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브 공작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9
라파예트 부인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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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영국 드라마 '제인 오스틴의 후회'를 봤다. '오만과 편견', '설득', '엠마' 등과 같이 유쾌하지만 고단하고, 명랑하지만 우울하기도 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감정들을 쏟아냈다. 결코 자신이 그려냈던 사랑을 하지 못해 안타까워했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남겨주는 것이 없어 슬퍼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자신에게 청혼했던 이들.. 톰 르프로이, 해리스 빅, 브룩 브리지스.. 그들이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법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아.. 비커밍 제인에서의 톰은 안 되는 것이야?)

 

가슴이 울렸다. 제법 행복한 것은 아니라니.. 하긴,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같은 남자를 만든 사람이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드라마에서 누가 이런 대사를 쳤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남). 아아.. 다아시.. 멋져.. 제일 처음 읽은 오만과 편견에서는 '다시'라고 해서 좀 그랬는데.(자꾸 다싯물 낸다는 그 다시가 생각나서..ㅠㅠ) 소설들 중에서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꼽을 사람 중 하나라고나 할까.

 

어쨌든, 클레브 공작부인을 이야기 하려면서 왜 제인 오스틴을 끄집어 냈느냐 하면.. 두 사람이 너무나 같으면서도 달라서라고나 할까. 진정한 사랑이 아니어서 자유를 선택한 제인과 사랑의 결말은 사랑마저 슬프게 만든다고 생각한 클레브 공작부인, 사르트르 양은 다르면서도 닮은 꼴이다.

 

그 유명한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 왕세자비로 있다 왕비가 되던 시절, 화려한 프랑스 궁정 사교계에 품행이 방정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등장한다. 성격, 지식,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이 아가씨는 사르트르 양으로 메리 스튜어트와 비견될 정도인데,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 살짝 흠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여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결혼하게 된 클레브 공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은 남편만을 믿고 의지하는 데, 남편은 계속 사랑을 달라고 하니 도대체 사랑이라는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녀로서는 그저 자신의 어머니 사르트르 부인에게 의논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위며 공적이며 외모며 뭐 하나 빠지지 않는 훈남 '느무르 공'을 만나게 된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둘이 만났으니 둘이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일터.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구나. 가진 것들 때문에 오만하거나 못되먹은 성격이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겠지만, 불행히도 느무르 공은 유쾌하고 재미있는데다 정중한 사람이었다. 사르트르 양 아니 이제는 클레브 공작부인이 된 그녀는 그런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 남편인 클레브 공작이 원하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느껴버리다니.. 정숙하고 규범에 충실한 그녀는 혼란에 휩싸인다. 자신이 의지하던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이런 감정들을 털어놓을 데는 아무데도 없다.  

 

그래도 클레브 공작부인은 이성으로 중무장하여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느무르 공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20대의 젊은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터질 정도로 뛰는 가슴과 번져가는 웃음과 자꾸만 그를 바라보고 싶은 두 눈을 어떻게 숨길 수 있었을까.

 

제인이었다면.. 아마 느무르 공과 결혼했겠지. 진정한 사랑을 만났으니 진정한 행복을 느낄테고. 사랑하지 않는 클레브 공작과는 애초부터 결혼하지 않았을테니. 그러나 사르트르 양은 결혼한 몸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와. 자신에게 헌신하는 남자와.

 

클레브 공작부인은 사랑을 몰랐던 여자이며,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한 여자였다. 그랬기에 그녀에게 사랑이란 설레고 따뜻하고 행복한 감정인 동시에 남편을 배신하고 남들 눈에 띄어서는 안되고,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감정이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 속에서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한 지, 사랑이 끝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지 알게 된다.

 

사랑이 끝나기 때문에 사랑해서는 안 된다니.. 자신이 느무르 공과 결혼하면, 느무르 공이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해도 자신이 그를 의심할 것이고.. 혹은 클레브 공작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이는 마치 '좁은 문'에 나오는 엘리사 같지 않은가. 신이여 그를 사랑하지 않을 용기를 주소서..

 

그녀에게 사랑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장애물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추억일 뿐인걸까.

 

그녀가 살아간 날 동안 그녀의 평판은 완벽하게 지켜졌고, 그녀만의 사랑은 끝이 났다.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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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7-2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을 문학동네에서 다시 냈군요.30여년 전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적이 있죠.근대 소설 성립 이전에 나온 고전인데 이런 책도 읽으시고, 대단해요.

꼬마요정 2014-07-27 21:51   좋아요 0 | URL
노자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프랑스에서는 난리가 난 책이더라구요. 심리 분석이 탁월하니, 스타일이 최고라니 극찬이 자자하던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스타일이 뭔지를 모르니..ㅜㅜ 하지만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루쉰P 2014-07-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무서운 것이 하나 있는 데, 자신의 죽음과 사랑이죠. 개인적으로 말이죠.
아 그거 참 어려워요. 그녀의 사랑이 과연 행복한 것이었는 지....그녀는 그 시대에 맞게 자신의 사랑을 간직했나봐요.
그녀가 불행한 건 사랑을 느끼기 전에 결혼을 한 것이었지 않을까 싶어요. 전 그래서 사랑을 느끼면 결혼을 할려구요.
물론 여성이어야 하구요. 후후후. 느끼기만 해봐 후후후
흠...도서관에서 공부만 해서 그래서 이런가 봐요. 이해해 주세요.

꼬마요정 2014-07-27 21:53   좋아요 0 | URL
크으~ 루쉰님 말씀이 옳아요~ 그 시대에 맞는 사랑법이었겠죠. 시대상 애정보다는 가문의 결합이 더 큰 목적이었으니, 그것이 비극이로군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된 세상에 살아서 다행이에요~^^ 루쉰님도 꼭 행복하세요!!!

공부 열심히 힘내서 하셔욤~ 원하는 바를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4-07-2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할 적에는
참말 '행복한가'를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그 길을 아름답게 가야지 싶어요..

꼬마요정 2014-07-27 21:5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함께살기님~~ 한 세상 살다가는 거 행복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행복한 길을 아름답게 간다는 거.. 정말 정말 멋집니다.^^
우리 함께 행복한 길을 아름답게 가 보아요~^^

다락방 2014-07-3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죠, 꼬마요정님! 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러가지 생각도 복합적으로 들었던 책이에요. 저는 공작부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아 이 여자야 그냥 사랑을 쥐어, 그 사랑을 잡아! 하고 애타는 마음이 되었더랬죠. 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꼬마요정님의 리뷰도 재미있네요!!

꼬마요정 2014-07-30 11:29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도 읽으셨군요.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어요. 아.. 근데 묘하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크.. 복잡하지만, 결국은 사랑을 잡는 게 좋지 않을까.. 로 결론을 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 책을 펼치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