귀를 낮추어 그대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대가 자기와 나란히 걷게 해주지 않았던가요? 그대를 보고 그대에게 귀 기울이는 것을 그대 자신은 가치 없는 일로 여겼는데도 말이오.(p.12)

현인은 언제나 온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고, 남들 위에 있기 때문이지요. 대체 무엇이 운명 위에 있는 사람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있겠소? (p.21)

이 학문은 그대에게 신의 실체와 의지와 성질과 형태가 어떤 것이고, 어떤 운명이 그대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육신에서 해방되면 자연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어떤 힘이 이 우주의 가장 무거운 성분을 한가운데에 붙들어두고 가벼운 성분을 그 위에 떠다니게 하고 불은 맨 위로 가져가고 별자리들의 위치를 바꾸게 하는지, 그 밖에도 매우 경이로운 일들을 가르쳐 줄 텐데도 말이오.

그대는 땅바닥을 떠나 마음의 눈으로 이런 것들을 보시오! 아직도 피가 뜨거운 동안 더 나은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해요. 이러한 생활방식에서는 많은 고귀한 학문이, 미덕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욕망의 망각이, 삶과 죽음에 관한 지식이, 마음의 안식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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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16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위도식 좋아해요ㅎ
고전문학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18-09-16 14:19   좋아요 1 | URL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움직이도록 하는 거 같아요. 재미도 있구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다 읽을 수 없어 아쉬워요^^

2018-09-18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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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pp.93-95)

옛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는 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거나 남이 만든 지식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하지요.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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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나 대프리 듀 모리에 다 있는데ㅜㅜ 기념판 이런 거 나오면서 손수건도 준다니...ㅠㅠ 사야하나

교환 이런 거 해주면 좋겠다. 지난 판본 얼마만큼의 금액 인정해주면서 말이다. 하아.. 굿즈는 사람을 힘들게 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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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8-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좋아하시는 꼬마요정
뮤지컬로도 레베카를 만나보셨겠네요♡

꼬마요정 2018-08-26 21:34   좋아요 0 | URL
네 ㅎㅎ 뮤지컬로도 보고 책으로도 보고 영화도 봤어요^^ 자꾸 좋아하는 책이 리커버로 나오고 이럼 어쩌죠 ㅠㅠ
 

오늘도 오류가 났네요.

 

방문자 수가 2만이 넘었습니다. ㅎㅎㅎ

 

왠지 인기인이 된 느낌입니다.

 

이러다가 다시 들어오면 방문자 수 6명.. 이럴테지만, 잠시잠깐 기분은 좋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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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류가 자주 나더라구요ㅜㅜ

꼬마요정 2018-08-20 22:20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얼마 전에도 오류가 나서 잠깐 신이 났는데, 왜 그런 걸까요ㅠㅠ 해킹이나 이런 건 아니겠죠... 알라딘 해킹해서 뭣에 쓰려고 말이죠.. ^^;;

카스피 2018-08-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하루에 엄청 많은 사람이 방문해서 이거 오류구나 하는 생각이들더군요^^

꼬마요정 2018-08-23 16:55   좋아요 0 | URL
오류가 자주 나는 듯해요 ㅎㅎ 뭐 잠시 기분은 좋네요 ㅎㅎㅎ
 

마을에는 꼭 소문과 오지랖의 근원지가 있다. 미장원이나 세탁소 같은. 여기 미겔 스트리트에는 해트가 그런 인물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힘이 빠지는 것도 오랜만이다. 아, <더블린 사람들>도 그랬지. 그 책은 시종일관 우울해서 식겁했더랬지.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무기력함이 나를 짓누른다. 거기에 도덕이라고는 없는 듯한 미겔 스트리트 주민들의 행태가 숨 막힌다. 때리고, 훔치고, 조롱하고...

하지만 더운 날씨가 우울감을 어느 정도 벗겨 주고 있다. 트리니다드 섬은 추운 곳이 아니라 그런지 밝은 느낌이다. 사회적 환경은 어두운데 자연 환경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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