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되던 해, 난 세상의 전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건 만으로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겨우 깨닫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야 분위기에 휩쓸려, 할 줄 아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던 터라 그거라도 했지만, 대학이란 공간에서 성인이란 무게의 추를 달고 있는 이상 정말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무난하게 해낸 것도 같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철이 없어도 한참 없다는 느낌이다. 그 때는 내가 다 자란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성년이 되어 성년의 날을 맞이했을 때, 나름대로 들떠 있었다. 한 송이 장미와 향수, 그리고 키스. 모든 걸 바란건 아니었다. 다만 기억해주길 원했던 거였는데.

그날 바람을 맞았다. 1년 전부터 약속했었는데. 꼭 꼭 챙겨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잊어버렸나보다. 난 후배들이 성년의 날 축하해 준다고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고 기다림으로 학교 앞을 배회했다.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 서늘함과 어둑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 난 그 일을 잊어갔다. 뭐, 사람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그냥 웃으며 털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매년 성년의 날이 되면 그 때의 감정의 상처가 터져 나온다. 곱게 꿰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보다. 어째서 성년의 날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하는지... 안 그러면 모른 채, 잊은 채 지나갈 수 있을텐데...

아마 나의 자격지심 내지는 질투심이랄까... 난 그 뒤 성년의 날을 맞이한 후배들에게 장미를 선물하지 않는다. 아니, 그 날 이후 만난 이들 중 성년의 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인사 한 마디만 건넬 뿐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이 치졸한 감정에서 벗어날 그 날을 기다려본다. 그 때는 웃으며 성년의 날을 추억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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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5-17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만 기억해주길 원한단거...

책읽는나무 2005-05-17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억해보니 나의 성년의 날도 그냥 흐지부지 지나갔던 것 같네요..ㅡ.ㅡ;;
별다른 기억이 없는 걸 보니.....ㅠ.ㅠ
엄청 기대를 했었는데....너무 시시하게 지나가버려 오히려 눈물이 날뻔했었다는~~
그때 남자친구도 군대 갔었고...ㅠ.ㅠ

암튼....성년이 된 후 자꾸 나이드니까....오히려 요즘따라 성년식을 치르게 되는 기분입니다요!...마음이 너끈해지는 것이 진정 성년이 된 듯한 기분!..^^
요정님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웃으면서 성년식의 안좋았던 추억들을 되새기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약간의 앙금은 두고 두고 남겠지만 말입니다..ㅋㅋㅋ
그래도 그렇지~~ 바람을 맞히다니...=3=3

꼬마요정 2005-05-1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그렇죠... 아무것도 안 줘도 돼요, 안 만나도 돼요, 단지 전화라도 한 통화 해서 알고 있다는 표띠는 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흥흥..=3 ^^;;
책읽는 나무님~ 그렇군요~ 님도 성년의 날을 흐지부지 보내신 거에요!!! 군대를 가버리다니..흠... 그쵸? 기대를 하면 그만큼 실망이 커지니까 더 슬픈가봐요 ㅡ.ㅜ
그래도 마음이 너끈해지신다니 좋겠어요~~ 저도 얼른~^^

마태우스 2005-05-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같은 미인을 바람맞히는 사람이 있다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2005-05-18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05-05-1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두 참~~^^ 어지러워요~^*^